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44화 (44/275)

44. 내부 정리(2)

조선 팔도가 뒤집혔다.

효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인지 저잣거리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이번 역모는 서인 놈들이 주도한 거라며?"

"그렇다고 하더라고."

"한번 해보니 또 할 수 있었나 보지?"

"멍청한 놈들이지.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우리 같은 백성들이 이리 먹고살 수 있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백성들의 반응이 따뜻한 봄날에도 차갑기만 했다.

매년 봄만 되면 초근목피라도 삶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조선전력공사의 분점이 곳곳에 생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라도 조선은행에 가면 1할(10%)밖에 안 되는 싼 이자로 쌀을 살 수 있는 동전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더는 모래나 겨가 섞인 썩을 쌀을 빌린 후 곱절이나 되는 햅쌀로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었다.

"죽일 놈들이지.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지들 자리가 없다고 역모를 일으키다니."

"그렇게 말일세. 단체로 사직서를 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지들 자리를 찾고자 역모라니. 다 죽일 놈들일세."

"자네 말이 맞네. 나라를 위해 공부한 것들이 아니라 자리를 탐내 공부한 것들이니 탐관오리와 다를 바 없네."

역모로 시작된 이야기는 애꿎은 유생들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성균관 유생들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술이나 처먹고 연애질이나 한다는 말 못 들었는가?"

"그거야 나도 알지. 장터에서 공연단이 하는 극을 봤다네. 그런 놈들이 관원이 되면 관기나 찾고 술이나 처마시겠지."

"이를 말인가? 가르치는 스승이 그 모양이니 뭘 배우겠나."

이제 백성들도 선식이 때문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선식이가 이끄는 조선전력공사 공연단의 목적은 어차피 선동이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일도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더 좋아했고 살을 붙인 후 퍼져나갔다.

"역적 놈들을 그냥 두면 안 되네. 구족을 멸살해야지."

"내 생각도 같은데. 그건 힘들 것 같네."

"역모인데, 안 돼?"

"내가 저잣거리에 가서 방문을 보고 왔네."

"자네 한글도 다 떼었나?"

"그게 뭐 어려운 문자라고."

자부심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백성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앞으로 연좌제는 폐지한다고 적혀 있는 걸 봤네."

"연좌제? 그게 뭔 말인가?"

"나도 몰라서 물어봤네. 연좌제는 죄를 지은 죄인만 다스린다는 뜻이라 하더군. 그래서 죄가 없는 자는 걱정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내용이 방문에 적혀 있었네."

연좌제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만, 의미는 정확했다.

"그게 좋은 건가? 역적 놈들은 다 쳐 죽여야 하는데?"

"나도 잘은 모르지만, 죄 없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역모인데···."

뭔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성이성에게 끌려간 선비들의 가문과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연좌제를 폐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엎드려 만세를 불렀다.

조선전력공사의 통신망을 이용한 포고는 경이로웠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조선 팔도 곳곳에 즉시 전해졌고, 방문이 붙자마자 바로 백성들 사이에서 화제(話題)가 되었다.

의금부(義禁府)로 끌려간 선비들은 고신(拷訊)을 당하기도 전에 모두 털어놓았다.

어차피 역모라 죽을 것이 뻔했기에 고통이라도 덜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주동자는 윤 대감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감."

"맞습니다. 대감. 저희는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이놈을 따라간 겁니다. 역적모의인 줄 알았다면 제가 감히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감, 제발 부탁드립니다. 다 이놈 때문입니다."

말을 듣던 이가 발끈했다.

"어허! 자네가 나에게 그러면 안 되지. 나도 몰랐으니 자넬 데리고 간 것 아닌가?"

"시끄럽다. 이놈아. 네놈은 내 동무도 아니다. 이 집안 말아먹을 놈아!"

묶어 놓지 않았다면 둘이 치고받고 싸움까지 날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했다.

세상일이란 원래 그랬다.

의(義)가 있어서 모인 게 아니라면 이권(利權) 때문에 서로 싸우고 갈라지는 건 부지기수였다.

조선에서 나라를 말아먹은 붕당정치.

시초는 1453년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부터 비롯됐다.

훈구파(勳舊派)를 몰아낸 사림파(士林派)는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은 벽파와 시파로.

마지막으로 세도정치(勢道政治)로 통합되어 조선을 사라지게 했다.

따라서 아무리 붕당정치(朋黨政治)를 옹호하려고 해도 사대부와 양반들이 행한 악행을 가릴 수는 없다.

정무(政務)를 마친 효종은 지붕이 있는 가마인 연(輦)을 타고 의금부로 갔다.

미세한 흔들림 속에서 원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 관료들은 정치를 못 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정치는 필요악(惡)입니다. 그래서 정치 없이 나라를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들이 정치를 논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당이 생기고 파가 조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정치를 하는 이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고받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까지 관료들이 정치까지 하면서 상대를 몰아내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아실 겁니다.'

정치에는 일절 관심이 없던 원이 정치라는 말을 꺼냈는데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지금도 시전(市廛)에서 투견(鬪犬)이나 투우(鬪牛), 투계(鬪鷄) 같은 도박을 몰래 한다고 합니다.'

'그런 놈들은 다 잡아 들어야 한다.'

'다 잡을 수 있겠습니까? 잡는다고 해도 또 생길 겁니다.'

'으음···.'

다른 왕자들처럼 궁중과 한양에서 생활했다면 몰랐겠지만, 효종은 달랐다.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으로 끌려가 전쟁부터 별꼴을 다 보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원이 한 말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생각하는 정치는 무엇이냐? 나에게 말해 다오.'

'소자는 정치가 싫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자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래, 거침없이 말해 보거라.'

효종의 물음에 원은 대놓고 비유를 들었다.

'집 잘 지키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는 풀어 놓아도 되지만, 투견같이 동족을 물어뜯고 사람을 해치는 개는 한 곳에 몰아넣어야 합니다.'

'네 말은 정치하는 자들을 따로 모아 놓자는 뜻이냐?'

'맞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를 효과적으로 움직이려면 행정 관료들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관료 역할을 할 신하들이 정치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대신 정치를 원하는 신하들은 따로 싸울 곳을 마련해 두면 됩니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든 말아먹든 알아서 하게요.‘

원의 말을 들은 효종은 깜짝 놀라 물었다.

’나눠 먹고 말아먹게 놔두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감시하면 됩니다. 걸리면 바로 쳐버리고요.‘

’그럼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

’잘했을 경우 꿀 발린 당근을 주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그들도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원의 말을 들은 효종은 한참을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아들이다.

어찌 된 일인지 원은 대신은 물론 중신들까지 붕당을 따지지 않고 뇌물을 뿌렸다.

많은 금액이 아니었기에 인조는 물론 왕족들까지 개의치 않고 두고만 봤다.

나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란으로 인해 추락해 버린 왕권.

일으켜 세우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원이 뇌물을 뿌리기 시작하자 신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원이 정치를 했다면 달라붙었을 것인데, 원은 그러지 않았다.

철저히 거리를 두다 못해 옹진반도에 처박혀 살았다.

또한 인조에게 극심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신하들은 인조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원이 뿌린 뇌물의 덕을 본 인조는 원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효종 또한 든든한 지기(知己)가 생긴 느낌이었다.

'정치와 행정을 분리하잔 말이더냐?'

'네, 아버지.'

'또한 정치를 원하는 자들만 따로 모아 놓고?'

'네, 아버지.'

'그런데 그들이 무슨 이익이 있다고 모이겠느냐?'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목적인 조선의 선비들.

결국 명성을 날라고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를 원 할 뿐이다.

개중에는 김육 같은 참 선비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독자적인 법을 제정할 권리를 주고 예산과 집행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됩니다.'

'만약 악법이라도 만든다면 어찌해야 하느냐?'

'새로운 법을 상정(上程)할 수는 있지만, 그들끼리 협의가 되지 않으면 통과될 수 없게 하면 됩니다.'

'모두가 짜고 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시면 됩니다.'

'거부권이라···.'

원은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행정에서 정치질하는 신하들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효율적인 행정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관료들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당쟁은 왕권을 위협했다.

이번 일만 보더라도 인조반정으로 왕을 바꾸자 언제든지 다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고리를 끊는 방법은 정치질을 좋아하는 이들만 따로 모아서 그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원은 말했다.

"그게 과연 답일까···?"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효종은 매일 같이 떠오르는 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은 엄청나게 커질 겁니다. 아버지와 제가 다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요. 그래서 전문 관료들을 키워야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덧 의금부에 도착한 효종은 묵직한 발걸음으로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았다.

앞에는 100여 명이나 되는 선비들이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동자가 누군지 밝혀냈느냐?"

"네, 폐하."

"보고 싶구나."

"네, 폐하."

의금부 나장(羅將)에게 이끌려 효종 앞에 엎드린 윤 대감.

"소신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부디···."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제 아들만이라도 부탁드리옵니다. 폐하!"

"그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일에 혐의가 없다면 무사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유학과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선비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백성들도 아는 연좌제가 폐지된 사실도 몰랐던 거다.

"왜 그랬느냐?"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소신은 폐하께서 이 나라 조선을 망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건 우둔한 소신의 잘못입니다. 부디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부탁드리옵니다. 폐하!"

윤 대감과 선비들은 진짜 역모를 했든 안 했든 의금부까지 끌려온 이상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역사이니.

하지만.

"연좌제가 폐지된 것도 몰랐더냐?"

"네! 네?"

"도성뿐만 아니라 팔도에 방문을 붙여 놓았는데도 선비라는 자가 몰랐다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연좌제가 폐지됐다는 말을 들은 윤 대감은 묶인 채로 그대로 이마를 박으며 외쳤다.

"폐하! 성은이 하해와 같습니다. 참으로 성군이신 폐하를 몰라보고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우매한 소신의 목을 쳐서 저와 같은 미련한 자들을 두 번 다시 없게 하소서. 폐하!"

모함을 해서라도 정적을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했던 선조 시절을 잘 알고 있었던 윤 대감은 효종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 죽고 싶으냐?"

"네! 네?"

"네 죄가 큰데 그냥 죽일 수는 없지 않으냐.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죽어도 늦지 않다. 여봐라!"

"""네, 폐하."""

"이놈들을 당장 탄광으로 보내고 관련된 자들도 모두 잡아들여서 탄을 캐게 하라.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라!"

"""네, 폐하."""

효종은 빠르게 추국(推鞫)을 마치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

역모를 인정한 죄인들의 낯짝을 꼴도 보기 싫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쳐 죽이고 싶었지만, 원이 했던 말이 옳아 보였다.

'아버지, 그냥 죽이면 그걸로 끝입니다. 광산에 일손이 부족한데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켜야 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또한 재산을 전부 압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두 번 다시 이 같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 욕심에서 비롯된 일 아닙니까?'

원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아들이었다.

죽으면 끝이라느니.

죽을 때까지 노역을 시켜 고통을 받게 해야 한다느니.

그 누구도 입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그와 달리 역모죄를 범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선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칠흑처럼 어두운 지옥 같은 갱도가 그들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명분(名分, Casus)을 얻은 효종의 개혁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든 대신들을 모레 아침에 대전에서 보자고 알려라. 또한 태자에게도 참석하라고 연락하거라."

"네, 폐하."

효종은 이번 기회에 원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줄 생각이었다.

‘너라면 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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