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화 (21/275)

21. 진출(3)

인조 26년(1648) 4월 26일.

몸이 좋지 못한 인조.

전날부터 번침(燔鍼)을 맞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내의원 제조 조경(趙絅)은 인조에게 침을 놓으면서 말했다.

"전하, 병이란 모두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옵니다. 평온한 마음과 안정된 생각을 지니고서 올바른 것으로 사특함을 제어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의약을 쓰지 않아도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옵니다."

"크흠."

의심하는 마음에서 생긴 병.

즉 의심병이란 말에 인조는 기분이 상했는지 침음을 흘렸다.

"병이 점점 더 심해지니 혹 의혹(疑惑)스러운 것이 있사옵니까?"

"무슨 말인가?"

"구궁(舊宮)의 저주가 전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 의심을 버려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사옵니다."

"이미 병이 들었는데 인제 와서 의심을 거두라니 말이 되는가?"

"회복하시려면, 마음을 다스려야 하옵니다. 전하."

"크흠."

인조의 마음을 이리 잘 아는 걸 보니 어의 조경은 정신상담 전문의였는지도 모른다.

의심이 많은 인조.

자식과 며느리, 손자까지 죽인 후, 더욱 의심이 깊어졌다.

그러더니 끝내 앓아누웠다.

인조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버린 원.

더는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북진을 결심한 원은 내부 단속부터 들어갔다.

왜란 전부터 개판이 되어 버린 조선군.

훈련도감부터 지방군까지 믿을 놈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지킬 사람을 물색했다.

먼저 원은 개인마다 무쌍을 찍는 착호갑사(捉虎甲士)들을 꼬셨다.

조선 팔도에 넘쳐나는 호랑이.

착호갑사(捉虎甲士)들에게 최신 수석총과 돈을 주고 호랑이를 잡으라고 의뢰하고 그들의 환심을 샀다.

왕명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착호갑사.

스스로 왕성의 시위와 궁궐의 숙위를 담당했기에 아버지를 보호하기에는 최적이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원은 포도대장 이완(李浣)을 만났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마."

"아닙니다. 대장을 믿기에 부탁하러 왔습니다."

"무슨 일을 원하십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혹시라도 불온한 일이 발생하면, 세자저하부터 보호해 주십시오. 그리한다면 섭섭지 않은 보상이 있을 겁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꼭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마."

아직 어린 원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인 포도대장 이완.

조선의 실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변고가 생기면, 세자저하를 용산 조선전력공사 분점으로 모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마."

착호갑사와 포도청 그리고 금군까지 꼬셔 놓은 원.

쌍년이를 시켜 다음 작전에 돌입했다.

한양에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전력공사가 압록강 하구에 신의주라는 읍성을 짓고 분점을 낸다는 말.

점점 펴져 나가더니 조선 팔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청나라와 교역을 하기 위해 짓는다는 말이 떠돌았는데,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왕은 몸 져 뉘었고, 대신 세자가 조정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는 가운데 퍼져나간 소문은 구체화 되었다.

"원손께서 청나라 놈들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북녘에 성을 지으신다며?"

"그렇다고 하는구먼."

"그런데 지킬 병사는 있고?"

한심하다는 듯 한 번 째려보던 이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경비대 있잖는가. 경비대!"

"무슨 경비대?"

"이 사람 좀 보게. 용산에 있는 조선전력공사에 가보지 않았는가?"

"당연히 가봤지.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경비대란 말.

도무지 뭔 소린지 모르는 듯 되물었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경비대잖여!"

"그래? 난 그냥 관군인지 알았지."

"자네 눈은 개 눈인가? 딱 봐도 개판인 관군하고는 다르지 않던가."

"그러긴 했지. 괜히 얽히기 싫어서 피해 다녔지만, 정병인 건 확실하지."

복장부터 달랐던 처음 보는 관군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그 경비대가 읍성을 짓고 그곳을 지킨다는 말이 있네."

"그래! 서북사람들 살판나겠네. 그런 정병이 지켜준다면 안심하며 살 수 있으니."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나랑 함께 북쪽으로 가지 않을 텐가?"

"왜? 그곳에 가면 입에 풀칠할 거라도 있나?"

"읍성을 짓고 주변에 농지를 개간한다는데 사람이 많이 필요한가 봐."

"참말인가?"

“진짜라고 소문이 파다하네.”

한마을에 사는 두 사람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정보를 더 수집했다.

여차하면 가족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가기 위해.

* * *

원은 이번에 졸업하는 3기 대원들과 1기, 2기 대원들을 섞어서 북쪽으로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 생산될 플라스틱 제품.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에 팔 곳을 늘려야 했다.

또한 조선 땅에만 팔 수도 없었다.

'돈이 있어야 사지. 돈이.'

조선의 백성들은 대부분이 가난했다.

게다가 노비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조선 초만 해도 노비가 이렇게 많지 않았다.

조선 중기 이후.

노비가 많아진 이유는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에 명시된 일천즉천(一賤卽賤)이라는 말과 퇴계 이황이 주장한 양천교혼(良賤交婚) 때문이다.

-범금(范金)과 범운(范雲) 등을 불러서 믿을만한 양인 중에 부모가 있고 생업을 의탁할 수 있는 자를 골라 시집을 보내고, 죽동에 와서 살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 (이황의 도산전서(陶山全書) 中)

위 말은 노비와 양인(평민)을 결혼시켜 노비를 늘리자는 뜻이다.

이황은 노비의 수를 늘리기 위해 대놓고 꼼수를 썼다.

이황 역시 300명이 넘는 노비를 거느린 지방의 지주였고, 재산 증식에 관심이 많은 사대부였다.

조선에서 노비는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가 없다.

노비가 많으면 나라의 힘이 줄어든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이황.

아무리 변명해도 나라를 위한 참 선비가 아닌 나라를 망치는 x선비이다.

고려 시대에는 노비와 양인의 결혼 자체가 불법이어서 노비가 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노비와 양인의 결혼이 가능했다.

그래서 노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생각이 있는 왕들은 종부법(從父法)으로 노비의 수를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양반 관료들이 번번이 반대하며 폐지를 요구했다.

조선의 사대부는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고 나라를 망치는 x선비들이 대부분이다.

'엿 같은 새끼들과 다툴 필요가 없지.'

원은 x선비들을 건들지 않았다.

되려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었다.

대신 그들이 건들면 모두 죽여버릴 생각이다.

이미 쌍년이가 충분히 자료를 수집하고 있기에 꺼릴 일이 없었다.

갈 길이 먼데 발목을 잡는 것들과 아귀다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은 x선비들을 모두 제거해도 행정 공백이 없게끔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옹진반도에는 까막눈이란 아예 없었다.

곳곳에 초등학교를 세우고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사칙연산을 가르쳤다.

옹진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한글과 간단한 사칙연산은 누구에게나 기본이었다.

모두 젊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자왈 맹자왈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몇몇 여인들 뿐이었고, 이마저도 타인이나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옹진반도에서 문자쓰며 나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발, 그런 거 모르는 몽골과 청나라가 대륙을 삼켰지.'

아무튼 곧 쏟아지는 플라스틱 제품과 청나라의 힘을 빼고 조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무역을 해서 돈을 긁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은 청나라 사신이든 백성이든 한반도로 넘어와서 x지랄 떠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여차하면 쳐버릴 생각이었다.

'오는 족족 죽여버리면 되지.'

아직 북경으로 쳐들어갈 때는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오는 놈은 모두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설사 백만 대군이 몰려오더라도 승산이 있었다.

'수비는 수비하는 병사만 있으면 되지만, 공격은 보급이 중요하지.'

병자호란 때처럼 성을 돌아 침공한다고 해도 걱정될 것이 없었다.

백령도에 남아 있는 병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해병대처럼 기수별로 졸업시키는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에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보급 문제가 있기에 공격은 보류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남명과 청나라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우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수를 줄여야 해. 그것도 많이.'

문식이가 말한 호란 이후, 대륙의 인구는 약 1억 5천만 명.

천만이 못 되는 조선의 인구로 그 많은 인구를 모두 다스릴 수는 없다.

줄일 수 있다면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그래서 남명에 무기를 주고 쌀을 사 오고 있다.

남명이 백성들을 약탈하든 수탈하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쌀만 주면 무기를 팔았다.

후세가 비난할지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시발, 내가 죽게 생겼는데 뭔 개소리야.'

이대로 가다 간 조선은 망하고 300년 후의 후손들까지 대륙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느니 대륙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전부 가질 필요는 없지.'

사실 양자강 이남은 똥 땅이다.

산이 많고 덥고 습하기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자원이야 북쪽에 더 많지.'

후세를 생각해서도 대륙 남쪽까지 얻으려고 고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직은 좋은 곳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똥 땅까지 차지하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원은 생각했다.

"사장님, 신의주로 파견할 대대장들이 모여있습니다."

"알았다."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원.

한 번 더 지도를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

본사 2층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간 원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멸!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제2사단 사단장 신수. 사장님을 뵙습니다. 멸!"

"""멸!"""

"쉬어."

"쉬어!"

원은 지킬 수(守)자를 써서 경비대원들의 이름을 지어줬다.

그중 제2사단장으로 진급한 이에게 신의주를 지키란 뜻으로 신수란 이름을 지어줬다.

사단장 신수와 열 명의 대대장들.

원이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그동안 참고 훈련하느라 고생 많았다. 본격적인 진출에 앞서 방어부터 해야 한다. 따라서 너희들에게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다."

열중쉬어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대대장들.

침을 꿀꺽 삼켰다.

"북으로 올라가면 새로운 읍성을 새워야 한다. 그곳은 알다시피 '신의주'다. 앞으로 신의주는 청나라 놈들을 막을 최전선이 될 것이다. 이유 없는 싸움은 허락하지 않는다. 청나라 놈들과 교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나?"

"""멸!"""

"하지만 도발하는 자는 가차 없이 응징하라. 조선을 비하하는 자는 체벌을 가하고 덤비는 자는 죽여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단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알겠나?"

"""멸!"""

"명심해라. 너희들의 임무는 이 조선을 지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조선전력공사의 분점이 있는 신의주를 지키는 것이지만, 본질은 조선 땅과 백성을 지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멸!"""

"절대 나태하지 마라. 방심하지 마라. 사고 치지 마라. 놀고 싶으면 휴가를 받아 남쪽으로 내려와 받은 봉급으로 신나게 놀아라. 모두 몸 관리 잘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이상이다."

"""멸!"""

경비대 제2사단 1만 명과 소문을 듣고 남쪽에서부터 따라나선 3만 명의 민간인들.

총 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북쪽으로 떠났다.

원의 명을 받은 조서원의 특경대원들.

오래전부터 일부러 말을 퍼트렸다.

그래야 그곳에서 살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으니.

참 선비 김육이 원했던 대동법은 아니지만, 조선에 화폐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원은 많은 것을 건너뛰었다.

그래서 대동법도 건너뛰기로 했다.

인조가 죽으면 쌀로 세금을 받는 대동법이 아니라 바로 동전으로 세금을 받기로 아버지인 봉림세자와 이미 입을 맞춰 놓았다.

경비대를 떠나보낸 원은 지금까지 일을 생각해봤다.

"시대가 나와 맞았기 때문이야."

지금까지 원이 원한대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백 년도 안 된 사이에 4번의 외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고,

아담 샬을 만날 수 있었으며.

옹진반도에 여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와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물론 사치를 좋아하는 의심병 걸린 인조와 돈만 주면 눈을 감아주는 x선비들도 한몫했다.

“사장님, 신의주에서 정말 장사 하실 겁니까?”

“알면서 뭘 물어보느냐?”

“그렇죠?”

“그렇다. 잘 돼야 할 텐데···.”

원과 쌍식이는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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