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54화 (54/275)

< 54. 작전명 만반도(2) >

압록강에 수장 된 양우리의 팔기군은 나름대로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야간 진격 작전을 수행했다.

낮에는 정찰병이 먼저 진격로를 확인했다.

공격 부대인 기마병과 1차 보급 부대는 확인된 진격로를 따라 어둠 속에서 이동했다.

그런데 만포까지 정찰을 마친 정찰병 중 보고를 하러 떠난 병사만 빼고 모두 저격당해 죽어 버렸다는 사실은 몰랐다.

게다가 퇴로까지 막혀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급한 마음에 움직이다가 모두 물고기 밥이 되어 버렸다.

원은 적진까지 침투해 작전을 수행하러 떠나는 조선전력공사 기병대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무리하지 마라. 지휘관 한 사람의 판단 잘못은 전멸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확인할 수 없다면 무조건 퇴각해야 한다. 청을 멸하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터이니 서두르지 말거라.'

조선전력공사 기병 제5연대 연대장 폭수는 원의 말을 상기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방으로 정찰병을 보내고 모두 돌아오면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한 뒤에 대원들을 이동시켰다.

그래서 기병인데도 진격이 느렸다.

폭수 연대장은 밀떡 폭탄을 가지고 연쇄 폭발 실험을 하다가 왼쪽 팔뚝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만큼 밀떡 폭탄에 관심이 많았기에 원은 그에게 폭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연대장님, 폭사 당한 놈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고했다. 고생한 대원들을 데리고 가서 쉬도록 해라."

"넵! 연대장님."

하얀 폴리프로필렌 천으로 만든 막사 안에서 연대장 폭수는 작전을 검토했다.

"다음 목표는 2차 보급 부대다. 놈들의 위치가 확인되면, 이번에는 빠르게 공격해야 한다. 따라서 모두 단단히 각오 하도록 해라."

"""멸!"""

제5 기병 연대의 임무는 후방을 노리고 오는 청나라 팔기군을 제거하는 임무도 있었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었다.

그래서 전처럼 청나라 병사들을 포로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제거에 중점을 두었다.

3천 명뿐이 안 되는 연대 기병이다.

포로를 관리하며 움직이기에는 명령받은 목표 지점이 너무 멀리 있었다.

* * *

으스스한 그믐밤.

희미한 달빛은 눈밭에 반사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의주에 주둔한 경비대 전원에게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선배님, 놈들이 오늘 밤을 노리는 게 틀림없습니까?"

"틀림없을 거다. 내일이면 아예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오늘 밤 아니면 지들도 힘들지 않겠냐?"

"그렇습니까?"

"사단장님 말씀이니 믿어도 된다."

신의주를 지키는 사단장 신수는 수시로 정찰병을 내보냈다.

망원경이 있기에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오라 했다.

어차피 공격해서 쳐부술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군의 이동만 파악하면 되었다.

압록강 건너 북동쪽과 서쪽에 주둔 중인 청나라 팔기군이 목격되었다.

수만 명이나 되는 그들이 뭔가를 준비하고는 있는 것 같았지만, 멀리서 관측하기에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쳐들어가면 안 됩니까? 기다리기도 힘든데."

"저놈들이 바보가 아니지 않느냐?"

"그렇죠. 명나라를 멸망시킨 정예라고 하던데···."

"공격하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우리도 많이 다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춥더라도 고생 좀 하자. 오늘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낼은 쉴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서해와 인접한 곳인데도 한겨울이라 그런지 추워도 너무 추웠다.

그런데도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혹시라도 불빛으로 인해 위치가 노출되면 포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두꺼운 가죽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신입 대원은 추운지 덜덜 떨었다.

그에 비해 신의주에서 오래 있었던 고참 대원은 지급 받은 권총을 만지며 무언가를 총구에 꽂고 상태를 점검했다.

그 순간.

-딸랑! 딸랑!

-펑!

압록강 변에 설치해 놓은 조그마한 종이 울리며 덫이 작동했는지 폭발음까지 들렸다.

"놈들이다!"

고참 대원은 조201 리볼버 권총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더니 공중을 향하여 발사했다.

-투앙!

탄두가 없는 탄환이 권총에서 발사되자 총구에 끼어 있던 무언가가 꽁지에 불이 붙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면서 밝게 빛나며 타들어 가는 물체.

바로 원이 야간 작전에 쓰려고 만든 조명탄(照明彈)이었다.

한반도에 많은 마그네슘을 넣어서 그런지 작은 낙하산이 펴지며 떨어지는 조명탄은 하얀빛을 발하며 주위를 밝혔다.

-투앙! 투앙! 투앙!

곳곳에서 발사된 조명탄이 연신 하늘 높이 올라갔다.

조명탄 아래 그대로 모습이 노출된 청나라 병사들.

당황했는지 칼을 들고 그대로 돌진해 왔다.

그런데.

"크윽!"

"으윽!"

눈에 덮인 3중으로 쳐진 철조망과 엉겨 붙은 놈들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러 됐다.

또한.

-탕! 탕!

-두두드, 두두드, 두두드드드.

조2 소총과 조102 기관총에서 불을 품어내며 총탄이 쏟아지자 눈밭이 뻘건 피로 물들어 갔다.

"선배님! 저기!"

"알았다."

기관총 사수는 멀리 떨어진 대포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총구를 돌려 그대로 난사했다.

-꽝! 꽝!

어둠 속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급하게 발사하는 청나라 대포를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발사된 몇 발이 담장과 대원들의 숙소에 그대로 박혔다.

벽돌로 쌓아 올린 담장은 무너졌지만, 상관없었다.

날씨를 감안하고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 대원들은 담장과 나란히 지어진 숙소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크흑!"

"의무병! 의무병!"

콘크리트 옹벽으로 튼튼하게 만든 숙소였지만, 무식한 쇳덩이가 들이닥치자 여기저기 파편이 튀며 부상자가 발생했다.

잠깐 사이에 수석총을 든 청나라 병사들이 총을 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매일 같이 훈련받는 대원들의 반응은 민첩했다.

달려드는 청나라 병사들을 향해 총구가 움직이며 불을 뿜어냈다.

열받은 기관총 사수에 의해 적 포대 주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저놈들 미친 거 아닙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죽이고 보자."

"넵!"

다가오지도 못하고 무수히 쓰러져 가는데도 말을 타고 활까지 쏘면서 달려드는 청나라 팔기군.

신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노리쇠를 젖히고 방아쇠를 당겼다.

죽고, 죽고, 또 죽어도 달려드는 놈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총구가 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쉴 틈이 없었다.

지켜보던 사단장 신수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명을 내렸다.

"밀떡 로켓을 발사하라."

"멸!"

대원들 숙소 옥상에 설치된 밀떡 로켓 발사기에서 무수히 많은 밀떡 로켓이 미친 듯이 튀어 나갔다.

-슁! 슁! 슁!

-쿠앙! 쿠앙! 쿠앙!

대원들 또한 철조망에 엉킨 붙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다가오는 청나라 놈들에게 밀떡 폭탄에 불을 붙여 집어 던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놈들이 퇴각한다. 사격! 중지!

신의주 북동쪽과 서쪽에서 압록강을 넘어 쳐들어오던 청나라 병사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청나라군은 10만에 가까운 병력으로 몰아붙였지만, 처음 보는 다양한 화력 무기의 조합을 견딜 수는 없었다.

어두운 밤을 노렸지만, 계속해서 하늘 높이 치솟아 빛을 내는 조명탄 때문에 기습은 실패했다.

"사단장님, 우리 제4 기병 연대가 출동하면 안 되겠습니까? 도주하는 놈들을 깡그리 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어두워서 위험하다. 날이 밝거든 바로 출동하도록."

"멸!"

돌아서서 나가는 기병 연대장은 아쉬운지 중얼거렸다.

"도르곤 그놈을 내 손으로 꼭 사로잡아야 하는데···."

* * *

조경 2호선을 타고 진황도(秦皇岛, 친황다오)에 상륙한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육경 대원들.

사령관 정용식의 명이 떨어지자 산해관 공격에 들어갔다.

산해관은 둘레가 4km나 되고 성벽의 높이가 14m에 두께가 7m나 돤다.

해자까지 있었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북쪽 위원문(威遠門)이 아니라 남쪽에 상륙하여 진격했기 때문이다.

서쪽 영은문(迎恩門), 동쪽 진동문(鎭東門), 남쪽 망양문(望洋門), 바다와 인접한 노룡두(老龍頭) 영해성(寧海城)을 어두운 밤을 이용해 대원들은 몰래 접근했다.

먼저 잘 훈련된 저격병들이 소음기가 달린 저격 총으로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멀리서 저격했기에 '탁'하는 소음은 적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300명이 넘는 저격수들이 동시에 공격했기에 순식간에 성벽 위를 지키던 청나라 병사들이 쓰러졌다.

성벽 아래 대기하고 있던 고참 대원들.

멀리서 깜박이는 신호를 받고 밧줄을 타고 빠르게 성벽으로 올라갔다.

현대식 군사교육을 받은 지 오래된 고참 대원들은 수신호를 사용하여 성벽을 따라 진격했다.

여기저기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리며, 성벽 안쪽에 있던 청나라 병사들도 쓰러져 갔다.

비명을 지르는 놈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잘 훈련된 고참 대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빠르게 청나라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꽝! 꽝! 꽝!

성벽 중간중간에 세워진 청나라 병사들의 대기실은 밀떡 폭탄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항은 있었으나 무의미했다.

칼과 창, 수석총 따위가 연사가 가능한 조2 소총의 화력을 견딜 수는 없었다.

"사령관님. 성벽을 모두 점령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럼 조명탄부터 쏘아 올리고 진격해라. 무기를 든 놈은 가차 없이 사살하고."

"멸!"

신의주에 이어 대륙의 관문이자 방어막인 산해관 또한 인세 지옥이 펼쳐졌다.

* * *

원은 전날 저녁 늦게까지 연구소에서 강연하고 토의했다.

갈수록 아는 게 많아진 연구원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늦게 숙소로 돌아와 온 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은쌍식과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원이 기거하는 곳은 21세기 같으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펜트하우스였겠지만, 집무실 겸 회의실 같은 숙소라 말이 많았다.

그래서 새로 짓고 있는 본사는 복층으로 만들기로 변경했다.

원이 우겨서였지만, 최상층은 집무실로 만들고 그 위 옥상에 별도로 원만의 숙소와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원이 생각하기에는 그게 그거였지만, 사장님을 존경하는 직원들의 입장은 달랐나 보다.

말 나온 김에 원은 옹진반도 서쪽 한동리에 두무항 저수지를 만들고 그 앞 백사장 주변을 개발하기로 했다.

"해변의 길이만 2km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 사는 집도 아닌 여관 같은 곳을 천 채나 짓는단 말씀입니까?"

"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냐? 다 사람 사는 곳이지."

이해되지 않는지 은쌍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휴양객들을 위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휴양객이 아니라 휴양소다. 전쟁이 끝나면 대원들도 쉬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긴 합니다만···."

원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무서운지 알기에 전투 후 병사들이 쉴 수 있는 휴양소를 만들 생각이었다.

"앞으로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한 대원들도 많이 발생할 거다. 그들을 위한 시설도 필요하니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病院)도 함께 지어야 한다."

"활인서(活人署)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가족이 없는데 다친 대원들은 누가 돌봐 주겠느냐? 그래서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돌본다는 의미에서 병원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 그렇다면야 당장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신의주 전투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육경 2사단 전원이 막고 있었지만, 10배나 많은 청나라군을 상대하는 통에 눈먼 화살과 총알, 포탄에 직격당했다.

중상자도 수십 명이나 발생했다.

그래서 원을 위해 준비해 놓은 별장 부지 근처에 휴양소를 만들기로 했다.

한동리 해변에서 8km 떨어진 곳에 기린을 닮았다는 기린도(麒麟島)가 있다.

원은 이참에 이곳 천체를 묶어 해양 유락 시설 구역으로 지정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조선이라 일반 백성들의 노는 문화는 단조로웠다.

사대부나 양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생 끼고 술이나 마시는 문화가 전부였다.

물론 시도 읊고 활도 쏘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아무튼 원은 조선 사회를 풍요롭게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야만 사대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어.'

우수한 놀거리와 문화가 있어야만 앞으로 원이 꿈꾸는 세상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먹혀 버릴지도 몰라.'

그리스를 정복했던 로마도, 유럽을 약탈했던 바이킹도, 대륙을 점령했던 유목 민족들도 모두 정복자들보다 우수한 문화에 잠식당했다.

그래서 원은 문화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배가 부르고 나면 즐길 거리가 필요하지.'

원은 벽에 걸린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은쌍식을 쳐다봤다.

"이곳에 병원을 만들고 나면, 백성들도 놀러 와서 쉴 수 있는 휴양 시설도 짓도록 해라."

"백성들도요?"

"당연하지. 백성들이 즐겁게 해변에서 노는 것을 봐야 다친 대원들이 빨리 회복할 것 아니냐?"

은쌍식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네요."

"아무튼 아픈 병사들이 지낼 곳이니 깔끔하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단단히 일러 놓겠습니다."

작전명 만반도는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사망자까지 나왔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이제 막 용틀임하는 중이라 미쳐 병원을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난 김에 한반도 곳곳에 병원을 만들 계획을 검토하라고 행식이에게 말해 놓았다.

‘인구를 늘리려면 병원이 중요하지.’

아직도 수많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지만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이번 만반도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산해관을 접수했다는 연락이 오자 은동리 전체가 한동안 흥분에 휩싸였다.

신의주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말이 아직 외부로 퍼지지 않았지만, 은동리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연구원들의 질문 중에는 앞으로 조선의 영토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원은 간단하게 말했다.

'한계는 없다. 앞으로 너희들이 노력하는 만큼 조선의 영토는 커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연구원들의 두 눈은 빛났다.

어릴 때부터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연구원 중에는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이도 있었다.

원이 자존심과 자부심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양란으로 발생한 자격지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원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싸장님!"

"왜 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은쌍식이 바로 들어왔다.

"기병 제5연대가 진격을 앞두고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

"네, 그래서 결정을 내려 달라고 무전이 왔습니다."

"무슨 문제인데."

급하게 돌아온 은쌍식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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