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산유국의 꿈 - 지도 >
이번 만반도 작전에서 가장 큰 수확은.
'자원이지.'
헤벌리게 벌어진 원의 입은 다물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원은 조서원에서 보고한 내용과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 지도에 자원표시를 하고 있었다.
한반도보다 몇 배나 거대한 땅도 땅이지만, 만주에 매장된 엄청난 자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철광석과 구리, 석탄만 하더라도 원이 죽을 때까지 5%도 쓰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만주는 자원의 보고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양의 유전을 발견했다.
그것도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만으로 시추가 가능한 노천 유전이었다.
요동만 남쪽 일대에는 해마다 수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곳이 있다.
그곳에 대륙에서 3번째로 큰 유전이 있었다.
'이것도 조서원의 보고 때문에 알게 된 거지.'
원은 청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조서원의 요원들을 곳곳으로 보냈다.
진격로를 검토하고 매복할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서원의 부원장인 삼복이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반진 아래는 전부 뻘밭이라 놈들이 그곳을 통해 침공해 올 수 없을 겁니다. 뻘밭도 보통 뻘밭이 아니라 시커먼 기름띠가 흐를 정도여서 만약 그곳으로 온다면 밀떡 폭탄 한 개만 있으면 화공으로 몰살시킬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원의 머릿속에 태양처럼 밝은 빛이 떠올랐다.
'아, 시발! 왜 그걸 몰랐지? 노천 유전인데.'
그동안 동아시아에서 최고라 불리는 대경 유전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하(遼河) 유전'은 기억 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꼬리를 물었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요하 유전 말고도 더 엄청난 유전이 바로 남쪽 밑에도 있지.'
바다 밑이지만 발해(渤海)만 아래 연간 40만 배럴 생산이 가능한 유전이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사우디도 부럽지 않아!'
해상 유전이라 지금으로선 시추조차 불가능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로 생각한 원은 크게 웃었다.
옛 선조들의 땅이었던 만주를 되찾았다.
석유와 석탄과 수많은 광물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숨이 막혀 헉헉대긴 했지만, 기쁨의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철도를 연결하기 전에 석유 시추 장비부터 만들어야겠군.'
대경 유전은 지하 1.5km까지 뚫어야만 석유를 시추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지.'
하지만 노천 유전이나 다름없는 요하 유전은 원리를 설명해주고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을 굴리면 된다.
'아예 그곳에 석유화학 단지를 만들어야겠다.'
원은 드디어 산유국이 됐다는 생각에 미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무순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자원이 있다.
철도만 연결하면 대규모 중공업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원했던 산유국의 꿈.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옹진반도에 있는 것보다 몇십 배나 되는 20세기와 같은 산업 화학 단지를 만들려면 부족한 것이 많았다.
'사람과 시간이 문제네.'
어릴 때부터 옹진반도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은 조선 팔도 곳곳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모아 신병 교육이란 이름으로 기초적인 사회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전국에 초등학교부터 세워야겠군.'
할 일이 끝도 없이 많았다.
돈도 엄청나게 들어갔다.
이제는 조선에 사는 모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지만 확보한 만주 땅을 지킬 수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지도에 표시를 끝낸 원은 손을 털며 장부를 꺼내 들었다.
'자금은 충분해!'
다행히 남명과 대명에서 무기를 팔고 쌀을 계속 수입하고 있어서 먹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대마도 자유 무역 항구에서 금과 은이 계속 쏟아져 들어 오고 있다.
조선전력공사의 상품이 싸고 좋다고 소문이 났는지 대마 운하 옆에 새로 만든 대마 항구가 곧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거야 확장하면 되지.'
산을 날려버리고 평지를 만들려면 밀떡 폭탄이 많이 필요하다.
'압록강 너머 만주까지 확보했으니 풍부한 수력 발전소만 지으면 폭약이건 비료건 왕창 만들 수 있지.'
압록강 수풍수력발전소(水豊水力發電所)는 1940년에 시작하여 1943년에 완공되었다.
그 당시 한반도 전체에 전력 공급이 가능한 10만kW 발전할 수 있었고, 21세기에는 70만kW를 생산하고 있다.
'수풍 발전소가 완공되기 전에 알루미늄부터 만들어야겠군.'
그동안 알루미늄 생산은 뒤로 미뤘다.
전기 쓸 곳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송전탑을 세우려면 해야만 한다.
'구하기 힘들고 무거운 구리를 사용하여 송전선을 만드는 건 바보짓이지.'
송전탑을 연결하는 송전선은 가벼운 알루미늄이 최적이다.
알루미늄은 구리보다 저항이 두 배 크지만, 3.4배나 가볍고 질기기에 송전선으로 사용하기에 아주 좋았다.
더구나 코로나 방전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21세기에도 공중으로 연결되는 송전선은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땅에 묻어야 하는 고압선은 부피가 크면 절연이 좋지 않아 구리를 쓴다.
아무튼 원은 만주 정복이 끝나면 철도를 따라 송전탑도 세울 계획이다.
* * *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지키고 있는 산해관.
사령관 정용식은 도르곤이 이끄는 팔기가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면서 온단 말이지?"
"네, 사령관님. 제가 보기엔 완전 상거지 떼나 다름없었습니다."
도르곤의 팔기를 거지 떼와 비교하자 정용식은 웃음을 터트렸다.
대륙 북쪽을 지배하고 있는 청나라 황제보다 더 권력이 막강한 도르곤이지만, 패전으로 도주하다 보니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놈도 별수 없군."
"겁도 없이 덤벼들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합니다."
이제 경비 대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이 최강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 조선에 조총부대가 있었지만, 청나라군에게 처참하게 발렸다.
그걸 알고 있어서인지 대원들은 새로운 총으로 훈련을 받으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사라졌다.
신의주 대첩 이후 심양을 쳤다.
10배나 되는 청나라 팔기군의 공격을 무찔렀다.
대륙의 관문인 산해관도 점령했다.
들려오는 소식은 승리뿐이었다.
연전연승은 대원들에게 높은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자신감은 하늘로 치솟았다.
"오소리 잡을 준비를 하자."
"넵! 사령관님."
정용식과 참모들은 지도를 보며 다가오는 오소리를 생포할 계획을 짰다.
* * *
산해관 북쪽 50km에 위에는 수중현(绥中县)이란 마을이 있다.
작지만 주변에서는 제법 큰 곳이다.
도르곤의 팔기는 수중현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전하, 마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라고?"
"인적을 전혀 느낄 수 없어 수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물론 가축 한 마리 없었습니다. 또한 먹을 만한 양식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어디론가 급히 떠난 것 같습니다."
"대체,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혹시···?"
버일러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한 예상이 맞다면 이젠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뭐냐?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조선 놈들이 산해관을 점령하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닌지···."
"크흠."
"""전하!"""
도르곤은 어지러웠는지 순간 휘청했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도르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전하, 시간상 맞지 않습니다. 산해관을 점령하려면 적어도 수만 명의 병사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조선 해군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많은 수를 수송하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다른 버일러의 말에 도르곤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너의 생각은 어떤 것이냐? 지금 상황을 설명해 보거라."
"아무래도 진군할 때 털어버린 일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조선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면서 병사들이 좀···."
"크흠!"
도르곤의 팔기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 조선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보급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도르곤의 팔기가 지나간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버렸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안시성까지 가면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군이 있기에 그곳에서 보급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은 안시성을 우회했다.
마을마다 들이닥쳐 그나마 남아 있는 콩알 반쪽이며 쌀 한 톨까지 탈탈 털어왔다.
그것도 이제 다 떨어져 버렸다.
병사는 먹지 않아도 말은 먹여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곳까지 소문이 퍼질 일은 없을 테고."
"그러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소문이란 것이···."
"헛소리 말고 좀 더 주변을 살펴보거라. 혹시 산해관이 점령당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순간 병사 한 명이 말을 타고 급히 다가왔다.
병사는 군막(軍幕)으로 들어서서 군례를 올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주변에 숨어 있는 사람을 잡아 물어봤습니다."
"그래 뭐하고 하더냐?"
"우리가 대패하고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도망쳤다고 합니다."
"뭐라고! 어찌 우리 기병보다 빠르게 소문이 퍼질 수 있단 말이냐?"
"누군가 나타나서 소문을 퍼트렸다고 합니다."
"크흠!"
이제 말조차 먹일 식량이 없으니 산해관이 점령당했다 한들 우회할 수도 없었다.
세상이 모두 꽁꽁 얼어붙어 버렸는데 이 많은 병사를 어디로 데리고 간단 말인가.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도르곤은 연거푸 기침을 해댔다.
끝내는 각혈까지 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전하!"""
놀란 버일러들이 소리쳐 불렀지만, 정신을 잃었는지 도르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뭣들 하느냐? 빨리 전하를 모셔라."
""넵!""
서둘러 도르곤을 눕히고 침을 놓았지만, 누군가 봤는지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도르곤의 팔기군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하지?"
"튈까?"
"어디로 튄단 말이야?"
"미치겠네. 갈 만한 곳 없어?"
"지금은 붙어 있는 게 좋아. 낙오되면 굶어 죽든지 얼어 죽을 거야."
최정예라 말하는 도르곤의 팔기군도 별수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강행군을 하다 보니 심적으로도 해이해졌다.
아무리 강한 병사라 해도 굶주림은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 칼을 꺼내 들었다.
-히이힝!
여분의 말이 목이 잘려 쓰러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말들이 도살되면서 사람들이 떠난 수중현의 집들은 순식간에 허물어지며 폐허로 변해갔다.
곳곳에서 불을 지피며 말을 삶았지만, 그 순간조차 참기 힘든 병사는 말의 피를 빨며 허기를 달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버일러들은 대책을 구했지만, 별다른 수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산해관까지 가봅시다."
"그건 안되오.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산해관도 점령당한 것이 틀림없소."
"하···!"
처음 조선을 치려고 출정할 때만 해도 모두 들떠 있었다.
재물을 얻고 노예를 끌고 올 생각에 흥분하며 황홀해했다.
명나라를 멸한 팔기군에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참히 발렸다.
이렇게까지 힘든 상황에 부닥칠지는 몰랐다.
도르곤이라면 뭔가 대책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사르후 전투를 생각하며 자신했을 뿐이었다.
물론 조선군이 가진 총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1613년 기병 20여 기로 명나라의 4로군 중 하나인 이여백의 2만여 병력을 물리친 적도 있었기에 자신만만했다.
600여 기가 조선군의 조총 사격에 꽁무니를 뺀 적이 있었지만, 600여 기는 다시 돌진하여 조선군 9천여 명을 죽이고 이긴 적도 있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한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 달랐다.
야간 기습을 했지만, 조선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도망을 치지도 않았다.
하늘에 밝은 빛을 내는 것을 쏘아 올리고 청나라군을 몰살하듯 죽여버렸다.
"그냥 산해관으로 갑시다. 이리 굶어 죽나 얼어 죽는 것보단 항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혹시 압니까? 산해관이 멀쩡할지."
"제발 그러기를 바래야지요."
도르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자 버일러들은 속에 감춰둔 본심을 꺼냈다.
어찌 됐든 일단 살고 봐야 한다고 욕망이 꿈틀거렸다.
버일러들은 정신을 잃고 침상에 누워 있는 도르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