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52화 (52/275)

< 52. 표출(5) - 지도 >

한민족이 한반도와 만주에서 뛰놀던 삼국시대 때.

고구려와 당(唐)나라의 경계에 있던 안시성.

그곳에는 청나라 팔기 중 최정예라 말하는 상삼기(上三旗) 중 하나인 도르곤의 정백기가 주둔하고 있었다.

정백기의 수장인 예친왕 도르곤은 몸이 좋지 않은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 모습을 본 버일러 중 한 명이 걱정되는지 조심스레 말했다.

"전하,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북경으로 돌아가셔서 옥체를 보존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청나라의 발원지인 심양을 친 놈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야 말겠다."

"하지만 각혈이···."

"이 정도로 죽을 내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성격이 포악하다고 알려진 도르곤이었지만, 아무에게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예의도 지키며 사리 판단도 정확했다.

그래서인지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도르곤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홍타이지 밑에서 혁혁한 전공을 쌓았다.

부하들을 이끌고 몽골 차하르부를 공격했다.

몽골제국의 릭단 칸의 아들인 제40대 에제이 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전국 옥새까지 취했다.

그랬기에 친어머니를 순장시킨 홍타이지 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원래라면 후금의 왕이 될 수 있었던 도르곤은 누르하치가 죽자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막내가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는 유목민의 관습에 따라 한때 도르곤은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하지만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홍타이지에게 왕위를 찬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르하치가 가장 총애 했다는 이유로 홍타이지는 도르곤의 친어머니인 '오라나랍 아바하이'를 순장시켜버렸다.

그래서인지 도르곤의 성격이 바뀌었다.

도르곤은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을 낮췄고,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남았다.

아무튼 인조와 소현세자에게도 정중하게 대했다는 도르곤이지만, 심양을 공격당했다는 말에 화가 끝까지 치밀었는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과 관련된 것에 애착이 많았던 도르곤으로서는 절대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죽은 홍타이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홍타이지의 부인인 황후를 취할 정도로 도르곤은 복수심이 강했다.

원은 이런 역사를 모르기에 도르곤을 그냥 미친놈 취급했다.

기침을 잦아들자 도르곤은 심복인 버일러에게 물었다.

"진군은 차질없이 되고 있느냐?"

"네, 전하. 통화(通化)에 주둔 중인 팔기는 조선의 만포(滿浦)로 먼저 출발했습니다. 요동성에 있던 팔기는 봉황성을 넘어 의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자."

"네, 전하."

목표는 조선전력공사 신의주 분점이었지만, 공격로는 3곳으로 나누었다.

백두산에서 가까운 만포로 간 양우리의 팔기군은 우회하여 신의주 남쪽에서 공격하며 보급을 맡기로 했다.

요동성에 있는 정람기는 위화도를 건너 신의주 동쪽에서 공격하기로 정했다.

도르곤이 이끄는 정백기는 압록강 하구 서쪽에서 신의주 옆을 치기로 했다.

수많은 홍이포와 서양의 수석총으로 무장한 조선팔기까지 끌고 왔기에 도르곤은 자신만만했다.

처음 신의주 분점을 공격했던 청나라군은 몰살당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심양에서 조101 기관총을 잠깐 맛보았던 청나라군 또한 모두 조선의 도로와 광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랬기에 청나라군은 신의주에 조102 기관총이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튼 도르곤은 자신감이 넘쳤다.

병적우세도 있었지만,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한 적이 있었던 야간 기습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라면, 총으로만 구성된 조선전력공사의 경비대쯤은 칼과 창으로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고 봤다.

그것도 삼면에서 엄청난 수로 공격해 들어가면 승리를 확신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모두 죽이지는 말고 놈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대해 잘 아는 자는 살려둬야 한다."

"이미 전달해 두었습니다. 전하."

누르하치 때부터 내려온 전통에 따라 적을 치고 포로로 잡은 병사는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욱 강해질 수 있으니.

* * *

요동 반도 끝 대련만(大连湾).

조경 1호선과 모양이 많이 다른 흑선 한 척이 만(湾) 가운데에 떠 있었다.

열식 발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동력선은 나무배에 1mm 강철판을 붙여 만들었다.

조경 1호선은 10mm 강철판을 갤 선과 비슷한 모양새인 목선에 붙여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조경 2호선은 아주 달랐다.

모양조차 20세기 컨테이너선과 비슷했다.

대마도 정복 작전을 끝낸 원은 현대식 전함과 같은 모양의 함선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철판 가공 기술이 부족해 철로만 배를 만들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경 1호선과 같은 방식인 목선을 먼저 만들고 철판을 붙여 제작했다.

대신 15mm 강철판과 H빔, 리벳까지 사용하여 내부 구조에 더욱 많은 강철을 넣고 보강했다.

조경 1호선이 정성공이 세운 대명(大明)을 지원하기 위해 대륙 동남쪽까지 갔다 오는 동안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더욱 크고 튼튼해진 조경 2호선은 더욱 많은 화물과 사람을 실을 수 있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대련만 바닷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전투견이 된 풍산개들이 눈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경 2호선의 함장인 을수와 기병대 사령관이 된 기수가 말을 나누었다.

"수고 많았다. 함장."

"아닙니다. 사령관님."

"이곳에서 대기할 건가?"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계획하신 작전이 있어 또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기수 또한 무슨 작전인지 알기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수가 이끄는 기병 3개 연대는 새로 건조된 조경 2호선을 몇 번에 걸쳐 나눠 타고 대련만에 상륙했다.

청나라군의 후방을 막아 도주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또 다른 명령을 원으로부터 받았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전부 죽이거나 사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명심하고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원은 조선을 공격하는 놈은 그 누구도 가만두지 말라고 명 했다.

청나라를 멸하고 싶은 대원들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청나라군이 착하게도 알아서 사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원은 이번 작전을 위해 새로운 무기를 대원들에게 지급했다.

그것은 바로 조3 소총과 탄환(彈丸, Bullet)을 같이 쓸 수 있는 6연발 리볼버(Revolver) 권총이었다.

구조는 간단하지만, 일일이 탄환을 장전하는 6개나 되는 구멍을 정밀가공 해야 하기에 생각보다 생산성이 좋지 않았다.

조1부터 조2, 조3 소총의 탄환은 모두 달랐다.

조1 소총은 종이 탄피였고,

조2 소총은 앞이 가늘고 뒤가 통통한 현대식 총알이었다.

그런데 조3 소총은 장전 방식이 특이해 탄두 끝이 평평하고 일자 몸통을 가진 권총 탄환이다.

뾰족하면 연이어서 장전되는 조3 소총의 특성상 장전 시 격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3 소총과 조201 권총이라 명명된 두 가지 전혀 다른 총은 서로 탄환을 호환하여 사용할 수 있다.

원은 조201 권총에서 쓸 수 있는 특수한 탄환도 일부 경비 대원들에게 지급했다.

겁 없이 덤벼드는 청나라군을 또다시 확실하게 몰살시킬 새로운 무기였다.

기수 사령관은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을수 함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럼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항상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번 작전 끝나고 벽성에서 만나면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한잔 사지. 벽성에서 꼭 보자."

"네, 사령관님."

기병대의 거점이 되어 버린 벽성 주변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옹진반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해주와도 가까운 벽성은 근처에 항구가 있어 산해진미나 다름없는 푸짐한 안주가 소문이 났다.

때문에 경비대원들은 벽성에서 주로 술을 마시고 놀았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아직 헌병은 없었지만, 기병대가 벽성의 치안을 맡고 있었기에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난동 부리다 걸리면 염전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대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사고 치면.

대원들은 염전으로.

신병들은 남한산성으로.

관리나 조선군은 광산으로 끌려가는 것이 어느새 정착되었다.

이제 조선에서 귀양(歸養)이나 금고(禁錮) 따위는 없었다.

무조건 고된 일을 해야만 하는 징역(懲役)만 있었다.

사대부들과 양반들이 반발했지만, 사정을 두지 않았다.

법치국가 조선에서 법을 바꾸고 싶다면 관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소를 올리는 것까지는 봐줬다.

하지만 법이 잘못됐다고 집회를 신청하면 허락해주지 않았고, 허락 없이 집회하면 바로 동네 주변을 청소하는 노역을 제공했다.

원은 '악법도 법이다'고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악법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갈 길이 먼데 x선비들과 노닥거릴 시간은 없지.'

평생 성리학만 공부하며 말로만 논리를 따지는 선비들.

그중에 참 선비도 많았지만, x선비는 더욱 많았다.

효종은 오직 입신양명하기 위해 온갖 못된 수작을 부리는 x선비들이 득세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교육과 병역 비리의 온상인 서원을 모두 철폐해 버렸고, 성균관 유생들도 18세가 되면 신병 교육대로 보내 버렸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산림의 거두들이 하나둘씩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자 저항은 점점 사라져 갔다.

'욕하려면 욕해라. 어차피 다시 사는 인생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후세에 비난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더는 후손들이 주변국의 눈치를 보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약소국의 비애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은 절대 약소국이 아니다.

그런데 주변국이 하나같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김에 아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최강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거 아니면 할 일도 없지.'

즐길 것이 많은 21세기에서 살아왔기에 그냥 적응하며 살기에는 조선 중기는 너무나 심심했다.

또한 왕이 될 팔자라 x선비들과 아웅다웅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가졌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원리를 알고 돈만 충분하다면 근대 산업기술의 특성상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했다.

'모두 아이들과 착한 사람들 덕분이지.'

천재나 다름없는 '순'이나 '식'자 돌림 과학자들.

그들을 받쳐주는 수재급 연구원들.

캘리퍼스와 줄자를 옆에 차고 다니며 자부심이 대단한 자칭 공돌이들.

전국 각지에서 행정을 처리하는 인문학에 재능이 있는 수많은 천재, 수재, 인재들.

모두가 옹진반도에서 짧은 시간에 양성한 아이들이었다.

'놀거리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21세기였다면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에 시간을 낭비하고, 바보상자라 말하는 TV를 보며 사색할 시간이 전혀 없었을 아이들이다.

하지만 옹진반도의 아이들은 놀거리가 없었기에 새로운 배울 거리를 놀이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정말 빠르게 습득하고 배워 나갔다.

또한 순박하다 못해 백지와 같은 조선의 백성들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만 주면 그만큼 성실히 일했다.

원은 대륙은 물론 동쪽 열도까지 모두 조선의 영토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구수가 문제였다.

그래서 계획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인구수는 정말 문제네.'

물론 세계적으로 따져 봤을 때, 조선의 인구는 많은 축에 속했다.

하지만 조선과 붙어있는 대륙의 인구는 넘사벽이었다.

그래서 책을 만들거나 신문을 만들 때 쓰는 종이는 헐값에 공급하며 조선의 문화를 빠르게 발전시키고자 했다.

청나라 20만 대군과 전쟁을 앞두고 있지만, 원은 조선의 문화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래야만 거대한 영토를 보유할 수 있고, 조선의 인구보다 많은 타민족과 함께 살더라도 잡아 먹히지 않을 테니까.

* * *

가장 먼저 청나라 팔기군과 전투가 벌어진 곳은 백두산 서쪽 아래 만포 주변이었다.

어두운 밤.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양우리의 기마병이 지나간 후, 땅이 다시 얼어붙자 보급 부대가 나타났다.

"모두 날려버려라!"

"넵! 연대장님."

보급 부대가 계곡을 가득 메꿨을 때 양쪽 언덕에 숨겨 놓은 밀떡 폭탄에 연결된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치지직’거리며 타들어 가는 불빛을 본 청나라군은 놀라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파른 절벽 같은 언덕 위라 뛰어 올라갈 수도 없었고 피하려고 해도 공간조차 없었다.

-꽝! 꽝! 꽝!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들리며 돌과 흙더미가 계곡을 향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으악!"

"살려줘!"

"모두 도망가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선전력공사 기병 대원들은 말없이 노려보며 활을 꺼내 드는 놈만 총으로 쏘아죽였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살아남은 청나라 병사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비록 후방 지원 보급 부대 병사였지만, 그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놈들은 활을 꺼내 들고 공격했다.

하지만 기병 연대 대원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투척!"

뭉텅이로 묶여있는 밀떡 폭탄들이 심지에 불이 붙은 채로 계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쿠앙! 쿠앙! 쿠앙!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속되는 폭발 속에서 살아남는 자는커녕 팔다리라도 땅 위에 드러낸 자가 거의 없었다.

"가자!"

"""넵!"""

임무를 마친 기병 연대는 말을 타고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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