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6화 (6/275)

6. 준비(4)

최근 좌의정에서 영의정이 된 김자점의 집 근처.

"이 숯이 참말로 좋긴 좋네요."

"그럼요. 이 불꽃을 보세요. 활활 타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며칠 전부터 좋은 숯을 싸게 파는 보부상이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만 사는 곳에 나타났다.

여인 한 명과 힘 좀 쓰게 보이는 남자들로 구성된 경상도에서 왔다는 보부상.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 최고급 숯을 팔았다.

그것도 싸게.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이 번개 숯은 화력이 다르다니까요. 불도 잘 붙고요."

"그래도 너무 비싸서···."

"그럼, 제가 특별히 싸게 드릴게요. 다른 분도 아니고 대감마님께서 쓰실 건데 싸게 드려야죠."

"얼마에 주실 건데요?"

김자점의 종으로 있는 삼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해가 갈수록 겨울이 무척이나 추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감마님의 사랑방 아궁이를 담당하는 삼래는 매일 같이 혼이 나야 했다.

불을 세게 때면 연기가 난다고 지랄.

약하게 하면 춥다고 지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연기가 별로 나지 않는 최고급 숯을 파는 보부상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살 수는 없었다.

가격이 싸다고 하지만 숯값은 나무와 비교할 수 없었다.

쉽게 불이 붙고 적게 넣어도 더 활활 오래 탄다는 번개 숯을 보며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삼래.주어진 한도에서 장작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판 숯에 비해 가격이 비싼 번개 숯.

사고는 싶었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이거 다 사실래요? 우리도 이제 돌아가야 하거든요. 전부 사시면 싸게 드릴게요."

삼래에게 번개 숯을 모두 팔아넘긴 쌍년이는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남쪽으로 향했다.

폭설이 내리기 전에 빙 돌아서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 * *

1646년, 12월.

동지(冬至, 음력 11월)가 지나고 섣달(12월)에 들어서자 옹진반도에 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황토, 모래, 석회를 1:1:2로 섞어 만든 벽돌집은 포근하기만 했다.

구리관을 사용한 히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 백묵을 집어 들고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옻칠로 만든 칠판에 뭔가를 잔뜩 적었다.

다 적고 사다리에서 내린 원은 높은 의자 위에 올라가 앉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조선에는 철이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좋은 철은 구하기가 힘들다."

어른들이 농기구를 사용할 때마다 투덜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아이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철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 자신 있나!"

"""네! 사장님."""

아이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어린 사장님이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철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온도 즉 초고온을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겠다. 잘 듣고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도 있었다.

긴장했기 때문이다.

호로자식과 전국에서 모아온 고아들 중 똑똑하다고 인정받은 아이들.

원은 그들을 모아 놓고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5천 명이 넘는 아이들 중 선발된 200명의 아이들.

벌써 절반이 넘게 탈락했다.

현대 같으면 모두 서울대를 가고도 남을 정도로 진짜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들이었지만, 원의 생각은 달랐다.

'모두 다 가르칠 수는 없지.'

고르고 골라 이 중에 남은 아이들에게만 집중 교육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

탈락하기 싫었기에 필사적이었다.

왜냐하면 새로 짓고 있는 건물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만찬(뷔페식) 식당.

침대라 불리는 깨끗하고 폭신한 잠자리.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개인 공부방이 제공된다는 말은 아이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그것 말고도 아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출세(出世)였다.

연구소(硏究所)가 완성되면, 그때까지 남은 아이는 연구원이 될 수 있다.

한낱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쌍식이가 어떻게 출세했는지 조선전력공사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쌍식이는 이곳에서 롤모델이었다.

"생석회, 산화칼슘(CaO)이다."

아이들은 미리 깎아 놓은 연필로 막지에 내용을 적으면서 속으로 암송했다.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듯.

"단순하게 '산칼'이라 부르도록 하겠다."

옹진반도에서 발견한 탄광만 두 곳이다.

이곳에서 캐낸 무연탄은 역청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화력은 아주 좋았다.

남태평양 얍이란 섬에서 돈으로 썼다는 석회석.

배를 타고 500km를 건너가야 구할 수 있었기에 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는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석회석을 구하기가 쉬웠다.

"석회를 825도 이상으로 구우면 생석회가 된다. 뭘로 구우면 되는지 아느냐?"

"""석탄입니다.!"""

양반의 자제와 달리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던 아이들이라 따지는 것 없이 가르치는 대로 습득하는 데 놀라울 정도였다.

물론 그런 아이들만 고르고 골라서 뽑았기 때문이다.

"맞다. 석탄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천도까지는 쉽게 온도를 올릴 수 있다."

생석회는 무취의 백색 또는 회백색이 있는 물질이지만 위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물을 만나면 열이 발생하기에 먹으면 위험했다.

"생석회에 목탄을 집어넣고 더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탄화칼슘을 얻을 수 있다."

무려 2천도 넘게 올려야 하지만 일단 원리를 설명하는 교육이기에 원의 말은 계속되었다.

'목탄에 산소를 불어 넣으면 안 될 것도 없지. 그나저나 옛날에는 포장마차에서 썼다고 하던데···.'

21세기에도 낚시터에서 카바이드라 불리는 탄화칼슘으로 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원은 알지 못했다.

단지 카바이드가 물과 만나면 아세틸렌가스(C2H2)가 발생한다는 것만 알았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말하겠다. 과학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뭐지?"

"""안전 제일입니다."""

"그래, 과학이란 인간을 이롭게 하지만, 잘못하면 죽는다. 죽으면 출세할 수도 없고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도 없다."

출세는 쌍식이가 있어서 알 수 있었지만, 과학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아이들.

단순히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이 누구인가.

임금님의 손자이며 조선 제일의 갑부이다.

조선 팔도는 물론 명을 멸망시킨 청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런 사장님과 같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이들의 소원이었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상업과 공업을 천시하는 조선이지만, 사장님에게는 다르게 대한 다는걸.

물론 자세한 이유는 몰랐다.

원이 정기적으로 뇌물을 줬기 때문이라는 걸.

뇌물의 효과는 대단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나 다름없는 종이와 연필을 만든다는 일은 천시하면 안 된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x선비들은 뇌물 때문에, 참선비들은 문방사우를 대신할 수 있는 기물 때문에, 그리고 백성들은 경제가 활성 되었기에 모두 원의 행동을 묵인했다.

나이가 어리지만, 이미 사서삼경까지 줄줄 외우고 있는 원에게 따질 이유도 찾기 힘들었다.

괜히 나섰다간 모두에게 공격받기 일쑤였다.

원이 송상을 시켜 뇌물을 뿌리는 날이면, 한양이 들썩거렸다.

기생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주막 또한 손님으로 가득 찼다.

많지는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뇌물.

공돈이나 다름없기에 제대로 낙수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원의 안전을 위해 관군을 보내 준다고 했지만, 원은 거부했다.

대신 자체 경비대를 운영할 수 있게 허락받았다.

아무튼 조선 막지와 연필을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신 사장님.

아이들에게 과학자는 사장님같이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과학자인 사장님이 항상 찬양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건 바로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이셨다.

아이들이 지금 막지에 적고 있는 그 한글 말이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세종대왕이 최고의 과학자였고, 두 번째가 사장님이었다.

"오늘 강의의 목적은 아세틸렌(C₂H₂)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것을 왜 만들어야 하냐면 아세틸렌과 산소를 혼합해서 사용하면 3천 도가 넘는 초고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천도가 넘으면 일부 쇠가 녹고, 1,500도가 넘으면 모든 쇠가 녹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

3천 도라는 말에 눈이 커지며 입을 쩍 벌렸다.

생석회로 만든 탄화칼슘과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아세틸렌.

21세기에도 아세틸렌은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 용접에 사용하는 아세틸렌가스는 전기 용접에 밀리기는 했지만, 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최고의 용접 방법 중 하나이다.

"이상으로 초고온을 얻는 방법을 마치겠다."

두 번째로 위대한 과학자인 사장님의 말씀이 끝나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언제나 강의가 끝나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잠시. 아직 할 말이 더 있다."

서둘러 연필을 다시 손에 쥔 아이들.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자 눈에 힘을 주었고, 귀를 쫑긋 세웠다.

"생석회로 만든 탄화칼슘의 부산물은 수산화칼슘(Ca(OH)2)이다.'

원에 의해 '수칼'이라 불리게 된 수산화칼슘의 용도는 다양했다.

"앞으로 만들 시멘트나 비료 그리고 표백제로 쓸 수 있다. 따라서 절대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위험하니 함부로 다뤄서도 안 된다. 안전 제일!"

"""안전 제일!"""

아이들이라 그런지 한번 말하면 모두가 동시에 따라 했다.

원이 된 공식이는 골목대장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질문받겠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손.

그중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갑순이라 합니다."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 10살이 좀 넘어 보이는 여자아이.

말투가 현대식이었다.

"오늘이 너 생일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하더냐?"

"산소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든 원은 빙긋 웃으며 옆을 바라봤다.

강의 보조원으로 임명된 사내가 빠르게 달려와 칠판을 닦았다.

다시 칠판에 글과 그림을 적고 난 원.

"산소는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필수 기체이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살 수 없다."

이어지는 복잡하고 다양한 설명.

이해가 안 되면 무조건 외우고 보는 아이들.

21세기 TED 강연장보다 뜨거웠다.

"이렇듯 산소와 수소는 열식기관으로 돌린 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분해하면 얻을 수 있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질문과 설명이 계속되었다.

* * *

아직 튼튼한 베어링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도 영구자석을 이용한 내구성이 약한 저전력 발전기를 가동하기에는 충분했다.

'교류발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직류로 변환 시키는 정류자를 만들 수 없어 교류발전기를 만든다고 해도 써먹기가 힘들었다.

기계식 정류기를 쓰면 되지만, 만드는데 지랄 같았다.

영구자석이 필요 없고, 소모품인 흑연 브러쉬도 필요 없는 교류발전기.

전압과 전류도 제어할 수 있고 출력도 높기에 반드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반도체인데.'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珪素).

바로 실리콘(Si, Silicon)이다.

순도 높은 단결정 실리콘에 인이나 비소 또는 붕소나 알루미늄을 쏘아주면 정류자인 다이오드나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

원이 가진 지식과 기술로는 진공관을 만들기보다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웠다.

'단결정 실리콘이라···. 말은 쉬운데 완전 단순노동인데.'

전자통신연구소에서 직접 실리콘 웨이퍼까지 제조해 본 적이 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결과물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과물의 성능을 알아야 안전하게 써먹을 수 있는데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뭐, 굴려야지.'

선발된 아이들 중 탈락자 또한 소중한 인재였다.

그런 인재들을 농장이나 종이, 연필 만드는 공장에 보낼 수는 없었다.

이미 완료된 공정이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곳에 그들을 투입했다.

21세기면 아동학대자로 철커덕 잡혀갔겠지만, 막상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실력이 딸려 떨어졌지만, 다른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공정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거나,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면 성과금이 보상되었다.

꿈도 꿔보지 못한 물엿과 감자튀김은 기본이었다.

성과금이 지급되는 날이면 같이 일했던 모든 아이에게 통닭 튀김이 제공된다.

그러기에 시기나 질투보다는 누구라도 좋으니 성과를 내라고 서로 응원했다.

그래도 원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한참 놀 아이들인데.'

다들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공식이의 기억으로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싸장님!"

"저놈이!"

쌍식이에게 발음을 세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쌍식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말했다.

"사장님. 한양에서 파발이 왔습니다."

긴장한 모습으로 봉투를 건네는 쌍식이.

원은 덤덤하게 내용물을 꺼내 읽었다.

"별일 아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쌍식이는 뒤 돌아 나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큰일이라고 들었는데 별일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기는커녕 히죽거리고 있는 사장님의 표정.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분명히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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