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45화 (45/275)

45. 내부 정리(3)

휘발유나 경유 차량에 쓰이는 내연기관의 엔진은 모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배터리로 구동하는 카트는 쉽게 만들었지만, 아직도 디젤 엔진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디젤 엔진의 원리는 간단하다.

상하로 움직이는 피스톤의 위치에 따라 흡기와 배기 밸브를 열었다 닫아주고 연료를 분사해주면 된다.

체인을 사용해 크랭크축과 밸브 축을 연결하면 정확한 타이밍도 맞출 수 있다.

그 정도는 정밀 가공을 할 수 있는 공작기계가 있기에 일도 아니다.

또한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처럼 불꽃을 튀겨 연료를 태우는 스파크플러그라는 점화 장치가 없어도 된다.

공기와 혼합된 연료가 압축되면서 자연발화 되기 때문에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보다 훨씬 간단하다.

하지만 디젤 엔진도 너무 많은 부품이 있기에 실험 도중 부서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열식이는 망가진 부품을 찾아내서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진짜 짜증 나서 못 해 먹겠네."

친구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던 열식이.

계속되는 실패에 열이 받는지 공구를 집어 던졌다.

갑순이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물었다.

"왜 그래 열식아?"

"이거 고치면 저게 고장 나고 저거 고치면 이게 고장 나고 미칠 것 같아."

"사장님께서 급할 게 없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성과도 대단하다고 한 거 못 들었어?"

"그거야···."

알고 있다.

사장님께서 진심으로 칭찬해 주신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빠르게 디젤 엔진을 완성 시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쉬지도 않고 개선해 나가고 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동식이도 부르자."

"싫어! 나 혼자서 해낼 거야!"

"고집은···."

열식이는 이미 성과를 낸 갑순이와 동식이가 부러웠다.

사장님께서 ‘네가 연구하고 있는 디젤 기관이야말로 세상을 완전히 바꿀 대단한 거다’고 힘을 넣어 주셨지만, 결과물이 없기에 초조했다.

"무엇이 문제인데?"

"불규칙적으로 터지는 것이 문제지."

"왜 그러는 줄 알아?"

"그거야 알지. 한번 돌 때마다 터져야 하는데 안 터지면 다음에 배로 터져 버리거든."

"그래? 내부를 보여 줄 수 있어?"

"저기 분해해 놓은 것이 있으니 가서 봐봐."

갑순이는 디젤 엔진 내부를 살펴봤다.

"그러니까···, 여기서 연료가 나오면 압축될 때 터져야 하는데···, 안 터진단 말이지. 그런데 다음에는 터지고. 그것도 두 배나 크게."

한참을 고민하던 갑순이가 손뼉을 쳤다.

"열식아, 이리 와 봐."

"왜?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일단 연료가 골고루 퍼지게 피스톤 상부를 바꿔보자."

"응?"

"평평한 피스톤 윗면을 바람개비 모양으로 만들면 와류(渦流, eddy)가 생겨서 연료가 골고루 퍼질 것 같은데?"

"그래?"

"응,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잖아. 모든 기체나 유체는 회전하면 빠르게 퍼져나간다고."

"그랬지···."

뭔가 생각이 떠오른 열식이가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흡입구 쪽도 공기를 회전해서 보내면···."

열식이는 갑자기 갑순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악! 뭔 짓이야."

"고맙다 갑순아. 드디어 해결 방법이 생겼어.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열식이는 즉시 도면을 그리는 책상 앞으로 뛰어갔다.

* * *

남명은 물론 동남아 곳곳에 새로운 소식이 퍼졌다.

갤 선을 타고 남명을 오가던 해경들이 해도(海圖, Nautical Chart)를 나누어 주며 대마도에 자유 무역항이 개설된다고 퍼트렸다.

동남아에서 유구국(琉球國)을 거쳐 북으로 흐르는 해류가 표시된 지도는 순식간에 동남아로 흘러 들어갔다.

예수회에서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독점 계약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벌어들인 돈 또한 엄청났기에 욕심이 과하다는 말만 들었다.

그동안 거래해 왔던 정이 있어서 황해 난류를 타고 올 수 있는 백령도만큼은 예수회에만 개방하겠다고 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조선전력공사의 최고급 상품인 은거울 경대는 예수회를 통해서만 유통하겠소."

"정말입니까?"

"사장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거니 믿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은 21세기 명품 유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를 존중받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누구나 사서 팔 수 있는 물건은 명품이 될 수 없지.'

은거울 경대는 장인의 손에 의한 수공예품이라 생산량을 갑자기 늘릴 수가 없다.

그러기에 명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비싸게 파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독점권을 주진 않았지만, 예수회만 통해 유통하면 더 이득이다.

"쌍년아, 아직도 동남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주도권을 쥐고 있느냐?"

"네, 사장님. 들어온 정보로는 섬라국(暹羅國)과 안남(安南), 일본에 이어 우리 조선에도 거래를 트고 싶다고 합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은 우리 조선이 자기들 속국이라 말하고 있더냐?"

"그렇다고 합니다."

원은 피식 웃었다.

인조 15년(1637) 일본은 네덜란드만 빼고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모두 쫓아냈다.

온갖 잡신을 모시는 문화라 단일 신만 섬기라는 기독교를 배척했다.

또한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라 말하며 거래를 할 필요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인조 15년 1월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화려한 에도(江戶) 도착 장면을 본 후 동인도회사는 일본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인조 16년(1638) 6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본부 17인 위원회는 '코레아를 발견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인조 17년(1639) 6월 크봐스트(Mathijs Quast) 함대 사령관은 ‘금과 은의 섬(Goud-en Zilvereilanden)’을 찾아 바타비아를 출항했지만, 열병과 풍랑으로 태평양도 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10년 만에 조선으로 갈 수 있는 해도를 얻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령관은 해도를 보고 화가 나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이런 못된 지팡구(Zipangu) 놈들! 코레아가 지들 속국이라고? 순종적이라 믿었는데 우릴 속였구나."

알고 보니 열도에 있는 나가사키 지점과 조선은 무척이나 가까웠다.

동아시아에서 순종적이라 뜻하는 왜(倭)나라로 불리는 일본(日本).

그동안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속였다는 사실에 사령관은 치미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집기를 집어 던졌다.

사령관은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보물섬이나 다름없는 조선에 갈 수 있는 해도를 얻었기에 부푼 꿈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사령관은 몰랐다.

조선에 가면 금과 은을 얻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금은까지 모두 털릴 줄은.

* * *

경국대전(經國大典).

세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여 성종 1년(1470)에 완성한 조선 시대 최고의 종합 법전이다.

관습법을 종합한 성문법인 경국대전은 정치는 물론 경제와 사회, 행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조선의 행정은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의 속성에 따라 <이,호,예,병,형,공> 육조로 구성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나오는 면리제(面里制)에 따르면.

5호(戶)를 1통(統)으로.

5통을 1리(里)로.

리를 합쳐 1면(面)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자연촌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인구수나 마을의 크기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따라서 효종은 행식이가 만든 자료를 토대로 행정 구역 간소화를 시행하고자 했다.

"앞으로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 자유롭게 팔도를 오갈 수 있게 길을 닦을 것이오."

"하지만 폐하, 외적이 침입한다면 어찌할 것입니까? 그 길로 빠르게 도성까지···."

대신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다른 대신들이나 효종의 표정을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허허, 양난을 겪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대신은 빠르게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내뱉은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쓸데없는 말을 꺼냈다고 다른 대신들의 눈총을 받은 대신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효종의 말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상업은 더욱 발달할 것인데 지금과 같이 구역을 정한다면 혼란이 야기 될 것이 틀림없소."

"폐하, 지금 당장 바꾸는 것은 너무 급하신 건 아닙니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한단 말이오. 먼저 행정 구역을 확실히 정해야 관리를 임명하고 파견할 수 있는 것 아니요."

"맞는 말씀이지만···."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효종의 논리에 마땅한 트집을 잡을 수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말을 하다 만 거요? 오늘 논하는 내용은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의 기틀이 될 중요한 일이니, 서슴지 말고 의견이 있다면 꺼내 놓으시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대신은 눈치만 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효종이 대전에서 정책을 논할 때는 성현의 말씀 따위는 꺼내지 말라고 했다.

대신은 유학에 나오는 비유로 트집을 잡지 못하자 난처한지 대전 천장을 올려다보며 효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성현의 말씀은 부처의 말씀과 같은 것이오. 좋은 말씀이 틀림없으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실제 적용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더는 꺼내지 마시오. 대신 합당한 논리라면 언제든지 말해도 좋소.'

원리나 법칙을 따지는 논리(論理, Logic).

성리학과 같은 철학의 한 분류이기에 대신들은 효종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반론이 없다면 계속하겠소. 앞으로 행정 구역은 도, 군, 읍, 면, 리로 정하고자 하오. 이는 가구 수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인구수에 따라 나눌 것이요. 따라서 리의 인구가 많아지면 면이 되고, 면의 인구가 많아지면 읍이 되오."

"폐하, 그럼 읍의 인구가 많아지면 군이 됩니까?"

"그건 아니요. 읍의 인구가 5만 명이 넘게 되면 시(市)라는 특별 행정 구역이 될 것이요."

"시는 저잣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 옵니까?"

"맞소. 읍에 인구가 많아진다는 말은 상업이 발달했다는 뜻이니 시라 부르는 게 합당하오."

효종이 논리에 맞는 말을 하자 대신들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대신 중 하나가 그 문제를 바로 물었다.

"폐하, 그럼 관리의 임명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은 부(府), 목(牧), 군(郡), 현(縣)으로 나누어 관리의 직급이 다르게 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도, 군, 읍, 면까지 직접 관리를 파견하고 리의 경우는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뽑도록 할 계획이요."

"폐하, 그렇게 된다면 군사는 어찌 관리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선의 행정은 군사 조직과 섞여 복잡했다.

그러니 새로운 행정 구역을 시행하면 군권을 누가 갖느냐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앞으로 군사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분리하여 직접 관리 할 것이오."

"폐하, 병조(兵曹)가 있는데 굳이 분리 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앞으로 병조는 군의 행정을 지원하는 곳이 될 것이요. 병역 대상자를 모집하고 퇴역하는 병사를 관리하며 다치거나 전사한 병사를 지원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요. 따라서 군을 지휘하는 일에 문관을 임명하지 않을 것이요. 병조에 속한 문관은 이제부터 행정을 처리하는 일만 하면 되오. 더는 문관이 군권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오."

효종의 선포에 걱정되는 것이 있는지 대신이 또 물었다.

"폐하, 그러면 치안은 어떻게 합니까? 관리가 군권이 없으면···."

"포도청이 있지 않소. 앞으로 나라 안의 치안은 포도청에서 모든 관리를 맡아서 할 것이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폐하. 자금이···."

조선 시대에 포도청이라는 경찰기관이 있었지만, 일원화되지 않고 다원적이었다.

지방의 경우에는 행정기관인 관아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했다.

그런데 군과 경찰을 분리한다면 그만큼 인원이 늘어나고 경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돈이라면 잘난 태자가 있지 않소."

대신들은 효종 옆에 서 있는 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조선의 호구가 되어버린 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상의한 적도 정보를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러려고 날 불렀나 보네.'

어쩐지 이상했다.

대신들을 모아 행정 구역에 관해 논의한다고 했는데 상관없는 자신을 불러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호구 잡혔다.

'뭐 나쁠 건 없지.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

사실 화폐 발행권을 거머쥔 터라 조선의 돈은 모두 원의 돈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행정 구역 구성도 원이 행식이를 시켜 만든 것이기에 효종이 나서서 정리해주자 나쁘지 않았다.

'역시 아버지가 최고야!'

매달 아버지를 만나 서로의 의견을 논의하던 일이 어느덧 4년이 넘었다.

그동안 조선을 어떻게 개혁할지 논의 할 수 있었던 것은 효종이 원을 동등한 지기로 봤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원은 깨어있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무튼 돈줄인 원이 있기에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삼정승과 육조판서들의 합의로 새로운 행정 구역은 간소화되었다.

관료의 지위도 정(正) 1품에서 종(從) 9품까지 총 18개의 품계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었지만, 1급부터 9급까지 간소화하기로 했다.

이는 모두 원의 말을 듣고 행식이가 만든 보고서에 따라 정해졌다.

행정 구역과 관리 등급 정리가 끝나자 효종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군에 관한 것을 다시 말하겠소.”

군은 왕의 직속으로 둔다고 했는데 다시 말한다고 하자.

원과 대신들은 효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효종은 원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가끔 양순이가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봤는데 이번에는 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또 뭘 털어가시려고 저러시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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