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작전명 귀환(1)
은동리 본사 5층.
유리창을 통해 원의 집무실 안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간질거리는 따스함에 원은 눈을 떴다.
원은 새벽까지 상황을 지켜보다가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 함! 몇 시나 됐지?"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두꺼운 담요가 등에서 떨어졌다.
누군지 모르지만 자고 있는 원을 보고 덮어주고 간 것 같았다.
간단히 고양이 세수만 하고 소금을 묻혀 손가락으로 이를 닦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렸다.
빼꼼히 안을 살피던 쌍식이는 원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쌍식이는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잘 주무셨습니까? 사장님."
"응. 그런대로 잘 잔 것 같다."
원이 죽을 떠먹기 시작하자 쌍식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작전명 귀환이 시작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고?"
"넘어져 발을 삔 대원 말고는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구나."
아무리 가공할 무기인 기관총이 있다지만, 적을 다 죽여버리지 않고 전장을 수색하거나 포로로 잡을 때는 위험하다.
죽은 척하다가 덤비는 적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니 호박죽이 더욱 달콤했다.
"잡은 포로는 몇이나 돼?"
"오천이 넘는다고 합니다."
"시멘트가 부족해서 걱정이었는데 잘 됐구나."
"네, 그래서 석탄과 석회암 광산에 보내라고 했습니다."
원은 수저로 호박죽을 뜨다 말고 쌍식이를 바라보았다.
"잘했다."
"헤헤."
칭찬을 받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쌍식이.
18세면 조선에서는 성인이지만 아직도 한참 어렸다.
"귀환하는데 귀찮게 할 만한 건 없겠지?"
"신수 사단장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그래야지."
수도 없이 가장 작전을 세우고 연습을 했다.
처음엔 무슨 필요가 있냐는 표정이었지만, 이제는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비대 제2 사단장 신수.
작전대로 잘 처리 할 거로 믿었다.
호박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원은 하얀 면포로 입을 쓱 닦았다.
"냅킨도 만들어야 하나?"
"냅킨이요?"
"입 닦는 종이를 말한다."
"그래요?"
쌍식이는 새로운 단어를 듣고 연신 중얼거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데 원이 잘못 알고 있었다.
냅킨(Napkin)이란 말은 종이가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흘리지 않게 하려고 식탁에 올려놓는 조그마한 천을 말한다.
21세기 들어와 종이로 된 냅킨이 대중화되면서 표준화되었기에 착각한 거였다.
"근데 선식이는 언제쯤 오냐?"
"모레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선동을 하려면 선식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찾았는데, 부산포에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 있었던 거였다.
'조선전력공사 공연단'이라 적힌 깃발을 들고 전국 장터를 찾아 순회공연 중인 선식이.
이제 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동식 열식 발전기를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공연을 하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너무나 쉬웠다.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소리에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었다.
흥겨운 춤과 노래는 백성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고, 선식이의 만담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인지 벌써 사모하는 처자들이 생겨 공연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길이 문제였다.
길만 좋으면 마차를 타고 금방 올 수 있을 텐데.
호랑이까지 나오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무거운 짐과 공연단을 데리고 오려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이제 신의주에서 평양과 해주를 거쳐 한양까지 가는 콘크리트 포장 길이 완성됐다.
그래서 여유롭게 마차를 타고 가도 8일이면 갈 수 있다.
쌍두마차를 이용하면 5일이면 되고 파발같이 급한 경우에는 밤새워서 달리면 하루면 주파할 수 있다.
마차 한 대가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폭 18자(5.4m) 포장길을 만들었는데 혁신적인 이동 속도가 나왔다.
그러니 철도를 깔면 얼마나 빨라질까.
하지만 한양 아래쪽은 전혀 아니었다.
"쌍식아?"
'네, 사장님."
"잊지 말고 봄이 되면 포로들을 남쪽으로 보내라."
"뭐 하시게요?"
"뭐하긴 길 깔아야지."
철(鐵, Iron).
그것도 강철을 엄청나게 생산하고 있지만, 그 시대 기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철도를 깔만한 물량은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
'철도는커녕 한강에 다리를 만드는 데도 부족하지.'
원은 용산과 노량진(鷺梁津)을 잇는 철교를 만들 생각이었다.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다리는 레미콘 같은 대량 콘크리트 믹서기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물론 촘촘히 교각을 세운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멍청한 짓이지.’
그래서 아쉬운 대로 철교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
용산과 노량진 나루터를 잇는 철교는 현대에 노들섬이라 말하는 신초리(新草里)를 경유하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 다리 놓기에 좋았다.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원은 지도가 놓여 있는 탁자로 가서 백묵으로 쭉 그었다.
"한양에서 전주까지 직선으로 길을 내."
천안과 공주 사이에 고갯길이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화약으로 폭파해서 뚫어버리면 되니까.
21세기에는 사람을 고용하고 쓰는 데 엄청난 인건비가 들어간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먹여만 줘도 일할 사람이 천지에 깔려있었다.
입혀 주고 잠잘 곳까지 제공해 준다고 말하면 인력수급은 선별해서 받아야 할 거다.
그래도 21세기 기억을 가진 원은 적으나마 월급이라 말하고 동전 몇 문을 지급해 주고 있다.
아무튼 옹진반도에서 생산되고 있는 화약이나 물품의 원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이곳까지 길을 만들고 다음은 나중에 생각하자."
"네, 사장님."
쌍식이는 사장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고 씩 웃었다.
오래전부터 갯벌이든 뭐든 판다고만 하면 호남평야 일대를 사들이고 있었다.
전주 서쪽은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가 있다.
이곳만 제대로 개발한다면 몇백만 명은 충분히 먹여 살고도 남을 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작년 추수가 끝난 후 전주에 설치된 조선전력공사 분점에서 가장 많이 쌀을 사들였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했다.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길이 엉망이어서 수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해안가는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진짜 쌀이 필요한 곳은 내륙인데, 그곳까지 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되도록 빨리 끝내고 쌀이 가장 필요한 곳을 골라 추가 도로를 만들어라. 알았느냐?"
"네, 사장님. 행식이에게 조사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쌍식이가 호박죽 그릇을 가지고 나가자 원은 북쪽 지도를 살폈다.
'아무래도 사상자가 많이 나오겠지.'
신의주 방어전은 사상자 없이 끝냈다.
하지만 심양성을 공격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신무기를 보내줬기에 입성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가전이나 다름없는 심양성 안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차별 공격할 수도 없고.'
난감하기에 특별히 마련한 방검복을 지급했다.
연성 폴리에틸렌 판에 폴리프로필렌 천을 여러 겹으로 덧대어 만든 방검복.
화살까지는 막을 수 있겠지만, 조총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심양 성내에는 끌려간 조선의 백성들이 많이 살기에 불태워 버릴 수가 없었다.
또한 수거해 올 것이 많았다.
하지만 반항이 심하고 작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에 부닥친다면.
'흔적도 없이 지워버려라'라고 명 했다.
* * *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제1 기병 연대.
무전을 받고 바로 심양을 향해 출동했다.
가는 중간에 미리 무순(撫順)을 점령한 제2사단 2개 대대를 만났지만, 인사도 못 하고 스쳐 지나갔다.
무순은 1619년 사르후 전투가 치러진 곳과 가까운 곳이다.
기병 연대는 연대장 기수의 지휘로 해가 중천에서 떨어지기 전에 심양성 동쪽에 도착했다.
"후발대가 오기 전에 심양성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선전 방송을 시작한다."
"""멸!"""
심양성(瀋陽城)은 회흑색(灰黑色) 벽돌로 쌓은 성이다.
성곽(城郭)의 높이 10m.
한쪽 면의 길이는 1.5km.
총 6km의 정사각형으로 된 외성과 이중 구조로 된 내성으로 되어 있다.
제1 기병 대대가 동쪽에 있는 두 개의 문 앞으로 진격하는 동안.
2대대와 3대대는 남북으로 갈라져 소거 작전에 들어갔다.
"무기를 든 놈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 상대가 여진 놈이든 조선인이든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죽이고 봐라! 그래야 너희들이 살 수 있다."
"""멸!"""
수동식 조101 기관총이 달린 수레를 앞세우고 전진하는 기병대.
이를 보고 놀라 사람들이 소리치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홍보관은 이동식 열식 발전기에 설치된 마이크를 잡고 소리쳐 외쳤다.
-우리는 조선에서 왔다!
-조선 사람이면, 즉시 성에서 멀리 도망가라!
-도망칠 수 없다면 경거망동하지 말고 즉시 집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어라!
-성벽 근처에 있지 마라!
-즉시 성벽에서 떨어져라!
괜히 살려달라고 달려오기라도 하면 엉망이 될 게 틀림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굉음에 놀란 청나라 병사들.
급히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드르륵! 드르륵!
보이는 족족 기관총 사격에 벌집이 되어 나뒹구는 청나라 병사들.
놀란 놈들은 급히 성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30분 후.
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심양성 밖 1km에서 기병 연대는 전열을 갖추었다.
기병대 앞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장치가 단단하게 땅 위에 설치되었다.
장치에는 가로로 길게 구멍이 숭숭 뚫린 여러 개의 동그란 구멍이 성을 향해 있었다.
고기 굽는 큰 통구이 통만 한 간단한 장치.
뚫려있는 구멍 속에는 뭔가가 들어 있었다.
연대장 기수는 성 위에 있는 청나라 병사들이 모두 진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성 위에서 청나라 병사들이 대포를 쏘려고 준비를 하자.
-연대장 기수다.
-지금부터 성벽을 모두 부숴 버려라!"
""멸!""
대원들은 설치된 통에 연결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흰 연기와 함께 불꽃을 내뿜으며 뭔가가 동그란 통에서 튀어 나갔다.
-슁! 슁! 슁!
차례대로 발사된 불꽃은 순식간에 1km를 날아 성벽에서 터져 나갔다.
-꽝! 꽝! 꽝!
성벽에 도달한 동그랗고 긴 물체가 폭발하면서 굉음과 함께 붉은 불꽃과 검은 연기 그리고 폭풍을 만들어 냈다.
다가오면 대포를 쏘려고 준비하던 청나라군.
성벽과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대포를 쏘려고 준비해 놓은 화약에도 불이 붙었는지 여기저기서 펑! 펑! 하며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대단합니다. 연대장님."
"그렇게 말이다.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사장님께서 조심 또 조심하라고 강조하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 만드신 무기 중에 평범한 것이 있더냐?"
"그렇긴 하지만 강해도 너무 강합니다."
연대장 기수는 씩 웃더니 무너져 내리는 성벽을 보며 말했다.
“벽돌로 만든 성이라 그래. 돌로 만들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거다.”
“그런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기수.
사방을 둘러보면 부족함이 없는지 살폈다.
원은 무연화약을 만들면서 다이너마이트도 만들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한반도에는 규조토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옹진반도 주변에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밀떡처럼 말랑말랑한 젤리그나이트를 만들어 버렸다.
젤리그나이트(Gelignite).
무연화약을 만들 때 쓰는 면화약을 니트로글리세린에 녹여 전분과 톱밥, 초석인 질산나트륨을 섞어 혼합해 만들 수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알프레드 노벨.
니트로글리세린이 질질 새서 보관하기 힘든 다이너마이트를 개량해 젤리그나이트를 만들었다.
뇌관이 없다면 터지지 않고 천천히 타기에 안전하지만, 폭발력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원은 젤리처럼 말랑한 젤리그나이트를 밀떡이라 불렀고, 밀떡처럼 길쭉하게 만든 것을 '밀떡 폭탄'이라 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아무리 밀떡 폭탄이 가볍다고 해도 직경 3cm에 길이가 15cm나 된다.
따라서 250m를 날아가는 신기전보다 더 멀리 날리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원은 흑색화약과 질산암모늄을 섞은 현대식 고체 로켓 연료를 만들어 버렸다.
비료로 쓰려고 준비해 두었던 질산암모늄이 첨가되자 사정거리는 사정없이 늘어났다.
게다가 발사통을 벗어나면 접혀있던 날개가 펴지며 빙빙 돌기에 목표를 향해 앞으로 쭉 날아갔다.
원은 추진체를 결합하여 일체형으로 만든 것을 '밀떡 로켓'이라 불렀다.
가로 8개, 세로 3개, 총 24개의 밀떡 로켓을 장착할 수 있는 다연장 밀떡 발사기가 텅 비어버리자.
대원들은 다시 채워 놓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발사했다.
-슁! 슁! 슁!
불이 붙은 밀떡 로켓은 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흰 연기와 함께 쏜살같이 빠르게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1km를 날아간 후 폭발하게 도화선을 준비했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성벽에 다가가기도 전에 폭발했고, 성벽을 넘어서도 폭발했고, 성벽에 부닥쳐 떨어진 후에도 폭발했다.
아무튼 무수히 많은 밀떡 로켓이 폭발하면서 철옹성이라 부르던 심양성의 성벽은 거침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여파로 성 위에서 대기하던 청나라 병사들은 성벽과 함께 떨어져 내리며 파묻혔다.
신의주에 이어 심양성에서도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 성벽.
함께 깔린 청나라군의 고통에 찬 신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는 벽돌로 쌓아 올린 성벽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그 후로도 스무 번도 넘게 다연장 밀떡 발사기가 발사됐던 거다.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흔적만 남고 무너져 버린 성벽 파편 위로 붉은 불꽃이 넘실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흡사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연대장 기수는 무전기와 마이크를 동시에 들더니 말했다.
-연대장 기수다.
-모두 잊지 마라!
-위험하다 싶으면 멈춰라!
-먼저 날려버린 후 조심히 전진하라!
-조선전력공사 기병대···!
-진격!
"""멸!"""
레버 액션 조3 소총을 들고 말에 올라탄 조선전력공사 기병대원들.
서두르지 않고 다각! 다각! 말을 몰아 무너진 성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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