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내실(1)
인조 26년(1648) 6월 30일.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어의 이형익(李馨益)이 한밤중에 인조의 침전(寢殿)을 방문했다.
인조의 병세가 차도를 보이지 않자 요안혈(腰眼穴)에 뜸을 뜨기 위해서였다.
뜸을 뜨고 난 이형익.
눈치를 살살 보더니 말을 꺼냈다.
"전하, 세자를 이대로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내 몸이 아픈데 어찌하겠는가."
"그래도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세자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리 말하는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형익은 평소에 자신을 고깝게 보는 봉림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인조의 처소에서 험담을 내뱉을 생각이었다.
"꾸미다니? 뭘 말하는가?
아픈데도 의심 마귀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인조는 벌떡 일어났다.
"원손과 자주 만나 밀담을 나눈다고 합니다. 틀림없이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에이, 뭐라고. 별거 아니네."
원손과 관련된 말이 나오자 인조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한 달 전에 원손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하.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세자가···."
"세자라니 그리 입을 함부로 놀리다 간 제명에 죽기 힘들 걸세."
"전하!"
"시끄럽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듯.
이형익은 인품이 어리석고 외람되며 행동거지가 추했다.
또한 인조 앞에서 말을 함부로 했다.
그런데도 인조는 나무라지 않았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해도 귀여운 원손을 비방하는 짓을 인조는 두고 보지 않았다.
자신의 맘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기쁘게 해 준 원손을 그 누가 뭐라 해도 미워할 수는 없었다.
'할바마마, 북쪽에 읍성을 짓고 청나라와 교역하고 싶사옵니다.'
'무슨 교역을 말이냐? 지금도 잘하고 있지 않으냐?'
'이번에 소손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냈사옵니다. 이 물건을 직접 청나라 상인에게 넘기면 큰 이익이 될 것 같사옵니다."
'무슨 물건이기에 그러느냐? 어디 보자.'
인조에게 보여준 플라스틱 제품은 송상 최고의 장인들이 금으로 수 놓은 거였다.
가볍고 단단한 플라스틱 제품.
인조는 첫눈에 반 했다.
'어찌 이런 물건을···.'
'다 할바마마 덕분이옵니다. 소손의 재능은 할바마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옵니다."
'호오! 당연한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
'송구하옵니다. 할바마마.'
인조는 백성들의 원성이 잦아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의심 많은 쫄보라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게 누구 때문이지 잘 알았다.
또한 원손은 항상 자신에게 솔직했고 공손했다.
그러니 원손을 예뻐할 수밖에.
대들었던 큰아들 소현세자.
말이 없는 둘째 아들 봉림대군.
언제나 다정하게 자신의 추켜세우는 원손.
인조로서는 당연히 원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원손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인조.
이형익을 내치고 자리에 누웠다.
인조는 불을 붙이지 않아도 밝게 빛나는 전구를 바라보았다.
원손이 만들었다는 전구.
참으로 신기했다.
흔들거리지 않는 불빛이 금장으로 장식된 방 안을 화려하고 품위 있게 빛냈다.
"어서 나아야 할 건데."
말이나 사람이 없어도 홀로 움직이는 마차.
원손이 한 달 전에 선물한 거였다.
어서 빨리 그 마차를 타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 * *
골프장 카트같이 생긴 배터리로 움직이는 마차를 타고 원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옆에서 운전하고 있던 쌍식이.
신이 났는지 연신 입을 놀렸다.
"사장님, 열식기관도 없는데 잘 움직이니 정말 신기합니다."
"쌍식아, 이러다 사고 나겠다. 앞을 잘 보고 운전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카트 운전에 익숙해진 쌍식이는 자주 헛짓을 했다.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배는 빨랐다.
논뚜렁에라도 빠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에 주의하라고 해도 그때뿐이었다.
"에이! 어린 너에게 뭘 기대하겠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얼마 전 장가를 간 쌍식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원에게 핀잔을 듣고 멀쑥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은동리에서 약 15리(6km) 북쪽에 있는 수동리.
그곳에 도착한 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옹진반도를 벗어나 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원은 태탄군(苔灘郡)인 이곳까지 사들였다.
북으로 가는 길목이라 중요한 요충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은동십팔동인과 경비대 1개 중대의 호위 속에 카트에서 내린 원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커다란 창고로 들어갔다.
한참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일을 시키고 있던 이가 원을 보자 번개처럼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수고가 많구나. 완공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두 달은 더 있어야 합니다. 사장님."
"두 달이라···."
뭔가를 한 참 생각하던 원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수동 저수지 공사는 어떻게 돼가느냐?"
"늦어도 가을 전에는 끝날 것 같습니다."
"완공해도 가동을 못 하겠구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전기가 들어와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아니다, 네가 열심히 한 것이니 상을 받아 마땅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원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기둥을 따라 같은 모양으로 생긴 기계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원은 흐뭇한지 활짝 웃었다.
"잘 설치 했구나."
"보내주신 도면대로 오차 없이 배치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잘하길 바란다. 항상 안전 제일 잊지 말고?"
"네, 사장님."
기계들은 바로 방적기와 방직기였다.
방적기(紡績機, Spinning Machine)는 실을 만드는 기계이고.
방직기(紡織機, Spinning and Weaving Machine)는 실로 천을 짜는 기계이다.
산업혁명 이전인 1764년에 개발한 방적기.
아이러니하게도 실을 뽑는 방적기가 천을 만드는 방직기보다 나중에 개발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오래전부터 방적기와 방직기는 있었다.
비록 손으로 하는 것이지만,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상의원(尙衣院)이라는 직물류를 관장하는 관청을 두고 천을 만드는 전문 장인을 육성하고 있었다.
세종대왕 때는 상의원에 소속된 장인만 467명 있었고, 세조 때는 801명까지 늘어났다.
장인들은 실과 천을 짜는 법을 계속 발전해 나갔다.
물레라는 실 뽑는 도구.
베틀이라는 천을 짜는 도구.수시로 개선해 나갔다.
다양한 문양을 넣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었다.
그만큼 천을 만드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원은 장인들을 불러서 천재들에게 설명해주고 새로운 방적기와 방직기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때 두각을 나타낸 이가 바로 방식이었다.
방식이는 전기 모터에 연결하여 작동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마침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냈다.
방식이 또한 방직기부터 만들었다.
베틀만 이동시키면 되는 방직기보다 실을 뽑아내는 방적기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폴리에틸렌을 합성해낸 저식이와 고식이.
이번에는 합동 연구로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도 합성해냈다.
사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만들 수 있으면 폴리프로필렌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석탄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면 부산물로 나오는 프로필렌.
저압 폴리에틸렌 공정과 비슷하게 사염화티타늄을 촉매로 프로필렌을 통과시키면 폴리프로필렌이 합성된다.
PP라 불리는 폴리프로필렌.
염색이 쉽지 않아 처음 개발하고도 배척당했다.
하지만 물보다 가볍고 물에 젖어도 늘어나지 않았다.
면보다 흡수성이 떨어지지만, 땀을 배출하는 통기성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잘 오염되지 않고 위생에 좋아 스포츠 의류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열전도도가 모든 섬유 중에서 가장 낮아 보온성도 좋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폴리프로필렌 섬유.
내의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이었다.
기계적 특성도 강해 원은 먼저 군용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내의와 양말, 담요, 침낭부터 만들어야지.'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시대 군인이란 한마디로 상거지 떼와 같았다.
면으로 만든 군복은 자주 빨지 않아 박테리아가 증식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또한 군복은 비를 맞거나 물에 젖으면 물먹은 솜이나 다름없었다.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실과 천.
손으로 짠 것이지만 이미 옷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내약품성이 우수해서 산과 알칼리에 강하기에 연구소 연구원들은 흰색으로 된 폴리프로필렌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아무튼 방적기와 방직기를 보고 난 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떠냐?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없더냐?"
"네, 사장님. 정말 좋은 기계입니다. 모두가 신기해서 서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원은 천재 중 한 명인 봉식이에게 재봉틀 개발을 맡겼다.
사실 재봉틀을 만드는 건 크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단지 밑에서 실을 잡아 엮어 주는 큰 엄지손가락만 한 북집이라 부르는 것이 문제였다.
원이 아는 북집은 정밀 가공 기술이 없다면 만들 수 없었다.
현대 재봉틀에서 핵심인 북집.
그것을 만들 수 없다면 재봉틀 또한 무용지물이다.
위에서 아무리 바늘이 왔다 갔다 한다 해도 아래에서 실을 잡아 엮어 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원형의 된 통을 정밀 가공하여 한가운데 축을 볼록 튀어나오게 만든 북집.
다양한 각도로 깎아 내고 판스프링을 다는 것은 정밀 가공 기술 없이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1755년 독일인 찰스 바이젠탈이 재봉틀을 만들었지만, 100년이 지난 후에야 기계식 재봉틀(Sewing machine)이 대중화되었다.
그전까지 수도 없이 재봉틀에 대한 특허가 출원되었지만, 작동조차 되지 않았고 엉망이라 상용화되지 않았다.
그런 북집을 원이 설명해주자 봉식이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 냈다.
원은 북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엄마가 쓰던 재봉틀.
얼핏 본 기억이 있어서 대충 원리만 알았기에 자세한 설명을 해 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봉식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사용할 때 항상 조심하도록 단단히 교육해라."
"네, 사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수동 저수지가 완공되면 수력발전기를 가동해서 방적기와 방직기를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재봉틀은 발판을 이용한 수동으로 작동하기로 했다.
재봉틀까지 전력을 공급하기에는 전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선에 산업혁명을 일으킬 방적기와 방직기 공장.
공해를 유발하지 않기에 내륙에 지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옹진반도와 가까운 곳을 물색했다.
교통의 요충지인 태탄군과 벽성군에는 은동 저수지보다 큰 저수지를 만들 곳이 두 곳이나 있었다.
해주만과도 가깝기에 해양 진출도 쉬운 곳이라 미래의 섬유 도시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견학을 마친 원은 기쁜 마음으로 은동리로 돌아갔다.
'앞으로 1년 정도 남았나?'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실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국을 대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그동안 아버지와 만날 때마다 개혁을 논의하며 수도 없이 수정하고 있었다.
'지금 조선에서 부족한 것은 먹고 살 식량이다. 하지만 곧 해결될 것이고···. 외세의 침략부터 막아야지.'
원은 북쪽을 한번 쳐다보았다.
'큰 문제는 없겠지.'
1만 명이나 되는 사단 경비대를 신의주로 보내 놓았다.
추후 4기가 졸업하면 또 보낼 예정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나라든 러시아든 덤비기만 하면 작살을 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곳은 남쪽.
바로 왜구다.
하지만 조서원에서 들어온 정보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3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 家光).
기독교를 탄압하고 쇄국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청나라부터 멸하고 천천히 방문하면 된다.
쌍식이가 모는 카트를 타고 가면서 원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내실부터 다져야 해.'
청나라를 치는 것도, 왜를 치는 것도, 조선부터 안정시켜 놓아야 한다.
본진이 불안한 상태에서 외부로 진출할 수는 없었다.
'x선비들이야 여차하면 다 쳐내면 되는 것이고.'
쌍년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서원의 요원들.
행정 담당 천재인 행식이와 함께 행적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x선비들이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면 바로 받아들일 거다.
그리고 교육 중인 직원들을 바로 투입할 수 있게 수도 없이 반복하여 계획하고 있다.
이 또한 이미 아버지랑 상의를 마쳤다.
전국에 깔린 조서원 산하 상점과 여관.
그리고 계속 늘어나는 조선전력공사 분점.
정보와 행정력과 무력의 집합체이다.
x선비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도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민란이 일어날 일은 없겠지.'
동전을 만들고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통해 쌀값을 안정시켰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고리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니 아무리 무지한 백성이라도 들고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x선비들이 문제인데···.'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뜬 원.
'반란을 일으키면 모두 제거할 수밖에.'
독하게 마음을 다졌다.
'비료를 공급하면 식량문제는 해결되겠지.'
임진왜란 이후 망가져 버린 조선의 농토.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옹진반도 해안가에 암모니아 생산 공장을 계속 증설하고 있다.
암모니아는 화약과 비료를 만드는 데 필수 요소였기 때문이다.
암모니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소의 천재들이 백금을 찾아내어 촉매를 바꾸고 압력을 높여 전보다 훨씬 많은 암모니아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다.
더 좋은 방법을 들어는 봤는데 자세한 공정을 알지 못해 적용할 수 없었다.
상압에서 쇠구슬을 사용하는 암모니아 제조법.
21세기 백종범 교수팀이 발견한 방법이지만 연구단계였다.
'추가 공장이 완성되면 비료를 만들 수 있어.'
질산과 수산화 암모니아를 반응시켜 만드는 질산암모늄.
지금까지 폭발물을 만드는 데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공장이 완성되면 바로 비료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농업혁명이지.'
비료는 질산, 인산, 칼륨 비료가 있지만, 한반도에서 인은 구하기 힘들었고 칼륨은 아예 없었다.
결국 질소 비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질산암모늄이 바로 질소 비료의 주성분이다.
따라서 암모니아만 대량 생산해 낸다면 식량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감자와 고구마는 이미 재배하여 수확까지 했다.
옥수수, 땅콩은 재배를 시작했다.
옥수수 또한 질소 비료만 있다면 무한 생산이 가능하다.
어렵게 고추도 재배하기 시작했다.
세종 때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는 황희 정승이 청렴함을 강조하기 위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맛있어서 순창에서 고추장을 진상하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재배하기 시작한 고추는 예수회를 통해서 들어온 거였다.
쉬운 줄만 알았던 고추 재배.
생각보다 어려웠다.
재배기간이 길고 병충해에 약하고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원은 막무가내로 농식이와 종식이에게 특명을 내려 재배를 독촉했다.
21세기의 입맛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
무엇보다도 매콤한 맛이 그리웠다.
"떡볶이가 그립네."
"떡볶이라뇨? 먹는 것입니까?"
"그렇다. 아주 매콤하니 맛있는 것이다."
입맛을 다시는 원.
눈을 깜빡이며 갸웃거리는 쌍식이.
서로 생각하는 것은 달랐지만, 튀김 통닭같이 맛있는 먹거리에 눈이 돌아가는 건 같았다.
카트는 어느새 은동리 본사에 도착했다.
비서실에 근무하는 양순이가 1층에서 심각한 얼굴로 원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주위를 살펴보던 양순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올라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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