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포석(2)
갤리온(Galleon).
대항해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범선이다.
캐러벨과 카락 다음으로 만들어진 갤리온.
본격적으로 대양에 진출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속도도 빠르고, 적재량도 크고, 가격도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그래서 조선전력공사에서도 갤리온은 단 2척만 있었다.
원이 거래처인 예수회를 통해 사들인 것이다.
갤1호와 갤2호는 정기적으로 번갈아 가며 운행했다.
서해를 가로질러 총과 화약, 총알, 소금을 팔고 대신 쌀을 실어 왔다.
동남아로 가는 해역은 해적들이 판을 쳤다.
아직 함대를 구성할 수 없어 위험했기에 종이와 연필, 은거울, 비누는 지금도 예수회를 통해서만 팔고 있다.
"하, 시발. 저 뱃값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백령도 용기포로 들어오는 갤2호 선을 보며 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엄청난 돈이 들어오고 있지만, 한때 뱃값을 모으느라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발하는 데 지원도 많이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뱃값 지불을 완료한 후로 다시 옹진반도에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잘 먹여 살릴 능력도 없는데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옹진반도에 거주하는 인원만 10만 명이 넘어섰다.
10만 명이면 엄청날 것 같지만, 아니었다.
옹진반도는 21세기 서울보다 몇 배나 큰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 넓은 땅에 흩어져 있기에 특별한 곳 아니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아직 드물었다.
아무튼 원이 백령도 용기포까지 온 이유가 있었다.
"가져왔냐?"
"네, 사장님."
"어서 보여봐라."
갤2호 선이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내린 해경 대원들.
조심스럽게 나무 상자를 열었다.
"맞다! 수고했다."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는 원.
눈에 익숙한 모양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영어로 발음하면 오해 산다는 바로 그 땅콩이었다.
'아, 시발. 이걸 이제야 찾아내냐.'
그동안 땅콩을 찾고자 수도 없이 예수회에 부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다.
땅콩은 콩과 쌍떡잎식물이다.
강변 모래밭에서도 잘 자랄 정도로 어디에서나 자라고 땅을 기름지게 한다.
그래서 원은 옥수수와 번갈아 심기 위해 땅콩을 찾았다.
단지 그 이유만이 아니었다.
땅콩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드는 폭약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드는 구성 물질이 땅콩 안에 있다.
게다가 또 하나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개발하고 있는 엔진의 연료였다.
디젤 엔진(Diesel Engine).
1892년 독일의 기술자 루돌프 디젤이 만든 내연기관이다.
외연기관은 열식기관과 달릴 폭발하는 힘을 고스란히 쓸 수 있고 즉시 강력한 힘을 내는 기관이다.
옹진반도에 계속 용광로와 전로를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강철 생산량도 많아졌다.
더 단단하고 질긴 강철 제조법도 알아냈다.
원은 바로 디젤 엔진 개발에 들어갔다.
강철이 있고, 정밀 가공할 수 있는 공작기계가 있기에 거침이 없었다.
만약 원이 증기기관부터 먼저 만들려고 했다면 공작기계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정밀 가공하려면 원하는 대로 회전수를 만들 수 있어야 하기에 반응이 느린 증기기관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발전기부터 만들고 전기를 사용하는 공작기계를 개발했기에 정밀 가공이 가능했던 거다.
석유가 없는 한반도.
땅콩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고 있는 디젤 엔진.
그런데 연료가 될 땅콩을 찾지 못했다.
미분탄을 써서 개발해 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폭발까지 하는 통에 포기했다.
처음 디젤이 디젤 엔진을 만들 때 석탄 가루를 연료로 썼다.
‘포기하고 등유로 돌아선 이유가 있었던 거네.’
그랬다.
디젤도 구하기 쉬운 석탄 가루를 연료로 쓰려고 했지만, 결국 등유를 쓴 디젤 엔진을 발명했다.
원 또한 개고생하고 나서야 미분탄을 사용한 디젤 엔진 개발을 포기했다.
아무튼 디젤 엔진 개발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연료로 쓸 땅콩이 간절했다.
한 달 전.
원은 예수회로부터 서신을 받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땅콩을 찾았으니 가져가라는 소식이었다.
원은 바로 갤2호 선을 저장성으로 보냈다.
매일 같이 땅콩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원.
갤2호가 돌아올 날이 되자 용기포로 와서 기다렸다.
사실 땅콩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후 50년 후에야 전 세계로 퍼졌다.
그것도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이유였다.
식용이 아니었던 거다.
식용으로 땅콩을 먹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다.
땅콩은 호주 대륙에 풀어 놓은 토끼와 비슷했다.
호주 서부에 풀어 놓은 토끼.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면 풀뿌리조차 먹어 치웠다.
땅의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심은 땅콩.
목화밭을 초토화했다.
그만큼 땅콩은 토끼처럼 번식력이 대단했다.
아무튼 땅콩을 얻게 된 원.
바로 종자 개량 전문가를 자처하는 종식이와 새로운 농법을 연구하는 농식이를 불러 땅콩과 옥수수를 번갈아 재배하고 퍼트리게 했다.
*
땅콩을 얻게 된 원.
가벼운 마음으로 연구소로 향했다.
"오늘 강의는 내연기관에 관한 것이다."
연구소 강단에 모인 천재들.
연필을 꽉 쥐고 눈을 부릅떴다.
그 모습을 본 원.
이제는 무섭기까지 했다.
밑천이 떨어졌어도 강연은 계속해야 했다.
압도적인 신기술만이 조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양쪽에는 청나라와 왜가 있었고, 곧 있으면 북쪽에 러시아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외연기관이 내연기관과 다른 점을 아는 이 있나?"
열식기관에 푹 빠져 열식기관 개선에 사춘기 호르몬을 불사르던 열식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열식이 말해 보거라."
"바로 폭발력입니다."
"맞다. 다른 연구원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거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좌우를 번갈아 본 열식이.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불을 외부에서 가하는 것과 내부에서 가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입니다. 외연기관은 밖에서 불을 가하고 내연기관은 안에서 불을 가합니다. 하지만 진짜 차이점은 폭발력에 있습니다. 외부에서 불을 가하면 그 힘이 주변으로 사라지지만, 내부에서 불을 가하면 사라질 곳이 없어서 폭발합니다. 그래서 반응이 빠르고 즉시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훌륭하다."
열식이가 말을 마치자 원은 사다리를 타고 칠판에 뭔가를 잔득 그렸다.
"앞으로 우리는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내는 내연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설명은 계속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피스톤 링이다."
처음에는 수칼이니 산칼이니 줄여서 말했지만, 이젠 알고 있던 영어 단어를 그대로 썼다.
어차피 원이 한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옹진반도에서는 표준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원이 말하면 새로운 개념을 가진 단어라 생각하며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한문을 배운 적이 없는 이들이기에 단어를 가지고 뜻을 따지며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폭발로 얻은 강력한 힘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이 그림과 같이 링을 달아야 한다. 그것도 2개 이상. 이유를 아는 이 있나?"
또다시 열식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말해봐라.”
"링의 갈라짐 틈으로 힘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중 또는 3중으로 링을 끼워 힘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맞다. 힘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내연, 외연 할 것 없이 중요하다. 또한 엔진 블록과 마찰 부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스톤 링을 끼우면 얇은 링 부위에만 마찰력이 발생한다. 그래서 훨씬 열과 저항을 덜 받고 빠르게 작동할 수 있다. 이상 마치겠다. 질문받겠다."
이번에는 많은 손들이 올라왔다.
"동식이 말해 보거라."
"왜 휘발유(揮發油) 엔진은 만들지 않고 디젤 엔진부터 만드는 것입니까?"
열식이는 안다는 듯 동식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더 간단하고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휘발유는 얻을 수 없다."
"왜 휘발유를 얻을 수 없습니까?"
"휘발유는 석유에서 뽑아내야 하는데 석유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구할 수 없다."
"그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원은 북쪽을 가리키면 말했다.
"바로 저곳이다. 우리가 저곳을 멸하고 차지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앞으로 중요한 에너지 자원인 석유와.“
원은 다시 서쪽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식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명심하거라. 저곳을 멸하고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알겠나?"
"""네, 사장님."""
나이는 어리지만, 지식욕에 불타는 천재들.
그들의 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살벌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환향촌이라 불리는 옹진반도.
그곳에 사는 조선전력공사의 직원들과 자녀들.
모두 청나라를 끔찍이 미워했다.
옹진반도로 오기 전까지 부모가 죽고 말도 못 할 고생을 한 이유가 바로 청나라 때문이라 생각했다.
원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했다.
외부의 적이 있어야 사람들은 단결하기에 선동은 필수였다.
특히 원이 알고 있는 한민족은 그런 성향이 아주 강했다.
그 어떤 고난에도 뭉쳐 이겨내는 특이한 민족.
바로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었다.
조서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백성들은 나라와 관리들을 욕하고 혐오했다.
하지만 한반도를 침략했던 왜와 청나라는 증오했다.
그런 점을 강조하라고 선식이에게 단단히 말했다.
이제는 동네잔치부터 경비대 위문까지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는 선식이.
만담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노래와 춤으로 흥겹게 한 다음, 청나라를 멸하자는 말을 은근슬쩍 섞어냈다.
맹목적인 선동만 했던 나치의 괴벨스와 다르게 선식이의 선동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지고 있었다.
* * *
인조 26년(1648) 3월 7일.
조서원으로부터 긴급 소식이 들어왔다.
"이런, 시발!"
최근 할아버지인 인조에 대해 좋게 생각했다.
총체적인 난국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명수를 영중추부사로 임명해!"
"사장님, 죽여버릴까요?"
원이 화를 내자 쌍식이가 한쪽 눈을 감으며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원은 혀를 찼다.
"너는 장가갈 생각이나 해라. 낼모레가 혼례(婚禮) 날 맞지?"
"네, 사장님."
“그럼 다 큰 어른인데 철 좀 들어라.”
“네, 사장님.”
계면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쌍식이.
씨익 웃는다.
최근에 소음기(消音器, Suppressor/Silencer)를 개발해 냈다.
원리를 알기에 만들기 쉬웠다.
물론 소리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다양한 모양으로 만드느라 자칭 공돌이들을 사정없이 굴렸다.
새로 개발된 성능 좋은 소음기를 든 쌍식이.
정명수를 죽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지 탁탁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가락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시끄럽다! 그만해라."
"죄송합니다. 사장님."
혼이 난 쌍식이는 소음기를 탁자 위에 놓더니 시무룩해졌다.
원은 그런 쌍식이를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원래는 쌍식이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쌍년이가 문제였다.
조선전력공사의 정보 조직인 조서원.
그곳의 수장인 쌍년이.
공개적으로 얼굴을 노출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쌍년이가 말했다.
비공식적으로 조선전력공사의 넘버 투인 쌍식이.
그의 부인이 될 쌍년이는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남을 염탐하기에 무엇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의 혼인은 간략하게 치루기로 했다.
머슴 출신인 쌍식이.
호란 때 부모를 잃어버린 쌍년이.
원은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둘은 혼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살집은 가봤느냐?"
"네, 사장님. 너무나 과분한 집입니다."
"아니다. 너 정도면 그런 집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개를 숙이면서 울먹거리려는 쌍식이.
역시 아직 어렸다.
"울면 취소다."
"네? 사장님, 울지 않았습니다."
해맑게 웃는 쌍식이의 눈에 물방울이 흘러나오려다가 멈추었다.
원은 본사 근처에 쌍식이와 쌍년이가 살 집은 짓도록 했다.
대지 2천 평.
3층짜리 집은 건평만 200평이 넘었고, 연면적은 500평이나 되었다.
한마디로 고관대작의 집보다 훨씬 크고 넓고 웅장했다.
조선에서 집은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법도가 있어 크게 짓지 못한다.
하지만 고립된 옹진반도, 그것도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은동리는 상관없다고 강행했다.
원에게 쌍식이와 쌍년이는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장님."
"왜?"
"귀신 나올 것 같습니다."
"안에 집기가 없어서 그래. 채워 넣으면 달라질 거다."
유리와 벽돌, 콘크리트로 지어진 쌍식이의 집.
가보진 않았지만, 을씨년스러울 거다.
"전구도 달면 밤에도 대낮 같을 거다."
"정말입니까?"
"그래."
쌍식이의 집은 앞으로 만들 대단지 주택의 실험 모델이었다.
옥상에 물탱크를 설치하고 땅을 파서 정화조를 만들었다.
또한 바닥에 구리 파이프 온돌 시공을 했기에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살 수 있다.
수도와 전기만 연결하면, 공식이가 살던 21세기 주택과 다를 게 없었다.
'선풍기나 에어컨도 만들어야 하나?'
화력발전소가 완성되면 전기는 충분할 것 같았다.
쌍식이 집을 직접 구상했던 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쌍식아, 그나저나 요즘 석탄 에너지 개발팀은 뭐 하고 있느냐?"
"뭔가 만들어 낸 것 같은데요. 그제 가봤는데 실험을 다시 한다고 정신없었습니다."
"그래? 무슨 실험인데?"
"무슨 폴리 뭐라고 하던데···."
"뭐라고?!"
쌍식이의 말을 들은 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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