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33화 (33/275)

33. 작전명 귀환(4)

힘겹게 500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 온 백성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를 건너오자 모두 놀란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대원 나리, 저, 저곳이 참말로 조선 땅이란 말입니까?"

"네, 새로운 의주라는 뜻을 가진 신의주 읍성입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수북이 쌓인 눈길과 다르게 말끔히 치워진 회백색의 길이 앞으로 쭉 뻗어있었다.

이음새가 거의 보이지 않는 큰 돌을 깔아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길은 평평하고 단단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놀라웠다.

회백색의 돌로 만들어진 높지 않은 담장 앞은 철로 된 가시덩굴로 덮여 있었다.

담장을 따라 세워진 높은 철탑.

그 위에 있던 대원들이 환영한다는 의미인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슨 집이 전부 돌로 지어졌나 보네?"

"그렇게 말이오. 저 높은 집은 성 아니요? 성!"

사람들은 신의주 경비대 본부 5층 건물을 보고 넋이 나간 듯 쳐다만 보고 이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빨리 저쪽으로 들어가십시오. 뒤에 오시는 분들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 예. 대원 나리. 죄송하구먼요."

백성들은 새끼 줄로 쳐 놓은 길을 따라 신의주 동남쪽 산기슭으로 이동했다.

가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백성들.

도무지 믿을 수 없는지 추운 바람에도 입을 벌려 감탄사를 내뱉었다.

돌로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비대 본부와 대원들의 숙소.

엄동설한에 여기까지 오느라 힘이 들었지만, 처음 보는 신기한 모양의 건물에 호기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자,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깔때기를 든 대원이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백성들은 단상 위에 대원이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뒤에 보이는 하얀 집들 보이시죠?"

"""네, 대원 나리."""

기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하얀 큰집들이 대원이 올라서 있는 단상 뒤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저것은 비닐 집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비닐 집 한 동에 백 명 정도 예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신 분들이 많아 백오십 명씩 들어가서 지내셔야 합니다. 물론 당분간입니다. 날이 풀리는 대로 다시 살 집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원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날씨가 너무 추웠기에 사람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뗐다.

"일단 가족이 있는 분들부터 먼저 비닐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안에도 칸이 나누어져 있으니 한 가족이 한 칸씩 쓰시면 됩니다."

이곳까지 오늘 길에 가족을 다시 만난 사람들.

혹시라도 놓칠까 봐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참,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저기 노란 깃발을 들고 있는 대원에게로 가거라. 그리고 홀로 사는 성인 남자는 파란색 깃발, 여자는 분홍색 깃발로 가십시오."

대원들은 산기슭으로 들어오는 백성들을 미리 준비된 비닐 집으로 안내했다.

1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오기에 수천 명이나 되는 대원들을 동원했다.

제식훈련을 받았던 대원들.

서두름 없이 척척 해냈다.

배정받은 비닐 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깨끗하고 환한 안을 보고 감탄을 자아냈다.

"가족이 많으니 이곳을 쓰시고, 어디 보자···, 아이는 없습니까?"

"네, ···죽고 우리 둘뿐입니다."

"그럼, 이곳을 쓰십시오."

가운데 통로를 두고 좌우로 편상이 쭉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중간중간에 판자로 된 이동식 격벽이 있어서 식구 수에 따라 크기를 정해 줬다.

"어이구, 살 거네."

"아휴, 살 것 같구먼요."

곳곳에 '번개표'가 새겨진 연탄난로의 열기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비닐 집 안을 훈훈하게 만들어 냈다.

아직 조선의 산림은 울창했다.

특히 북쪽인 이곳은 수시로 호랑이가 나타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했다.

그래서 임시 숙소나 다름없는 비닐 집을 만들 때 나무를 사용해서 지었다.

바닥에 온돌을 깔고 싶었지만, 플라스틱 파이프라 할지라도 아직은 생산량이 부족하기에 아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이곳은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을 곳인데 시멘트로 바닥을 만들기도 그랬다.

사람들이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두려움과 희망이 섞인 대화를 하는 사이, 깔때기를 든 대원이 다시 들어왔다.

"좀 쉬셨으면 먼저 깨끗이 씻기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시면 이렇게 표시된 목욕탕이 있습니다."

대원은 현대의 온천표시가 그려진 푯말을 들어 올렸다.

"그곳에 들어가셔서 몸을 깨끗이 씻고 준비된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길 바랍니다. 참, 남녀 구별이 있으니 잘 찾아 들어가서야 합니다."

다시 남자 표시와 여자 표시가 든 푯말을 번갈아들며 대원은 자세히 설명했다.

"이 표시가 남자고, 이 표시가 여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대원 나리."""

씩 웃는 대원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물었다.

"대원 나리, 저는 남편이 없는데 남자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아, 그냥 여자 표시로 데리고 들어가셔도 됩니다. 단 너무 큰 아이는 안 되겠죠?"

"네, 대원 나리. 고맙습니다."

수동리에 새워진 방적기와 방직기 공장에서 옷감을 생산하면 바로 경비대원들의 옷과 침낭부터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귀환 작전을 세우면서 대상이 바뀌었다.

미리 침투에 나선 기마대와 육경 대원들에게는 방검복과 두꺼운 옷, 침낭을 제공했지만, 신의주에 있는 대원들에게는 지급하지 못했다.

만드는 족족 몰려올 백성들의 옷과 침구류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원은 생각했다.

새로운 조선을 어떻게 만들지.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편하고 좋은 것을 찾기 마련이지.'

이미 자리를 잡고 사는 조선의 백성들.

아무리 선동한다고 해도 쉽게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노예로 살다가 들어온 백성들부터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뭣이 좋은지 알겠지.’

원은 강요하지 않고 보여줄 생각이었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자 가운데 돌로 만들어진 큰 웅덩이가 있었다.

그곳에서 뜨거운 물이 가득 차 넘쳐흘렀다.

또한 귀하다는 비누와 바가지가 곳곳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목욕을 마친 여탕에서 잠시 소란이 있었다.

남정네처럼 두툼한 바지를 입은 처자가 깔때기를 들고 서 있었던 거다.

"뭐여? 남정네 아니여?"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남사스럽게 바지는 뭣이여?"

여인들이 떠들자 바지를 입은 처자가 한 번 씨익 웃더니 깔때기를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준비된 옷은 소, 중, 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맞게 골라 입으시면 됩니다."

"저···."

"말씀하십시오."

"바지는···."

"아, 앞으로 바지만 입고 지내셔도 됩니다. 불편하시면 전에 입고 있던 치마를 빨아 드릴 테니 겉에 걸치시면 됩니다."

"아~ 그러면 되겠구먼요."

조선 시대에 여인이라 해도 바지를 입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여인들의 바지는 치마 속에 입는 속바지였다.

원은 굳이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강요하면 분란이 생기고 그러면 다루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남포댁, 이것 좀 봐봐요. 이거 비단 아닌가요?"

목욕을 마치고 막 나온 남포댁에게 친하게 지내던 여인이 옷을 들고 물었다.

"어디 줘봐요."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던 남포댁.

"비단보다 더 고운데요."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하얀색 내복과 겉옷은 비단결보다 더 부드럽고 더 좋았다.

비단이라고 해도 다 광택이 나고 부드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이 곱고 광택이 나는 비단은 물이나 초산에 담가 세리신을 녹여야 한다.

한때는 이 기술을 대륙에서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륙의 비단이 최고라 했던 거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원손마마께서 조선 제일의 부자라는 말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비단옷을 나눠주다니 놀랄 수밖에.

누리끼리한 면포로 만든 옷에서 두툼한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

걸음걸이부터 달라졌다.

뭐라도 묻을까 조심하면서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본 대원들의 입은 슬그머니 귀를 쫓아갔다.

자신들도 그랬다.

처음 내복으로 받은 쫄쫄이를 보고 너무 좋아서 입지도 않고 품에 안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또 다른 대원이 깔때기를 들고 외쳤다.

"이것은 양말이라고 합니다. 버선 아닙니다. 한 사람당 두 개씩 가져가십시오."

부잣집 마나님들이나 신는다는 새하얀 버선.

그런데 모양이 좀 특이했다.

버선과 달리 가늘고 길었던 거였다.

"참, 이 양말은 늘어나기 때문에 너무 큰 것을 신으시면 불편할 겁니다. 대, 중, 소가 있으니 자신의 발에 맞는 걸 신고 하나는 들고 가세요."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가 양말을 챙기려 했다.

하지만 깔때기를 든 대원의 매서운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 멈추세요! 줄을 서서 한 분씩 골라 신고 나가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곳에서 추방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두 눈치만 보고 말이 없었다.

그러자 대원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질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서란 줄을 서서 한 분씩 순서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쫓아낼 겁니다. 알겠습니까?"

"""에, 에."""

겁이 났는지 사람들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비록 죽이지만 고기도 들어있고 맛있었다.

비닐 집은 함께 지내야 하지만 아늑하고 깨끗했다.

말로만 들었던 비누도 사용할 수 있었고 새하얀 비단 같은 옷도 받았다.

몇몇을 제외하고 백성 대부분은 살아생전 이토록 좋은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쫓겨나다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럴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은 빠르게 줄을 섰다.

그 누구도 떠들지 않았다.

아이들까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쫓겨나면 얼어 죽는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질서! 질서만 잘 지키시면 됩니다."

다시 상냥하게 웃는 대원의 얼굴.

하지만 한번 경직된 사람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 칸으로 나가시면 신발이 있습니다. 미리 양말을 신으십시오. 그래야 맞는 신발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바닥은 딱딱하고 발을 덮는 곳은 말랑말랑한 처음 본 신발.

짚신 말고는 신어 본 적이 없는 백성들의 심장이 두근두근 힘차게 뛰었다.

원은 내년 농사에 지원할 비료 생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에 지원할 의류와 군화도 뒤로 미뤘다.

옹진반도와 수동에 있는 공장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했다.

12만 명이나 되는 인원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먹을 것은 남아돌았고, 잠잘 곳은 신의주에 사는 백성들이 발 벗고 도와줬기 때문에 수월했다.

하지만 의류와 신발이 문제였다.

5만 명 가까이 되는 경비대원들과 1만 명 정도 되는 조선전력공사 외부 직원들에게 줘야 했던 의류와 신발들.

회의 끝에 귀향민들에게 먼저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모두 어렵게 살아왔던 옹진반도 사람들.

그들도 한때는 청나라의 노예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원 또한 개혁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맛을 들여야 해.'

사람이란 좋고 편한 것에 한번 발을 디디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옹진반도 사람들이야 모두 어렵고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 왔기에 걱정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청나라 심양에서 살아왔던 사람 중에는 어떤 사람이 나쁜 놈인지 좋은 사람인지 당장 알 수가 없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에 원은 일단 모두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중에 날이 풀린 후에 같은 백성을 등쳐 먹었던 자들만 따로 골라내면 된다.

원은 이 부분은 절대 인정을 두지 말라고 했다.

혹시라도 모함을 받을 수 있으니 교차검증을 반드시 하고 정확하다 판단되면 가차 없이 처리하라고 했다.

'그들 또한 잘 먹고 잘살자고 했던 일이니 밉지만, 증오할 필요는 없다. 그냥 포로로 잡아 온 청나라 병사들과 똑같이 취급해라.'

'하지만 조선인에게 해코지 한 자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놈은 범죄자다. 그것도 악질이다. 그렇다고 아까운 인력을 낭비할 수 없으니 탄광으로 보내라.'

'가족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연루되어 있다면 똑같이 처리하면 될 것이고, 아니라면 따로 분리해 일을 시켜라. 추후 판단해서 문제 될 성품이 아니라면 바로 석방하여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하면 될 일이다.'

원은 연좌제(連坐制, Collective Punishment)에 관해 깊이 생각해 봤다.

지금 조선은 죄에 따라 심하면 삼족(三族) 또는 구족(九族)을 멸한다.

그러다 보니 역모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도 친척 중 한 명이 역모에 나서면 어쩔 수 없이 모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이리 죽나 저리 죽나 한 번 엎어보고 나서 죽자고 하는 거였다.

또한 단 한 사람의 잘못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을 처형하는 일도 있었다.

'무슨 병신 짓이야.'

신의 말씀이라 사기를 치면서 인간의 생명을 조금도 중요시하지 않는 중세 서양의 종교보다는 만 배는 더 나았지만, 원의 눈에는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금융치료만 해도 충분해.'

청나라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어 금융치료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원이 생각하는 연좌제는 금융치료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래야 반란이나 나쁜 짓을 계획해도 동조하는 놈들이 없겠지.'

지금 같은 조선의 문화라면 작은 일도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원이 있기에 당파싸움이나 앞으로 있을 세도정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어찌해야 하나?'

전쟁이 끝났고 기수가 가져온 수확물과 보물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심양성 주변을 샅샅이 뒤져 끌고 온 말과 양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은덩이 또한 작은 산을 이루었다.

곡식 또한 너무 많아서 다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아무튼 기수가 제대로 수거해왔다.

곧 있으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다.

그래서 한양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조서원의 보고로는 지금 조정은 연일 다투느라 매일 같이 시끄러웠다.

친청파인 김자점 일당이 몰살당한 후라 청나라를 옹호하는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입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꼭 있었다.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자들.

명을 도와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정신 나간 사대주의자들.

이들의 설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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