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3화 (23/275)

23. 진출(5)

청나라 정예 기병 1,500명을 이끄는 에제이.

치미는 분노에 어쩔 줄 모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에제이는 이를 바득 갈며 뭔가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말끝마다 죽인다고 협박을 하다니.

견딜 수가 없었지만, 개죽음을 당하기는 싫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가차 없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보고를 받고 왔다.

화를 내고 덤벼들었다간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분노를 억누르며 화를 삼키는 수밖에.

얼굴이 시뻘게진 에제이는 한참 동안 심호흡을 했다.

미친개를 자극해봐야 좋은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에제이는 죽음보다 삶을 택했다.

에제이는 흥분이 가라앉자 안쪽을 자세히 살폈다.

끌고 온 병사보다 많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천여 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접근하는 순간 벌집이 되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였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대포를 끌고 올 수도 없었다.

상관에게 보고하게 되면 진짜 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남명군의 총탄에 사망한 어전들이 많았다고 한다.

말을 타고 칼과 창, 활을 들고 싸우는 전투가 아니었기에 유능한 장수라 해도 언제 죽을지 몰랐다.

에제이는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철로 된 가시밭과 그 뒤로 높지 않은 담장이 있었다.

경비대원이라 말한 이들은 모두 그곳에 붙어 머리만 내밀고 총구를 겨냥하고 있었다.

에제이는 병사들을 다시 한번 살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조선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새파랗게 어렸지만,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때깔이 좋았다.

복장 또한 단조롭지만 깔끔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단순한 모양의 철로 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단단해 보였다.

대원들이라 말한 자들의 가슴에는 '번개'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청나라에서도 유명했기에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조선전력공사를 뜻하는 것이라는 걸.

"이곳에서 무엇을 판다는 말이냐?"

"조선전력공사에서 파는 모든 것."

"그것이 무엇이냐?"

"종이와 연필, 은거울, 비누, 물이 새지 않는 봉투···."

"뭐? 물이 새지 않는 봉투라고?"

"그렇다. 가벼운 물통과 숟가락, 젓가락, 그릇 등 여러 가지 있다."

어차피 싸워봐야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에제이는 처음보는 기물에 호기심이 동했다.

"보여 줄 수 있느냐?"

"당연히."

소대장은 대원을 시켜 물품들을 가져오게 했다.

소란이 일자 중대장들이 달려와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저놈, 누군지 몰라도 말 잘하네."

"우리 중대 소대장이야."

"그래? 똑똑한 놈을 뒀군. 부럽다."

복돌이의 중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가져온 여러 가지 물품들.

에제이와 일행은 물품들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물이 담겨 있는 투명한 봉지.

알록달록한 색으로 된 물병과 수저, 젓가락, 그릇들.

바닥에 내던져도 깨지지 않았다.

탐났다.

그 모습을 본 복돌 소대장.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봐라. 물이 새지 않는다. 또한 가볍고 튼튼하다. 수저, 젓가락, 그릇들은 예쁘다."

에제이는 한참 동안 물품들을 살폈다.

다양한 색으로 된 그릇들.

허옇게 물줄기가 뿌려진 듯 번진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실 21세기 기준으로는 모두 불량품이었다.원은 플라스틱 사출 같은 금형을 떠서 만드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라 봤다.

대신 급한 대로 프레스 가공과 비슷한 제품만 생산해 냈다.

그렇다 해도 가공 기술이 거의 없었기에 만든 제품 모두 색이 번지고 개판이었다.

"이런 기물이···. 비싸겠지?"

"아니다. 싸다."

"그래? 얼마나 하느냐?"

"봉투는 조선 돈으로 1문, 병은 10문, 그릇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은 1돈부터 시작한다."

물품의 가격을 모르는 복돌이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하지만 에제이의 눈은 한없이 커졌다.

"은 1돈이면 조선 돈으로 얼마냐?"

"순은이라면 100문이다."

은 시세도 모르기에 대충 불렀다.

"100문?"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다."

"동전을 볼 수 있느냐?"

복돌이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작은 동전.

"이것이 1문이고 쌀 한 되와 교환할 수 있다. 도정한 쌀 기준이다."

"오~!"

"오해하지 마라. 황금 아니다."

"황금 아니라고? 뭐로 만든 거냐?"

"말해줄 수 없다. 비밀이다."

에제이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여차하며 치려고 기병 1,500명을 끌고 왔다.

하지만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돈이 될 것 같은 기물을 보자 탐이 났다.

저걸 독점할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진말이 짧은 복돌이의 말에 동화가 되었는지, 에제이도 짧게 물었다.

"팔 수 있냐?"

"물론이다."

에제이가 부하에게 눈짓하자 커다란 50냥짜리 은덩이 두 개를 꺼내 놓았다.

복돌이와 대원들.

가격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저것 왕창 챙겨주었다.

은 100냥이면 약 3.8kg이나 된다.

이것이 얼마나 큰 돈인 줄은 알고 있었다.

거래가 이뤄지고 돌아서는 에제이에게 복돌이가 말했다.

"거래를 원한다면 다음 달부터 매월 1, 6, 11, 16, 21, 26일, 위화도에서 장이 열리니 언제든지 와도 좋다. 단 병사들은 안 된다. 또한 위화도를 넘어와서도 안 된다. 이번에는 그냥 돌려보내지만, 다음에는 각오하라."

"이, 이!"

또다시 이를 악문 에제이는 살벌한 눈으로 복돌이를 째려보더니 말을 타고 떠났다.

응징하러 갔다가 물건만 사고 온 에제이는 즉시 상관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물품을 본 상관.

고민에 빠졌다.

***

단파 무선 통신으로 경과를 보고 받은 원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복돌이라 했느냐?"

"네, 사장님."

"이름대로 복스럽게 잘 처리했구나."

"승진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쌍식이의 물음에 원은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아직 중대장을 하기에는 경험이 너무 적다. 대신 상금을 주도록 해라."

"네, 사장님."

현재 경비대의 직급 체제는 단순했다.

사단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이하 대원이었다.

대대장들은 전부 원이 가르쳤던 대원들이었고, 중대장과 소대장은 경비대 1기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2기 출신인 복돌이가 벌써 소대장이다.

그만큼 똘똘하기에 소대를 맡은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 중대장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기라면 몰라도 2기부터는 경험이 적었다.

맨땅에서 시작한 1기와 다르게 2기는 어느 정도 갖춰진 환경에서 받아들였기에 악착같은 끈기가 적었다.

뭐든지 나서서 하려 하는 경비대 1기 대원들.

일당백을 능가하는 전사들이었다.

아무튼 말을 잘한다고 바로 중대장으로 진급시킬 수는 없었다.

전쟁이란 말로 싸우는 게 아니라 총칼로 싸우는 거니까.

"쌍식아, 복돌이를 신의주 분점 영업부 과장으로 발령하거라."

"네?!"

"경비대보다는 영업이 좋을 듯하다."

"싫다고 하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경비대에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여진말은 물론 명나라말도 할 줄 아는 복돌이는 영업 쪽이 좋을 듯했다.

하지만 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었다.

하기 싫은 일을 시켜서 잘된 일은 없으니까.

"사장님. 그런데 교역할 겁니까요?"

"그건 모를 일이다.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하지만 교역을 원하면 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니."

"그, 그러겠죠."

씨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나가는 쌍식이는 어서 빨리 청나라를 치고 싶은가 보다.

북쪽으로 진출을 결심한 원은 많은 것을 준비했다.

대대장 이상 지휘관들과 예상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검토하며 대책을 세웠다.

최악의 경우 국경을 막고 청나라와 교류를 완전 차단하기로 결정 내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예상한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원과 지휘관들이 예상한 제일 좋은 상황은 청나라 놈들이 끊임없이 계속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준비해 놓은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조는 몸져누웠고, 아버지인 봉림세자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 청나라에서 오는 사신만 차단하면 x선비들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문젠데···.'

아직 원하던 무기가 개발되지 않았다.

그 무기만 완료되면 진격해도 된다.

그때까지는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

또한 경비대 인원도 문제였다.

1기당 1만 명씩.

현재 4기가 훈련을 받고 있고, 5기를 모집하고 있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했다.

전국에서 끌어모은 고아들은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도 고아들은 많다.

하지만 대원이 될 만한 덩치를 가진 이가 적었다.

경비대 예비 대원을 선정하는 데 있어 덩치를 보고 뽑기 때문이다.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무턱대고 말하는 나이를 믿을 수는 없었다.

대우가 좋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이를 속이고 경비대에 지원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뽑지 않았다.

너무 체구가 작아도 훈련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5기 인원이 가장 적겠네.'

옹진반도에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여인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

새로 혼인하고 출산한 아이들.

전국에서 데려온 고아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들의 나이 많아 봐야 13살이었고 아니면 덩치가 작았다.

최소 성인 대접을 받는 나이인 15살까지 기다리거나 덩치를 키워야 한다.

'기다려야지.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곧 있으면 4기 대원들이 졸업한다.

그렇게 되면 4만 명이나 되는 현대식 군사 교육을 받은 정예 경비대원들을 보유하게 된다.

비록 전투 경험은 없지만, 21세기 한국군과 다를 게 없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경비대원들.

직접 칼과 창, 맨몸으로 싸우는 훈련도 했기에 어찌 보면 더 강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말 타고 활과 칼을 휘두르는 적과 전장식 총을 들고 싸우는 적을 물리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거다.

"싸장님!"

나간 지 얼마 되지 않는 쌍식이가 큰소리로 원을 부르며 사무실을 벌컥 열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큰일 났습니다. 사장님."

"무슨 큰일? 한양에서 난리라도 난 것이냐?"

쌍식이의 말에 원은 벌떡 일어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수대리에서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뭐?!"

그렇게 조심을 시켰는데도 사고가 일어났다.

화학 공장에 다니던 공돌이 하나가 사고를 쳤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는데 화공약품을 외부로 빠져나갔단 말이냐?"

"그게, 담당자였다고 합니다."

카바이드라 불리는 탄화칼슘을 몰래 집으로 가져간 공돌이.

깡통에 넣고 물만 부으면 아세틸렌(C2H2)가스가 발생하기에 등불 대신 쓰기가 편했다.

"몇 명이나 다쳤느냐?"

"동네 아이들 2명이 죽었고 3명이 중상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간 사이 아들은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기 집에만 있는 신기한 것을 보여 주려 했던 거다.

아이는 혹시라도 어른들이 보면 혼날까 봐 문을 꼭 닫고 카바이드에 물을 부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한참을 지켜보던 아이들.

그중 누군가가 성냥에 불을 붙였다.

방안에 가득 찬 아세틸렌가스.

순식간에 꽝하고 폭발했다.

"모두에게 알리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단단히 교육해라."

"네, 사장님."

아세틸렌가스와 전기분해로 얻은 산소는 아세틸렌 용접하는 데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아···!"

원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연탄가스 사고 나는 게 무서워 아직 연탄도 보급하지 않았다.

땔감으로도 석탄은 쓰지 못 하게 했다.

방바닥에 큰 돌과 황토로 구들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온돌방.

석탄이나 연탄을 사용한다면 다음 날 눈을 뜨지 못할 거다.

그만큼 위험했기에 수도 없이 교육했는데도 엉뚱한 것에서 사고가 났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일이 다반사인 조선 중기.

그러기에 아이 한두 명 죽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원의 마음은 달랐다.

아이들은 바로 원이 꿈꾸는 미래였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바로 전기를 보급하자. 연탄난로도 보급하고.'

그동안 연탄난로는 많이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보급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깔 파이프가 마땅한 게 없어서 기다렸던 거다.

귀한 동파이프를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쇠 파이프를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1,085도에 녹는 구리는 1,538도에 녹는 철통 안에 넣고 압출을 하면 구리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철을 넣고 압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21세기에도 쇠 파이프는 단계별로 구부려서 전기용접으로 이어 붙여 만든다.

수력과 화력으로 전기 생산량을 늘리고 있지만, 쓸 곳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마을 단위로 연결하는 쇠 파이프만 소량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소형 열식 발전기를 만들어야겠군.'

다시 자리에 앉은 원은 자와 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설계도를 그렸다.

연탄보일러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오늘도 원은 자신을 굴렸다.

원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이길래 이렇게 노력을 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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