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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력공사-61화 (61/275)

< 61. 삼분지계(3) >

고대 진나라(기원전 900년) 때부터 만들어 왔다는 만리장성은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백 년에 걸쳐지어졌다.

만리장성은 만 리가 아니었다.

실제 길이는 만 리의 1.5배가 넘는 6,350km나 된다.

이 거대한 장벽은 풍요로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이 유목민족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장벽이 있는데도 유목민족의 말발굽에 대륙은 여러 번 정복 당했다.

이번에는 청나라의 말발굽에 대륙 전체가 멸망 직전까지 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남명의 제5대 황제인 영력제.

원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지만, 고마움을 몰랐다.

염치가 없는 영력제는 대신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청나라의 학대(虐待)로 백성들이 남명으로 계속 유입되자 자신감이 넘쳤던 거였다.

"짐은 대륙 전체를 원한다. 그리 알고 북으로 진격할 준비를 하도록 하라."

"폐하, 지금 당장은 무리옵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책사나 다름없는 대신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영력제가 너무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력제는 손을 내 저으며 다시 말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크게 당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양자강을 건너 청을 치고자 한다. 이런 좋은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정세에 밝은 대신은 고개를 조아리며 또다시 반대를 표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환이 두려웠다.

좀 더 힘을 기른 후라면 몰라도 조선과 맺은 계약을 무시한다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폐하, 그건 아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청을 쳐서 이길 수 있다 하여도 조선이 그냥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부디 유념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이, 이! 또 조선이냐! 그놈의 조선이 내 꿈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영력제는 옥좌(玉座)를 내리치며 부들부들 떨었다.

힘을 가지면 표출하고 싶은 게 사람이라고 한다.

힘이 생긴 영력제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건 바로 진정한 대륙의 통치자였다.

하지만 영력제도 조선이 가진 무력은 두려웠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산해봤다.

조선이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래였을 뿐이다.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조선 땅을 탐내지 않았다.

그런데 인제 와서 조선이 대륙의 반이나 되는 땅을 탐을 내고 간섭하려 하다니,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력제는 한숨을 내쉬며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됐건 뭐라도 하려면 조선과 다시 협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문식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보자고 전해라."

"폐하, 박문식은 조선으로 돌아갔습니다."

"뭐라?"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께서···."

"크흠!"

분명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영력제는 털퍼덕 옥좌에 주저앉았다.

'그런 말 하려거든 당장 꺼지거라! 더는 네놈의 얼굴을 보기 싫으니 나가는 즉시 이 땅을 떠나거라!'

'폐하의 어명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또한 더는 조선으로 쌀을 보낼 수 없으니 그리 알라.'

'폐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 후로 박문식은 찾아오지 않았다.

말끝마다 계약을 들먹여서 화가 나서 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조선으로 돌아갔을 줄은 몰랐다.

영력제는 초조한지 옥좌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박문식이 없다면 당장 협상을 논할 수가 없었다.

조선으로 사신을 보낸다고 해도 시일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총포와 화약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상황을 인지한 영력제는 눈을 번쩍 떴다.

"조선에서 사들인 총과 화약은 얼마나 남았느냐?"

"한 달 정도는 쓸 수 있습니다. 폐하."

"그렇단 말이지···."

영력제는 안심이 되는지 씩 웃었다.

그동안 조선에서 만든 수석총을 복제하려고 시도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드디어 양산 단계에 들어섰다.

비록 조선에서 수입한 화약보다는 질이 떨어지지만, 남명에서 만든 화약도 그런대로 쓸 만했다.

그러니 염려될 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일이 문제였다.

"만들고 있는 총포와 화약은 어찌 돼가느냐?"

"폐하, 조선의 수석총을 본떠서 만든 총은 열심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뭣이냐?"

"조선의 수석총에 비해 성능이 떨어집니다."

"크음."

성능이 떨어진다는 말에 영력제는 침음을 내뱉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선의 수석총에 비해 용수철의 강도가 좋지 않았다.

개선하려 했지만, 아직 성과가 없었다.

그렇다 하여도 남명의 장인들이 만들어 내는 수석총과 화약을 쓴다면, 부족한 쌀을 팔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남명으로 유입된 인구가 늘어나자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굶주린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자 더는 쌀을 조선에 팔 수가 없었다.

민심이란 변하기 쉬웠고, 굶주린 백성들은 반란군과 같았다.

따라서 영력제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명의 인구는 청나라보다 많았다.

그랬기에 청나라와 전쟁에서 밀리지 않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강국이 되어버린 조선과는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선에 넘길 쌀을 백성들에게 돌려라."

"하오나 폐하. 총과 화약을 만드는 비용이 조선에서 사 오는 비용보다 비싸게 듭니다."

"크흠."

영력제는 두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회로를 돌려 보았지만,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박문식은 총과 흑색화약을 팔 때, 시세보다 1할 정도 저렴하게 책정했다.

이는 원의 명에 따른 거였다.

'팔면 남는 것이니 무조건 남들보다 1할은 싸게 팔아라.'

일일이 수공으로 만드는 서양의 수석총은 대양을 건너오면서 가격은 폭등했다.

그에 비해 기계식 자동화 시설로 생산되는 조선의 수석총은 생산 단가가 없다시피 했다.

단순히 직원들이 먹는 식대와 얼마 안 되는 월급 말고는 들어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됐다. 비용이 들더라도 더는 조선에 의지하지 않겠다. 허니 청을 칠 준비를 하거라."

"폐하! 아니 됩니다. 만약 조선에서 조약을 들먹이며 항의한다면···."

-탁!

영력제는 옥좌를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때는 적당히 협상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더는 따지지 말라."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신들은 영력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조선과 달리 대륙에서 황권이란 절대적인 것.

불응하면 목을 내놓아야 한다.

* * *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해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청나라 대신과 조선의 예조판서 조경이 마주 앉았다.

서로 간에 의견이 오가고 조율이 끝나자 조경이 청나라 옥새를 대신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합의한 내용이니 날인(捺印)을 하시겠습니까?"

"그럽시다."

청나라 대신은 돌려받은 옥새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두 장의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경도 기쁨을 감추며 조선에서 가져온 옥새를 합의 문서에 날인 했다.

계약을 끝낸 조경이 중요한 내용을 주시시켰다.

"앞으로 청나라의 도발이 없는 한, 우리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만리장성 남쪽 10리로 정해진 국경선을 지킬 것입니다."

"고맙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약 문서를 챙긴 청나라 대신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항복이나 다름없었기에 심히 불편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 대원들은 청을 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했지만, 조경은 아니었다.

예조판서 조경은 유학을 배우는 선비로서 어찌 감히 대륙을 넘볼 수 있을까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만주를 얻는 것도 모자라 거대한 곡창지대인 산동반도까지 조선의 땅으로 확정됐다.

기쁨을 참을 수 없는지 조경은 크게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우리 조선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조경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기쁨의 눈물을 닦았다.

* * *

효종 2년(1650) 5월 5일.

화사한 봄꽃이 만발한 이 날, 조선과 청나라는 '산해관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하였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국경선은 만리장성 이남 10리 밖으로 정한다.

-청주성을 기점으로 한 산동반도를 조선에 양도한다.

-조선의 노예들은 모두 산동반도 청주성으로 돌려보낸다.

또한 '산해관'과 산동반도 남쪽 '일조'에 교역 장소를 설치하고 상호 무관세 무역에도 합의했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남명에 팔던 수석총도 팔기로 했다.

'그까짓 수석총이 있다고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많이 팔면 됩니다.' 원이 안 된다고 우기는 조경에게 한 말이었다.

원의 고민은 은쌍식이 말하는 멍텅구리 수석총이 아니었다.

새로 얻은 만주와 청나라 팔기군이 소유했던 산동반도 였다.

그곳을 어찌해야 할지 밤낮으로 고심에 빠졌다.

효종의 어명이 있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전쟁에 나서서 얻은 땅이니 조정에서는 일절 간섭하지 말라'는 단호한 어명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얻은 곡창지대를 개발하는 일은 오로지 원의 몫이 되었다.

원은 고민 끝에 행식이까지 불러들여 논의했다.

며칠 동안 반복한 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원은 행식을 보며 말했다.

"만주는 행식이 네가 행정구역을 정하고 도로와 철도까지 맡아서 진행해라."

"네, 사장님."

"산동반도는 노예로 남아있는 우리 백성들을 활용하자."

여진말과 명나라말까지 할 줄 아는 조선의 백성들이 대륙 곳곳에 끌려와 노예로 살고 있었다.

모두 돌려받기로 했으니 그들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럼 그들은 모두 관리인이 되는 겁니까?"

"그렇다. 그러니 네가 투입할 사람들을 뽑아 교육부터 하거라."

"네. 사장님."

산동반도에 사는 대륙의 백성들은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 쫓아내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우리 조선의 말과 글을 배웠을 때 이점을 잘 설명하고 조선의 문화를 퍼트려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선식이에게 부탁하여 자주 방문하라고 전해라."

"네, 사장님."

놀거리나 볼거리가 거의 없는 세상.

선식이가 이끄는 공연단이라면 선동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노예로 살아온 백성들에게 자부심과 자존심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갑질하는 것은 두고 보면 안 된다."

"네, 사장님. 그런데 갑질이 뭔지 알려주십시오."

원은 당황하지 않고 설명했다.

"갑질이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짓이다. 아주 못된 짓이고 우리 조선에 악감정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러니 조선 백성이라 하여도 그런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 알겠느냐?"

"하지만 사장님. 그들은 우리와 다른 나라 사람 아닙니까? 꼭 그래야만 합니까? 어차피 노예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노예로 살아왔던 적이 있는 행식이는 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행식이가 갑질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당한 게 있었고 조선인이 아니기에 대우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들 또한 앞으로 조선의 백성이 될 사람들이다. 그러니 너무 함부로 대하지는 말 거라."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너희들도 알다시피 조선전력공사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 조선도 이렇게 바꿔 나갈 것이다. 그러니 모두 명심하고 갑질 따위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네, 사장님."""

밑바닥에 살다가 위로 올라온 사람이 더 심하게 갑질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원 또한 그런 일을 당해봤다.

21세기에서 병역 의무를 하며 못된 선입의 횡포에 열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을 보면 자신이 당했다고 후임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언제부터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x같은 군대문화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원은 대원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가족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네가 당했다고 남에게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을 옳지 않다. 그게 바로 갑질이고 못된 짓이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네, 사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원은 만반도 작전을 계획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지금 당장 청나라를 멸하고 대륙 북쪽을 차지한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청나라처럼 무력으로 다스린다 해도 병력이 부족했다.

청나라는 100만이나 되는 병사와 같은 백성들이 있었지만, 조선은 아니었다.

현대식 군사 교육을 받지 않은 조선군을 급히 모집해 투입하다 간 난리 날 것 같았다.

철저한 교육을 받아도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군인이다.

교육조차 하지 않고 모집해서 투입하면 끔찍한 상황으로 변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반란에 진이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대륙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만주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확실한 무력을 보여줬기에 청나라는 절대 조선을 넘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오면 또 죽이면 되지.'

회의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후, 홀로 남은 원은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배은망덕한 놈. 흥! 내 그럴 줄 알았지."

박문식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나자 원은 화가 났다.

'전하, 영력제가 더는 쌀을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리 갑자기 돌변할 줄은 몰랐다.

"남명도 쳐야 하나? 아니야."

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효종에게 삼분지계를 말 한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먹어봐야 계륵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륙을 삼키려다간 삼켜질 것 같았다.

대신 새로운 계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삼분보다는 사분이 낫지. 지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게 최선이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원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봤다.

'굳이 대만을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지.'

남명으로부터 쌀 수입이 끊기자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

정성공이 왕으로 있는 대명으로부터 쌀을 수입하고 있지만, 부족했다.

조선 백성들이 먹고살기에는 충분했지만, 만주에 널려있는 여진족까지 먹여 살리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그런데 산동반도가 조선의 손에 떨어지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대만은 정리할 필요가 있기에 박문식을 보냈다.

"문식이가 잘 해내야 할 텐데."

대만 정복은 순리대로 진행하라고 박문식에게 말해 두었다.

"우리가 네덜란드를 칠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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