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31화 (31/275)

31. 작전명 귀환(2)

심양성 내성 안에 있는 행궁(行宮).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한 후 제사를 지내러 오는 황제의 임시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며 더욱 웅장하게 변해갔다.

후금의 창업주인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청나라를 세운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의 다섯째 아들인 쇼서.

심양성 일대에서 절대 군주로 지내면서 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북경에 있는 황제도 부럽지 않았다.

평소에도 활동이 적은 쇼서.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아늑한 자신의 처소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가 온통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났다.

짜증이 난 쇼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쳐 내관과 가신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놈들이 다 어디로 간 거야?”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사방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불꽃놀이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낮이었다.

놀라 밖으로 나가려 하는 순간, 가신이 급히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친왕 전하! 큰일 났습니다. 조, 조선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뭐라고?“

”지금 성밖에서 조선 놈들이 쳐들어와 대포를 쏘고 있습니다.“

”되지도 않는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쇼서가 아는 조선이란 나라.

이곳까지 쳐들어올 능력이 전혀 없었다.

"혹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니냐?"

"아닙니다. 전하. 조선의 상단인 조선전력공사에서 기병대가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뭣이!"

순간 쇼서의 머릿속에 흘러가는 것이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달콤한 전리품을 바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젠장!"

털러 간 놈들에게 뭔가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신의주와 심양성까지 거리는 500리(200km)가 넘는다.

게다가 산으로 막혀 있기에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입을 열어 물어보려 했지만.

꽝! 꽝! 수도 없이 터져 나가는 굉음에 자신이 내뱉은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여인들의 날카로운 비명만 들릴 뿐.

쇼서는 가신의 목덜미를 움켜주며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 팔기군은 뭐 하고 있느냐?"

"모두 외성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도 모릅니다. 니루 어전 한 명이 급히 달려와서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자는 어디 있느냐?"

"급한지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런! 당장 나가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고 빨리 돌아오너라."

"네, 전하."

가신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나가자 쇼서는 자신의 가족들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발음과 치솟는 검은 연기가 성내로 흘러 들어오니 두려움이 앞섰다.

매캐한 냄새와 연기에 앞을 분간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다.

자욱한 연기가 밀려 들어오자 얼른 문을 닫은 쇼서는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더듬었다.

"어, 어찌 이런 일이···."

명을 멸망시키고, 잔당이나 다름없는 남명까지 대륙의 남서쪽 끝으로 밀어냈다.

'대륙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는데···.'

최신 수석총으로 무장한 남명군에 밀려 다시 양자강 위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귀순한 명나라 병사들을 모아 팔기에 부속시키고 남명군과 대치하고 있는 양자강 전선으로 보냈다.

남쪽은 명나라 사람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매일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의 발원지인 심양은 그 어떤 위협도 없었다.

청나라 정예 기병들이 지키고 있는 심양.

그 누가 감히 도발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최정예인 정황기, 양황기, 정백기가 북경 주변에 있다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팔기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쇼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사 어전 3명이 뭉쳐 신의주에 있는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약탈하러 갔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조선의 기병대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조선전력공사에는 대포는커녕 기병대도 없다고 들었다.

'기병대에 대포라니···.'

아무리 머리를 회전시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가신들을 찾았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건 틀림없는 대포 소린데···.”

펑! 펑! 터지는 요란한 폭음.

얼마나 많은 대포를 쏘아대기에 이럴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내성을 관리하는 호위 부대가 나타났다.

"전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외성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적들이 안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체하실 여유가 없습니다. 적진을 뚫고 빨리 탈주(脫走) 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나보고 도망을 가라고?"

"네, 전하. 시간이 촉박합니다. 어서 서두르셔야 합니다."

얼떨결에 호위대에 이끌려 가는 쇼서는 그 와중에도 생각나는 것이 있어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내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

"죄송합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적의 포격이 끝나는 대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안 된다 이놈들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다."

호위대장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호위대에 끌려가다시피 말을 타고 가는 쇼서.

정신없이 눈알이 굴러갔다.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머리를 굴리며 열심히 따져 봤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 걱정과 두려움에 미칠 것만 같은 쇼서는 호위대장에게 물었지만, 그 또한 아는 것이 없었다.

* * *

심양성 성벽이 무너지면서 얼어붙은 해자(垓字, Moats) 또한 유명무실(有名無實)해졌다.

떨어져 내린 성벽의 파편과 병사들의 몸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란 어떨 때 보면 참으로 질겼다.

성벽과 함께 무너져 내린 청나라 병사 중에도 몸이 성한 자는 있었다.

아직 배가 기름으로 덮여있지 않았는지 청나라 병사는 벌떡 일어나 활을 들고 쏘려고 했다.

-탕! 탕! 탕!

12연발 레버 액션 윈체스터 M1866을 따라 만든 조3 소총이 불을 품어대며 발사되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쓰러진 청나라 병사.

무엇이 분한지 눈을 감지 못했다.

-히이힝!

"모두 조심하라!"

분대장들이 소리를 치며 주위를 상기시켰다.

말 머리를 보호막 삼아 전진했기에 다행이었지만, 화살을 맞는 말은 앞발을 들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비록 조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청나라 정예 팔기군의 활 솜씨는 대단했다.

그래서인지 19세기에도 청나라 만주팔기군은 활을 고집했고,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지 못했다.

끝까지 활을 고집한 청나라 만주팔기군.

열병기 앞에서는 표적이나 다름없었다.

-두두두!

-탕! 탕!

무너진 성벽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활을 쏘려는 청나라 병사들.

조101 기관총과 조3 소총의 표적이 되어 쓰러져 갔다.

"크윽!"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너도 조심해라."

"네, 분대장님."

제일 앞에서 소리쳐 지휘하던 분대장이 적들이 날린 화살에 팔을 다쳤다.

가슴에도 화살이 꽂혔지만, 급히 만든 방검복은 뚫지 못했다.

"안 되겠다."

열을 받은 분대장은 밀떡 폭탄을 꺼내 들고 심지에 불을 붙인 후 무너진 성벽 안으로 내던졌다.

-꽝!

폭압에 청나라 병사들의 몸이 붕 뜨더니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다른 분대도 밀떡 폭탄을 꺼내 들고 연신 성벽 안으로 집어 던졌다.

정예라 자부하는 청나라 만주팔기군.

얼마 되지 않는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를 보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저항이 극심했다.

기마술을 자랑하려는지 말을 타고 무너진 성벽을 뛰어넘어 돌진해 오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12연발 조3 소총의 연사력은 엄청났다.

서부 시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총 아닌가.

곳곳에서 들리는 폭발음과 총격 소리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만 넘실거리는 가운데 사위(四圍)가 고요했다.

"모두 말에서 내려 성벽을 넘어라! 조심하라! 먼저 확인 후 전진하라!"

대원들은 빠르게 말에서 내린 후 조심스럽게 무너진 성벽으로 다가갔다.

"이곳은 모두 전멸입니다!"

"이곳도 전멸입니다!"

성문조차 무너져 버린 심양성.

대원들 몇몇이 빠르게 성벽을 넘어 무너진 건물에 몸을 의지하고 사주경계(四周警戒)에 들어갔다.

백령도 훈련소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시가 전.

처음엔 왜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칼과 창, 활, 조총을 든 대항군(對抗軍, Opposing Force)과 싸우면서 몸에 익혀나갔다.

현대식 군사 교육을 받은 대원들.

손짓으로 수신호를 보내며 빠르게 성내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일련의 말을 탄 무리가 내성에서 나와 빠르게 다가왔다.

-탕! 탕! 탕!

'멈춰라'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 쏘고 봤다.

말과 함께 쓰러진 적들.

저항을 포기하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항복한다!"

"항복하겠다!"

그 소리를 듣고 일단 총격은 멈췄다.

복장을 보니 좀 높은 이들 같았다.

"소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보아하니 성주 같은데 잡아서 이용하자."

"넵!"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는 분대장이 여진말로 외쳤다.

"무기를 버리고 말에서 내려라!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면 뒈질 줄 알아라!"

사방에서 튀어나온 총구 앞에 무기력해진 쇼서와 호위대는 창과 칼, 활을 버리고 말에서 내렸다.

"모두 두 손을 바짝 들고 이쪽으로 나와라!"

"어이! 거기 너는 왜 손 안 들어?"

"나, 나는 숭덕제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의 5번째 아들 아이신기오로 쇼서다."

"그래서?"

"나, 나는···."

"손 안 들래?"

착검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총구를 쭉 들이밀자 쇼서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예의를 갖추시오. 이분은···."

-퍽!

어릴 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생각에 누군가 벽돌 조각을 집어 던졌다.

"염병하고 있네. 그래서?"

분대장도 그런 경험이 있던지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으르렁거렸다.

그사이 무너진 성벽을 치우고 기관총 수레와 열식 발전기가 실린 마차가 들어왔다.

"저놈 데리고 와라."

"네, 소대장님."

쇼서는 생전 처음 보는 기물 앞에서 시키는 대로 입을 열었다.

-나는 아이신기오로 쇼서 친왕이다.

-모두 저항을 멈추고 항복하라.

-우리는 졌다.

친왕의 목소리가 성내에 울려 퍼지자 대원들은 더욱 빠르게 성을 접수해 나갔다.

* * *

은동리 본사 5층.

원은 해가 지며 붉게 노을을 만들어 내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왔다 갔다 하는 애 늙은이 같은 원은 머리가 가려운지 손가락으로 득득 긁었다.

"확 밀어 버려야 하는데."

빈대야 밤에만 나타나고 이제는 옹진반도에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이(蝨)는 달랐다.

정식 명칭이 머릿니(Pediculus Humanus Capitis)인 잇과 곤충인 이.

동물은 물론 새의 털에도 달라붙어 사는 해충이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서캐라 부르는 알은 머리카락에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대나무로 만든 촘촘한 참빗으로 머리카락을 빗을 때 딸려 나오는 작은 기생충이라 잡기도 어렵다.

그래서 샅샅이 수색할 때 '이 잡듯이 뒤진다'는 말이 생겨났다.

아무튼 불면증이나 정신 불안, 발진티푸스, 회귀열, 참호열을 일으키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빡빡 깎아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88올림픽 이후에도 기승을 부렸던 기생충이라 현재 조선에서는 박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원이 남자들의 머리를 빡빡 밀라고 한 이유가.

원은 머리가 가려우면 바닷물에 머리를 담근 후 기다렸다가 참빗으로 빗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박멸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아무래도 쌍식이에게 옮은 것 같은데.'

평소에도 머리를 뻑뻑 긁는 쌍식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자르지도 않고 잘 깜지도 않은 시대라 쌍식이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우당탕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싸장님!"

후다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쌍식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됐느냐?"

"승전보입니다. 심양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그것 말고."

"다행히 죽은 대원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이 다쳤느냐?"

"네, 사장님. 중상자가 7명, 경상을 입은 대원은 100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원은 길게 숨을 내뱉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다행이구나."

아직 설파제를 만들지 못했지만, 함량 60%의 에탄올(알코올의 한 종류)을 딸려 보냈다.

그러니 급히 소독하고 치료하면 사망까지 이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는 일.

"중상자부터 후송하라고 전해라."

"네, 사장님."

넓은 들판에서 벌어지는 야전이면 몰라도 시가전은 위험했다.

그래서 급히 방검복까지 준비했지만, 다친 대원들이 있었다.

그래서였다.

보이는 족족 먼저 쏴 죽이라고 말한 이유가.

야차 같은 기마 민족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미친 짓을 하다가는 진짜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거다.

냉병기와 폭발하지 않는 포탄을 쏘아대는 대포로 싸우는 시대에서 공성전은 인명을 갈아 넣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원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4번에 걸친 외란으로 인구가 줄어버린 조선.

단 하나의 생명도 아까웠다.

“어서 빨리 개발돼야 할 텐데.”

아직 폭발하는 포탄이 사용되지 않는 시대이다.

폭발하는 포탄을 대포에 넣고 쏘았다간 발사되기도 전에 열을 받은 포탄이 대포와 함께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원은 아직 대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이동하기 불편한 대포를 왜 만들어. 더 좋은 것이 있는데.’

하지만 밀떡 로켓은 생각보다 인명 살상용으로 좋지 않았다.

심양성이 벽돌이 아니라 돌로 지어진 성이었다면 쉽게 공략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개발하고 있는 신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병 최강의 지원 병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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