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9화 (19/275)

19. 진출(1)

정말 빨랐다.

지체 높은 그것도 옹진반도에서 최고로 높은 사장님이 뛰어가는 모습을 본 쌍식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번개처럼 연구소로 뛰어간 원은 석탄 에너지 팀이 있는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디 있느냐? 어딨어?"

연구원들은 원이 외치는 소리에 꿈쩍 놀랬다.

체통 없는 원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는 연구원들.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중 한 명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는 듯 했다.

연구원은 반투명한 하얀 덩어리를 들고 원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얼른 받아든 원은 한 참 이리저리 살펴봤다.

눌러도 보고 잡아당기기도 하고.

"틀림없구나. 해냈구나, 해냈어."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혼잣말을 하던 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원은 자신보다 키가 큰 연구원의 엉덩이를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 톡톡 쳐줬다.

"장하다. 어떻게 했느냐? 쉽지 않았을 텐데."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병목 현상을 이용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어."

연구원을 격려한 원은 손에든 폴리에틸렌 덩어리를 다시 보았다.

기분이 좋은지 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를 쫓아간 입꼬리는 내려 올 줄 몰랐다.

폴리에틸렌(Polyethylene).

모두가 아는 플라스틱(Plastic)의 한 종류다.

약어로 PE라 불리는 폴리에틸렌은 석탄에서 뽑아낸 에틸렌 가스로 만들 수 있다.

투명한 비닐(Vinyl)부터 단단한 파이프까지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며 제조 방법에 따라 밀도가 달라진다.

원의 손에 들려있는 반투명한 하얀 덩어리.

고압법으로 만든 폴리에틸렌이다.

ICI 법이라고도 부르는 고압법 공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2,000기압이라는 엄청난 압력이다.

그래서 방법을 알면서도 그동안 생산해 내지 못한 거였다.

그런데 공작기계가 갈수록 정밀해졌다.

연구설비도 나날이 좋아졌다.

그 영향으로 그토록 원하던 폴리에틸렌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원 앞에 긴장한 채 서 있는 연구원.

폴리에틸렌을 합성해 내기 위해 수도 없이 실패를 경험했다.

결국 원이 설명해준 병목 현상을 이용할 파이프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 끝에 드디어 2,000기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정을 완성했다.

물이나 공기, 도로 공사로 줄어든 차선까지 좁아지는 입구에서 정체가 되지만, 진입하면 빠르게 움직인다.

모터를 이용해 단순하게 에틸렌 가스를 밀어 넣는 것보다 병목 현상을 이용해 줄어든 파이프로 밀어 넣으면 더 강한 기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구원은 만들어 낸 공정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실험했다.

에틸렌 가스와 산소 또는 과산화물을 첨가하여 강한 압력으로 밀어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장치에 200도 정도로 열을 가하면,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원은 성공했어도 바로 원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그동안 수도 없이 실패한 경험이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쌍식이의 말을 들은 원이 바로 뛰어온 거였다.

폴리에틸렌 자체는 열가소성 합성수지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다시 열을 가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번에 만들어낸 저밀도 폴리에틸렌.

비닐은 물론 전선 피복까지 다양한 합성수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더는 구리 선에 에나멜 칠을 하고 기름먹인 종이로 감쌀 필요가 없게 된 거다.

또한 무색, 무취, 무독성 특징을 지니고 있어 식품 보관 용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PE라 부르는 폴리에틸렌은 폴리염화비닐인 PVC처럼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안전한 플라스틱이라 부른다.

황홀한 표정으로 폴리에틸렌 덩어리를 바라보고 있는 원에게 다른 연구원이 다가왔다.

"사장님, 제가 합성해 낸 것인데 한번 봐주십시오."

"엉?"

이번에 들고 온 것은 말랑말랑하지 않고 딱딱했다.

"어떻게 이것을?"

원은 놀란 얼굴로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계면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연구원.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구곡에서 발견된 광산에서 가져온 광물을 봤는데 아무래도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광물 같았습니다."

"그래? 가져와 봐라."

연구원은 적갈색으로 된 반질반질한 광석을 가져왔다.

원은 그것이 무엇인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다녔던 연구소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홍석(金紅石, Rutile) 아니냐?"

"금홍석이라 부르는 겁니까?"

"그렇다. 이건 바로 티타늄이 가득 든 금홍석이 틀림없다."

티탄철광보다 이산화티타늄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 금홍석.

원은 또다시 입이 활짝 째졌다.

"이걸로 추출했느냐?"

"네 사장님. 염소와 반응시켜 얻은 것을 촉매로 사용했습니다."

"그랬구나. 장하다. 정말 고생 많았다."

이번에도 원은 기쁜지 연구원의 엉덩이를 톡톡 때려줬다.

금홍석에서 추출하여 만든 사염화티타늄(TiCl4).

바로 저압법 폴리에틸렌을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유기 금속 촉매다.

단지 시염화티타늄을 탄화수소 용매로 분쇄하여 90도 이하의 온도에서 에틸렌 가스를 주입하면 단단하고 열에 강한 폴리에틸렌을 만들 수 있다.

원은 너무 좋은지 짧은 팔을 활짝 벌려 두 연구원을 껴안으며 격려했다.

이제 약하지만 부드러운 비닐뿐만 아니라, 물병이나 단단한 플라스틱 의자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잔치를 벌여야겠다. 쌍식아!"

"네, 사장님."

"바로 잔치를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쌍식이가 서둘러 나가자 원은 두 연구원을 다시 보았다.

"앞으로 너는 저식이, 너는 고식이로 부르겠다."

"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식이와 저식이는 새로 얻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저식아!"

"고식아!"

그동안 성과가 없어서 식자 돌림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식자 돌림 이름을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연구소에서 식자나 순자 돌림 이름은 사장님이 말씀하신 과학자를 뜻했다.

드디어 과학자로 인정받은 둘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뚝! 다 큰 것들이. 그것도 사내새끼가. 당장 그쳐라."

""네, 사장님!""

글썽글썽한 눈으로 환하게 웃는 저식이와 고식이.

다른 연구원들이 몰려와 축하해 줬다.

*

조선전력공사 본사가 있는 은동리.

연일 잔치가 벌어졌다.

폴리에틸렌 개발.

쌍식이와 쌍년이의 혼례.

화력발전소 추가 건설과 폴리에틸렌 생산 공장을 짓는 기공식까지 연달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제 돈을 쓸어 담을 일만 남았구나.'

혼례를 마친 쌍식이.

원이 당분간 쉬라고 말했더니 대궐 같은 집에 처박혀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원은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었다.

아무리 계산하고 다시 계산해도 돈 들어올 일만 있었다.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뭐부터 만들어야 하나?"

종이에 잔뜩 적어 놓은 앞으로 생산할 품목.

그중에 무엇부터 만들어야 할지 원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냥 비닐과 파이프부터 만들자."

원이 명령하자 바로 폴리에틸렌 생산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폴리에틸렌이 생산된다고 해도 바로 제품을 만들 수는 없었다.

원은 생각했던 제품들은 전부 생산하고 싶었지만, 플라스틱 가공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머리빗부터 의자까지 다양하게 만들려면 먼저 금형을 제작하고 사출 장비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압축 롤러만 있으면 생산할 수 있는 비닐과 간단한 금형으로 압력을 가해 뽑아낼 수 있는 파이프부터 생산하기로 했다.

"앞으로 쌀도 포장해서 팔아야겠다. 쌍식아!"

대답이 없었다.

대신 양순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아니다. 나가봐라."

"네, 사장님."

왠지 쓸쓸함을 느낀 원은 발코니로 나가 쌍식이 집을 내려다봤다.

전기를 연결해줬는데도 불빛 하나 없는 쌍식이네 집.

"새끼, 좋겠다!"

아직 이성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는 원이지만, 그래도 쌍식이가 부러웠다.

* * *

이틀이 지난 후.

원의 사무실을 두드린 이는 쌍식이가 아닌 쌍년이었다.

"무슨 일이냐? 푹 쉬라고 했을 텐데."

"사장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쌍년이가 쌍식이도 모르게 찾아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말해 보거라."

"청나라 사신이 우리 군관(軍官) 2명을 살해했다 합니다."

"뭣이! 자세히 말해 보거라."

"십여 일 전···."

회령(會寧)과 종성(鍾城)에서 국경을 넘어 사냥했다는 이유로 청나라 사신이 죄도 없는 군관 둘을 죽였다.

처음엔 두 고을의 부사(府使)인 서필문(徐弼文)과 김원립(金元立)를 추궁했다.

하지만 서필문이 변명만 하면서 애꿎은 군관에게 죄를 돌렸다.

인조가 승지를 보내 무마하려 했으나 사신은 듣지 않았다.

사신은 바로 두 군관의 목을 쳐 죽였다.

쌍년이의 말을 듣고 난 원은 두 주먹을 움켜쥐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개새끼가 그래 놓고도 뻔뻔하게 한양까지 왔단 말이지."

"네, 사장님."

"또한 주상께서는 정명수에게 벼슬을 내리고."

"네, 사장님."

"시발! 배알도 없네. 배알도 없어."

원은 조그마한 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사신은 떠났느냐?"

"네, 사장님."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원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번쩍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산해관을 넘어서면 전부 죽여 버려라. 정명수는 잡아 오고."

"네, 사장님."

"아니다. 정명수 그놈만 살려 두어라. 쓰레기만도 못한 놈을 데려와 조선 땅을 더럽힐 수는 없다. 청나라 놈들이 알아서 죽일 수 있게 일을 꾸며라."

"네, 사장님. 동력선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흔적 안 남기게 조심하고."

"네, 사장님."

원은 철선을 제작하기에 앞서 먼저 목선에 철판을 덧대 용접한 철선을 만들어 놓았다.

아직 전력이 부족하여 전기 아크 용접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카바이드(탄산칼슘)에 물을 부어 생성한 아세틸렌가스와 전기분해로 얻은 산소로 철판 용접을 할 수 있었다.

철선의 크기는 판옥선보다 작은 길이 20미터, 높이 3미터 정도였다.

침투 작전용으로 쓰기 위해 검붉은 옻칠을 하고 광이 나지 않도록 겉면을 처리했다.

기본적으로 돛을 사용하지만, 열식기관으로 발전하여 납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게 했다.

급할 때나 해안 가까이에서 돛을 내리고 모터 동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한 거다.

어찌 보면 잠수함 운영방식과 비슷했다.

기본 모양은 평저선이지만 거친 서해를 오가는 것도 대비해서 만들었다.

배 바닥 밑에 다리통만 한 용골을 길게 붙인 거였다.

원은 나무배와 다르게 물 샐 일이 없는 동력선 두 척을 만들어 성능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는 쌍년이는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육로로 따라잡기보다 동력선을 타고 서해를 가로질러 작전을 수행하고자 했다.

* * *

쌍년이에게 작전을 하달받은 특경대원들과 저격수들.

동력선 2척에 나눠타고 바로 산해관으로 출발했다.

산해관은 '양고기에 칭다오'가 아닌 친황다오를 말한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며 북경과 같은 위도에 있다.

서북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있기에 청나라도 이곳을 뚫지 못하는 한 명나라를 칠 수 없었다.

하지만 산해관을 지키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吳三桂)가 홍타이지 동생 도르곤(多爾袞)에게 투항하고 관문을 열어줬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미 순나라 황제 이자성에게 북경이 점령당했기에 꺼릴 일이 없었다.

"팀장님, 놈들이 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번 작전을 맡은 팀장은 망원경을 들어 사신 일행을 살폈다.

"그래봐야 백 명 안쪽이다."

다행히 조선 상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18세기가 되면 비용을 지불하고 사신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하는 조선 상인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안심한 팀장은 빠르게 작전을 지시했다.

"너와 너는 무조건 사신부터 죽여라. 다른 대원들은 도망가는 놈부터 죽이고 나머지도 모두 처치한다.

"""예."""

간결하고 짧게 대답하는 대원들.

수도 없이 반복한 훈련 덕분이다.

"정명수만 빼고 모두 죽여라. 단 한 명도 살려 줄 필요 없다."

"""예."""

"실수하지 마라. 정명수는 꼭 살려야 한다. 알았나?"

"""예, 팀장님."""

소음기가 달린 조2 소총을 든 특경대원들과 저격수들.

엎드려 쏴 자세로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했다.

저격수 중의 저격수라 말하는 포쌍이.

그가 사격을 시작하면 모두 따라 하기로 했다.

누가 감히 대청나라 사신을 위협이나 할 수 있을까.

말을 탄 사신 일행이 산해관을 통과하여 한적한 곳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사신의 머리가 터지더니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놀란 병사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떤 적도 보이지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놀란 말 울음소리만 사신 일행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퍽!

"으악!"

-퍽!

"큭!"

하나둘씩 머리가 터지거나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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