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발전(2)
수력을 이용한 강력한 교류발전기.
드디어 튼튼한 놈으로 만들어 냈고, 은동 저수지의 물을 이용해서 가동했다.
펑펑 흘러나오는 고출력 전기 에너지.
‘이제 전기로 뭐든지 녹일 수 있다.’
토머스 전로로 품질 좋은 강철을 생산해서 갈수록 성능 좋은 공작기계를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자주 부러지는 날도 특수강을 사용하면 해결된다.
조그마한 손을 꽉 쥔 원.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준비는 끝났어!"
그동안 얼마나 가슴 조였던가.
혹시라도 인조나 x선비들이 미친 짓을 벌일까 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여차하면 백령도에 있는 경비대를 투입해서라도 싹 쓸어버릴 생각까지 했다.
요즘 들어 정기적으로 주는 뇌물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알지.'
처음에는 공돈이 생기자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던 x선비들.
이제는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쌍년이가 수장으로 있는 조서원.
한양은 물론 큰 고을에 기방, 주막, 여관을 지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뇌물이 적다고 투덜대는 x선비들이 원을 엿 먹이려 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원을 곤란하게 만들 일을 모의했다.
그런데 김육이 화폐를 발행하자는 말을 꺼내자 원에게 맡기자고 했다.
한마디로 엿 먹이려 했던 것이다.
'니들은 다 뒈졌어.'
쌍년이가 그들의 치부를 전부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날려 버릴 수 있다,
원은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쌍식아, 분점은 어떻게 돼가냐?"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지역에 만평 이상 땅을 모두 매입해 놓았습니다. 한양부터 공사를 시작해도 될 듯합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전부 쌍년이가 한 일입니다."조선전력공사의 정보원인 조서원.
수장인 쌍년이는 이재에 밝았고 치밀하고 꼼꼼했다.
그녀는 요원들을 보내 조선전력공사 분점이란 이름으로 각지에 넓은 땅을 사들였다.
물론 입지를 선정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원은 한양에 분점을 지을 땅을 찾아봤다.
나중에 기차역이 들어설 땅이기에 현대의 서울역 자리와 용산역 중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역 자리는 한성과 삼남 지방을 연계하는 병조 직할 파발마를 관리한 곳인 청파역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용산 일대 땅을 거금을 들여 모두 사들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철도를 놓으면, 기차역이 될 조선전력공사 분점.
바로 앞에 장터도 개설할 생각이다.
왜란과 호란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조선.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많았다.
'아직은 놀 때가 아니야.'
원은 조선 백성들이 그냥 놀고 있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아도는 인력.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새로 만든 황동화를 줄 것이다.
'화폐를 발행해도 환전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 그리고 돈은 돌고 돌아야 해.'
분점과 물류 창고를 짓는 일을 시키고.
일당으로 황동화를 주고.
공사 현장 옆에서 바로 쌀로 교환하게 하고.
남은 돈이 있다면 분점 앞에 있는 장터에서 쓰게 만들 생각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고 동전을 사용하지.'
또한 '조선은행'을 만들어 화폐 발행, 관리, 보관 업무도 할 생각이다.
더는 쌀과 면포로 물물교환을 하지 못하게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너무 두껍고 촘촘해서 입지도 못하는 면포도 문제지만, 쌀은 더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쌍년이를 통해 알아보니, 보관 부실로 썩어가는 쌀이 어마어마했다.
'미쳤지.'
쌀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곳간에 쌓아 놓고 풀지 않았다.
나중에 쌀이 썩으면 그 쌀을 빌려주고 햅쌀이 나오면 이자까지 쳐서 받았다.
'죽일 놈들. 모두 망할 줄 알아라.'
원은 물류 창고가 완성돼도 쟁여 놓을 쌀이 없을 경우를 대비했다.
쌀을 수확하고도 팔지 않으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남명에서 대량으로 수입할 생각이다.
아직 명나라는 완전히 망하지 않았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황제에 올랐으나 곳곳에서 기근이 돌고 봉기가 일어났다.
또한 청나라도 수시로 공격해 왔다.
하지만 숭정제는 제갈량에 비견되는 원숭환(袁崇煥)을 의심하고 죽였다.
그 틈을 노린 농민군의 영수인 이자성(李自成)이 서안을 점령하고 대순(大順)을 세웠다.
1644년 결국 숭정제는 이자성이 북경으로 쳐들어오자 매산(煤山)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찌 보면 명나라는 청의 침공으로 망한 것이 아니었다.
내부 반란 세력인 대순이 명을 멸망시킨 것이다.
아무튼 명나라가 망하자 명나라의 황족과 관료들이 남경에 남명(南明)이란 나라를 새로 세웠다.
'남명이 망하면 안 되지.'
원이 급하게 서둘렀던 이유 중 하나는 명성왕후였고, 또 다른 이유는 남명이었다.
"고려천자 만력제의 대를 끊어지게 할 수는 없지. 그러니 반드시 남명을 살려 놓아야 해."
이 말은 그냥 x선비들을 위한 핑계이고,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원은 명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영력제(永曆帝) 주유랑에게 예수회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다.
또한 수석총과 흑색화약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웬만한 기술을 건너뛴다고 하더니 뭔 말인가.
다 이유가 있었다.
'적이 될지도 모르는데 좋은 걸 줄 필요는 없지.'
이제는 강철보다 연철 만드는 것이 더 힘들다.
그래서 베세머 전로에서 나오는 황과 인이 많고 적당히 약한 강철로 수석총을 만들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강철 수석총을 들고 온 쌍식이.
뭔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장님. 이따위 총은 쓸 때도 없다면서 왜 만드시는 겁니까? 그것도 많이요."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어디다 요? 조정에 줘봐야 돈도 주지 않을 건데요."
이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따져 묻는 쌍식이.
조선전력공사의 최초 직원이자 이인자다.
쌍식이는 초기에 연필과 종이를 만들면서 실험까지 도맡아 하느라 무지 굴렀다.
덕분에 정승 부럽지 않은 위치에 올랐다.
그렇다 해도 쌍식이는 항상 원을 존경하고 무서워했다.
그런 쌍식이가 이렇게 따지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그동안 듣고 본 것이 있어서이다.
개가 아닌 사람인 쌍식이.
원이 천재들을 교육할 때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옆에 있었다.
교육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거침없이 묻고 또 묻고 따지기까지 하는 천재들.
그래서 쌍식이도 이렇게 이해가 안 되면 따져도 되는 줄 아는 것이다.
쌍식이는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항상 원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쌍식이는 사장님이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몰리브덴이란 석탄처럼 생긴 은을 캐내고 있다.
그걸 철과 섞어서 빠지직거리는 전기 아크로에 넣고 녹여서 특수강을 만들었다.
특수강을 가공해서 다양한 툴을 만들었다.
신기했다.
아무튼 새로 만든 툴로 강철로 만들어진 쇠막대를 자르고, 공작기계인 선반으로 구멍을 뚫었다.
신기하게 강철이 잘도 잘리고 잘도 뚫렸다.
또한 특수하게 생긴 긴 드릴로 강선이라는 것도 팠다.
흑연을 첨가한 절삭유라는 것도 만들어 가공 시 사용하고 있다.
정말 사장님은 씨가 다른지 어린데도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데 전하와 세자께서도 이런 걸 알까?'
쌍식이의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아무튼 사장님 말에 의하면 앞으로 쓸 총이라고 하는데 신기했다.
앞뒤로 뻥 뚫린 쇠막대가 총이라니.
화약은 어디에 고인단 말인가.
양쪽이 뚫렸으니 흘러내릴 건데.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종이로 감싼 총알과 화약을 뒤에서 넣고 쏘는 총이라는 걸.
레버라고 하는 것을 앞으로 젖히고 드러난 총구에 종이 탄약을 넣고 쏠 수 있는 총.
사장님은 후장식 총이라 했다.
그런데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나가지 않았다.
아믹(암스트롱 믹스쳐)이라는 뇌관을 넣어 만든 조그마한 황동으로 된 뚜껑을 꽂고 쏘면 탕 소리와 함께 바로 발사됐다.
정말 신기했다.
'조1 소총'이라 부르는 새로운 총은 만드는 족족 백령도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백령도에서 쓰던 수석총은 모두 금군(禁軍)에게 보냈다.
하지만 총값을 준다고 말만 하고 주지 않았다.
사장님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쌍식이는 아니었다.
몇 번이나 독촉했지만, 돌아온 답은.
'나라 살림이 어려워서···.' 였다.
사장님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재정이 풍부하다고 알고 있는데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좋은 총을 만들고 있는데, 사장님은 또 다른 총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강선도 없는 수석총을.
필요 없다고 수석총은 금군에 다 줘버리지 않았나.
강선이란 게 있어야 더 멀리 가고 명중률도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쌍식이.
너무나 궁금했다.
"바다 건너에 팔 거다."
"예?!"
"아무튼 그런 줄 알고 열심히 만들어 놓아라. 굳이 좋게 만들 필요는 없다."
"예, 알겠습니다."
"총알과 화약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알겠냐?"
"네, 사장님."
돌아서서 나가는 쌍식이.
들고 있는 총을 보며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이따위 총을 누가 쓴다고.'
예수회를 통해 수입한 수석총보다 훨씬 좋았지만, 조1 소총에 비하면 쇠막대나 다름없었다.
자기 같아도 조1 소총을 쓰지, 이따위 총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참, 쌍식아."
"네, 사장님."
"날 잡아야 하지 않느냐?"
"네?!"
"국수가 먹고 싶구나."
밀가루가 귀해 잔치 때나 먹는 국수.
모든 것이 풍족한 조선전력공사에서도 누군가 결혼하는 날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저···."
"다 알고 있다. 언제든지 네가 원하는 날로 잡아라. 가정을 이룰 때가 지나지 않았느냐."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낼모레면 18살이 되는 쌍식이.
노총각이다.
쌍식이는 두 살이나 많은 쌍년이와 자주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다.
몰래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이 알고 계셨던 거다.
"다 큰 놈이 울기는."
"아, 아닙니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서 나가는 쌍식이.
왠지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심양까지 끌려가 머슴살이했는데, 이제 사또는 물론 대감들도 쌍식이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조선전력공사의 실질적인 이인자인 쌍식이를 누가 감히 막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항상 몸을 사렸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놈도 여차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쌍식이도 직접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이는데 가담한 적이 있었다.
어리고 작은 사장님.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그런 일을 시키시는 분이시다.
역시 씨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장님이 자신을 챙겨주고 있다니 감동해서 그런지 쌍식이는 희죽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난다는데.
* * *
사실 반도체의 기본 재료인 단결정 실리콘을 얻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빌어먹을 눈곱만한 것만 있어도 되는데."
작더라도 순도 높은 실리콘만 있으면 그때부터는 게임 끝이다.
인상법(CZ, 초크랄스키법)으로 단결정 실리콘을 무진장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꿀에 떡을 찍어 올리듯 순도 높은 단결정 실리콘으로 도가니에 녹아있는 다결정 실리콘을 서서히 잡아 올려 단결정 실리콘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튼 끌어 올려서 만들기에 인상법이라 부른다.
플로팅 존법(FZ법)도 있지만, 아직 기술이 안되 쓸 수 없었다.
모래밭에 굴러다니는 천연 규석(실리콘)을 고순도 다결정 실리콘으로 만드는 건 복잡하지 않았다.
원은 천연 규석(SiO2)을 탄소로 가열하여 얻은 순도 98%짜리 다결정 실리콘 덩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을 염화수소(HCI)로 고온에서 반응시키면 트리클로로실란(SiHCI3)를 만들 수 있지.'
염화수소는 황산과 염화나트륨(소금)을 섞는 만하임 공정으로 얻을 수 있다.
다시 트리클로로실란을 수소가스와 환원하면 높은 순도의 다결정 실리콘, 즉 폴리실리콘을 얻는다.
"그냥 태양 전지판부터 만들어 버려?"
다결정 실리콘은 단결정 실리콘보다 훨씬 낮은 도전성과 전기 전도가 높아서 태양전지판의 기본 재료로 쓰고 있다.
말은 간단하지만 여기까지는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본적인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초정밀 가공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실험장비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연구소 실험실.
그곳에서 연구원들은 순도 높은 단결정 실리콘을 얻기 위해 오늘도 똑같은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원이 끈기 있는 애들을 뽑은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아쉬운지 다결정 실리콘 덩어리를 들고 만지작거리는 원.
그 옆에서 머리를 끄적이는 쌍식이.
"너, 실험실 안에서도 그러냐?"
"아닙니다. 사장님. 이러면 큰일 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미세먼지도 순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반도체 실험실에 들어갈 때는 풀 먹인 하얀 천으로 된 보호 옷으로 감싸고 들어간다.
그런데 머리를 뻑뻑 긁으면.
난리 나는 것이다.
연구소 반도체 실험실에서 청결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아무튼 단결정 실리콘만 만들어 내면 그때부터는 할 일이 더욱 많았다.
생각에 사로잡힌 원이 중얼거렸다.
"어디 괴벨스 같은 놈 없나?"
"괴벨스요?"
쌍식이는 궁금한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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