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1화 (11/275)

11. 점검(4)

몇 년 전부터 유성이 곳곳에서 떨어지고 지진이 발생했다.

거기에 홍수까지 나자 민심이 흉흉했다.

원 덕분에 조선에 은과 쌀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그뿐이었다.

사실 조선에 흉년이 들렀다 해도 먹을 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백성 대부분이 벼농사만 짓고 있는데 그동안 생산된 쌀을 다 먹었을까.

아니었다.

곳간에 쌀이 썩어나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이 생각하는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세제도였다.

‘개판이 따로 없지.’

한양과 큰 마을 말고는 상평통보가 유통되지 않았고, 그것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쌀이나 면포로 거래가 되었고, 쌀은 곧 돈이라 누가 굶어 죽는다고 해도 풀 이유가 없었다.

유통도 문제였다.

삼남에서조차 생산된 쌀보다는 특산물을 대신 진상하라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김육이 대동법(大同法)을 주장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토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결(3270평)당 12두(1두=18L, 18kg 정확한 것 아님)의 쌀을 세금으로 거두었다.

또한 산간 지역 등 쌀이 잘나지 않는 지역은 특산물을 바치게 했다.

쌀 수확량이 현대와 다르기에 정확한 계산은 힘들지만, 고려해서 계산해도 논 1결당 80가마가 나온다.

그런데 세금으로 1가마, 많아야 3가마라니.

‘시발, 이러니 나라가 돌아가냐!’

1결당 30가마만 나온다고 해도 21세기 세금에 비하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주에게서 세금을 많이 받을 수 없자, 조정은 가난한 백성들을 쥐어짜며 갈다시피 했다.

오죽했으면 노비가 되는 것이 더 행복했겠는가.

세금과 병역의 의무가 없는 노비.

생각과 다르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죽겠다고 죽는소리를 하는 양반과 지주들.

700명의 노비를 거느렸던 윤선도만 보더라도 얼마나 큰 재산을 굴리고 썼는지 알 수 있다.

전라도 보길도의 부용동과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는 윤선도.

세금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하지만 이것도 양반과 돈 많은 지주에게나 해당되었다.

작은 농지에서 벼를 재배하는 백성에게 특산물을 바치라고 하는 일이 많았다.

쌀로 세금을 받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고, 특산물로 받으면 방납을 대신하여 중간에서 착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은 모두 뜯어고칠 생각이다.

거의 없는 세금도 내기 싫었던 양반과 지주들.

대동법을 반대했다.

쌀은 곧 돈이었기에 거부했던 거다.

'그러면서 나라와 임금과 백성을 논해?‘

원은 나중에라도 그런 말을 하는 관료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방납 업자들과 짜고 고스톱을 치는 탐관오리와 군관들도 한몫했지.'

이씨 조선이 들어서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대부들.

그들은 왕 알기를 엿같이 알았다.

‘조선이 가난한 이유는 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다는 양반놈들 때문이야.’

돌아가는 내용을 알게 된 원.

화가 치밀었다.

원이 종이와 연필 그리고 은거울을 팔아서 은덩이와 쌀을 가져왔지만,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대부를 위시한 양반과 지주들이 판을 치는 조선.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나라는 가난하고, 조정은 백성들만 수탈하고, 당하는 백성들은 굶주려야만 했다.

다행히 조선 왕조 이후 천대받는 서북지역은 원 덕분에 기근을 면했다.

그건 바로 감자 때문이었다.

요즘 감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없는 감자였지만,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자랐기에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대부분 감자를 뿌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감자는 줄기의 마디이다.

한마디로 풀대기의 혹인 것이다.

식물학적 용어로 괴경(塊莖)인 감자.

덩이줄기라는 뜻이다.

이렇게 좋은 감자도 문제가 많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기적 같은 구황작물이지만, 평지나 고온 다습한 곳에서 상시 재배하면 병해에 취약하다.

‘그래서 아일랜드에 감자 대기근이 발생하고 미국에 백인들이 엄청나게 들어왔지.’

또한 수분이 많아 무거워서 운송이 힘들고 쉽게 썩거나 얼어버린다.

'싹이 난 감자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고.'

아무튼 이런 문제로 삼남에서는 감자를 재배하지 않았고, 구황작물 역할을 하지 못했다.

원은 손에 든 보라색으로 된 못난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이걸 이제야 손에 넣다니.'

임진왜란 후 고구마가 들어온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래서 경상 대방에게 말하여 일본에서 가져오라고 했다.

고구마는 영조 59년(1763) 조선 통신사 조엄이 가져왔다.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목격하고 이듬해 제주도와 동래 부 영도에서 기르기 시작해 퍼트린 거다.

달달한 고구마.

매콤한 김치와 먹으면 최상이다.

그래서 고추도 찾고 있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소인이 되려 감사드립니다."

"재미 좀 봤구나."

"그렇습니다. 종이도 종이지만 손거울 인기가 대단합니다."

원은 상단에 은 1냥을 받고 손바닥만 한 거울을 팔았다.

경상은 그걸 일본에 가지고 가서 3냥을 받고 팔았으니 대방에게는 원이 조상이나 부처님보다 더 위급이었다.

"앞으로도 유황이나 구리, 희귀한 광물이나 작물이 있으면 무조건 가지고 오너라."

"네, 사장님."

일이 끝났으니 나가봐야 하는데, 경상 대방이 머뭇거렸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소인 송구스럽지만, 저희 상단의 이름을···."

"이름이 어때서?"

"바꾸고 싶습니다."

"바꾸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리기만 하는 대방.

"답답하구나. 어서 말해 보거라."

"···저희 상단 이름에 공사를 붙여도 될는지요."

이제야 뜸 들인 이유를 알게 된 원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건 안된다. 공사는 오로지 나만이 쓸 수 있다. 그리고 네 상단 이름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대신 상사는 어떻냐? 경강상사. 부르기도 쉽지 않느냐."

대방은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바닥에 엎드려 넙죽 큰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됐다. 앞으로는 이러지 말거라.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알고."

물론 원이 있는 곳은 깨끗했지만, 현대인의 기억을 가진 원에게는 아니었다.

"송구합니다."

경상의 대방은 사장님이란 말이 듣기에 참 좋았다.

아마 거상 중의 거상인 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상단 내부에서는 사장님이라 부르라 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조선전력공사란 이름도 좋았다.

하지만 함부로 쓸 수 없는 것.

원에게 허락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경강상사(京江商社)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모일 사(社)자를 달고 이젠 정식으로 사장이란 말을 들게 된다는 생각에 대방의 입꼬리는 한없이 올라갔다.

아무튼 조선 최초의 상사가 탄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성상사, 의주상사, 평양상사, 동래상사가 줄줄이 생겨났다.

대방 모두가 사장님이 된 것이다.

또한 계장, 과장, 차장, 부장, 실장이라는 명칭도 서서히 퍼져나갔다.

모두가 장(長)자를 달고 싶었나 보다.

* * *

원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한양을 오가고 있었다.

누가 찾아오는 것보다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원은 외부에서 누군가 방문하면 보여주기용 본사에서 만났다.

그곳에는 머리를 깎거나 자르지 않는 외부 활동을 하는 직원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전기로 도금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납 축전기를 만드는 데 필수인 묽은 황산.

도금하는데 필요한 전해액(Electrolyte)이다.

'이것도 문식이 때문이지.'

문식이 때문에 전공과 상관없는 별 이상한 것을 다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썩 먹게 될 줄이야.

구리 도금한 장식을 부착 한 수석총을 들고 원을 호위하는 옹진십팔동인.

한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혹시나 금으로 만든 걸로 오해를 살까 봐.

인조에게는 진짜 금도금한 수석총을 선사했고, 아버지에게는 은도금한 수석총을 드렸다.

물론 아버지의 호위인 용만팔장사에게도 은도금한 수석총을 하나씩 안겨 주었다.

원은 아버지의 안전을 중요시했다.

그가 생각한 계획에는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금도금과 구리도금은 확연한 색 차이 나기에 원의 호위들이 들고 있는 수석총이 구리로 만든 것인지 한양사람들은 이제 다 안다.

'뽀다구는 크롬 도금이 짱인데.'

도무지 크롬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예수회에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다.

'스테인리스 만들기는 다 틀렸네.'

한반도 주변에 크롬 광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크롬을 분리해 내는데 필요한 부선제를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희토류 생산하는 것처럼 엄청난 물과 온갖 다양한 화공약품을 퍼부어서 실험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그러다 논이 다 오염되면 큰일이지.'

옹진반도는 생각보다 농사지을 곳이 많았다.

이제는 자체 생산한 것만 가지고도 수만 명이나 되는 조선전력공사 직원들을 먹일 수 있었다.

그래서 수입하는 쌀은 모두 외부로 유통하고 있다.

'아무튼 쌀은 계속 수입해야 돼.'

전란 후라 엉망이 되어버린 조선 농지.

이제 서야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원은 쌓여만 가는 은덩이만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은값은 계속 떨어지는데.'

될 수 있으면 금덩이로 대금을 지급하라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리 오너라!"

옹진십팔동인 한 명이 큰소리로 외치자 누군가 대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뉘시오?"

예조판서 대감의 머슴이라 그런지 퉁명스러웠다.

"원손께서 오셨다. 어서 문을 열거라."

"네, 네."

원은 안으로 들어서며 혹시나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는지 살폈다.

'이쁘면 어떡하냐? 아니야! 그래도 안 돼. 절대 안 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원.

어처구니없지만, 그가 개발을 서두른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금까지 원은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건너뛴 짐바브웨같이 웬만하면 기술 발전을 건너뛰고 있다.

물론 증기기관보다 열식기관인 스털링 기관이 만들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 개발하며 호로자식들과 고아들을 모아 가르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왕손이었던 원이 이렇게 조선전력공사를 세우고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천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호란을 겪은 조선이 개판이 되었고 사대하던 명나라가 망했기에 가능했던 거다.

인조와 x선비들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외치지 않았고 원이 종이와 연필을 만들어 팔 수 있었던 것도 호란으로 인해 조선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운이 따랐기에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지만, 삐끗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원이 급하게 서두른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명성왕후였다.

현종을 공처가로 만든 여인.

후궁조차 두지 못하게 한 왕비.

대왕대비가 살아 계신 데도 장희빈을 쥐잡듯 잡은 대비.

바로 김육(金堉)의 손녀였다.

원은 그녀와 절대 결혼할 수 없다는 마음에 지금까지 열심히 실적을 쌓았던 거다.

현종의 부인이었던 명성왕후의 지랄 같은 성격을 이어받은 후손들.

끝내 대가 끊기고 말았다.

물론 성격이 유전된다고 밝혀진 건 없다.

하지만 자라면서 부모의 성격을 닮아가는 건 사실이다.

그걸 알고 있는 원이기에 아무리 예뻐도 절대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원은 당당히 자신이 고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후궁도 많이 둬야지.’

또한 원의 계획에는 많은 여인과 결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밝혀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사실 공식이나 문식이는 예쁜 것을 따지지 않았다.

둘 다 여자를 사귀어 본 적도 없고 대학교 때 군대를 갔다 온 후, 소개팅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둘의 생각은 여자란 그저 오빠라고 친근하게 불러주는 생물학적 여자면 충분했다.

아무튼 전생과 달리 미소년으로 다시 태어난 원은 자주 거울을 보며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사랑방에서 김육과 마주한 원.

서로 인사를 한 후 덕담을 나누었다.

"부탁드립니다. 각하께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참선비 김육.

후손은 세도를 부렸지만, 그는 아니었다.

김육은 원을 각하라 불렀다.

조선 법도 상 세손에게 칭해야 하는 각하.

아직 세손 책봉을 받지 않은 원손에게 각하라니.

원이 사양했지만, 마땅한 명칭이 없기도 하고 부탁하는 처지였기에 김육이 높이 부른 것이다.

"음···."

어린아이답지 않게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원.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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