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진출(2)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나, 조선의 역관이었던 정명수.
여진말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청나라를 등에 업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놈은 토끼라는 뜻인 ‘굴마훈’으로 여진 이름까지 짓고 조선의 내부 사정을 청나라에 일러바쳐 높은 신임을 얻었다.
놈은 한마디로 개쓰레기였다.
병조좌랑을 몽둥이로 폭행한 것은 기본이었고, 압력을 행사하여 조정으로부터 뇌물까지 받아 챙겼다.
그러면서도 조선을 밀고 했으니 기본조차 없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인조는 영의정과 동급인 정1품 영중추부사로 임명하다니.
원은 화가 치밀었지만, 폐품 중의 폐품이나 다름없는 더러운 쓰레기를 조선 땅에서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놈을 곤경에 빠트려 처참하게 죽게 하거나 아니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할 계획을 짰다.
그래야만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을 터이니.
정명수를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는 건 쉬웠다.
'쉽게 죽여서는 안 되지.'
원은 죽이는 것보다 더한 참담한 일을 겪게 하고 싶었다.
대륙에서 누구나 칭송하는 제갈량.
그래서인지 대륙에 사는 이들은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을 최고로 쳤다.
‘당한 놈이 병신’이라는 대륙의 문화.
한마디로 논할 가치가 없다.
대륙의 문화를 익히 알고 있는 원은 아무리 계획을 잘 짠다 해도 들통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설픈 작전이 혼란을 줄 것 같았다.
하나둘씩 쓰러져 가는 청나라 병사들과 사신 일행들.
그것을 본 정명수는 급히 말을 몰아 도망갔다.
어찌나 겁이 났는지 오줌을 질질 싸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해관으로 줄행랑을 쳤다.
정명수가 사라진 걸 확인한 특경대원들과 저격수들.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팀장님, 죽지 않는 놈은 어떻게 할까요?"
"계획대로 한다."
"네."
조용히 대화를 나눈 특경대원들.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모두 죽었는지 확인했나?"
"그럼, 당연하지."
"정명수가 말한 대로 진짜 사신이 지나갈 줄은 몰랐는데."
"반씩 나누기로 했잖아. 빨리 챙기고 떠나자."
"그래."
"서둘러라! 서둘러!"
둘의 대화는 명나라 말이었다.
값나가는 것만 골라서 챙긴 특경대원들과 저격수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한참 후 정명수가 다시 나타났다.
죽어라 도망간 후 의기양양하게 산해관을 지키는 청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온 거다.
하지만 모두 죽었는지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쓰러진 사람들을 살피던 청나라군관.
정명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어떻게 된 거냐? 분명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모두 총에 맞아 죽은 것 아니냐?"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럼 이 구멍은 뭐냐?"
"그게···."
그때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사, 살려주시오."
군관이 달려가 옆구리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자를 일으켜 물었다.
"어찌 된 거냐?"
"며, 명나라 잔당 놈들의 소행입니다."
"그래?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모릅니다. 총을 맞고 쓰러진지라. 무, 물 좀 주시오."
물을 받아 마신 이는 정신이 드는지 주변을 살폈다.
정명수를 본 그자의 얼굴은 놀람과 화가 동시에 표현됐다.
그는 손가락으로 정명수를 가리키며.
"저, 저놈이 명나라 잔당 놈들과 짜고 벌인 일입니다."
"뭐?"
싸늘한 눈초리로 정명수를 쳐다보는 군관.
다시 고개를 돌려 다그치듯 물었다.
“저자가 분명 맞느냐?”
"네,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명나라 잔당 놈들이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단 말입니다. 굴마훈 저놈이 명나라 놈들과 짜고 사신 일행을 털기로 했다는 말을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무심히 서 있던 정명수.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그럴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있을 겁니다."
"이놈. 내 분명 들었다. 네놈이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을 알려주고 습격하라고 했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단 말이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정명수,
온몸으로 부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의심 마귀가 심어진 군관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했다.
"나리, 여기 살아있는 자가 또 있습니다."
"깨워라."
피를 많이 흘렸는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청나라 병사.
명나라 말을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다.
"일단, 저놈을 묶어라. 바로 북경으로 간다."
"아닙니다. 나리. 제가 명나라 놈들과 짜고 한 짓이 아니란 말입니다. 오해입니다. 제발···!"
"그럼 어찌 너 혼자만 성하단 말이냐. 당장 저놈을 묶어라."
"네!"
정명수는 울고불고 연신 부인했지만, 청나라군에 이끌려 북경으로 압송됐다.
* * *
원은 종이 탄피를 쓰는 샤프스 1859를 응용하여 조1 소총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조2 소총을 어떤 것으로 응용하여 만들까 고민이 많았다.
조1 소총인 샤프스 1859.
스나이퍼 라이플의 효시가 되는 좋은 총이다.
대구경 단발총인 샤프스 시리즈.
1848부터 1874까지 높은 정확성과 긴 사거리로 저격병들이 가장 좋아했던 소총이었다.
하지만.
'1874도 괜찮은 총이긴 한데, 레버 액션은 좀 그렇지.'
레버 액션은 총알을 장전할 때 아랫부분이 노출되기에 쉽게 오염된다.
땅바닥에 엎드려 쏠 때나 진흙탕에 구르면 흙먼지가 들어가 작동 부분이 망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은 금속 탄피를 쓰는 샤프스 1874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조1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과 마주치면, 이긴다고 보장 못 하지.'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샤프스 1874.
둘 다 후장식 소총이기에 종이 탄피에 퍼커션 캡을 꽂아 넣는 조1 소총보다 나을 게 별로 없었다.
추가로 퍼커션 캡을 꽂을 필요가 없다는 것 말고는 매력이 없는 거였다.
원은 다른 좋은 총이 없나 머릿속을 뒤졌다.
‘조1 소총을 제압할 수 있는 총이어야 돼.’
문식이 때문에 총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원은 다양한 모형 소총을 분해해봤기에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총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대체역사 광인 문식이가 어렵게 구한 모형 소총만 분해하고 조립해 봤다.
그것 말고는 다른 총의 구조는 잘 알지 못했다.
물론 K1과 K2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생산성도 좋지 않았고 성능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잘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은 이미 비장의 무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조3 소총이다.
조3 소총은 벌써 설계가 끝나 개발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직도 조2 소총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래, 스프링필드 M1903으로 결정하자.'
구조가 간단하여 만들기도 쉽고 튼튼하기에 베트남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던 총이다.
명중률 또한 뛰어나 저격수용으로도 좋았다.
일명 아메리칸 마우저라 불리는 스프링필드 M1903.
스페인군이 사용하던 M93 스페니쉬 마우저를 바탕으로 개선한 총이기에 문제점도 없었다.
클립식 5발 내장 탄창은 장전도 쉬웠고 고장도 나지 않았다.
총열도 짧아 다루기도 쉬웠다.
또한 문식이가 모형을 가지고 있었기에 구조도 잘 알았다.
조2 소총을 결정한 원은 바로 설계에 들어갔고 개발해 냈다.
그런데 원이 조2 소총을 설계하면서 빼먹은 것이 있었다.
아무리 전생의 기억이 선명하다고 해도 순간 착각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M1903의 황당한 문제점이었던 탄창 차단기를 빼버렸다.
연발 소총을 단발 소총으로 만들어 버리는 탄창 차단기.
미군은 M1903을 개발하면서 신병들이 총알을 낭비할까 봐 크라그-요르겐센에서 따온 탄창 차단기를 달아 놓았다.
그런데 실제 전투에서 탄창 차단기를 쓴 적은 별로 없었다.
아무튼 탄창 차단기가 빠진 조2 소총을 막 만들기 시작한 시점에서 청나라 사신이 원의 화를 돋웠다.
원은 조2 소총이 생산되고 있었기에 과감히 청나라 사신을 응징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차하면 전면전이 벌여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거다.
'기병대용 조3 소총까지 있으니 니들은 밥이지.'
막 생산된 조2 소총을 미리 받아 훈련하고 있던 저격수들.
최신 5연발 볼트 액션 소총으로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원은 정명수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살려 놓았다니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개고생하다가 청을 멸할 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랬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사장님!"
"아니다. 어려운 일이었는데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장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삼복이 네가 팀장으로서 수고가 많았구나."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번 작전의 팀장을 맡은 특경대원 삼복이는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며 대답했다.
하지만, 원은 뭐라 하지 않았다.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대원들을 기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포쌍이 네가 저격수 중의 저격수라며?"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래 우리 조선전력공사를 위해서 항상 노력하기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이번 작전에 투입된 대원들.
미천한 자신들을 원손이자 사장님인 원이 하나하나 손을 잡고 격려해주자 눈시울이 뜨거웠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가르쳐주고 이제는 봉급까지 주었다.
그것도 조선의 군졸들보다 많이.
혼례 할 때면 예식장이란 곳에서 잔치를 열어줬다.
누군가 상을 당하면 장례식장이란 곳에서 애도하게 했다.
그랬기에 죽을지도 모를 적진으로 가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죽더라도 남은 가족들을 돌봐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작전이 시작되자 너무나 쉬웠다.
새로 받은 조2 소총에 소음기를 달아 공격하자 적들은 당황하며 순식간에 쓰러졌다.
오고 가는 동안 철로 된 배를 탔다.
돛을 내려도 노도 없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이 모든 걸 만들어내셨다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과학자인 사장님.
새로운 말도 계속 창조해내셨다.
대원들은 쉬는 날이면 모여서 축구나 농구 경기를 하거나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익어가면 누군지 모르게 사장님에 관해서 말을 꺼냈다.
'훗날 사장님께서 전하가 되신다면 우리 조선은 어떻게 될까?'
'황제국이 되겠지.'
'정말?'
'그럼 당연하지. 지금도 엄청나시잖아.'
'그건 그래.'
'그나저나 북벌은 언제 시작될까?'
'기다려봐 사장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모두가 청나라를 멸하는 북벌을 꿈꿨다.
그만큼 당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백령도에서 훈련받던 3기 대원들까지 정식 대원이 된다.
정식 대원이 되면 파견을 나간다는데 어디로 배정될지 모두의 관심사였다.
1기 대원 중 용산 분점에 파견 나간 선배 대원.
잊지 않고 찾아와 후배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 때문에 세상이 바뀌고 있어.”
"참말입니까? 선배님."
"그럼. 참말이지. 내가 한양에서 직접 듣고 봐서 알아. 우리가 봉급으로 받는 동전 있지?"
"이것 말입니까?"
"그래. 이제 그거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 없다.""""와~!"""
2기 대원들은 얼른 동전을 품 안에 감췄다.
매달 주는 동전으로 용기포에서 술이나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쌀이나 면포는 물론 집까지 살 수 있다니.
아끼고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 2기는 어디로 배정될 것 같습니까? 3기와 함께 한곳으로 간다는 말이 있던데."
"아마 신의주로 갈 것 같다."
"신의주요?"
"응. 의주 옆에 신의주라는 새로운 읍성을 지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요?"
선배 대원은 시원하게 막걸리를 들이켠 후 속삭이듯 말했다.
"정확하진 않아. 떠도는 소문인데 드디어 북쪽으로 진출하려고 결정하셨데."
"""와~!"""
"치는 겁니까?"
"아직은 아니고. 대신 도발하거나 넘어오면, 쓱~."
손날로 목을 긋는 선배 대원.
눈에 힘을 주더니.
"전부 뒈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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