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17화 (217/221)

217. 최약체 (1)

우리나라에 기자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치구가 찾아온 당일 저녁. 하나의 기사를 시작으로 기사들이 끝도 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는 거의 마비 상태다.

정말로 멈췄다는 건 아니고.

올라오는 기사마다 전부 음원 사재기, 조작 관련 헤드라인을 달고 나오니 이게 멈춘 건지 알 방법이 없단 거다.

그동안에도 의혹들은 항상 있었지.

누구누구가 얼마를 브로커에게 줬다더라. 누가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을 했더니 다음날 다른 이름이 순위 위에 있더라.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뚜껑이 열린 적은 없었다. 내부고발자가 없어서였다. 안에서 터트리는 사람이 없으니 실체가 불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음원사이트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처음이었다. 게다가 JME라는 대형 기획사가 연루되어 있고 조작의 이득을 본 뮤지션이 트릴로지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난리가 났다.

거기다 곡을 훔쳤다는 사실과 JME 관계자의 녹취록이라는 폭탄까지 터졌지.

관심이 쏠린 만큼 발 빠르게 수사가 시작되었고, 상황이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대중음악 최악의 스캔들, 음원 사재기 터졌다! 대형 소속사까지 연루>

<곡조차도 도둑질한 곡이었다? 논란 일파만파>

<꿈조차 사치인 청년들, 편법에 뿔났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튜너, 실시간 차트 폐지하나?>

<튜너, 벅 뮤직, 포탈 뮤직을 제외한 음원 사재기 가담 사이트 4곳···>

잿더미 날리는 재난 현장에서 시선을 뗐다. 정확히는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창밖으로 향했다.

굴러다니던 쓰레기가 치워진 골목은 깨끗하다. 고즈넉하니 평화롭고.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한 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지.

조용하잖아. 애초에 독립하자마자 이런 일에 엮이기보단 음악으로만 평가받고 싶었고.

그렇게 여유를 즐기는데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준호였다. 자연스레 그의 표정부터 확인했다. 사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라 해도 그였기에.

‘곡은 뺏겼고, 이제 와 돌려받으려니 이미 온갖 오물을 뒤집어쓴 후라니.’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소파에 앉았다.

다행히 김준호의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괜찮아요?”

“그럼요. 제 곡이 음원 사재기를 잡는 큰일을 해낸 거잖아요. 너무 꿈보다 해몽인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푸스스 웃는 그를 보며 내심 놀랐다.

'긍정적이네.'

저러면 걱정 없겠지. 앞으로도.

“이제 어떡할 거예요?”

“곡 만들어야죠.”

당연하다는 듯 돌아오는 대답.

명쾌하다. 내가 이치구와의 악연을 끊은 게 통쾌한 게 아니라, 이게 진짜 사이다다.

결국, 이겨내고 나아가는 모습이.

“그전에 만든 곡들 가지고 아더 레이블로 가봐요.”

“네? 무슨······.”

“거기 대표가 제 친군데, 들어보고 싶다네요. 준호 씨 노래.”

#가린데 보다 안 가린 데가 더 많은 적나라한 옷차림의 연습생들이 땀에 젖은 맨살을 닦아냈다.

“이제 우리 여기 떠야 하는 거 아니야? 이치구 그 새끼 회사도 안 나오고 있다며. 협박하던 놈도 없는데 음원 조작 이미지로 작살난 기획사에 있어서 뭐해?”

“아서라. 여기가 언제 이치구만 지랄 맞았어? 실장이건, 매니저들이건 싹 다···.”

연습생이 볼륨을 줄이며 주변을 살폈다.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확인한 연습생이 말을 이어갔다.

“도긴개긴이었지. 나가면 앞길 막을 거라고 또 으름장 놓을걸?”

“게다가 데뷔조까지 왔는데 관두면 그것도 아깝지. 누군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건데.”

오가는 얘기 속에서 누군가 다른 쪽을 가리키며 말꼬릴 올렸다.

“근데 쟨 그만둔다며. 실장이랑 얘기도 다 끝났대. 오늘이 마지막이라던데?”

가장 진하게 아이라인을 그린 연습생이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렸다. 샤워장으로 향하는 똥머리 연습생이 그녀의 시선에 걸렸다.

“야, 서한빛.”

수건을 챙겨 움직이던 서한빛이 고개를 돌렸다. 잔머리들에 붙어있던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네?”

“그만둔다며. 타이밍 좋다?”

아이라인 연습생의 시선이 서한빛을 훑었다.

그녀 또한 몸매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상이었다. 다만 맨살의 노출은 적었다.

“왜? 옷이 너무 야해서 마음에 안 든다더니 그거 때문이야? 근데 넌 미성년자라 우리처럼 맨살 드러내놓진 않잖아. 네가 그러면 이 옷 입고 버틴 우리는 뭐가 되니?”

“꼭 연습생들 중에 저런 애들이 있다니까. 지가 순결한 줄 아는 애들. 17살이면 알 거 다 알면서.”

“그리고 저런 애들이 가장 먼저 스폰 잡아서 빵 뜨지. 그러고 팬들한테 오빠, 오빠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다른 성인 연습생들도 한 마디씩 쏘아붙였다. 노골적이고 날카로운 말들에 서한빛이 잠시 심호흡을 했다. 언뜻 상처받고 겁먹은 것처럼 보였지만, 다음 순간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전혀 그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전 애초에 걸그룹이 꿈이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데뷔조 짤 때 마음대로 넣은 거죠.”

“꿈 같은 소리 하네. 걸그룹을 꿈으로 하는 애들이 어딨니? 다 유명세, 돈, 화려한 삶 이런 거 보고 하는 거지. 그리고 니가 좋아하는 노래 하고 싶으면 홍대나 돌아다니지 여긴 왜 왔어?”

“그러니까요. 그래야 했는데, 캐스팅할 땐 뭐든 다 해줄 것처럼 말해서 그거에 속았어요.”

아이라인 연습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지금 캐스팅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거냐?”

“캐스팅 출신이라 질투나세요?”

곧바로 당차게 받아치는 서한빛.

아이라인 연습생이 당황해 입을 벌린 채로 버벅거렸다.

“뭐, 뭐?”

“매번 자랑하냐 묻는데 그거 알아요? 자랑은 하지도 않았어요. 언니들 상처받을까 봐.”

처음으로 또박또박 쏘아붙이는 서한빛의 모습에 모두가 벙쪘다.

아이라인 연습생의 얼굴은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난 탈의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또 다른 미성년자 연습생이 들어왔다.

“한빛아.”

분위기에 얼어붙은 연습생이 그래도 하던 말은 마저 해야겠는지 입을 달싹였다.

“잠깐······나와봐야 할 것 같아.”

*서한빛이 복도 끝 코너에서 만난 건 의외의 얼굴이었다.

샛노란 머리의 연습생 선배. 연습생계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김종운이 어딘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 왔어?”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오늘 나간다며.”

“네. 그런데요?”

“별건 아니고. 다음에 갈 기획사는 정했어?”

“아뇨, 아직···근데 왜요?”

주변을 재빠르게 두리번거린 김종운이 쪽지 하나를 건넸다.

거기엔 원 튠 레코즈라고 적혀있었다.

무슨 비밀 요원이라도 되는 양, 그가 속삭였다.

“거기 대표님이 누군지 알지?”

모를 리가 없었다. 너무 유명할뿐더러 이치구에게 협박 비스무리한 걸 당하고 있을 때 마주치기도 했었지.

조금 창피한 기억이었다. 팬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마주치는 건 싫었는데.

“나가면 꼭 찾아가 봐. 그분이 널 찾으시더라고.”

“네? 저 지금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대뜸 원 튠 레코즈로 가라고 하니 서한빛은 이게 무슨 소린가 황당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컨셉에 잡아먹힌 김종운이 엄청난 비밀을 말해주듯 더욱 낮게 속삭였다.

“나도 곧 거기로 가. 그니까 나는 뭐랄까······일종의 산업 스파이, 그런 거지.”

진지한 눈빛을 발산하는 김종운을 보며 서한빛은 ‘이 오빠 어디 아픈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가뜩이나 허언증에 김칫국 드링킹이 심한 거로 유명했잖나.

“휴. 임무 완료. 나 간다? 거기서 보자.”

김종운이 뿌듯한 모습으로 노란 머리 휘날리며 떠났다.

반면 서한빛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코너를 나왔고.

그녀를 불러냈던 연습생 친구가 쪼르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헐! 설마!”

연습생 친구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서한빛을 봤다. 정확히는 그녀 손에 들린 작은 쪽지를 보며 입을 가렸다.

“대박! 너 받았구나?”

그런가. 이거 진짜 그 기로 프로듀서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은······.

“고백받은 거 맞지!?”

“······.”

#“관심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회의를 위해 자리를 잡는데, 여직원이 질문해왔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끄덕거렸다.

“네, 있죠.”

“연락처 아세요? 제가 한 번 연락해볼까요? 일일 캐스팅 디렉터 느낌으로.”

김지희가 왠지 캐스팅 디렉터는 안경을 써야 할 것 같다며 주재윤의 알 없는 패션 안경을 뺐어 썼다.

“일단 그 친구를 아는 사람한테 말 좀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긴 했거든요?”

“아, 그럼 금방 찾아오겠네요.”

그건 모르겠고. 말을 전하기로 한 애가 어쩐지 역할에 너무 과몰입한 느낌이라.

그냥 말만 툭 전해주면 되는데 말이지.

‘하여튼 못 미더워.’

고개를 흔들며 앞에 놓인 스탠드형 보드를 보았다.

“그럼 이제 정말 일정 짜야죠, 일정. 기자까지 대대적으로 때렸으니 곡을 내야 하잖아요?”

여직원이 휘릭 뒤집으니 칸칸이 나누어진 달력이 나타났다. 그 안엔 이미 무수히 많은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흔히 음원 강자라 불리는 뮤지션들과 현재까지 오피셜로 나온 그들의 컴백 일자였다.

주재윤이 먼저 나섰다.

“아무래도 우리가 홍보 쪽이 좀 부족할 수밖에 없잖아요?”

“전체적으로, 골고루 부족한 편이지.”

여직원의 말에 주재윤이 씁쓸하게 끄덕였다.

안경을 벗은 김지희가 물었다.

“홍보 비용은 대략 얼마나 들 것 같아요?”

“레이블에 곡 홍보 비용까지 합치면 3천만 원이요. 이게 가장 짜게 잡은 거예요.”

“아더 레이블땐 얼마였어요?”

“그나마 가장 홍보비용이 덜 들었던 기영이가 1억이었죠.”

“세 배가 넘네···.”

“그러니까 적어도 이 뮤지션들이 컴백하는 날짜는 꼭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이땐 휴일이니까 되도록 피하고요. 그리고 또 피해야 할 날이···.”

쩝. 다 맞는 말들이라 더 착잡하네.

이전엔 데뷔나 컴백 일자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형 기획사 특성상 날짜를 한번 픽스하면 줄줄이 다른 뮤지션들도 픽스가 되어 바꾸기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홍보가 든든하니 걱정이 없었지.

새삼 TKM의 그늘이 이렇게 짙었나 싶다.

“확실히 방금 언급한 날들은 피하는 게 좋겠네요. 일단 앨범 홍보는 상황이 좀 더 진척되면 다시 얘기하고요. 레코즈 자체 홍보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니 방법을 바꿔야 하는 건 당연했다.

적어도 홍보에 있어서만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약체인 원 튠 레코즈.

우리는 최약체만의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날짜···날짜···.”

머리가 훤히 드러난 중년 남자가 만년필을 휙휙 돌리며 염불 외우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한숨을 푹푹 쉬며 이마를 짚었다.

중얼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이거 뭐 술자리 눈치 게임도 아니고······내가 무당도 아닌데 그쪽에서 곡을 언제 낼지 어떻게 알아.”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구석에서 서류와 씨름하던 여자가 착착 서류를 포개며 다가왔다.

“뭐겠냐.”

여자의 시선이 책상 위를 훑었다. 달력과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들이 널려있었다.

“우리 애들 컴백 날짜 때문에요?”

“맞아, 그거야. 그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지금.”

대단한 난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처럼 코를 찡그리는 남자.

종이에 숫자까지 휘갈겨 써가며 뭔가를 계산 중이었다.

그 상황을 본 여자가 갸웃거렸다.

“왜요? 전에 팀장님들끼리 회의할 때 대략적으론 정해진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그랬는데....”

여자가 근데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머릴 긁적이던 남자가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뗐다.

“갑자기 기로 프로듀서가 레이블을 만들었잖냐. 곧 곡도 나올 텐데 그건 피해야 할 거 아냐.”

“에이, 그거 때문이었어요? 아무리 기로 프로듀서, 기로 프로듀서 한다지만 그 정도까지 할 건 아니지 않아요?”

“모르는 소리 마라. 지금 나만 이런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아?”

남자가 답답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기획사들 죄다 원 튠 레코즈만 주시하고 있어. 기로 프로듀서 곡이랑 시기 겹치는 거 피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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