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자격지심 (2)
“와, 진짜 예쁘지 않냐?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니까? 매니저 존나 부럽네.”
방송국 화장실.
조명 스태프가 바지 지퍼를 내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따라 들어온 동료가 거울을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뭐해.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래도 우리처럼 조명들 부둥켜안고 사는 것보단 눈 호강하면서 성질 받아주며 사는 게 훨씬 낫지. 또 아냐, 잘 받아주고 그러다 보면 막 나한테만 고분고분 알콩달콩 그렇게 될지?”
“네 얼굴을 보면 없던 화도 날 판에 고분고분은 개뿔이.”
발끈한 스태프가 동료 옆으로 다가왔다.
“말을 해도 꼭. 넌 제인이 좋다고 하면 안 사귀냐?”
“크흠, 그런 불경한 소리 마라. 제인은 하서윤 같은 애랑은 급이 다르거든? 인성도 좋기로 유명하지, 귀엽지, 노래는 또 어떻고. 같이 들으면 하서윤 목소린 바로 돼지 멱 따는 소리······.”
동료가 머리를 매만지다 거울에 비친 남자를 보고 굳어버렸다.
변기 칸에서 나온 스포츠머리 남자가 천천히 조명 스태프 둘을 훑었다. 눈빛이 날카롭다 못해 흉흉했다.
“멱을 따줄까?”
“네, 네?”
금방이라도 덮칠 듯 다가오는 스포츠머리 남자.
움찔거리며 벽에 붙는 두 사람.
그들에게 한참을 으르렁거리던 스포츠머리 남자가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왔다.
“누, 누군데?”
“조용히 해.”
“아니, 누구시길래···.”
“매니저, 하서윤 매니저.”
쑥덕대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보자, 두 사람은 다시 합죽이가 되었다.
이에 스포츠머리 남자는 혀를 차며 코너를 꺾었다.
그리고 이번엔 본인이 화들짝 놀라 휘청거렸다.
“서, 서윤아.”
머저리들이 떠들어대던 이야기의 당사자인 하서윤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차에 가 있겠다더니 왜······.”
“핸드폰을 안 줬잖아.”
“그, 그러네. 미안, 하하.”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멱을 따고 올까?
그런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지만, 지금은 하서윤을 빠르게 데리고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아이고, 서윤 씨 여기 있었네.”
배불뚝이 피디가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 제인 씨 컴백하면 우리 프로에 출연해달라고 줄 서볼까 하는데.”
“피디님, 저 이제 TKM 아닌데요?”
“그건 알지. 근데 서윤 씨가 또 제인 씨랑 연습생 때부터 친한 사이라고 하니까 인맥 찬스 좀 써볼까 하고, 흐흐.”
“······얘긴 해볼게요. 근데 큰 기대는 마세요. 워낙 바쁜 애라.”
“알지, 알지. 제인 씨가 얼마나 바쁘겠어. 국민 여가수인데. 그럼 부탁해?”
목적을 이룬 피디가 홱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매니저가 입꼬릴 비트는데, 하서윤이 먼저 입을 뗐다.
“저 돼지 새끼가 어디서 믹스 커피 처먹고 와서 나한테 똥구린내를······!”
*타닥타닥.
차 앞 유리로 빗방울이 따갑게 내리쳤다.
와이퍼 리듬에 따라 매니저의 불안한 눈이 백미러를 염탐했다.
거울에 비친 하서윤은 고요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원 튠 레코즈와 계약하게 되어 들떠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시선은 차창 밖에 둔 채로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눈치 보지 마, 나 괜찮으니까.”
“진짜 괜찮아?”
“응. 2연타로 맞으니까 성질머리가 나오지도 않네.”
아까 나왔으면서.
-라는 말을 삼킨 매니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이러면······네 곡이랑 시기가 겹치는 거 아니야?”
주어는 없었지만 알아듣기엔 충분했다.
하서윤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곧 낸다는 것도 알고 있긴 했어. 근데 그렇다고 내가 피할 이유는 없잖아?”
“그, 그치! 당연히 피할 이유 없지. 이제 같은 TKM도 아닌데!”
그 후에도 매니저는 하서윤의 기분을 풀기 위해 애썼다.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이윽고, 하서윤이 넓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새하얀 얼굴은 집 안처럼 어둑했고, 입꼬리는 물에 젖은 이불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슬리퍼 신는 것도 잊은 채 대리석 위로 올라서는 그녀. 찌르르 올라오는 한기도 개의치 않고 터벅터벅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킨다.
“5월······.”
자신이 원 튠 레코즈에서 처음으로 앨범을 내기로 한 달이었다.
동시에 제인이 자신의 곡을 내겠다고 선언한 달이기도 했다.
겹치려나?
의문이 들었고, 이내 기분이 상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꼭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겹치면 어때서!’
그러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이기면 되는 거다.
더 이상 노래로 비교나 당하던 하서윤이 아닌 걸 보여주면 되는 거였다.
‘그럴 수 있을까?’
또 다른 물음이 튀어나오고.
“당연히 되지! 나 하서윤인데!”
빽 소리친 그녀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쉬폰 커튼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음울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쉽사리 잠이 오진 않았다.
대신, 목소리 하나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이번엔 네가 양보하자.’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
‘이번에도요?’
‘그게 너한테도 좋아. 굳이 걔랑 붙어봤자 너만 손해인 걸 알잖니.’
감았던 눈이 뜨였다.
분명 크게 숨을 쉬었는데, 들어오는 숨은 턱없이 모자라다.
가슴에 바위를 얹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른다.
그렇게 서서히 가쁜 숨을 허덕이는데, 불쑥 핸드폰이 울렸다.
답답함이 사라지고, 탁 터지는 숨을 몰아쉬며 하서윤이 목소리를 점검했다.
“아, 아.”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어디 아파요? 목소리가 안 좋네.”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목소리에 하서윤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왜요?”
“곡 완성돼서요. 지금 보내줄게요.”
“······.”
“여보세요?”
“보내지 마요.”
하서윤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서 들을래요. 지금.”
#스산한 빗소리를 비집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잠겨있지 참.’
여직원이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던 게 기억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업실 문을 열어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못 들을 뻔했네.
얼른 나가 문을 열었다.
빗방울이 발 앞에 떨어진다. 우산에서 흐르는 물줄기였다.
“왔어요?”
“네.”
뭔가, 물기 하나 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인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생쥐보단 고양이. 그것도 집사 잃은 고양이 느낌을 물씬 내며 하서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괜찮은 거예요?”
“······.”
대답 대신 한참 동안 날 바라보던 하서윤이 스치듯 작업실 쪽으로 향했다.
“그럼요. 매우.”
뒷머릴 긁적이며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줄곧 내 눈을 피하던 하서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한다.
“이거예요?”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재생을 눌렀다.
이윽고 전주가 들려왔다.
내가 만들었는데, 같이 들으니 또 새로운 기분이다. 자연스레 결과물을 듣는 하서윤의 얼굴로 눈이 옮겨졌다.
멜로디에 얽매이지 않고 만든 그녀의 테마.
이 테마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창자의 생각은 중요하다. 본인이 부를 노래잖나. 누구보다 본인이 좋아야 했다. 만든 나보다도 더.
들어올 때부터 워낙 어두운 표정으로 와서 그런지 한순간에 밝은 얼굴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밝아지고 있었다.
곡이 끝나고, 하서윤이 입을 열었다.
“좋네요. 역시나.”
누군가에게 곡을 들려줬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입꼬릴 올리며 하서윤을 보았다.
하서윤도 날 본다. 피곤한 사람처럼 살짝 풀린 눈으로.
“방금 그 표정은 뭐예요?”
“무슨, 왜요? 또 어제처럼 이상했어요?”
“아뇨. 어젠 안 도와주곤 못 배길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방금은······.”
오묘한 얼굴이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것들이 가득 차 있는.
“보기 좋던데. 이것도 못 참겠는 건 마찬가진 거 같기도 하고.”
뭘 못 참아?
하서윤의 고개가 살짝 기운다. 고양이 같다. 귀가 쫑긋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 그녀가 별안간 가까워졌다.
캣츠의 한 장면처럼 훅. 아니, 천천히 인가?
모르겠다. 나도 정신이 없어서.
의자를 뒤로 끌었다. 하지만 그녀가 더 빨랐다. 서로의 코가 닿을 듯 가까워진 하서윤이 내 얼굴을 샅샅이 뜯어본다.
“저기······.”
얼마나 지났을까.
찰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꽤 긴 시간이었던 같기도 하다.
어쨌든, 하서윤이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아무런 불상사 없이.
조금 더 밝아진 얼굴이 날 내려다보았다.
“나 불러볼래요.”
#다음날.
김지희가 까먹지 않으려는 듯 5월 스케줄 보드에 ‘제인’이라고 큼직하게 써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조금 더 큼직하게 X를 그려놨고.
5월엔 웬만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이었다.
무려 여왕의 귀환이었으니까.
성장과 변화를 얘기했던 지난 앨범 이후, 3년 만에 컴백하는 제인.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진짜 전성기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브릿지 이후로 얼마나 성장했을까?
예정된 미래보다 얼마나 더 대단해졌을까?
이번 앨범의 곡들은 내가 기억하는 곡들과 많이 달라졌을까?
궁금증이 왈칵왈칵 튀어 오르는데, 뒤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서한빛의 보컬 트레이닝을 마치고 내려온 윤 교수였다.
“끝나셨어요?”
“네, 한빛인 위에서 더 연습하다가 내려온다네요.”
오늘이 3일째.
뭔가 달라지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지. 나도 안다.
그럼에도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가요?”
커피 한잔을 내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윤 교수의 표정이 오묘했다. 긍정문, 부정문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나도 3일 만에 내가 이런 소릴 할 줄은 몰랐는데······또 졌네요. 대표님한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갤 기울였다.
곧이어 윤 교수가 말을 이었다. 언뜻 흥분한 기색을 내비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능해지는 걸 또 보게 될 것 같네요. 물론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지만요.”
“그 말은······.”
“3옥 라라고 했죠?”
“네.”
“키를 더 올려도 되겠어요.”
윤 교수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웃었다.
나도 역시 멜로디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했고.
그 사이, 알맞게 내려진 커피잔을 들어 윤 교수에게 건넸다.
“그리고, 하서윤 씨요.”
“서윤이 왜요?”
“제인 씨한테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한 것 같은데, 혹시 교수님은 뭔갈 아시나 싶어서요.”
“서윤이가 제인이한테······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겠네요.”
어젯밤, 가녹음을 하며 하서윤과 나눴던 대화들이 스치듯 떠올랐다.
‘어때요?’
‘얼마나요?’
‘제인하고 비교하면요?’
‘그러니까, 피디님은 걔랑도 작업을 해봤으니까······.’
내 대답에 윤 교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고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예민하죠. 그것도 많이.”
그러니까. 그게 꽤나 심해서 녹음에 방해가 될 정도였잖나. 대체 왜 그런 건지 이유라도 알면······.
“그거, 나 때문일 거예요.”
#“으아, 배부르다.”
윤 교수가 학교로 돌아간 후, 얼마 있지 않아 직원들이 배를 두드리며 들어왔다.
여직원이 도시락을 흔들며 다가온다.
“주문하신 덮밥입니다~.”
“고마워요.”
“근데 왜 여기서 그렇게 서 계세요? 그것도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아···저거 보고 있었어요.”
눈썹을 긁적이다 앞쪽을 가리켰다.
“스케줄 보드요?”
“하서윤 씨 계약 소식도 곧 퍼질 텐데, 곡 발매 일정도 같이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주재윤이 끄덕거렸다.
“좋죠, 좋죠. 언제로 할까요?”
“4월은 너무 이르죠. 얼마 남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6월은 또 너무 늦은 감이 있고요.”
김지희가 우뚝 멈춰섰다.
주재윤도 마찬가지.
홀로 5월을 밀었던 여직원만 ‘그러면···?’이라고 운을 뗐다.
“피디님. 아니, 대표님? 그러면 제인이랑 겹치는데요?”
“피디님한테 이제 차트 1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투자자들도 있고, 대중들의 기대치가 있잖아요! 굳이 어려운 길을···!”
그러니까.
근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 할 것 같네, 또.
“연습생 때부터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대요. 제대로 맞붙어 본 적이 없어서.”
“네?”
“어차피 질 거니까. 순서가 항상 뒤로 밀렸대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쏟아지는 황당한 눈빛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또 피하라고는 못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