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악연일까, 기회일까 (6)
음원 사재기.
과거엔 빈번했던, 그리고 지금에 와선 도시 괴담처럼 이어져 온 음악 업계의 어두운 면이다.
흔히들 팬덤에서 응원하는 뮤지션의 순위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무한 스밍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명백히 불법이기도 하고.
‘트릴로지 얘긴가?’
최근에 JME에서 벼락처럼 나타난 신예였고, 단 보름 만에 차트 밖에서 1위까지 올랐다. 시기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만약 JME에서 누군가 음원 조작의 힘을 받았다면 트릴로지일 확률이 가장 높지.
‘미쳤군.’
뒤늦게 욕이 올라왔다.
쓰레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상대는 음원사이트 관계자일 확률이 높았다.
김 부장이라고 했었지.
당장 어느 회사를 가도 한 명 이상은 나올만한 이름이라 누군갈 특정하기도 어렵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겨우 컴퓨터 앞 숫자놀음에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정정당당한 승부, 뭐 이딴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그렇지 않은 업계라는 건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부터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원작자인 김준호의 곡에 제대로 똥칠을 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단어를 자근자근 씹듯이 내뱉자 앞에 있던 김종운이 움찔거렸다.
상관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골이 울린다. 이걸로 이치구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조차 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녹음 파일. 받을 수 있을까?”
김종운이 끄덕거린다. 뭔가 더 바라는 게 있는 눈빛으로.
“네, 드릴게요. 근데, 있잖아요···.”
“오늘은 이만 가 봐. 내가 생각해야 할 게 많아졌네.”
“아···.”
“다시 연락할 테니까.”
말꼬리를 늘어트리다 급격히 밝아진 얼굴로 핸드폰을 손에 든다.
“네, 네! 제가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파일을 받고, 나가려는 김종운에게 한 가지 더 물었다.
“아 참, 너 연습생 계약서 썼지? 거기에 계약 해지 시에 위약벌 조항이 있었어?”
“아뇨! 전혀요! 저 바로 나올 수 있어요! 이치구 그 새···흠, 팀장님은 허구한 날 1억 뱉어내야 한다고 협박하는데, 그거 구라인 거 연습생들 다 알거든요. 나가면 이쪽 일 못 하게 해준다는 말 때문에 못 나가는 게 더 크죠.”
“그래? 알겠어.”
“네?”
“알겠으니까, 가도 돼.”
뭔가 말이 더 있을 거라 기대했는지 어벙벙하게 서 있다가 인사를 하며 나갔다.
어쩐지 김칫국을 들이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으아.”
앓는 소릴 내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김준호의 곡, 이치구, 음원 사재기······.
쉴 새 없이 점멸하는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껐다.
복잡하게 엉켜있는 생각들을 비우려고 하니 좀처럼 비워지지 않아서 다른 걸 채웠다.
JME 연습생에게서 들었던 멜로디로.
이 고음들을 대체 어떤 음색으로 부를까?
그 궁금증과 기대감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기대감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오후가 되자마자 투자자 미팅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그렇듯 질문의 유형은 비슷했다. 그래서 더 죽을 지경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 듯한 기분이랄까.
한참 만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 예정된 미팅은 모두 끝이 났지. 미팅은.
“인터뷰······몇 시부터였죠?”
한바탕 미팅 쓰나미를 겪고 나니 기억력도 떠내려갔나 보다.
황망한 눈으로 묻자, 여직원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30분 후요. 얼른 이거라도 드세요.”
모듬 초밥이 든 도시락을 들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제야 허기가 진다. 너도 쓰나미에 밀려났다가 이제 돌아왔구나.
연어 초밥을 우물거리며 질문지를 체크 했다. 레이블 보도자료 공개 후, 첫 인터뷰 일정이라 물어볼 게 많은가 보다. 질문지도 빽빽들 하네.
그나마 다행인 건······.
“휴, 세이프!”
첫 기자가 익숙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사운드베리 채연주 기자가 작업실로 들어오자마자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바빴는지 이른 봄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급하게 왔어요?”
“네, 인터뷰 마치고 바로 오는 길이에요. 무슨 인터뷰인지도 모르고 국장님이 가라길래 갔다가 4시간을 했어요, 4시간.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더라고요.”
“한 분 인터뷰를요?”
채연주가 끄덕거렸다.
“완전 대형 사건이거든요. 물론 대표님의 독립도 큰 사건이긴 하지만요.”
“사건이라니까 꼭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네요.”
아님, 내가 지금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그렇거나.
그저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는데, 채연주가 생각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직전 인터뷰 장르가 그런 쪽이긴 해요. 범죄 스릴러랄까.”
범죄 스릴러?
대중음악 전문 기자가 갑자기 영화 관련 인터뷰를 갔을 리는 없고.
되게 묘하네.
마침 나도 범죄 하나 때문에 머리가 복작복작한 데 말이지.
음원 사재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영역이 아니란 판단에 가장 믿을만한 기자인 채연주에게 넘길까 생각 중이었는데 말이지.
확실히 나보다는 이 녹음 파일을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않겠나. 길성혁 때처럼.
그런데 생각보다 그녀가 너무 바빠 보인다.
채연주를 보며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질문지를 서둘러 내려놨다.
“휴, 그럼 시작할까요? 인터뷰가 줄줄이 시라면서요. 질문은 산더미인데 시간이 줄고 있어요!”
그때 눈치 없이 탁자 위 그녀의 핸드폰이 파르르 울렸다.
푹 한숨을 내쉰 채연주가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직전에 인터뷰했던 분이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당연히 받아야죠. 큰 사건이라면서요.”
“그럼 실례할게요!”
자리에서 일어나 쌩하니 복도로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어쩌다 보니 나도 화면에 뜬 발신자명을 봐버렸다.
기자다 보니 당연히 소속과 직책 이름까지 모두 나열되어있었고.
‘포탈 뮤직 김대명 부장.’
이봐. 저렇게 김 부장이 많아요. 저렇게······.
무심코 한탄으로 지나치려던 생각이 우뚝 멈췄다.
범죄에 음원사이트 중 하나인 포탈 뮤직, 거기에 김 부장까지.
내가 지금 악기 살 때 합리화하듯 억지로 짜 맞추고 있나?
잠시 고민하다가 채연주를 기다렸다.
통화를 마친 그녀가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자리에 앉는다.
내가 얼른 물었다.
“범죄 스릴러는 잘 해결됐어요?”
“전혀요. 지금 재난 블록버스터 쪽으로 가게 생겼어요.”
스케일이 커졌네?
“뉴스에서 곧 개봉하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정이철 선배부터 편집장님, 국장님까지 난리가 나긴 했는데 사이즈가 워낙 큰 데다가 증거도 충분하지가 않아서요.”
술술 얘기하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게 묻고 싶은 게 있었나 보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표님도 이제 이 업계에 꽤 많은 일을 겪어보셨을 테니까 묻는 건데요. 무슨 제안 같은 거 받으신 적 없어요? 이를테면······.”
“사재기.”
“욱, 콜록! 콜록! 어욱, 갑자기 사재기, 아니, 사레가······.”
내가 웃었다. 채연주는 산업 스파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고.
“뭐예요? 어, 어떻게 제가 그거 물어볼 줄 아셨어요?”
“큰 사건이라는 게 그거 맞아요?”
채연주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빛엔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모른척하며 USB를 질문지 위에 올렸다.
“이게··· 뭐예요?”
블록버스터에 빠지면 안 되는 거.
폭탄.
#<트릴로지 마침내 포탈 뮤직까지 차트 1위에 오르며 국내 7개 음원차트 올 킬!>
한 화면엔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다른 화면엔 국내 음원사이트들의 순위가 차례대로 띄워져 있었다.
1위. 1위. 1위···
두 화면을 번갈아 보며 입꼬릴 씰룩거리던 이치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건데 말이야. 포탈 뮤직 김 부장 새끼가 쫄보처럼 사리지만 않았어도 금방 석권하는 건데. 병신새끼. 돈을 준다 해도 못 처먹어요.”
음원사이트 7개 중 작업이 들어간 건 총 4개였다.
가장 큰 음원사이트인 튜너와 두 번째인 벅 뮤직은 위험부담이 있어 애초에 건들지 않았고, 포탈 뮤직은 담당자인 김 부장이 거절했다.
나머지 4곳만으로 충분하긴 했다.
차트 상위권에 드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하고 애초에 밑밥처럼 깔아둔 뮤튜버 커버, 각종 SNS 커버 등, 바이럴 마케팅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면서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도 순위가 치고 올라갔다.
그렇게 결국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 국내를 싹쓸이했으니 지난번 본부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 시작되겠네요.”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이치구가 히죽 웃으며 옷걸이에 걸려있던 자켓을 집었다.
“나간다.”
“어딜요? 설마 원 튠 레코즈에 진짜 가시게요?”
“그래, 진짜 간다. 왜? 화환도 보냈는데 못 갈 건 또 뭐야.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되겠어. 이제 그 새끼 곡도 필요 없겠다, 가서 제대로 수모를 갚고 와야지.”
이치구가 비릿한 표정으로 자켓을 걸쳤다. 나가려는 그에게 실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아, 한빛이요. 그래도 나갈 생각인가 보던데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걸 확인했나 봐요.”
“어린 년이 떡잎이 괜찮은 거 같아서 잘 좀 키워볼라 했더니 끝까지···. 됐어 꺼지라 해. 어차피 이제 난 트릴로지 등에 업고 미국 갈 텐데 그딴 년이 뭔 소용이야.”
그리고는 세상 여유롭게 휘적휘적 사무실을 나섰다.
#“뭘 그렇게 보세요?”
창가에 기대 서 있는데 크림 빵 하나를 입에 물고 들어온 김지희가 물어왔다.
“그냥 길이 고즈넉하니 보기 좋아서요.”
“확실히 아더 레이블 때와는 다르게 건물들이 낮으니 덜 답답해요. 사람 사는 느낌도 물씬 나고. 귀여운 길냥이도 많고.”
“그죠. 복작복작한 청담동과는 달리 이 시간대엔 저렇게 가끔씩 사람이 보이······.”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가 굴러오네.”
잠시 뒤, 터벅터벅 소릴 내며 계단을 올라온 덩치 크고 몸에 낙서 많이 한 쓰레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저거에 맞는 쓰레기통이 없는 게 아쉽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제가 다행히 한가하신 시간대에 찾아왔나 봅니다.”
“그러게요. 좀 더 바빴어야 했는데.”
이치구가 한쪽 입매를 끌어올리며 콧방귀 같은 웃음소릴 냈다.
“곡 받으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이제 대표님 곡은 필요 없어졌거든요.”
“왜요?”
“새로운 작곡가를 구했어요. 그것도 글로벌한 놈으로다가. 대표님도 아시죠? 월드덕이라고. 거기 유명 프로듀서라던데?”
와, 월드덕에 이치구라. 대환장 콜라보네.
“그 곡 참······궁금하네요.”
“머지않아 듣게 되실 텐데요 뭘.”
글쎄다. 난 평생 가야 못 들을 거 같은데.
‘발매가 안 될 곡 같아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이치구는 여전히 의기가 양양해서 거들먹거렸다.
“그나저나, 대표님 곡이야말로 언제쯤 듣게 될지 참 궁금하네요. 아직 변변한 뮤지션 하나도 못 구하신 것 같은데. 코딱지만 한 사무실이 이렇게 넓어 보일 수가!”
작정하고 왔는지 계속 비꼰다.
다음은 뭘로 비꼴지 기대가 될 지경인데.
“아, 하서윤이 원 튠 레코즈에 올지도 모른다는 찌라시가 돌던데. 그건 개소리죠?”
덤덤한 표정에 역시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놈이 비웃었다.
“하긴, 걔 욕심 엄청 많은 애라고 소문 파다하던데 이런 곳을 왜 오겠나.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으면 못 오지. 하여튼 요새 찌라시들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혀를 차는 그에게 내가 슬쩍 말했다.
“이 팀장님 이름으로도 찌라시가 하나 돌던데요.”
“저요? 푸핫, 트릴로지 덕분에 저도 유명세라는 걸 좀 타나 봅니다? 어떤 거였는데요?”
뭐든 유쾌하게 받아들일 얼굴이었다.
오히려 유명세가 오를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확실히, 유명해지긴 하겠지.
“음원 순위 가지고 장난쳤다고.”
“···!”
먹물이 기름종이에 번지듯, 순식간에 사색이 된 이치구.
퍼석하게 마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앞으로 쏟아질 듯 다가왔다.
“무슨 개 같은 소리야 그거.”
“왜 이렇게 흥분을 해요. 맞는 게 하나도 없는 찌라시일 뿐인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침을 꿀떡 삼킨다. 그리고 한 발짝 멀어지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정도껏 말이 안 되는 소리여야죠. 악성 루머도 그런 악성 루머가 없네. 대체 누구···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아직 괜찮을 거야.
막을 수 있을 거야.
문제없···.
“기자들한테요.”
자기위안이 가득해 보이던 이치구의 얼굴이 비로소 완벽히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