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첫 교전
전쟁(戰爭, War).
국가 또는 집단이 무력을 사용하여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는 행위이다.
태고부터 지속해온 인간의 역사인 전쟁.
석기 시대부터 변하지 않았던 인간의 지능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21세기에도 화합하지 못하고 전쟁은 수시로 벌어졌다.
전쟁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던 원은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공식아,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야 강한 군사력 아니야?'
'강한 군사력 맞지. 그런데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려면?'
'국방비를 늘려야지.'
'맞아. 전쟁의 승패는 돈에 달렸어. 돈이 있어야 잘 준비된 정병을 기를 수 있고, 투입할 수 있지.'
꿈속에서 문식이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병력 1만 명.
1미터 간격으로 세우면 축구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그런데 1만 명의 병사를 모으고 훈련을 시키는 일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21세기에도 정치와 행정력이 없다면, 병사를 모집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병사를 모으는 일은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힘든 일이다.
'병사 1만 명을 무장시키려면 철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짜식, 그것도 모를까 봐. 400g짜리 가벼운 창날 1만 자루 만드는데 4톤의 철이 필요하지. 그러니 넉넉잡고 5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정말?'
'그것 말고 철이 더 필요해? 뭐 창 대신 칼을 만들면 배는 더 들어가겠다.'
'공식아, 철은 무기뿐만 아니라 방패나 갑옷 같은 방어구에도 들어가. 이동할 때 필요한 수레나 화살촉을 만드는 데도 필요하고. 그래서 병사 한 명당 아무리 적게 잡아도 3kg 이상 철이 들지. 그거만 해도 만 명이면 30톤이다.'
'30톤 별거 아니네.'
'헐! 대역 매니아라면서 그런 말을 하면 쓰나.'
또다시 문식이의 지식 자랑이 시작됐다.
당나라 때 관에서 만든 연간 철 생산량은 1,000톤.
세종대왕 시절 조선의 정철 생산량은 584톤.
21세기 연간 금 생산량이 3,700톤이었으니 철이 얼마나 귀한 시대였는지 알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철을 대량 생산했던 영국도 1750년에 고작 3만 톤이었고, 1835년에 이르러서야 100만 톤에 이르렀다.
철을 넉넉하게 확보했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또 남아있다.
그건 바로 칼이나 창을 만드는 작업이다.
대장장이 한 명이 만들 수 있는 창이나 칼은 하루 2자루.
전문 대장장이 백 명이 1만 명에게 무기를 쥐여 주려면 50일이 걸린다.
그런데 투구나 무구까지 생각하면 끝도 없다.
'평시부터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은 나라라도 대군을 일으킬 수 없어.'
'그래서 이괄의 난 이후, 북방을 지키는 병사를 확보할 수 없었던 거야?'
'그것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지. 조선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나라에 돈이 없던 거니.'
'그래?'
'인조와 x선비들이 조금만 정신을 차렸더라도 삼전도의 굴욕 따위는 없었을 거다. 한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병력 보강도 하지 않고 청나라에 '들어와' 시전을 하다니 미친놈들이지.'
거침없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난 문식이.
설명은 계속되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무기뿐만 아니라 군량도 필요해. 하루 병사가 먹는 잡곡의 양은 약 1리터야. 1만 명이면 1만 리터의 곡식이 군량으로 소비돼.'
'상상이 안 되네. 그래서 전쟁을 한번 일으키면 나라가 거덜 나는구나.'
'그렇지. 게다가 기병이라면 말을 먹일 식량도 필요하지. 적진에서는 말 먹을 풀을 찾을 수나 있겠냐?'
'힘들겠지 전부 한곳에 모여 있으니.'
'뭐 어찌해서 풀을 구할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어림도 없지. 전쟁에 나갈 말은 힘을 내야 해서 별도로 콩을 섞어 줘야 하거든. 말은 병사보다 두 배나 많이 먹으니 그 양을 한번 계산해봐.'
'아휴! 모르겠다. 그냥 술이나 마시자.'
하지만 문식이의 지식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에서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급 없이 현지 조달할 수도 있지만, 생각만으로도 아주 위험하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 대첩에서 썼던 청야전술(淸野戰術).
수나라 군사들이 몰살당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현지 조달을 생각하고 요동 정벌에 나선 고려군.
이성계 장군이 요동성을 함락했지만, 성내 군량 창고가 아군의 실수로 불타버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면서 죽은 병사가 전사자보다 더 많았다.
임진왜란 때.
급히 도우러 온 명나라군.
보급도 준비하지 않고 현지 조달하려고 은덩이만 잔뜩 들고 왔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현지 조달은 쉽지 않았다.
결국 지원 왔던 명군은 약탈자가 되었다.
이처럼 보급이 준비되지 않으면 전쟁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였다.
원이 비대칭 전략 무기를 확보하고도 바로 청나라를 치지 않았던 이유가.
그와 달리 유목민이자 기마 민족인 청나라의 팔기군.
추수가 끝나자 바로 병사를 소집하여 공격해왔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쳐들어온 청나라군.
발견한 경비대 대원은 즉시 보고하러 뛰어갔다.
"사단장님, 놈들이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보자."
제2사단 사단장 신수는 본부 5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망원경을 꺼내 적을 살피던 신수.
홍이포를 앞세우고 압록강을 건너온 팔기군은 위화도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 뒤로도 새까맣게 몰려오는 청나라 기병을 보며 신수는 가소롭다는 듯 씩 웃었다.
"놈들이 대포 설치를 마치면 작전대로 시행한다."
"멸!"
이런 일은 남쪽 용연리와 북쪽 옥강리에서도 벌어졌다.
더 위쪽인 수풍리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대포 때문인지 놈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풍리에 보냈던 2개 대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신의주 북쪽 입구.
이제 조선전력공사 영업과장이 된 복돌이는 조2 소총을 들고 담벼락으로 달려가려다 말고 망루 위로 올라갔다.
"과장님, 위험합니다. 내려가십시오."
"부탁이다. 나도 좋은 구경 좀 하자."
"그러다 포탄에라도 직격당하면 죽습니다."
"너희들이 있잖냐. 그 전에 몰살할 수 있지?"
"그럴 수는 있지만···."
"부탁이다. 구경 좀 하자."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는데, 아무튼 조심하십시오."
"알았다."
수십 문의 홍이포를 밀고 사정거리인 800미터 앞까지 다가온 청나라군.
서둘러 포 쏠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몇몇 기병은 말을 타고 그 앞을 지나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희롱했다.
하지만 담장에 붙어있는 경비대원들은 노려만 봤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망루에 있던 복돌 과장.
"뭐하냐? 갈겨버려."
"기다리십시오. 아직 사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짜식! 잘들 컸구나."
"에이, 다 과장님이 소대장이었을 때 지독하게 굴렸던 덕분 아닙니까."
그 순간.
망루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단장 신수다. 지금부터 적 포대 먼저 박살 내버려라!
-다시 말한다. 적 포대에 대한 공격을 허락한다.
복돌이와 떠들고 있던 대원들.
표정이 변하더니 바쁘게 움직였다.
-철커덕!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두두!
여섯 개의 총신이 윙하고 돌아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이야! 바로 이거지!"
복돌이는 주먹 쥔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단 한 번 사격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복돌이는 그때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망루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 신이 났다.
연습 때와 달리 아낌없이 쏴 갈기는 탄환.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적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장의 무기인 6연신 기관총.
원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은 무기였다.기계식 자동 생산 시설 원리와 똑같은 방식이라 기관총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 만든 조101 기관총은 개틀링 기관총(Gatling Gun)과 비슷한 수동식이었다.
하지만 건순이와 건식이가 서로 투덕거리더니 M134 미니건처럼 전동기를 달아버렸다.
회전 손잡이를 빼고 장착할 수 있게 만든 전동기.
열식 발전기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만약을 위해 배터리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더는 손잡이를 돌릴 필요가 없는 사수.
안정된 자세로 정확하게 적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두룩! 두룩! 두루룩!
방아쇠만 당기면 연결된 스위치가 작동하여 모터를 돌린다.
손으로 돌리던.
전동기로 돌리던.
회전축에 파 놓은 선을 따라 자동으로 장전되고 발사되는 조102 기관총.
최대 사거리 2km.
유효 사거리 1km.
분당 발사속도 800발이 넘는 어마무시한 무기였다.
800에서 1,000미터 사이에 정렬해 있던 청나라 정예 기병대는 대포를 발사하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기관총 소리와 함께 들리는 적들의 절규와 같은 비명.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고통에 찬 말의 울부짖는 소리.
병사들의 비명과 함께 섞여 묘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퇴각을 알리는 어전들의 목소리는 비명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각기 다른 3곳에서 압록강을 넘어 온 2만이 넘는 청나라 정예 기병들.
싸워보지도 못하고 기관총 탄환에 온몸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져 갔다.
그러면서도 우왕좌왕할 뿐 제대로 퇴각조차 하지 못했다.
잘 관리된 저격수들에 의해 화려한 복장을 한 자들이 먼저 황천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기관총 사격을 얼마나 했다고 벌써 적들은 모두 쓰러지고 남은 자들은 서둘러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즉시 군견을 풀어라!
-다시 말한다.
-사격을 중지하고 즉시 군견을 풀어라!
신의주와 뚝방길을 따라 지어진 망루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신수 사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옥강리를 지키고 있는 대대의 무전기에서도 동시에 명령이 흘러나왔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제2사단 사단장 신수.
아무리 어리다고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은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군사 교육을 하시면서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대원이라도 목숨은 소중하다. 모든 전략과 전술 작전을 계획할 때는 항상 아군의 생명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 사상자가 2할이 넘으면 전멸(全滅)이다. 이말 명심하거라.'
참으로 이상했다.
장수가 아닌 군졸의 목숨은 화살받이나 마찬가지라 들었다.
그런데 사상자가 2할이면 전멸이고, 이번 전쟁에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용납하지 않겠다니 너무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모의 전투를 하고 전략과 전술을 배우다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컹! 컹! 컹!
진돗개처럼 생겼지만, 훨씬 덩치가 크고 털이 복슬복슬한 검고 누렇고 잿빛을 가진 풍산개들이 뛰어나갔다.
유전적으로 가장 늑대와 가까운 진돗개는 집 지키는 데는 최고였지만 도무지 군견으로 쓸 수가 없었다.
그와 달리 풍산개는 호랑이나 곰, 멧돼지를 잡는 수렵견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군견으로 훈련할 수 있었다.
강인한 체력과 추위와 질병에 강한 풍산개들이 적진을 향해 뛰어갔다.
말 타고 도망가는 적을 위협하고, 무기를 들고 반항하는 적을 견제하면서 살아남은 청나라 병사들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그런 풍산개를 향해 화살을 꺼내 시위를 매기려 했지만, 저격수에 의해 머리와 가슴이 터져 나갔다.
양 떼를 몰듯 풍산개들은 청나라군을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수비 병력만 남고 전군 조심히 전진하라!
조2 소총에 착검을 한 대원들.
하나둘씩 담장을 넘어 총구를 겨냥하고 한 걸음씩 전진했다.
-뚜벅! 뚜벅!
연질 폴리에틸렌으로 바닥을 만든 군홧발 소리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청나라군의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2각도 되지 않아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첫 번째 전쟁이 끝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신의주 대첩'이라 말했다.
위험하다고 집 안에 있으라고 했지만, 호기심이 넘쳐나는 사람들은 집 위나 산 위에 올라가 전쟁을 구경했다.
그리고 승리가 확정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소리쳐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
"우리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청나라 놈들을 다 죽였다!"
천둥 같은 총소리에 놀라 집 안에 숨어있던 백성들.
하나둘씩 문을 열고 나왔다.
"정말인겨?"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만세! 만세!"
신의주 백성들은 '천세'가 아닌 '만세'를 소리쳐 외쳤다.
"원손마마 만세!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만세!"
흥분과 감동으로 들떠있는 백성들과 달리 신수 사단장은 무전기를 잡고 스위치를 눌렀다.
"여기는 신의주다. 천마 나와라. 오버."
-치직, 여기는 천마. 말하라 신의주. 오버.
"현재 시각 10시 정각. 지금 즉시 작전명 귀환을 실시한다. 다시 말하겠다. 지금 즉시 작전명 귀환을 실시한다. 오버."
원은 옹진반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2시간 단위의 시진(時辰) 아닌 1시간 단위인 24시간제를 사용하라고 명 했다.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치직. 알았다 신의주. 작전명 귀환 즉시 실행하겠다. 오버.
심양 동쪽 50km 지점 산기슭에서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조선전력공사 기병 연대가 출동했다.
원은 작전명 귀환을 계획할 때 도망병을 염두에 두었다.
아무리 기관총으로 적을 몰살할 수 있다고 해도 살아남아 도망가는 병사는 분명 있을 거였다.
그들이 심양에 보고하기 전에 먼저 가서 심양을 치기로 했다.
그래서 기병 연대와 2개 대대를 심양 근처에 미리 보내 놓았다.
조서원 소속 특수 요원들이 미리 길을 닦아 놓았다.
특수 요원의 안내를 받은 경비대는 얼어붙은 수풍리 강을 건너 산길을 따라 심양 동쪽까지 간 후 대기했다.
그리고 무전 연락이 오자 바로 목표를 향해 진격했다.
목표는 청나라의 정신적 수도인 심양.
전쟁이라 할 수도 없는 전투가 너무 빨리 끝났다.
이제 오전 10시.
늦어도 오후 2시면 심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때부터 심양에 있는 청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했던 악행을 그대로 돌려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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