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발전(4)
부유 선광법(Flotation Process).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원하는 광물을 얻기 위해서 쓰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폐수처리장에서 수질을 개선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광산에서 캐낸 광석을 분쇄하여 미세한 가루로 만든 다음, 물에 넣고 섞는다.
수족관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처럼 물속으로 연결된 호수에 공기를 불어 넣고 기포에 붙어 나오는 금속을 걷어 낸다.
그런데 떠오른 거품은 바로 터져 사라지기에 기포제라는 것을 첨가한다.
하수처리장이나 오염된 강에 가면 보글보글 더럽게 생긴 거품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유 선광과 비슷한 원리이다.
파인 오일, 알코올, 폴리에테르 글리콜, 폴리 옥시 파라핀, 크레신산(자일레놀) 등 기포제(Frother)를 넣어 원하는 광물만 띄우게 할 수 있다.
잔테이트아, 에어로플로트 같은 포수제를 첨가하면 부유 작용이 보글보글 빠르게 일어난다.
이런 방법으로 원하는 광물.
금, 은, 구리, 몰리브덴, 아연, 납, 니켈, 텅스텐, 리튬, 주석까지 웬만한 건 다 분리해서 수거할 수 있다.
"이상, 질문받는다."
번개처럼 여기저기서 손이 번쩍 들렸다.
"광식이, 말해 봐라. 무엇이 궁금하지?"
“비중 선광보다 좋은 기술입니까?”
“그렇다. 무게 차이로 분리하는 비중 선광보다 원하는 광물만 정확히 얻을 수 있다.”
광식이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또?”
오늘도 원은 천재들을 모아 놓고 열띤 강연을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쌍식이가 진이 빠진 원을 보며 말했다.
"하, 힘들어 죽겠다."
갈수록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어졌다.
'세상 모든 것을 내가 아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있어 원은 모든 것을 아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과학자이다.
'그렇다고 나중에 내 방으로 찾아와라. 할 수도 없고.'
학교 다닐 때 어려운 질문을 하면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항상 하던 말.
그때야 전문 서적이 많기에 얼른 가서 찾아보면 되지만, 여기서는 오직 공식이가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다.
원은 다른 일도 있고, 와서 물어도 더는 설명해 줄 수 없기에 그런 말은 아예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애들에게 구라를 칠 수도 없고.’
현재 여기저기서 가져온 광석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물질을 뽑아내고 있다.
'너무 빨라.'
원이 생각했던 계획보다 천재 아이들의 지식수준이 너무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밑천이 드러나게 생겼다.
몰리브덴으로 특수강을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텅스텐을 찾아냈다.
아세틸렌가스로도 잘 녹지 않는 금속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텅스텐이었다.
"어쩔 수 없군. 만들어야지."
"또 뭘 만드실 겁니까?"
쌍식이는 기대하고 물었다.
원이 새로운 것을 만들 때마다 신기한 게 나왔기 때문이다.
"등이나 횃불 대신 쓸 거다."
"네?"
"아크 방전 때 나오는 빛과 같은 거다. 쌍식아 가서 유리와 금속 가공 기술자를 불러와라."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원은 그동안 전구를 만들지 않았다.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참숯으로 만든 필라멘트를 이용하면 된다.
그런데 만들지 않은 이유는 아직 전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전기로 생산한 전기.
이것저것 생산하는 데 쓰기에도 부족했다.
그러니 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백열전구는 전기를 많이 먹기 때문이다.
원은 단결정 실리콘을 합성하면 다음으로 질화갈륨(GaN)으로 된 청색 LED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텅스텐이 발견되었으니.
'전구를 만들어야지. 그나저나 발전기는 어디다 설치하지? 팔당댐만 지어도 전력이 남아돌건대···.'
아직은 철 말고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철도 풍족한 건 아니었다.
풍족했으면 바로 철로를 깔았을 건데 옹진반도에도 깔 수 없었다.
옹진반도에 순환선만 깔아도 100km가 넘는다.
생산 시설과 총 만드는데 필요한 철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콘크리트 도로만 깔아 이용하고 있다.
철도라는 건 진짜 철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다.
철로라고도 하는 선로는 약하게 만들어도 미터당 40kg의 강철이 필요하다.
고속철의 경우 미터 당 60kg이다.
그러니 철로 1미터만 깔아도 총이 20자루고,
1km면 20만 개, 100km면 2,000만 개의 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철도를 놓는다는 건 시기상조이다.
한마디로 지금 기차를 만들어 운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재령강에 발전소를 만들어도 여기까지 전기를 끌어올 수 없어.'
동전과 탄피를 만들기에도 구리는 빠듯했다.
그런 구리를 써서 전선을 만들 수는 없었다.
대신 철선에 알루미늄을 감아 만들면 되는데, 아직 알루미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이 없다.
'총체적 난국이네.'
이것을 하려고 해도 저것이 없고, 저것을 하려고 해도 이것이 없었다.
고민에 빠진 원.
본사 오 층 발코니에서 왔다 갔다 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한 시간이 넘게 서성거리던 원.
결국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유리와 금속 가공 기술자를 데리고 온 쌍식이.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시발, 이러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 아냐?'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사무실로 들어간 원.
일단 엿을 꿀에 찍어서 먹었다.
“어쩔 수 없군. 화력 발전소 하나 짓자.”
원은 될 수 있으면 한반도에 화력 발전소를 짓지 않으려 했다.
산이 많고 그 사이로 흐르는 물도 충분하기에 수력 발전소만 지어도 충분한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한 발전용 댐을 만들면 홍수 피해도 막을 수 있고, 농사를 짓는 물도 확보할 수 있기에 일거양득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전구를 만들면 써야 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방도가 마땅히 없었다.
그렇다고 풍력발전기나 조력발전기를 만들 기반 기술이 아직 없었다.
결국 원은 ‘증기 터빈’을 이용한 화력 발전소를 만들기로 했다.
이 결정으로 계획보다 훨씬 빠르게 해양으로 진출하게 될 줄은 원도 알지 못했다.
* * *
인조 26년(1648) 1월 18일.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예조판서가 인조에게 아뢨다.
"주상 전하,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말해 보게나."
"전하, 원손(元孫)의 나이가 이제 8세이옵니다. 국본(國本)을 보양하는 도리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조종조의 고사에 의하면 본디 응당 행해야 할 전례(典禮)가 있사옵니다. 그러니 관원을 설치하여 학문을 권면하게 하시옵소서."
예조판서의 말을 들은 인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용상(龍床)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럼 누가 이 조선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냐? 네가 하리?"
"신이 어찌···."
"대책도 없이 원손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거라."
"하지만 학문은 어릴 때부터···."
인조는 예조판서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원손의 학문이 어때서 그런 말을 하느냐. 지금 원손에게 학문을 논할 정도로 원손이 부족하더냐?"
"그, 그런 건 아니옵니다."
예상과 다르게 인조가 다그치자 예조판서는 긴장했다.
"그런데 바쁜 원손에게 학문을 익히라고 하다니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구나."
"아, 아니옵니다."
"원손의 재능은 이 조선뿐만 아니라, 청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원손을 불러 학문을 논하다니 너에게 다른 뜻이 있나 보구나.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 말해 보거라."
인조가 다그치자 예조판서는 당황했다.
"아,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은 단지···.“
”단지, 뭐?“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소신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사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에이!"
원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 미리 손을 써 놓았다.
정초에 인조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말해 놓은 것이다.
조선 법도 상, 세자나 세손 또는 원손은 8살이 되면 성균관에서 입학례(入學禮)를 행하고,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익히게 된다.
그런데 무슨 지랄인지 몰라도 책상도 없이 바닥에 책을 놓고 글을 가르쳤다.
'미쳤냐! 내가 책상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책이나 읽게.'
그래서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효종은 현종에게 책상을 주도록 했다.
반대하는 x선비들.
효종은 성인이 만든 책은 곧 성인이라며 성인을 함부로 바닥에 둘 수 없다고 책상을 사용하게 했다.
아무튼 새해에 원은 다음과 같이 인조에게 기름을 쳤다.
'할바마마, 소손 너무나 힘드옵니다.'
'무엇이 그리 힘들더냐? 혹시 누가 괴롭히더냐?'
'어찌 아셨습니까? 할바마마는 모르는 게 없사옵니다.'
소현세자 일가를 내쳤던 인조지만, 은덩이를 안겨주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원을 끔찍이 아꼈다.
'허허, 그렇고 말고,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히 없지.'
'맞사옵니다. 할바마마. 소손은 항상 할바마마를 존경하옵니다.'
'그래, 누가 너를 괴롭히더냐? 내 가만두지 않겠다.'
원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인조를 바라보며 조그마한 입을 놀렸다.
'소손에게 학문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무리 소손이 나라의 살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학문을 수양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소손에게 학문이 부족하다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할바마마 그들을 혼내주시옵소서.'
'이런! 우리 원손이 영특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누가 감히. 누구냐? 이름을 대봐라.'
'황공하옵니다. 할바마마. 소손은 모르옵니다. 단지 그런 말이 떠돈다고 들었사옵니다.'
'허어, 내 그런 자가 있으면 반드시 혼을 낼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할바마마.'
인조에게 있어 원은 복덩어리였다.
종이와 연필 그리고 은거울을 만들어 부족한 조선의 경제를 살리고 있다.
게다가 예산이 없어 화폐주조도 할 수 없었는데, 나서서 하지 않았는가.
요즘은 광산을 개발하여 나오는 금과 은을 모두 보내고 있다.
이런 원에게 누군가 모함을 하고 있다니 인조는 이를 갈았다.
그런데, 정초부터 예조판서라는 자가 원에게 학문을 논하다니, 바로 이놈인가 했다.
"내, 이번에는 넘어가겠지만, 또다시 원손에게 학문을 논하는 자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알겠느냐?"
"""황공하옵니다. 전하!"""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로써 원은 소중한 시간을 벌게 되었다.
* * *
은동리 연구소 옆에 새로 지어진 커다란 창고.
그 안에서 갑순이와 동식이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꼭 크게 만들 필요 있을까? 그냥 작게 만들어도 실험은 가능하잖아."
"내구성이 문제지. 가동 중에 핀이라도 부러지면 난리 난다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어. 꼭 실물로 만들어 실험해보는 게 좋아."
"언제 실물로 만들어. 그냥 작게 먼저 만들고 성능이 좋으면 크게 만들자."
갑순이가 설계한 도면을 보고 고민하던 동식이.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크게 만들어 실험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산한 바로는 작게 만들어 실험했을 때와 실물 크기로 만들었을 때 받는 힘의 차이는 비교 불가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동식이.
다른 방안을 꺼냈다.
"그럼 나무로 만드는 건 어때? 나무로 만들어 버티면 강철로 만들었을 때도 충분히 버티지 않을까?"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합의가 끝나 둘이 돌아서는데.
"어디 도면 좀 보자."
""사장님 오셨습니까""
원이 쌍식이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도면을 본 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크게 만들면 베어링이 버틸 수 없을 거다. 동식아. 베어링이 받는 하중을 계산했느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베어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다. 네가 착각했구나. 아직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2미터나 되는 터빈을 돌릴 수 없다. 그러니 1미터짜리로 여러 개 만들도록 해라."
원은 증기 터빈에 관해 설명하면서 직경 1미터짜리 터빈을 예로 들었는데, 천재들은 반지름 1미터짜리로 알아들었다.
'1미터짜리 터빈이라 해도 1MW는 충분하지.'
원은 21세기에서 사용하는 증기 터빈 발전기는 생각지도 않았다.
수백MW에서 1GW까지 출력을 내는 21세기의 증기 터빈 발전기.
터빈의 직경만 해도 10미터가 훨씬 넘고, 열효율은 38%에 달했다.
증기기관의 열효율이 10% 정도이니.
'15%만 나와도 충분하지.'
원은 아직 효율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안전하게 작동만 되면 충분하다고 봤다.
"1미터짜리로 다시 계산해 보겠습니다. 사장님."
"그래 수고해라."
갑순이와 동식이를 격려하고 돌아서서 나가는 원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싸장님!"
'아니 저놈까지!'
원은 죄 없는 쌍식이를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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