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55화 (55/275)

< 55. 작전명 만반도(3) >

양우리의 1차 보급 부대를 계곡 속에 파묻어 몰살시킨 조선전력공사 제5 기병 연대의 목표는 길림성 장춘(長春)이었다.

연대장 폭수는 만반도 작전대로 장춘을 점령하기 위해 양우리의 팔기군이 왔던 길을 역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계곡을 따라 산을 통과하자 대낮인데도 멀리 눈밭에서 쉬고 있는 2차 청나라 보급 부대가 보였다.

"저놈들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완전 군기가 빠져 있습니다."

"의욕조차 없어 보입니다."

어처구니없는지 참모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폭수는 쓱 한번 쳐다보더니 조3 소총을 높이 들어 올렸다.

-탕!

"모두 죽여라!"

"""멸!"""

총소리와 함께 떨어진 공격 명령.

기병 연대는 오랜만에 말을 재촉해 튀어 나갔다.

그런데, 기병 연대는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연대장 폭수는 청나라군 바로 앞에서 말 고삐를 잡아 멈춰 세웠다.

당황했는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따라오던 대원들 또한 같았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 있는 청나라 병사들.

그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렸다.

진격해 오는 조선전력공사 기병대가 오는 것을 보았다.

서로 소리를 치며 우왕좌왕했다.

그러더니 모두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 버렸다.

1개 잘란으로 구성된 청나라 보급 부대의 인원은 1,500명.

그 많은 수가 동시에 항복하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한 폭수와 대원들은 한참 멍하니 있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판단할 수 없었던 거다.

저항이라도 했다면 빠르게 모두 죽여버리고 이동하면 되는데 공격도 하기 전에 항복하다니.

어찌어찌 무기를 모두 수거하고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노끈으로 묶어서 데리고 이동했다.

한데, 똑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

도저히 궁금함을 참지 못한 폭수가 물었다.

"항복한 이유가 뭐냐?"

"우리는 해서와 야인 여진족입니다. 건주 놈들과는 친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냐?"

"그 이유 말고 뭐가 또 있겠습니까? 건주 놈들이 우리의 자식들을 데리고 가서 전쟁통에 화살받이로 썼고, 반항한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놈들보다는 조선이 우리에게는 차라리 낫습니다."

말을 듣고 난 폭수는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네놈들은 우리 조선의 영토를 수도 없이 침범하여 약탈했었다. 그런 네놈들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그건, 먹을 것이 없어서···."

"흥! 또 먹을 것이 없으면 또 약탈하겠다는 말이구나."

보급 부대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손을 흔들며 울먹이듯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앞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나리."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너 같으면 믿을 수 있겠느냐?"

"나리, 제발 믿어 주십시오. 조선과 통상만 하게 해준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흥! 통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약탈을 하겠다는 말이렷다. 차라리 네놈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 낫겠다."

"나리!"

수장은 눈밭에 엎드려 간절하게 외쳤다.

이런 상황이라 폭수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원이 명령하기를 무기를 든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라고 했지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으로부터 현대식 군사 교육을 받을 때.

상관의 명령은 반란이 아닌 이상 절대복종하고, 판단이 서지 않으면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서 대기하라는 교전 수칙을 배웠다.

청나라 포로들을 어찌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폭수.

즉시 열식 발전기를 가동하고 무전을 때렸다.

백령도 통신 본부로 상황을 설명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치지직, 여기는 대붕이다. 까마귀 오 나와라. 오바.

"여기는 까마귀 오. 말하라 대붕. 오바."

-치지직, 명령을 하달하겠다.

자세한 명령을 하달받은 폭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수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말하는 만주는 조선의 영토로 삼겠다. 자치권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살상 무기의 휴대 또한 금지할 것이다. 이를 따른다면 조선의 백성으로 대우해 주겠다."

"정말입니까? 조선의 백성으로 대우해 주겠다는 말씀이?"

수장은 앞말은 빼 먹고 뒷말만 들었는지 조선의 백성이란 말에 눈을 번쩍이며 따지듯이 물었다.

이미 심양에서 탈출한 조선의 노예들이 어찌 대우받았는지 보급 부대의 수장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폭수를 바라보았다.

소문에는 국경이 없다.

원은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소문을 일부러 퍼트렸다.

날조까지는 아니지만, 과장된 소문은 신의주에서 한양보다 먼 장춘까지 빠르게 퍼졌다.

원은 만주를 정복해도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문식이가 말하길.

'고구려, 발해의 유민들은 어떻게 됐을 것 같냐?'

'어떻게 됐는데?'

'668년 고구려가 망한 후, 남은 백성들은 갈가리 찢겨 여러 곳으로 이동했지.'

그렇게 운을 띄운 문식이의 설명은 길었다.

요동성과 국내성에 사는 주민들은 당나라로.

평양성 주변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을 하던 유민들은 신라로.

요동에 계속 살던 사람들은 신라, 돌궐, 만주 동부로.

요동 서북지역과 부여성 일대는 몽골고원으로.

두만강 유역과 길림 등지에 살던 사람들은 말갈족과 섞여 살면서 고립된 생활을 꾸려나갔다.

'완전히 흩어져버렸네.'

'전쟁에 지면 처참한 거야.'

그랬다.

세상 어느 곳이나 같겠지만, 전쟁에 진 백성들은 유민이 되어 정복자의 의지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진 발해 또한, 거란, 말갈에게 핍박을 받고 여진족에게 빵셔틀 노릇하면서 동화되었어.'

'슬프구나.'

'뼈 아픈 일이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순수 단일 민족이란 없는 거네.'

'없지. 단일 민족이 세상에 어디 있어. 다 섞였지.'

'맞아.'

'좋게 보면 한민족의 피가 동아시아 전체에 퍼졌기에 한국말만 하면 한국인이라고 볼 수 있지.'

그 말을 들은 원이 된 공식이가 발긋했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문화를 공유해야 같은 민족 아니야?'

'오호! 이제 좀 아는군. 맞아. 핏줄 따위는 다 필요 없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곳에서 산다고 해도 문화가 다르면 같은 민족이라고 볼 수 없지.'

그래서였다.

원이 힘들게 트랜지스터부터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무선 통신도 중요하지만, 라디오 방송으로 조선의 문화를 모두가 공유하게 해야 해.'

사실 라디오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리를 알고 수많은 실험을 해봤기에 장비만 만들어 내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트랜지스터가 수천에서 수십억 개씩이나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게 어렵지.'

어렵다면 옹진반도에 있는 공작기계보다 형편없는 장비로 1947년에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쓰는 공작기계는 텅스텐을 이용한 합금기술을 빠르게 개발했기에 20세기 초반보다 훨씬 더 정교한 정밀가공이 가능하다.

트랜지스터는 '변화하는 저항을 통한 신호 변환기(transfer of a signal through a varister)'로부터 나온 조어다.

'저항 만드는 거나 별다른 게 없지'

아무튼 원은 해서와 야인 여진족들도 조선의 백성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들을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세를 늘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선이란 나라가 얼마나 백성들에게 잘해주는지 소문을 퍼트렸다.

아직 민족주의가 전혀 없는 조선이다.

조선에서는 인종과 관계없이 누구나 조선 말을 하고, 조선에서 살며, 조선의 왕을 따르면 조선인으로 대우했다.

이는 조선에 귀화한 얀 얀스 더 벨테브레이, 박연의 경우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조선을 섬기고 의무를 다한다면 당연히 조선의 백성으로 대할 것이다. 또한 조선말을 배우고 조선글인 한글을 익힌다면 관직에 올라 출세도 할 수 있다."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리. 조선인이 되어 배만 곯지 않는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춥고 척박한 땅에서 사는 여진족들.

이들의 목적은 그저 먹고 살아남는 것이 다였다.

누르하치 또한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공격했던 이유도 굶어 죽지 않으려고 했던 거다.

명나라나 조선과 교역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여진족들.

이들의 목적은 생존이었다.

그런데 명나라와 조선에서 수도 없이 병신 짓을 했기에 조선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멸하고 청 제국을 세웠다.

원은 만반도 작전을 계획하면서 여진족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 없었다.

만주를 점령한 후, 여진족들을 조선인으로 동화시키고 시베리아 개척에 활용한 계획을 짰다.

그래서 항복하는 이들은 모두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라고 명 했다.

"우리는 장춘을 점령하러 가는 길이다. 너희들이 앞장서겠느냐?"

"네, 나리. 지금 그곳은 텅 비어있다시피 합니다. 제가 나서서 모두 설득하겠습니다."

조선전력공사 제5 기병 연대는 장춘을 공격하려고 단단히 준비해 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우군을 얻었다.

게다가 보급품을 잔뜩 가지고 있는 부대였다.

폭수가 이끄는 기병대는 북으로 전진하면서 4차, 5차 여진족 보급 부대를 만났고 이들은 모두 무조건 항복했다.

하지만 점점 불어만 가는 여진족 병사들을 보자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폭수는 여차하면 모두 폭사시켜버릴 생각으로 밀떡 폭탄을 준비했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이라고 명 했다.

다행히도 장춘까지 가는 길에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장춘에 입성한 폭수와 대원들.

깜짝 놀랐다.

"같은 여진족 아니었습니까?"

"그랬다면 우리에게 투항했겠냐? 대우가 달랐겠지."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조선전력공사 기병대가 여진족 병사들을 묶어 포로로 끌고 입성하자 사람들이 겁도 없이 몰려나왔다.

그들의 몰골이 하나같이 비참했다.

"일단 군량미를 풀어서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대원들은 항복한 청나라 병사들을 시켜 큰 솥에 죽을 끓여 배급부터 시작했다.

군량미는 많았고 이들 또한 앞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될 사람들이라 푸짐하게 주며 인심을 쌓았다.

"고맙습니다. 나리."

"정말 고맙습니다. 나리."

조선을 치려 했던 도르곤은 북경에서 보급품을 가지고 진격하지 않았다.

친왕의 목을 쳐버렸으니 뭔가를 보여 줘야 했던 도르곤.

그만큼 조선을 치는 일이 급했다.

도르곤은 같은 여진족이지만, 반항이 심한 해서와 야인 여진족들에게 곡물과 먹을 것을 징발해 보급을 지원하라 명 했다.

그래서 장춘에 사는 여진족들은 한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었다.

"미친놈이군!"

"그렇게 말입니다. 지들만 잘 먹고 잘산다고 다가 아닌데···. 꼭 우리네 양반 같습니다."

고아로 남쪽에서 살다가 경비대에 지원하여 참모가 된 대원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백령도에서 현대식 군사 교육을 받다 보니 무엇이 중 한지 자연이 습득하게 되었다.

참모는 화가 나는지 장춘성의 성주를 발로 차버렸다.

"개만도 못한 놈 같으니."

도르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성주는 억울한지 하소연을 했지만, 화가 난 참모에 의해 더 얻어맞았다.

그러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조선말이 들려왔다.

"조선군이 맞소?"

"참말로 조선군이요?"

이곳까지 끌려와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조선군이 왔다는 소리에 모두 뛰쳐나왔지만, 복장이 이상한지 되물었다.

"맞습니다. 조선군은 아니지만, 조선의 태자 전하께서 이끄는 조선전력공사의 경비대원입니다."

"아···. 참말로 반갑구먼요."

병자호란 때 노예로 잡혀 와 장춘까지 흘러들어온 백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조선에서 왔다는 경비대원들은 조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는 맞는 것 같은데, 두툼한 가죽옷을 입어서 그런지 덩치가 무척이나 커 보였다.

조선인이 주변 타민족보다 크기는 했지만, 커도 너무 컸다.

그래도 조선말을 하는 대원들을 보자 반갑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있어서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요? 나리."

"조선인으로서 당당히 사시면 됩니다. 고향에 가고 싶다면 갈 수 있고 이곳에 남아 살고 싶다면, 조선전력공사에서 지원해 줄 겁니다."

"참말로요?"

"네. 태자 전하의 명입니다."

장춘에서 노예로 살던 조선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너무 쉽게 점령해서 이상하다. 저항이 심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입니다. 연대장님. 아니었다면 피 좀 흘렸을 건데 말입니다."

그동안 초긴장 상태로 장춘까지 청나라 포로들을 끌고 왔던 제5 기병 연대 대원들.

한시름 놓았는지 모두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성내를 수색하여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수거하고, 잡아 온 포로들도 한곳에 모아 수상한 자가 있는지 색출해야 한다."

"넵! 연대장님."

비록 처음부터 원에게 21세기 군사훈련을 교육받지 않았지만, 폭수는 피곤한 몸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대원들을 격려하며 장춘성을 안정시켰다.

그와 달리 산해관을 접수한 조선전력공사 육경 제1 사단 대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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