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6화 (26/275)

26. 내실(3)

인조 26년(1648) 9월.

7월부터 평안도에 눈이 내리더니 경상도에도 비와 눈이 섞여 내리면서 수시로 천둥과 번개가 쳤다.

천기가 요동하는 걸 보니 소빙하기가 도래했다는 본격적인 신호 같았다.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이 경술년(1670)과 신해년(1671)을 두고 말하는 것이니 앞으로 20년은 더 남았군.’

원은 20년 후에 일어날 대기근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까짓 것, 댐 몇 개 만들고 질소 비료만 왕창 생산하면 문제 될 일이 없지.’

옥수수 재배는 땅에 있는 양분을 모두 소모해 버린다.

하지만 질소 비료만 뿌려 준다면 미친 듯이 자라는 게 옥수수이다.

‘정 안되면 고기 먹으라고 하면 되지.’

이제 생산되는 질소 비료로 먼저 옥수수부터 재배할 생각이었다.

옥수수는 가축의 사료로도 중요하지만, 콘 에탄올(Corn Ethanol)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40%는 에탄올 생산에 썼지.’

미국에서 파는 휘발유에는 최소 10% 이상 에탄올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옥수수를 발효시켜 증류 과정을 통해 만드는 에탄올은 휘발유를 충분히 대체 할 수 있다.

땅콩으로 경유를 대체하고.

옥수수로 휘발유를 대체하면 굳이 석유를 찾느라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였다.

원이 당장 청을 쳐들어가지 않았던 이유가.

신의주에서 북쪽으로 약 700km 위에 있는 대경 유전.

땅속 1,500m를 파고 들어가야 원유를 꺼낼 수 있기에 청을 치고 그 땅을 차지한다고 해도 당장 개발할 수가 없었다.

‘기술 축적이 먼저야.’

일에도 순서가 있지만, 테크 트리는 순서 없이 발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눈뜨기 전부터 정리했던 테크 트리 순으로 한 걸음씩 진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동안 너무 가파르게 발전해 왔어.'

그래서인지 효율이 좋지 않았다.

안전 제일이란 말을 수시로 했기에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생산성이 엉망이었다.

"시발, 수율 3%가 말이 돼?"

혼자서 말하고 한숨을 내쉬는 원.

최근 만들기 시작한 트랜지스터가 대부분 불량이었기에 답답했다.

아무리 전근대 연구소 수준의 생산이라고 하지만, 100개 중 97개가 불량이라니.

황당하기만 했다.

그래서 단파 무전기를 개발해 놓고도 만들 수 있는 수량은 극히 적었다.

'개혁하려면 단파 방송을 시작해야 하는데···.'

한문은커녕 한글도 모르는 백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벽보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일일이 붙여봐야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벽보를 한글로 써놓는다고 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

'선동하려면 확실히 해야지.'

독일 나치의 괴벨스가 괴기스러운 선동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전 세계를 커버하는 단파 방송과 단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석라디오 가지고는 힘들겠지?'

별도 전원이 없어도 라디오 주파수를 수신해서 들을 수 있는 광석라디오.

전원이나 건전지가 없어도 작동한다.

공중으로 퍼져나가는 전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수시로 교체되며 뻗어나간다.

따라서 전파를 수신하여 자기로 바꿔 '크리스털 이어폰'이라 부르는 압전 스피커를 구동시키면 한 사람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광석라디오가 된다.

하지만 광석라디오는 송신소 반경 15km가 넘으면 아예 들리지 않는다.

'가격도 문제지.'

21세기에는 취미로 만드는 광석라디오.

부품이 거의 없고 트랜지스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싸구려 중 싸구려이지만, 지금 수준에서는 비싸게 팔 수밖에 없다.

백성들을 위해, 아니 백성들을 선동하기 위해 단파 방송을 하려고 하는데 비싼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은 돈 많은 양반과 지주들뿐이다.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네.'

그래서 쩌렁쩌렁 울리는 앰프 달린 스피커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가장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가 원하는 만큼 생산되고 있지 않았다.

'새로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이 완성되면 좀 좋아지겠지.'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은 순도 높은 단결정 실리콘이다.

불순물이 없는 순도 높은 실리콘을 만들려면 청결은 기본이고 공장 내부에 먼지 한 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원은 완전히 밀폐된 반도체 공장 건설을 즉시 짓도록 명 했다.

그런 와중에 왕세손 책봉례를 한다고 오라 가라 하자 원은 짜증이 났다.

"에이! 젠장."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아니다. 그냥 짜증이 났을 뿐이다."

"시원한 팥빙수라도 타올까요?"

"그래라."

쌍식이가 나간 사이 구시렁거리는 원.

"아니, 예조(禮曹)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건 외교 아닌가? 그런데 도장 판다고 오라고 하고, 누나 신랑 찾는다고 오라고 하고, 책봉례 때 이름을 어떻게 할 거냐고 오라고 하고 무슨 지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랄도 풍년이다. 풍년!"

농사가 풍년이어야 하는데 예를 지켜야 한다고 번거롭게 하는 짓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니 예송논쟁이나 벌였지."

나라의 대신들이 모여 3년 상을 할 것인지 1년 상을 할 것인지 따지며 논쟁했던 예송논쟁.

원이 있기에 일어날 일은 없지만, 한번 한양에 들릴 때마다 x선비들이 하는 짓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뭣이 중한디!"

엿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조선의 중신들.

"싹, 바꿔야 해!"

열이 뻗친 원이 크게 소리를 내 질렀다.

원이 만나봤던 중신들은 정말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재능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백성을 위해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정적을 제거하는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조선의 중신들.

'관료가 아니야. 정치인이지.'

순간 원은 부르르 떨었다.

정치질하는 장관들을 떠올리자 끔찍했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요즘도 아파서 수시로 침을 맞고 있는 인조.

그런 인조가 내년에 죽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역사대로 내년에 인조가 죽고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대신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대들기라도 하면 바로 내치겠는데 눈치 빠르고 영리한 사람들이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양동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두 내칠 수는 없다.

김육 같은 참 선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조서원을 통해 분류해 놓았다.

누가 참 선비인지 아니면 x선비인지.

그중 문제가 되는 건 참 선비였다.

참으로 바른 선비였지만, 배우고 자란 게 x덕이라 개선이 될지 미지수였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따라오지 못하면 내칠 수밖에 없다.

설득해 끌고 갈 시간도 없지만,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0'과 '1'의 세계에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길었기에 이런 경우에는 답답하기만 했다.

"사장님, 가져왔습니다."

"어디 맛 좀 보자."

갈린 얼음 위에 단팥과 꿀을 얹은 팥빙수.

답답한 속을 확 풀어 줬다.

암모니아를 이용한 냉동기와 냉장고를 만들어 본사와 연구소에서 쓰고 있다.

독성이 있는 암모니아는 위험하지만,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기에 누출되면 바로 알 수 있다.

영하 -77도에서 기체로 변하기에 냉매로 사용하기에도 적당했다.

처음엔 '펠티에 소자'를 이용해 만들려 했지만, 냉각 효과가 미미하고 전력 소모가 커서 포기했다.

"너도 먹지 그러느냐?"

"저는 벌써 먹었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사장님."

알고 보니 원이 생각에 잠겨 반응이 없자 녹아내리는 팥빙수를 쌍식이가 먹어 치우고 새로 가져온 거였다.

달콤하고 시원한 꿀 팥빙수를 먹고 나자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탄은 잘 캐고 있느냐?"

"네, 사장님. 올해 쓸 물량은 이미 충분합니다."

한반도에 많은 것 중 하나인 석탄을 일일이 조선전력공사에서 캘 수는 없었다.

상사의 사장들을 불러 석탄을 캐서 납품하거나 연탄을 만들라고 했다.

강철과 무쇠로 조합하여 만든 연탄 만드는 틀을 제공해주고 시멘트 블록을 만들 듯이 수동으로 찍어 만들어 팔라고 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사장들.

연탄난로에서 발산하는 열기를 보고 놀라워했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사장들.

탐을 냈지만, 1문에 연탄 두 장으로 가격을 동결했다.

대신 향수 제조법을 알려주고 향수병으로 사용할 조그마한 플라스틱병을 싸게 공급해 주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난로값인데···. 쌍식아, 얼마나 받으면 될까?"

"글쎄요? 저도···."

머리를 득득 긁적이는 쌍식이.

결혼하기 전과 다르게 비듬이 떨어지지 않았다.

판매 대상이 일반 백성들이라 비싸게 팔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해 보고 팔 수도 없는 일.

참 난감했다.

연탄난로 옆에 소형 열식 발전기를 부착 해 손가락만 한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개선했다.

그래도 호롱불보다는 대낮같이 밝았다.

생각 같아서는 온수를 순환할 모터도 달고 싶었지만, 단가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불이 깜빡거리지 않도록 콘덴서 하나는 달아 놓았다.

'어떻게 보급하지?'

연탄난로만 있으면 방도 따습고, 뜨거운 물도 얻고, 밥도 해 먹고, 불도 밝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큼지막하게 '번개' 표시가 새겨진 연탄난로.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싸야 하는데 선 듯 결정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상사 사장들을 불러 의견을 모아 봐라."

"네, 사장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올해는 겨울이 빨리 올 것 같으니 서두르자."

"네, 사장님."

어차피 연탄난로로 방을 덥히려면 구들장을 걷어내고 폴리에틸렌 파이프를 깔아야 한다.

그런 일을 조선전력공사에서 다 할 수 없기에 민간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단에 요청하여 설치를 배울 사람들을 보내라고 했다.

연탄난로를 설치한다고 해 봐야 별거 없지만, 연탄가스는 위험하기에 안전 위주로 교육 중이다.

아무튼 정체된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원은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내가 구를 수밖에 없지.'

물론 옹진반도에 있는 자칭 공돌이들도 굴리고 있다.

덕분에 강철부터 플라스틱 제품까지 펑펑 쏟아지고 있다.

또한 각지에 개점한 조선전력공사 분점의 영향으로 상업도 활발해졌고 통화량도 급격히 증가했다.

수도 없이 시행했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던 화폐 제도.

쌀 본위제로 빠르게 정착되었다.

그 여파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날 징조가 보였다.

아직 일정량을 바치는 도조법이 도입되지 않았고 수확량의 반을 내는 타조법이 성행했지만, 고리대가 끊기자 백성들의 삶이 급격히 좋아졌다.

조선은행에서 1할의 이자로 빌려주는 돈으로 더는 농민들이 지주들에게 휩쓸릴 일이 없었다.

보통 한 가구가 빌리는 농지는 1결.

3천 평이 넘는다.

이곳에서 걷을 수 있는 쌀은 최소 30가마.

그중 15가마와 여러 가지 이유로 착취를 당한다 해도 10가마는 남는다.

그러기에 한 가족이 먹고 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춘궁기만 되면 굶는 백성들이 천지에 널려있었다.

'이제는 그럴일이 없겠지.'

원금의 배나 되는 고리대금이 없기에 땅을 헐값에 빼앗길 일도 없었고, 자칭해서 노비가 될 필요도 없었다.

원 덕분에 조선 사회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 * *

인조 26년(1648) 10월 20일.

홍문관(弘文館)의 관원들이 인조가 아프다는 이유로 원을 세손으로 책봉하는 일을 미루자고 간청했다.

하지만 인조는 따르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원손인 원에 대해서는 항상 좋게만 봤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독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기대하고 싶어 한다.

인조에게는 원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그랬기에 사병이나 다름없는 경비대를 만든다고 해도 허락해줬던 거였다.

인조에게 원은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거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대신들조차 자신을 챙기지 않았는데, 원은 그러지 않았다.

커다란 은덩이를 수시로 안겨 줬고 새로운 기물을 만들면 언제나 가져와서 보여줬다.

원 덕분에 백성들의 원성도 사그라들었다.

요즘도 원에 대해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원에 대한 인조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김자점 일당이 몰살당한 후.

원까지 내치면 더는 기댈 사람이 주위에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청나라를 치자고 인조를 꾀어 선전포고하고.

나중에는 청나라의 앞잡이나 다름없는 친청파가 된 김자점과 그 일당들.

그들이 몰살당한 후, 인조의 마음은 변해 갔다.

자신의 치부를 받아 줄 이도 까발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 원손께서 세우신 조선전력공사 신의주 분점에서 청나라 병사들과 격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아픈 와중에도 벌떡 일어난 인조.

놀란 눈으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워, 원은 어떻게 되었느냐?"

"원손께서는 옹진반도에 계시는지라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의주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원이 안전하단 말을 들은 인조.

자리에 다시 눕더니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

"직원들을 많이 잃었겠구나?"

"아닙니다. 전하. 죽은 이들은 모두 청나라 병사들이라고 합니다. 조선전력공사의 경비대는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경비대는 무작정 공격해오던 청나라 병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죽였다고 합니다."

"그랬단 말이지?"

"네, 전하."

아픈 와중에도 인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참으로 큰일을 해냈구나."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죽을 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인조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청나라에 대한 한이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인조 15년(1637) 음력 1월 30일.

삼전도에서 숭덕제(崇德帝)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분하고 치욕스러워 내리찍은 이마에 피가 흘렀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조선왕조가 세워진 후 최대 굴욕이었던 그날 이후.

인조의 비참함은 의심 마귀로 나타났다.

이괄도 믿었던 인조.

27번을 얼어붙은 땅바닥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머리를 찍었으니 그 한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하늘의 보살핌인지 신동을 넘어 천재인 원손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선이 바뀌고 있다.

아무리 원이 조심한다고 했지만, 인조가 모를 수는 없었다.

전부는 아니고 아주 일부분이지만, 원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인조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조는 그냥 두고만 보았다.

어쩌면 자신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희망 때문이었다.

"원을 불러오너라. 당장."

"네, 전하."

드디어 보기 싫은 원을 혼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대신.

인조의 방에서 나와 빠르게 파발을 띄웠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