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점검(1)
슬픈 이야기지만, 청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돈 많은 집안의 여인이라면, 몸값을 지불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맨발로 압록강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왜란 때도 겁탈을 당해 임신한 여인들이 있었다.
선조는 그런 여인들을 모두 이태원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인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청나라 놈들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잡아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청나라가 요구한 몸값을 지급할 수 있는 양반 출신 여인들도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문식이에게 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양반놈들이 그렇게 자기 부인들을 챙겼었나?'
'물론 아니지, 여자 쪽 집안에서 돈을 지불하고 데리고 온 거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부인들.
그래서 잡혀갔는데, x선비들은 몸값을 지불하고 데리고 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여인의 집에서 돈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어도 처리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왜란 때처럼 이태원에 몰아넣으려고 했지만, 여자 쪽 사대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면죄부를 주기로 했다.
돌아온 여인들이 홍제원 냇물에서 몸을 씻고 오면 된다는.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x선비들이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인조는 x선비들에게 첩을 두라고 했다.
당시 여인들에게 있어 남편이 첩을 둔다는 말은 '소박맞는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래서 이혼을 당하면, 주변의 손가락질에 목을 매거나, 비구니가 되어 은둔했다.
‘그놈의 손가락. 다 분질러 버려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기생이나 창기가 되었다.
문식이 덕분에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원.
여인들과 아이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옹진반도로 데리고 왔다.
청나라에서 노예로 있던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는 옹진반도.
사람들은 '환향촌'이라 불렀다.
"시발! 우리 덕분에 먹고 사는 것들이 지랄이야."
오랜만에 원의 입에서 시원하게 욕이 터져 나왔다.
조선전력공사의 새로운 신제품 거울.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도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거울보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선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상단에서 나전칠기로 만든 거울이 달린 경대.
청나라 은화로 최소 100냥이 넘는 가격에도 주문이 물밀들이 들어 왔다.
최고급 명품으로 취급받은 거다.
화려한 자개로 만든 은거울이 달린 경대.
하나의 예술품이자 엄청나게 비싼 고가품이었다.
물론 자개로 만든 것은 요즘도 비싸다.
1984년에 김태희 명인이 완성한 고급자개장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그 당시 압구정 현대 아파트 3채 값이 넘었다고 하니 은화 100냥은 비싼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은거울이 신상품으로 추가되자 은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원이 요구한 각종 농산물까지 함께 들어오니 조선의 경기는 활성화되었고 백성들의 삶은 약간 좋아졌다.
요즘 원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납 업자들과 짜고 대동법을 반대하던 x선비들이 받아먹는 뇌물을 무시하고 지랄해 댔기 때문이다.
눈치를 살피던 쌍식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더 달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안돼!"
모두 죽여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는 원.
절대 타협할 수 없었다.
'일 년만, 일 년만 지나면 된다.'
옹진반도에서 금, 은, 구리, 아연, 납이 동시에 나오는 광산을 두 곳이나 찾아냈지만, 아직 캐내지 않고 있다.
대신 구리 같은 원자재는 예수회를 통해서 충분히 수입하고 있다.
현대 기준으로 적은 양이지만, 그 시대의 기준으론 엄청난 양의 강철도 생산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하지, 다급한 표정으로 원은 손가락을 탁자에 두드렸다.
밀링 머신은 몰라도 선반은 만들어 냈다.
그 선반으로 더 좋은 선반을 만들고 있기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현대식 강철 소총도 꿈이 아니다.
연구소가 완성되고 최종 선발된 18명의 천재들.
원은 그들에게 지속해서 지식을 전수해주며 이름도 지어줬다.
원이 군에서 배운 경험을 가르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용식이를 불러라. 아니 내가 갈 것이니 전부 모이라고 해."
"네, 사장님."
이미 시멘트를 생산해서 백령도로 가는 휴동까지 길을 닦아 놓았다.
아직 좋은 시멘트를 만들고 있지는 못하지만, 폭 2미터로 포장된 도로는 사람, 소, 돼지, 말, 수래, 마차가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었고,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
환향촌이라 불리는 옹진반도.
그곳에 남아도는 게 사람이었다.
벌써 공식적으로 3만 명이 넘어갔다.
그중 대부분이 여인과 아이들이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여자와 아이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지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다.
‘잘됐지 뭐!’
휴동에서 판옥선을 타고 백령도 용기포에 내린 원.
다시 조랑말같이 작은 조선말을 타고 서쪽으로 들어갔다.
백령도는 생각보다 크고 넓고 육지에서 멀었다.
가는 길에 보는 사람마다 원을 보면, 존경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 조선전력공사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있어 원은 하늘과 같았다.
21세기 가을리라 불리는 곳에 도착한 원.
그의 눈에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논밭 한쪽 넓은 곳에는 말, 소, 돼지, 닭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누군가 원을 보더니 번개같이 뛰어왔다.
그자는 현대와 같이 눈썹 옆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하며 외쳤다.
"멸! 제1사단 사단장 정용식 사장님을 뵙습니다."
"쉬어!"
"넵! 사장님."
"경례할 때는 명칭을 빼라고 했는데···."
"시정하겠습니다."
이제 21살이 된 정용식.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어머니가 겁탈당해 낳은 호로자식이다.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한 외할아버지가 어머니를 쫓아냈다.
어머니를 따라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고생했던 정용식.
조선전력공사 막지 공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정용식의 타고난 용력과 성실함을 눈여겨본 원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에게 현대식 군사 교육을 시켰다.
그래봤자 별거 아니지만, 육군 일빵빵 출신인 원이 아는 것만 해도 이 시대에서는 최고의 군사 기술이었다.
물론 총이나 대포가 있어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원은 몸이 좋고 성실한 이들을 모아 인성 검사를 한 후 이곳 백령도로 보냈다.
그 인원이 벌써 1만 명이 넘었다.
인조의 명으로 조선 팔도에서 보내진 고아들.
장년이 넘은 사내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렸다.
나이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체격만 보고 뽑은 이들.
잘 먹어서 그런지 모두 때깔이 좋았다.
"모두 접종은 했겠지?"
"넵!"
"귀청 떨어지겠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이에 ‘단’자만 붙이면 사단장이 되는 사장님.
진짜 사단장인 정용식에게 명령을 내렸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놈들이 급히 철수한 이유가 있다.
조선에 천연두가 돌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문식이가 한 말이라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원은 천연두에 걸린 소를 구해 우두(牛痘, Cowpox) 접종을 했다.
'다시 태어났는데, 곰보가 되거나 뒈지면 나만 손해지.'
잘생긴 얼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곰보가 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못난 얼굴로 살아봤던 원.
때문에 그 참담함을 잘 알고 있었다.
원은 우두 접종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굳이 머리 아프게 말할 필요는 없지.'
옹진반도에서 절대군주나 다름없는 원.
조선전력공사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두 접종을 해야만 했다.
먼저 양껏 먹여 건강하게 만든 다음 접종을 시켰다.
그래서인지 우두 접종으로 인한 사망자가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은 의원에게도 접종할 때 뭔지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
'알아봐야 좋을 게 없지.'
또한 발설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까지 했다.
'사람은 믿어도 그 입은 절대 믿으면 안 되지.'
천연두라 불리는 병.
바이러스이기에 백신으로 인체의 저항력을 키워야만 예방할 수 있다.
또한 12년이 넘으면 다시 맞는 게 좋다.
아는 상식과 달리 한번 걸렸다고 영원히 예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먹이고 있지?"
"네, 원 없이 먹이고 있습니다."
어리다고 해서 적게 먹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성인보다 더 많이 먹는 게 아이들이다.
'그래봤자 경대 20개 값도 안 되지.'
은거울이 달린 나전칠기 경대.
하나만 팔아도 은이 최소 100냥이다.
조선 돈으로는 700냥.
1냥이면 성인 한 명이 1년 동안 먹을 쌀 한 석을 살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스페인이 왜 재정적자를 겪었는지 알 수 있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모두 같았다.
왕실이나 귀족들이 사치품에 쓰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인지 남미에서 엄청나게 은을 캐와도 스페인은 허덕였다.
검소한 왕도 있었지만, 대부분 왕과 귀족들은 사치가 기본 스킬이었다.
물론 군비에 큰돈이 들어가긴 했지만, 사치품 가격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킨 것도 같았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사치품 때문에 무역적자가 심했다.
결국 아편을 팔아 무역적자를 해결하고자 전쟁을 벌인 것이다.
"소나 돼지, 닭도 잘 키우고 있나?"
"넵! 아주 잘 크고 있습니다."
아담 샬에게 부탁해서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서양의 소, 돼지, 닭.
부탁한 지 2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잘했다. 오늘 경기 끝나고 먹게 토종 돼지와 닭은 모두 잡아 요리해라."
"넵!"
정용식이 참모에게 말하는 사이 원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로 서 있었다.
"일동 차렷!"
"사장님께 경례!"
"""멸!"""
아직 어설펐지만, 그동안 교육의 효과인지 경례하는 모습이 멋졌다.
"쉬어."
"쉬어!"
깔때기를 집어 든 원은 아쉬웠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만들었다면, 더 멋있었을 건데.
깔때기를 들고 있으니 어쩐지 ‘골라, 골라’란 소리가 머릿속에 맴도는 듯했다.
"앞으로 조선전력공사의 경비대원이 될 대원들, 반갑다."
명목상 이들 모두는 조선전력공사를 지키는 육경이나 해경의 대원들이다.
외부로 말이 퍼질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너희들은 조선전력공사를 보호할 경비대원이자 직원들이다. 직원이란 말은 식구란 말과 같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함께 밥을 먹는 형제란 말이다. 알겠나!"
"""멸!"""
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혹시나 딴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교육을 잘 되어 있었다.
"앞으로 너희들의 적은 오직 하나다. 그건 바로 조선전력공사를 해치려 하는 자들이다. 알겠나!"
"""멸!"""
원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언제 뭔 짓을 할지 모르니.'
김자점 일당이 떼죽음을 당했지만, 아직 x선비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정기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오는 편지나 조서원의 정보에 의하면, 뭔 일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원은 최후의 힘이 될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직 무기도 지급하지 않았지만, 정용식에게 맡겨놓은 제식훈련이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칼과 창을 들고 싸우는 것도,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치된 힘이다.
전열보병(戰列步兵, Line Infantry) 시절, 영국군의 승리 요인은 바로 제식의 결과였다.
옆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도, 포탄에 머리가 날아가도 영국군은 음악 소리에 맞춰 행진했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다.
물론 대원들을 그런 무식한 전쟁터로 내몰진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총을 쥐여주기 전에 완벽한 제식훈련은 받아야 했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총과 칼이 주어질 거다. 그 무기로 조선전력공사를 지키려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손으로 벽돌을 만들고 너희들이 살 집을 지었다. 생각해봐라. 잘못된 벽돌 하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어리다고 하지만 체격이 좋은 사람들만 뽑았다.
그러니 벽돌을 만들고 집을 짓고 도로를 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단장이 말만 하면 산도 옮겼다’는 고참의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지만, 진짜 1만 명이 넘는 대원들에게 명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인조가 죽고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면, 거대한 항만 시설도 지을 생각이다.
앞으로 백령도는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본거지가 될 터이니.
원은 이들에게 재료만 공급해주고 직접 집을 짓게 했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집은 튼튼했고 깨끗하고 따듯했다.
어느 부잣집이나 고관대작들의 집보다 좋았다.
그러다 보니 모두 성취감과 자존감이 올라갔다.
원은 심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조선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보기로 왕창 죽여버리기 전에는 불가능하지.'
갑자기 생긴 큰돈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백지와 다름없는 사람들을 모아 그 사람들만이라도 다르게 키우고자 했다.
그들이 잘살면 어련히 알아서 따라오고, 그러다 보면 변화될 거라 판단했다.
"나는 너희들을 '신세대'라 부르겠다. 너희들은 새로운 세대라는 말이다.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문물로 무장된 너희들. 누구보다도 앞서 나갈 것이다."
원은 교장 선생님이 된 느낌이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2만 개의 까만 눈동자.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교육도 해줬다.
5냥에서 20냥이면 살 수 있는 조선의 종들.
그 누가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러니 모두 사장님을 존경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릴 때 교장 선생님이 생각나서 이만 말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선전력공사의 신세대 예비 경비대원들은 명심하라. 우리는 하나다! 따라 해라.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예비 대원들.
원보다 한참 나이가 많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당당히 살려면.
"이상으로 마치겠다."
경례를 받고 내려온 원.
"용식아, 준비됐지?“
”넵!“
”시작하자."
"넵!"
정용식의 지휘로 양쪽으로 갈라진 대원들.
그 사이로 무언가 밀고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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