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표출(4) >
전쟁(戰爭, Warfare).
사람이라면 모두가 혐오하는 말이지만, 인간의 역사이다.
절대 전면전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21세기에서도 국가 단위의 전쟁은 일어났다.
그것도 세계 초강대국 중 하나라는 러시아가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러시아는 고전했다.
물론 민간인의 피해를 염두에 두었기에 그랬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진격로와 보급이 가장 중요해.'
그래서 원은 심양을 친 후 바로 빠졌다.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북경까지 공격해 들어갔다면 굶어 죽든지 얼어 죽든지 몰살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보급이 되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봤듯이 시가전이나 다름없는 성안을 공격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보급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면 진격은 할 수 없었다.
황동으로 만든 탄피는 고가품이다.
사격 훈련같이 평소에는 탄피를 수거했지만, 전투 중에는 수거할 수 없었다.
그런 탄환을 무한정 공급할 수도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다.
탄환은 생각보다 무거웠기에 휴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살상에 대한 제한이 없는 시대라 무차별로 죽이면 된다지만, 그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연발 사격이 가능한 조2, 조3 소총이 있다고 하지만, 숨어서 급습하는 적을 대원들의 피해 없이 제거하기는 힘들었다.
'운이 좋았지.'
다행히 심양을 쳤을 때 사망한 병사는 없었다.
하지만 2명이나 크게 다쳐 경비대를 그만두어야 했다.
'설파제만 있었어도 악화되지는 않았을 건데···.'
썩어들어간 환부 때문에 결국 잘라야만 했다.
'대원들을 갈아 넣는 일은 없어야 해.'
현대식 군사교육을 받은 경비대원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최대한 보존해야만 했다.
'대륙이 문제지.'
워낙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 누에고치에서 실 나오듯 끊임없이 보강되는 청나라 팔기군.
일격에 처리하고 싶었지만, 때를 기다려야 했다.
폭약도 문제였다.
시대를 능가하는 화약을 제조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 단계라 거대한 성을 공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이 문제야! 시간이.’
계속 설비를 늘리고 있지만, 만족할 만큼 폭약 생산량을 얻으려면 한참 멀었다.
발전기부터 만들었기에 전기를 얻을 수 있었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대에 맞지 않게 기계식 자동화로 총알과 화약을 펑펑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생산량은 잘 봐줘야 18세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조선의 산업은 아직 기초 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였다.
원이 효종을 설득하여 길을 닦고 상업을 육성하려던 이유가.
'잉여 인력을 양성해야 해.'
거의 모든 백성이라 말할 정도로 조선에서는 오직 농사에만 매달려 살고 있다.
이것을 바뀌지 않고서는 대륙을 차지한다고 해도 관리할 수 없고 대양 진출도 불가능하다.
다행이라면 옹진반도에서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한 원은 삼복이와 함께 지도를 살폈다.
"안시성(安市城)과 요동성(遼東城)에 집결해 있단 말이지?"
"네, 사장님. 주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이동하는 걸로 봐서는 야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르후 때를 생각하는 것 같구나."
"그래 보입니다. 사장님. 그래서 매복 장소를 확실히 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주 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한 누르하치는 겁도 없이 '일곱 개의 큰 원한'을 내걸고 명나라에 선전포고했다.
누르하치는 명나라의 요동 거점인 무순(撫順)을 바로 쳐들어갔다.
그래서 발발한 사르후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대승을 거두었다.
물론 조명 연합군의 반이 넘는 강력한 기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금의 병사들은 기마 민족 특성상 빠른 기동력으로 적들을 희롱하면 가지고 놀았다.
1개 니루인 300명의 기병이 수십 배나 되는 적들의 발을 묶어 놓는 일도 있었다.
명나라군은 3중으로 참호를 파고 전차와 화기를 배치하여 수비를 단단히 했지만, 야음을 틈타 말에서 내려 기습한 후금의 기병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야전을 치를 생각이군."
"그래 보입니다. 놈들도 우리 경비대의 화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대낮에는 공격해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신의주에 망루를 세우고 밤에는 서치라이트를 켜고 있지만, 그래봐야 30m 밖은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말이 서치라이트지 100w 백열전구 정도밖에 안 된다.
사르후 전투 때처럼 말에서 내린 팔기군이 기습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야!'
준비해 놓은 것이 있지만, 잘 될지는 모를 일이다.
칼과 창으로 사람을 베고 찔러 죽이는데 특화된 팔기군을 이기는 방법은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것.
그래서 철조망을 더욱 보강해 놓았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처럼 우회한다면 쓸모가 없었다.
"아무래도 기수가 일을 맡아야겠다. 가서 기수를 불러오도록 해라."
"네, 사장님."
심양에서 체구는 작지만, 지구력이 뛰어난 여진 말들을 많이 가지고 왔다.
21세기에도 빠른 탈 것을 선호했던 사람들.
17세기에도 빠른 말을 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병을 모집한다는 말에 지원자가 너무나 많았다.
고르고 골라 기병 연대 4개를 추가했다.
현재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전력은.
육경 3개 사단.
해경 1개 연대.
기병 5개 연대가 전부였다.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경비하는 대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대 병력이고 많아야 중대 병력이다.
그런데 길림성과 요동성에 있는 팔기군과 북경을 수비하는 도르곤의 직속 부대인 정백기(正白旗)까지 공격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일부 한인팔기까지 끌어왔는지 예상 병력만 2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미친 새끼!"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도르곤은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병력을 무리하게 이동시키고 있었다.
대군을 이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이고,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마실 물이다.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수분 섭취량은 2리터가 넘는다.
강행군하는 병사라면 그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대충 계산해도 20만 명이 먹는 음식을 빼고도 물만 하루에 최소 20만 리터를 소비한다.
강을 따라 이동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아니라면 물을 공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병사들만 마시는데도 하루 200톤이나 되는 물을 소비한다.
그런데 말과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까지 계산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물은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급수 마차를 끌고 온다지만 그것도 문제였다.
땅이라는 게 단단하게 다져 놓은 도로가 아니라면 대군이 이동할 때 지반이 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도 군단의 이동로를 따라 단단하게 돌로 땅을 다져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수의 대군이 절대 이동할 수 없다.
다행이라면 아직 한 겨울이라 곳곳에 눈이 많이 쌓여 있다는 건데, 어찌 보면 주공격 병력이 기병인 팔기군에게는 좋지 않았다.
눈 때문에 산등성이를 따라 이동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산을 끼고 계곡을 따라 이동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날이 추워 땅이 언다면 그건 더 곤혹이었다.
기병이야 빨리 움직일 수 있겠지만, 대신 보급부대와는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병이 지나간 자리는 녹아서 질퍽해져 버리기에 보급을 담당하는 보급부대는 다시 땅이 얼기를 기다린 후 움직여야 한다.
전투력이 약한 보급부대는 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도르곤이 어떤 전략을 쓸지 모르지만, 북경에서부터 보급부대를 대동하지 않고 움직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지.'
예상되는 진격로 검토를 마친 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 * *
오랜만에 조선을 대표하는 상사의 사장들이 모였다.
그것도 옹진반도가 아닌 한양이었다.
"다 모였으니 태자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조선전력공사와 거래처에 관한 일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조선을 대표해 나온 것이라 은쌍식은 사장님이 아닌 태자라 불렀다.
그래서인지 상사의 사장들은 긴장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상인이란 나라의 정책에 따라서 망하고 흥하는 게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훌쩍 커버린 원이 들어서자 사장들의 눈이 똥글해졌다.
어릴 때부터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한 원은 또래보다 월등히 컸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조선 백성들은 작았다.
그래도 북방에서 살았던 민족이라 주변 민족들에 비해서는 장대(長大)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조선전력공사의 경비대원들이었다.
체격이 큰 사람 위주로 뽑기도 했지만, 한창 자랄 나이에 물고기와 육 고기를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원이 자리에 앉자 새로 은쌍식의 운짱이 된 민삼이가 서류를 나누어 주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신문(新聞)'이라는 걸 발행하기 위함이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에 사장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받은 서류의 표지를 보았다.
"적혀 있는 대로 신문이란 '새로 듣는다'는 뜻이다. 조선말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것을 알린다'는 말이다."
누군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말해 보거라."
"태자 전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주 상사 임원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신문이라는 것이 혹시 조보(朝報)와 같은 것입니까?"
"맞다. 단지 공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사적인 내용도 알린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의외로 세계 최초 신문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조보'였다.
독일의 '렐라치온'과 '아비소'가 세계 최초의 신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1577년 조선에서 발행된 조보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언론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조선의 조보는 발행 일자가 꼬박꼬박 적혀 있었기에 근대적 신문 양식과 다를 게 없었다.
원래 조선의 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행하던 관영지였다.
관영지답게 조보에는.
어떤 정책이 시행되고 폐지되는지.
언제 과거가 시행되고 누가 합격했는지.
화제가 된 상소문과 그 답변인 임금의 비답(批答)은 물론 천재지변이나 대륙과 일본의 소식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종합일간지 수준이었다.
하지만 승정원에서 발행하는 거라 관료나 사대부들에게만 배포되었다.
물론 활판 인쇄기술이 없었기에 초서체로 베껴 썼다.
한양은 당 일 나누어 주었고, 지방은 별도의 배달부들을 파견했다.
다만 국경지대 같은 곳은 매일 배달하기 힘들어 묶어서 전달했다고 한다.
원래 지방에는 고위 관리들에게만 조보가 배달된다.
그런데 귀양 간 죄인 중에 연줄이 좋은 이가 있다면, 관리가 알아서 조보를 구해 줬기에 대부분 양반들은 조보를 봤다고 한다.
조보를 따라 민간 신문도 생겼지만, 선조가 나라의 기밀이 유출된다며 금지해 버렸다.
"전하,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나라의 기밀인데···."
원은 일어서더니 20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괘도(掛圖)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앞으로 이 나라 조선에서 조보처럼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에 기밀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전하. 혹시라도 외국에서 알게 된다면···."
"진짜 기밀이라면 그 누구도 몰라야 하는데 모두에게 알리고 있지 않으냐. 그걸 어찌 기밀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네, 전하."
원이 눈짓을 하자 은쌍식이 괘도를 한 장 넘겼다.
"보는 바와 같이 신문은 매일 발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돈이 싫다면 말이다."
돈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장들은 자세를 바로잡고 괘도를 주시했다.
"이처럼 조정에서 발행되는 조보를 받으면 너희들의 입맛대로 따로 편집하여 판매해도 좋다. 단 너무 비싸게는 팔지 말거라. 특별히 조선전력공사에서 신문 발행에 쓸 종이는 아주 싸게 공급할 터이니."
돈이 된다고 생각한 사장들은 연필을 꺼냈다.
그런데 원이 손을 가로저었다.
"이미 나누어준 서류 안에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듣도록 해라."
다시 괘도를 넘기자 신문 발행에 관한 순서와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처럼 너희들이 신문사를 새우면 조선전력공사에서 절반의 자본을 지원해 줄 것이다."
돈을 지원해 준다는 말에 사장들은 기분이 좋은지 표정이 밝아졌다.
"단!"
원은 지휘봉으로 괘도를 팡팡 치면서 말을 이었다.
"신문사는 상사에서 직접 운영할 수 없다. 운영하면서 이익이 난다면 수익을 가져갈 수 있지만, 간섭할 수 없다는 말이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자본을 지원한다고 할 때 좋았던 표정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그중 한 사장이 급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물었다.
"전하, 그럼 누가 운영합니까?"
"사장과 편집장을 뽑아 운영을 만기면 된다. 자본을 반이나 투자한 조선전력공사도 전혀 관여하지 않을 터이니 너희들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 사주인 조선전력공사와 너희들은 잘 운영되고 있는지만, 감시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돌아가서 서류를 참고하거라. 다른 질문 없다면 이만 마치겠다."
청나라와 전쟁을 앞두고 있었기에 원은 회의를 빨리 마쳤다.
아버지 효종을 뵙고 서둘러 옹진반도로 돌아가야 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궁궐로 가는 동안 원은 중얼거리며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꼭 사로잡아야 하는데."
원은 조선을 치기 위해 친정(親征)에 나선 도르곤을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