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39화 (39/275)

39. 남쪽 방어(2)

관청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9품 관원들.

동전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흔들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번 달은 녹봉이 나오는 달이 아닌데···, 이건 떡값인가?"

"녹봉 맞네. 앞으로 매달 준다는 말이 있었네."

"그래? 그럼 세배나 오르는 건가?"

"그렇게 되겠지."

동전을 꺼내 하나하나 세던 관원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적은 것 같은데."

"뭐가 말인가?"

"분기마다 녹봉으로 쌀 2석과 콩을 한 석씩 받지 않았는가?"

"그랬지."

"그런데 동전이 100문뿐인데?"

"그게 뭐가 이상한가? 쌀 한 석이 50문이니 두 석이면 100문이 맞지 않는가?"

관원은 공돈을 받고도 의심하는 동료를 보며 혀를 찼다.

"허어, 콩 1석이 빠졌지 않는가?"

"그까짓 콩이야 따로 사면 되지. 암튼 난 만족하네. 두 배나 넘게 녹봉이 올랐으니 집에 가면 목에 힘 좀 줄 수 있겠네."

효종은 관료들에게 말한 대로 바로 매달 녹봉을 지급하라고 명 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세금도 있지만, 원에게 광산 개발권을 주고 대신 받은 금과 은이 계속 쌓이고 있기에 조선의 재정은 갈수록 풍부해졌다.

따라서 녹봉을 올려주는 일은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콩값은 빼고 쌀값으로만 계산해서 화폐로 주라고 명 했다.

그래도 관리들의 녹봉은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그래서 효종은 원이 말한 ‘생계형 비리’는 단호하게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세금 또한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로만 받으라고 명 했다.

조선전력공사 분점에 곡식 창고가 있고, 각지에 콘크리트 도로를 만들고 있기에 굳이 쌀로 조세를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처럼 위조 화폐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동전은 너무 정교했기에 비슷하게 만드는 것조차 비용이 몇십 배는 더 들었다.

아무튼 현물로 세금을 징수하는 대동법이나 공납을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자네 들어봤나?"

"뭘 말하는가?"

"앞으로 걸리면 그걸로 끝이라고 하던데···."

"안 걸리면···, 아니 조심해야겠네. 괜히 딴짓 거리 하다가 이 좋은 자리에서 잘리면 패가망신 아닌가."

"당연하지. 욕심부리지 말고 잘 붙어 있자고. 그나저나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건 다 익혔는가?"

"그거야 벌써 뗏지."

또한 효종은 행정을 처리할 때 한문을 자제하고 한글을 주로 사용하라 명 했다.

반발이 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이 새로운 단어를 너무 많이 퍼트리는 바람에 한자를 음차해서 쓸 수 있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괜히 비누 같은 새로운 기물을 음차하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 한글이 좋긴 좋아.”

“그렇게 말일세. 그냥 ‘비누’라 한글로 적으면 될 것을, 없는 한자를 찾아서 만들어 내려고 날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어휴!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힘이 빠지네. 쓸데없는 짓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그나저나 열심히 해야 하네. 요즘 젊은것들 너무 똑똑해.”

“어쩔 수 있나 밀리지 않으려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해야지.”

단체로 사직서를 내고 나가버린 관원들의 자리에 새로 들어온 젊은 관원들.

미리 인쇄된 종이에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를 쓰며 일을 하는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러니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배울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 말이나 다름없는 한자 대신에 육하원칙(六何原則)에 따라 한글로 쓰니 정말 편하더군. 언문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었네."

"이러다 한자를 다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그까짓 한자 잊어버려도 되네. 요즘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소설책은 다 한글로 되어 있다고 하더군."

"그건 또 어찌 아는가?"

"안해가 소설을 좋아해서···."

"자네 공처가(恐妻家)였나?"

"그건 아닌데···."

"맞구만. 뭘!"

"자네도 알다시피 안해가 재산이 많지 않은가. 잘 보여야 하네."

"허허! 사내대장부가 그러면 쓰나. 그래도 자네가 부럽네."

혼인을 했어도 서로 존대하며 재산 또한 각자 관리했던 조선 중기.

처가가 부자라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장부를 자처해도 그런 처를 둔 사람을 부러워했다.

아무튼 행식이를 수장으로 한 행정조직을 개편하는 연구원들의 첫 작품은 양식이었다.

업무에 맞는 양식을 선정하고 대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기에 단순히 기재만 하면 되었다.

또한 양식으로 된 서류는 한눈에 알아보기도 쉬워 수작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러니 처리 속도가 빠를 수밖에.

처음 원은 압록강 변에 널려있는 갈대로 조선 막지를 만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발전기로 전기를 얻게 되자, 바닷물에서 이온교환막법으로 염소와 수소, 수산화나트륨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나무로 만든 품질 좋은 종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화학에서 질산의 재료인 암모니아만큼 중요한 것이 수산화나트륨이다.

비누부터 종이, 성냥, 화약, 뇌관, 염색, 유리, 고무, 배터리 등 쓰이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든 기본 재료이기 때문이다.

가성소다 또는 양잿물이라 부르는 수산화나트륨.

밀가루 반죽부터 조미료, 간장 같은 식품은 물론 의약과 수질 오염 개선에도 사용한다.

아무튼 원은 종이 수요가 급증하자 귀중한 자원인 목재를 아끼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라 명 했다.

그래서 강 염기성인 수산화나트륨을 이용해 옥수수 줄기와 대나무를 섞어 소다 펄프 제조 방법으로 종이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했다.

연구원들은 갈대로도 종이를 만들었는데 남아도는 옥수수 대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의문을 품고 실험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효율이 높지 않았기에 대나무 대와 녹말을 섞어 종이를 만들었다.

이제 조선에서 종잇값은 엄청나게 싸졌다.

그래서인지 책값도 싸졌다.

또한 수산화나트륨으로 잉크를 만들어 내자 염색과 인쇄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석탄에서 에틸렌을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인 프로필렌으로 아크릴(Acrylic)까지 생성해내자 ‘실크 스크린 인쇄’까지 할 수 있었다.

실크 스크린 인쇄는 21세기에도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하는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기술이다.

이제는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든 제품은 ‘번개’ 표시와 제조자 <조선전력공사> 문자가 새겨져 출하되었다.

이처럼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에서 본격적인 '기술 가속'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원리를 아는 원의 교육을 받은 천재 아이들.

옹진반도에 있는 수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라 학습 능력이 넘사벽이었다.

또한 잡다한 학문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드러냈다.

옹진반도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10만 명에 이르자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었다.

공무원(公務員)이라 부르는 성인이 된 아이들.

각지로 파견되어 행정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더는 녹봉도 없이 사또 밑에서 아첨이나 하고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앞장섰던 아전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사또 또한 관기를 품고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

새로 투입된 공무원들은 세종 2년(1420)에 시작된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에 해당하지 않기에 바로 고발할 수 있었고, 즉시 징벌을 받았다.

세상은 번개처럼 빠르게 변해 갔다.

"워메, 저게 뭐시단가?“

”뭘 말하는 거야?“

”저기 좀 봐봐. 머리가 왜 이리 짧단가?"

"위생 때문에 잘랐다고 그러던데."

"신체발모수지··· 뭣이냐? 암튼 양반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디?"

하지만 듣고 있던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폐하께서 그런 말 하려면 손톱도 깎지 말라고 하셨다네. 손톱은 깎으면서 머리카락은 왜 안 깎냐고 호통을 치셨다고 하네. 해충을 이고 사는 게 올바른 길이냐며 다그치는데 사대부 놈들이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더군."

"참말인 겨?"

"참말이니까 저러고들 다니지 않겠는가?"

조서원의 요원들이 퍼트린 말은 하루에 천릿길을 달렸다.

그래서인지 이제 머리를 짧게 깎는 사람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신 잘생겨 보인다고 젊어 보인다고 잘라 버리겠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아무리 법도가 있고 내려온 전통이 있다지만, 미를 추구하는 젊은 사람들을 막기는 힘들었다.

* * *

남한산성 근처 외진 곳.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지 도포로 몸을 감싼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으슥한 집으로 모여들었다.

"대감, 이대로 지켜봐야만 되겠습니까?"

"그럼 어쩌잔 말인가? 반정이라도 일으켜야 하는가? 크흠!"

"못할 것도 없지요?"

"죽으려면 저기 가서 혼자 목매달고 죽게나. 나는 자신 없네."

"대감! 그러시려면 어찌 이곳으로 모이라고 했습니까?"

이언적(李彦迪)과 이황의 학문을 추종하며 남인의 거두가 된 윤휴(尹鑴)는 한심하다는 듯 대드는 이를 쳐다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네들을 부른 것일세. 성리학을 무시하고 일을 추진하는 주상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어떻게 하시자는 말씀입니까?"

"상소라도 올려야지."

"하지만 모두 폐기 처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유소(儒疏)라네. 모두 함께 가서 뜻을 관철하세."

"대감께서 앞장서실 겁니까?"

윤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매 결혼을 옹호하며 연애 결혼을 비판했던 윤휴.

주자만이 답을 아니라며 대학, 중용, 효경 등 유교 경전을 독자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랬던 그도 너무 급변하는 세상이 달갑지는 않았다.

특히나 유학 전체를 무시하는 효종의 처사가 싫었다.

"윤선도(尹善道)께서 보내신 기축소(己丑疏)라는 초안을 받아 보았네."

"대감! 윤선도는 아니 됩니다. 어찌 그런 자와···."

"문제가 있는가? 주상이 세자시절 스승이었는데?"

"들리는 말이 너무 좋지 않은 이입니다."

"크흠."

가진 재산과 노비가 많았던 윤선도는 인조뿐만 아니라 조선의 왕을 철저히 무시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성균관 유생 시절 이이첨의 정치를 난정(亂政)으로 규정하고 일파를 비난했다가 유배된 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윤선도를 서인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 윤선도는 배를 타고 강화도 근처까지 오고선 인조에게 문안도 하지 않고 피난 중이던 처녀를 잡아 배에 싣고 돌아갔다.

윤선도의 파렴치한 행동을 알게 된 서인 사간원들은 탄핵을 주장하며 빗발치게 고발했다.

그러나 인조는 그를 벌하지 않았다.

아무튼 기분이 나빴는지 윤선도는 보길도의 격자봉(格紫峰) 아래 집을 짓고 낙서재(樂書齋)라 부르며 시문과 술, 문객과 문인들, 동남동녀들을 데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인생을 즐겼다.

쫄보에 어리석었던 인조.

벌할 사람은 벌하지 않았고, 문제가 될 사람을 해임하지 않았기에 이괄의 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당했다.

"대감! 말씀 좀 해보십시오.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늙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윤휴가 말이 없자 답답한 선비가 따지듯이 물었다.

하지만 윤휴 또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포도대장은 물론 착호갑사까지 태자인 원의 편이 되었고, 훈련도감 병사들마저 녹봉이 올라간다는 말에 효종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 반정이란 말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돌아오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무지렁이 백성들이 한글이라는 언문을 배워 나가기 시작하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조선전력공사 공연단이란 것들이 장터를 돌며 주상을 칭송하고 북벌과 남벌까지 하자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니 문자를 읊으며 선동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나섰으니 뜻을 모아서 유소라도 해보자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알겠습니다. 대감. 그럼 날짜를 정해주시면 우리가 사람들을 모아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

모였지만 할 수 있는 게 유소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들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효종의 과감한 개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관원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냈지만, 그 덕에 행정 공백은커녕 처리가 눈부시게 빨라졌다.

훈련도감 군관들부터 방납 비리에 연루된 자들은 모두 적발되어 재산을 압수당하고 광산과 도로 공사 현장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청나라 포로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을 뜻하는 삼정(三政)의 비리에 연루된 자들을 솎아내자 경직된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백성들의 삶은 나날이 좋아져만 갔다.

"역시 금융치료가 최고야!"

"금융치료가 뭔 말입니까? 사장님."

"재산을 압류하는 것이지."

"아, 심양 털듯이요?"

"털다니! 수거해온 것뿐이다."

심양에서 수거해온 어마어마한 재물은 모두 조선은행 자본금으로 비축해 놓았다.

언제든지 원하면 발행한 동전을 은덩이나 금덩이로 바꿔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무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조서원에서 받은 정황증거를 들이대며 체포했기에 소리쳐 따져 봐야 소용이 없었다.

전 같으면 감옥에 집어넣거나 유배를 보낸다고 해도 재산이 많은 이들은 겁을 먹지 않았다.

있는 돈으로 옥바라지만 잘하면 감옥이나 유배지에서도 풍류를 즐기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리에 연루된 재산을 모두 압수해버리자 달라졌다.

처는 이혼을 요구하며 처가로 가버렸고 자식들 또한 모른 체했다.

그러니 옥바라지는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노역까지 하게 생겼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행이라면 고문 같은 건 없었다.

나라를 위해 힘든 일을 할 일꾼들이 상하면 안 된다는 효종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노역은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지금쯤 도착했겠지?"

"네, 부산에서 준비를 끝내고 출발했다고 하니 벌써 끝나지 않았을까요?"

“다치는 대원들이 없어야 할 건데···.”“별일 있겠습니까? 해경들 또한 육경에 지기 싫어서 열심히 훈련한 것 아닙니까?”

대마도 도주 소씨는 지속해서 사신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의 앞잡이가 되었던 일을 꺼내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항복하고 조선의 신하로서 성심성의껏 모시겠다고 했지만, 무시되었다.

대마도 자체가 조선의 땅인데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가신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열도로 도망가자고 했지만, 소씨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되레 가진 재산을 털어 해적들을 구슬려 데려왔다.

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처음 보는 거대한 배였다.

그것도 거무죽죽하니 색이 칠해진 무시무시한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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