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화 (10/275)

10. 점검(3)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백령도 사령부.

다른 곳과 달리 벽돌을 두 겹으로 쌓아 올려 단단하게 지어졌다.

중세 유럽의 성처럼 지어진 사령부.

대포 공격을 받더라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철근콘크리트로 짓고 싶었지만, 아직 철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포틀랜드 시멘트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알아도 배율을 모른다.

시멘트를 만들고 있지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고 테스트하고 있는데 더 강한 시멘트 제조법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령부 옥상에 경계를 서고 있는 대원들.

요철 사이마다 수석총을 들고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서늘한 사령부 안.

대대장 이상 장교들이 모여있다.

둥글고 큰 원탁에 둘러앉아 있는 대대장들.

원탁 위에 놓인 푸짐한 음식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손을 대지 않았다.

원은 원탁의 기사를 본떠서 사령부 회의실을 원탁으로 만들라고 했다.

정 중앙 비어있는 높은 의자에 앉은 원.

뒤에는 옹진십팔동인들이 굳건히 서 있었다.

"모두 수고했다. 먹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원은 바로 옆에 앉은 정용식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다. 용식아."

"아닙니다. 사장님."

1만 명이 넘는 경비대를 이끄는 장군이나 다름없는 정용식.

처음 사장님을 만나 교육을 받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 하나로 살아온 삶.

양갓집 규수로 태어나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

혹시라도 만나면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어울리다 보니 가슴에 뭉친 응어리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렇다 해도 청나라에 대한 원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생하신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응징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항상 다정하신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사장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부처님이었다.

그런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멸!

그 멸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장님에게 함께 교육을 받았던 동료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났기에 사단장이 되었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것은 같았다.

그건 바로 멸(滅)이었다.

"대원들 총기 교육은 잘되고 있느냐?"

"네, 순서대로 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모았느냐?"

"현재 백발백중 사수는 백 명 정도입니다."

대원들은 예수회를 통해 수입한 수석총(燧石銃)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많은 양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훈련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뛰어난 대원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플린트락(Flint Lock).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이 움직여 격발되는 총이다.

강선이 없는 총인 머스킷 중에서는 끝판왕이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17세기 말에 가서야 대중화되었다.

수석총과 달리 뇌홍을 이용한 퍼커션 캡부터는 강선이 있고, 그래서 라이플(소총)이라 불렀다.

총구에 선을 새겨 넣는 강선.

총알을 회전시켜 날리기에 멀리 정확히 날아가게 만든다.

수발총(燧發式)이라고도 부르는 수석총은 비가 많이 오면 사용이 힘들다.

그래도 불이 꺼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하는 화승총에 비하면 최첨단이었다.

아직 조선에는 수석총이 없었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원인 하멜이 탄 배가 표류하다 제주도에 난파했다.

그때 조선에 수석총이 들어왔다.

조선은 박연과 하멜 일행에게 수석총 개발을 시켰다.

'그래봐야 쓸데없는 짓이지.'

한반도에는 수석총에서 가장 중요한 소모품인 부싯돌을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격발 시 자동으로 화약 접시를 열게 하는 강력한 스프링도 필수였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발은 했지만, 불발이 많아 포기하고 쓰지 않았다.

원은 예수회를 통해서 벌써 수석총을 들여왔다.

수석총은 가끔 불발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부싯돌 관리만 잘하면 문제 될 것이 별로 없다.

수석총은 비가 많이 오지만 않으면 격발 전까지 화약 접시가 닫혀 있기에 쓰는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화약을 접시에 붓기도 힘들고 부싯돌이 젖으면 불발되기에 사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원은 수석총을 많이 수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수입한 수석총이 1천 정이나 되었다.

원은 나중에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면 모두 조선군에게 줄 생각이다.

"특등 사수라 부르고 별도로 보조 두 명을 더 붙여 총을 쏘는 일에만 전념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격이란 게 열심히 한다고 명사수가 될 수 없다.

타고 나야 했다.

그렇게 타고나 명사수를 벌써 백 명이나 찾아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줬기에 가능했던 거다.

잘 키운 저격수가 전장에서 어떤 위력을 낼 수 있는지 잘 아는 원.

백 명이나 되는 특등 사수 관리에 최선을 다하라고 명 했다.

예비 대원들은 나무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야 총이 지급되면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일치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식훈련은 꼭 해야만 한다.

개인의 무력은 티도 안 나는 대규모 전쟁.

그것도 총을 사용하는 전장에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는 승리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단장 정용식은 대원들의 훈련 내용을 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대원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도 말했다.

예수회를 통해 수입해 온 수석총으로 돌아가면서 격발까지 해본 대원들.

총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지금까지 봤던 심지에 불을 붙여 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아쇠만 당기면 격발되는 사용이 편리한 수석총.

그러니 한참 새로운 기물에 호기심이 많을 나이인 대원들은 자신만의 수석총을 갖고 싶어 열광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줄 수 없는 일.

명사수가 아니라면 사격 훈련 때만 만질 수 있었다.

아무튼 항시 총을 들고 다니는 특등 사수들을 대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특등 사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대장들이 즐겁게 음식을 먹는 가운데 원은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빨리 특수강을 만들어야 하는데.'

탐광 꾼을 보내 옹진반도와 해주시 근처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기억에 의하면 특수강을 만드는 몰리브덴 광산이 그곳에 있었다.

'아, 시발. 더럽게 못 찾네.'

숯처럼 생긴 은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아직 발견했다는 소식이 없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찾으러 다니고 싶었지만, 신체적인 조건과 사회적 지위 때문에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다.

"무슨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원이 인상을 찌그리자 정용식이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다. 아무튼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모두에게 정말 좋은 총을 지급해 줄 거니."

"지금 있는 것도 대단합니다."

원은 고개를 확 돌려 정용식을 쳐다봤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교육 한 전술은 저따위 총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명심해라! 우리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무조건 일당백을 넘어 일당천이 되어야 한다. 알겠냐?"

갑자기 원이 정용식을 다그치자 모든 대대장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멋쩍어진 원.

조용히 말했다.

"모두 앉아라. 우리끼리 있을 때는 너무 딱딱해질 필요 없다."

"""넵!"""

딴생각하다가 화를 내서 분위기를 망친 원.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원은 아직 어려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원 앞에서 술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또한 원이 한 말이 있기에 술이란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원은 경비대 안에서는 일절 음주를 금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대신 휴가를 받아 용기포에 가서 마음껏 술을 마시라고 했다.

"받아라. 술값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연구소장이 있을 때는 회식 자리가 싸늘했다는 것을 알기에 용무를 마친 원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원이 떠나자 대대장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긴 대대원 전원은 오늘 용기포에 가서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위바위보가 농구 경기보다 훨씬 치열했다.

* * *

백령도에서 오랜만에 대규모 잔치가 벌어졌다.

그것도 전부 육식이었다.

그동안 키워왔던 조그마한 조선 돼지들을 모두 잡았다.

조선 땅에서 자라는 것은 모두 우성인지 조선만 오면 뭐든 작아졌다.

지금 원이 타고 다니는 말도 정말 작았다.

키 큰 성인이 타면 다리가 땅에 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원은 혹시라도 씨가 섞일까 봐 백령도에 있는 조선 돼지를 모두 잡으라고 지시했다.

주로 생선과 두부를 먹어 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돼지와 닭이 나왔다.

닭도 그냥 닭이 아니라 기름에 바싹 튀겨진 통닭이었다.

앞으로 서양에서 가져온 돼지와 닭이 많아지면 자주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쌀밥에 고깃국만 먹어도 소원이 없다던 어린 대원들.

"""사장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 전에 항상 감사를 외쳤다.

"본사에 가본 적 있냐?"

"없는데, 대단 하다며?"

"그럼, 그곳에 가면 집이 다섯 겹으로 되어 있다."

"에이 말도 안 돼. 집이 어떻게 다섯 겹이야."

"정말이라니까."

직접 봤기에 자신 있게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 주질 않았다.

황해도 옹진군 은동리.

수대산 줄기를 따라 산으로 둘러싸인 은동리는 천연의 요새였다.

주변에는 다양한 광물을 품고 있는 광산이 있기에 심시티 하기에도 최적이었다.

원은 그곳에 큰 건물을 짓고 조선전력공사 본사라 했다.

또한 본사 옆에 연구소도 지었다.

비록 5층과 3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복층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조선에서는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조선 최초 건물인 본사와 연구소.

잘 지어졌지만, 원은 못내 아쉬웠다.

이제야 토머스 전로에서 강철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옥탑방처럼 보이는 본사 건물 5층.

원은 발코니로 나와 북서쪽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지 수은 정류기라도 써야지."

수은과 아크방전의 특성을 이용한 수은 정류기.

수동식이지만 교류를 직류로 만드는 정류 기능이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강력한 교류 발전기에 일단 쓸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은동리 북서쪽 산에서 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주변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어려워 찾아온 사람들을 모두 투입해서 하는 공사다.

원은 공사가 거의 끝나간다는 보고를 받았다.

인조 25년(1647) 6월.

홍청도(洪淸道) 금강(錦江)이 넘쳐 민가가 침수되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있었다.

황해도에도 큰물이 졌는데, 연안(延安), 배천(白川) 등 여러 고을이 크게 수재를 입었다.

그런데 은동리에 있는 조선전력공사 본사에서 원이 기뻐하는 말이 들렸다.

"정말이냐?"

"네, 사장님."

얼마 전에 완공한 북서쪽에 있는 은동 저수지.

언제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폭우로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찼다.

수력 발전을 위해 만든 댐은 끄떡없었다.

그러니 원이 기뻐할 수밖에.

"고생했다. 쌍식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미분과 적분을 기가 막히게 풀어내는 수학과 기하학의 천재 미순이에게 은동 저수지 댐 설계 계산을 맡겼다.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처음 은동 저수지 공사를 시작할 때 말이 많았었다.

어린아이가 그것도 여자아이가 설계된 종이를 들고 설치자 잔뼈가 굵은 목수들이 재수 없다며 항의했다.

그래서 바로 돈도 주지 않고 쫓아 버렸다.

'어디서 감히!'

몇 번을 그렇게 하자 소문이 났는지 미순이를 업신여기는 목수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조선전력공사의 임금은 다른 곳보다 반이 더 많았고, 먹을거리 또한 풍족하게 줬기 때문이다.

'돈 앞에는 장사 없지.'

원은 물이 가득 찼다는 6리(2.4km)가 넘는 거대한 호수 같은 저수지를 보고 싶었다.

어떤 곳은 홍수가 나서 난리가 났는데, 은동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다니.

한동안 전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조선 팔도에 남아도는 게 인력이라 밥만 먹여주면 일할 사람은 널려 있었다.

사실 원은 은동 저수지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주변 마을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굶고 있는 백성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무상으로 줄 순 없어서 저수지를 만들 곳을 찾고 일을 시킨 거다.

"쌍식아, 미순이에게 상금을 주도록 해라."

"네, 사장님. 그런데 미순이가 부모를 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 어디서 왔는데."

"전라도에서 잡혀 왔다고 합니다. 고아가 아닌데 막무가내로 잡아 왔다고 하네요."

"헐!"

어쩐지.

고아라고 데리고 온 아이 중에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확인되는 대로 돌려보냈다.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거냐?"

"미순이네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기 입이라도 덜어야 동생들이 더 먹을 수 있다고···."

대충 뭔 소린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시켜 당장 미순이네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와라."

"네, 사장님."

미순이는 기하학과 수학에 천재인 아이다.

그런 아이는 현대에서도 찾기 힘들 거다.

영재 교육에 뽑혀 왔을 때도 한글과 숫자를 1각도 안 돼서 깨우쳤다고 했다.

직접 가르칠 때도 너무나 영리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댐이나 반도체 설계에 꼭 필요한 ‘유한요소법’도 별도로 가르쳤다.

'시발, 나 아니었으면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거 아냐.'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와 같은 아이들을 모아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뜻하지 않는 횡재가 계속되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았다.

기회가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묻힌 사람들.

조선뿐만 아니라 중세 어느 곳에나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특히 여자를 무시하는 조선은 논할 필요조차 없었다.

원의 생각은 단순했다.

남녀노소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있으면 그만큼 대우해주며 부려 먹을 생각이다.

능력이 없어도 성실만 하면 먹고사는데 걱정 없게 해줄 거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일하지 않으면 내칠 수밖에.

'시발, 나부터 구르는데. 감히.'

태어나서 눈 뜨기 전부터 자신을 굴렸던 원.

그 누구도 놀고먹는 꼴을 볼 수 없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