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뭐하긴. 혹시 알아 내가 그 시대로 가서 왕이 될지."
공상식(公相植)은 2천 명이 넘는 전문 연구원이 있는 전자통신연구소의 연구원이다.
그와 이름이 같은 문상식(文相植).
공상식의 둘도 없는 술친구다.
그러기에 시간만 나면 만나서 둘은 술을 퍼마셨다.
노총각인 둘의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상식은 짜증이 났다.
만날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문상식.
그것도 요즘에는 쓰지도 배우지도 않는 구시대 유물 같은 기술을.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왜 말이 안 돼.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야."
뻔뻔한 얼굴로 공상식을 쳐다보는 문상식.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래서 알아 왔어?"
"알아 오긴 했는데, 그 시대에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본 대역에서는 그냥 공돌이를 굴리면 뚝딱하고 나오던데."
터무니없는 문상식의 말에 공상식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 나왔다.
"생각해봐라. 너도 삼대 강산이 뭔지 알지?"
"그럼, 염산 질산 황산 아니냐."
"그래 맞아. 그런데 염산과 황산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질산은 어쩔 건데."
"공기 중 78%가 질손데 그냥 뚝딱 안될까?"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내미는 문상식.
술잔을 비운 공상식은 날름 받아먹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선생님인 문상식이 구워주는 삼겹살 맛은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너 그거 아냐?"
"뭘?"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르면 네가 원하는 것은 1급 위험물에 속해. 그런 위험한 물질 만드는 방법을 도대체 왜 알려고 하는데? 혹시 누구 테러할 일 있냐?"
"어허! 선비 같은 날 어떻게 보고."
없는 수염을 쓰다듬는 문상식.
그걸 본 공상식은 그가 학교에서 불리는 별명이 뭔지 말해 주려다가 꾹 참았다.
문상식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말해줬던 그의 별명.
바로 x선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친구라고 하지만, 차마 그 말을 들려줄 수는 없었다.
"뇌홍을 만들려면 질산과 수은을 1:1로 섞어야 해.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질산이 문제야. 그것도 진한 질산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만들건대?"
"질산은 염초와 진한 황산을 섞으면 된다며?"
"염초나 황산은 남아도냐?"
"까짓것 거울 만들어서 팔면 되지."
"거울 만드는데도 질산은 필수다."
낙심한 듯 얼굴을 찡그린 문상식이 술잔을 들었다.
"젠장. 쉬운 게 없네! 술이나 마시자."
"그래. 그냥 술이나 마시고 정신 좀 차려. 애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냐?"
"결혼도 안 했는데 애가 어딨다고."
"있을 수도 있지.”
"내 얼굴을 봐라.”
"그건 그래."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크크 웃는 둘.
아는 거다.
무엇이 문제인지.
"소개팅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나도."
시무룩한 표정이 된 둘.
노릇노릇 알맞게 익은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켜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문식아."
"왜 공식아."
"방법이 있긴 해."
"무슨 방법?"
기대감에 눈이 커진 문상식이 공상식을 노려봤다.
"전기만 있으면 돼. 발전기부터 개발하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 만들 수 있어. 질산 만드는데 필수인 암모니아는 너 말대로 전기와 철만 있으면 공기에서 뽑아낼 수 있지."
"정말?"
"그럼. 정말이지. 염초 또한 바닷물을 전기분해 해서 만든 수산화나트륨과 질산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 한마디로 발전기만 있으면 다 돼."
"그래? 그런데 발전기는 어떻게 만드냐?"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체역사 소설 광인 문상식과 공상식.
이름이 같다 보니 서로는 문식이와 공식이로 불렀다.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문식이.
그와 달리 공식이는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남들은 불탄다는데···."
"고기 탄다."
"시발, 우리는 고기나 태우고 있으니."
소개팅도 안 들어오는 노총각인 둘은 주말이면 만났다.
소주와 함께하는 고깃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공식이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발전기만 있으면, 그까짓 염산이고 질산이고 황산이고 다 만들 수 있어. 그것도 빨리."
"빨리라니, 그게 말이 돼? 기술이란 게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잖아. 기술자도 양성해야 하고. 기반 시설도 있어야 하고. 내가 잘 모른다고 사기 치는 거지?"
"거참! 내가 너에게 사기를 왜 치냐? 물론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거나, 쇠를 두드려 강철을 만드는 건 오랜 시간 동안 기술을 익힌 숙달된 장인이 되어야 할 수 있어. 하지만 근대 산업기술은 달라."
"뭐가 다른 데?"
문식이가 따지자 공식이는 한숨을 쉬더니 째려보며 말했다.
"원리를 알고 자본을 투자하면 번개같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근대 산업기술이야. 왜냐하면, 사람의 손이나 감각으로 하지 않고 기계가 하는 거거든."
"그래?"
"생각해봐라. 코로나 터졌을 때 백신을 개발하려면 10년은 넘게 걸린다고 다들 말했지. 그런데 mRNA 기술이 있었고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자 1년도 안 돼서 백신을 만들어 냈잖아."
"그랬었어?"
공식이는 그냥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자신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르듯이 문식이가 기술에 대해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이 아닌 기계를 이용하면 석기시대라 하더라도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옛날에는 장인이나 만들던 도자기나 강철은 이젠 가난한 나라에서도 설비만 있으면 다 만들어 내잖아. 그것도 품질이 일정한."
"그건 맞지. 그런데 설비는 어떡할 건데?"
"그래서 발전기가 필요한 거야. 전기가 있어야 정밀 가공이 가능한 공작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거든."
이번에는 문식이가 소주를 단숨에 마시더니 물었다.
"증기기관으로 할 수 없는 거야?"
"물론 할 수는 있지만, 정밀 가공은 포기해야지."
"왜?"
"원하는 대로 일정한 속도를 만들 수 없으면 원하는 만큼 정밀한 품질 또한 얻는 것이 불가능해."
"증기기관으로 하면 되잖아?"
"그게 되냐?"
"왜 안돼?"
공식이는 답답한지 문식이를 노려봤다.
"증기기관은 만들기도 엄청 어렵지만, 만들어 낸다고 해도 정밀한 컨트롤이 불가능해. 너 물을 끓일 때 일정하게 수증기가 나오게 할 수 있냐?"
"왜 안돼. 가스레인지 조절만 하면 되잖아."
답답함을 참지 못한 공식이가 전문용어를 써가며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온갖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과학 용어에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문식이가 두 손을 들었다.
"됐다. 그만해라. 내가 잘못했다."
"아무튼, 원리만 알고 지원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팍팍 개발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근대 산업기술이야."
"그만하자. 머리 아프다."
문식이는 전형적인 공돌이인 공식이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공식이 또한 재미 삼아 자료를 찾아보고 모르는 건 같은 연구소에 있는 동료에게 물어보고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전문가가 되었다.
한국사에 관해 물어보는 공식이.
유연화약이니 무연화약이니 뇌홍이니 강철이니, 대역에서 나오는 단어를 물어보는 문식이.
두 상식이의 결론은 항상 같았다.
"우리 둘이 동시에 가면 끝내 줄 건데."
"그러게. 근데 가기 싫어."
"왜? 가서 역사를 바꿔야지."
"유교 탈레반이 득실거리는 진짜 헬조선에 가서 뭘 바꿔. 안 죽으면 다행이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말빨로 날 이길 수는 없을 테니."
반쯤 감긴 눈으로 문식이를 쳐다보는 공식이.
"너와 함께라면 해볼 만하겠다. 함께 간다면 OK야."
"정말이지?"
"그럼!"
공식이의 말을 듣고 신이 난 문식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좋아, 노래방은 내가 쏜다! 가즈야!"
"가즈야!"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비틀거리며 건너가는 문식이.
그 순간 일이 벌어졌다.
"문식아!"
멀리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밝은 빛.
친구인 문식이를 구하기 위해 공식이가 달렸다.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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