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악연일까, 기회일까 (5)
“시끄러워지면 안 되죠. 시끄러워지면. 근데······.”
탁탁탁.
다리를 떨던 그가 거뭇거뭇한 입술을 쭉 찢어 올렸다.
“안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나만 그래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웃을 줄은 몰랐는데.
“글쎄요. 제가 나서면 그래도 귀가 아플 정돈 되지 않을까요?”
“하, 나 참. 대표님 이거 선을 자꾸 넘으시려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표님이 대단하신 건 알겠는데 아니지, 아니지. 대단하셨던 건 알겠는데. 그것도 회사 끼고, 뮤지션들 끼고 그랬을 때지. 지금은 솔직히 뭐가 남으셨어요? 안 그래요?”
계속해보라는 듯 가만히 쳐다봤다.
이치구가 눈썹을 역팔자로 꺾는다.
“곡 하나 받겠다고 제가 그렇게 굽신거렸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섭섭하죠.”
저게 어떻게 섭섭한 사람의 표정인지 모르겠네. 딱 빈정 상한 얼굴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치구가 손뼉을 쳤다. 저가 무슨 심판인 것 마냥.
“자, 자. 여기까지만 하고 정리합시다. 대표님은 곡 주시고, 그러면 우리는 나중에 피처링 필요하실 때 비싼 애들로다가 팍팍 넣어드리고, 홍보도 도와드릴게요. 방송 쪽이랑 광고 쪽 관계자들도 다리 놓아드리고. TKM 나온 마당에 거기 손 벌리고 싶지 않으실 거 아녜요?”
“곡 돌려준다는 얘기가 쏙 빠졌네요?”
“아 또 무슨 곡 얘기요. 우리 얘기만 해요, 우리 얘기만. 별 쓰잘때기 없는 거 끌어다가 안 되는 협박 마시고. 괜히 정의로운 척하지 마시라고요. 대표님이 이러실수록 오히려 그 새끼가 다친다니까?”
나를 타이르는 간지러운 목소리가 귀를 후빈다. 귓구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얘기했잖아요. 그 곡 어차피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표절이든 저작권이든 소용없어요. 제가 뭐 바보도 아니고 설마 문제 될 일을 만들었을까.”
“그러게요. 바보도 아닌데 왜 그러셨을까.”
“그니까, 괜히 힘 빼지 마시고······예?”
뒷머릴 긁으며 말꼬릴 올렸다.
“안 시끄러워질 것 같다고 했죠?”
“······.”
제법 동그랗게 커진 이치구의 눈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진짜 그럴지 보죠. 귀 활짝 열고 다녀요.”
#“뭐래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여직원을 시작으로 먹이를 기다리던 아기 새처럼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다 내 표정을 보곤 입맛을 다신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스포를 당한 관객들처럼.
나름 덤덤하게,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는데 다 티 났나 보네.
“얘기가 잘 안 됐구나······.”
그냥 안 됐다 뿐인가. 씨알도 안 먹혔지.
부글대는 건 나만이 아닌지 김지희는 생수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여직원은 파우치를 꺼내더니 화장을 고쳤다. 열 받는데 퇴근하면 클럽이라도 가야겠다며.
그리고 주재윤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명만 내리면 적장의 멱을 따러 갈 기세였다.
“어떻게 할까요? 내일 뿌릴 보도자료에 이 내용도 끼워 넣을까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집기들이 바닥을 굴렀다.
3초 만에 책상 위를 깔끔하게 비운 이치구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를 까득까득 갈았다.
담배를 꺼내 물고 씩씩대는 그의 앞엔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움찔거리는 실장이 서 있었다.
“후우. 열 뻗치는 거 참느라 뒤지는 줄 알았네. 또라이 같은 새끼가······지가 아직도 아더 레이블 대푠 줄 아는 거야? 그래 봤자 이젠 끈 없는 프로듀서 나부랭이 주제에······!”
지금은 그저 시작도 안 한 작은 레이블의 대표일뿐인데. 제가 아직도 대단한 뮤지션들을 거느린 대표인 것마냥 거들먹대는 모습이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본부장까지 관심을 가진 마당에 차마 성질대로 엎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
분을 삭이며 담배를 태우는데, 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정말 시끄럽게 만들면 어떡하죠? 주변이 떠들썩해지는 건 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시끄러워진다니까? 뭔 병신같은 짓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김준호 그 새낄 위해서 움직이는 거면 그렇겐 못 해. 소문 퍼지면 이 바닥에서 작곡가로 살 긴 그른 건데, 지가 천년만년 책임질 것도 아니고. 안 그래?”
“그래도 혹시나 이 방법밖에 없다고 터트리면.”
“아주 터트리라고 고사를 지내라?”
“아뇨, 아닙니다···.”
실장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이치구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별거 없이 지나갈 거야. 이런 논란 보면 금세 다 사그라들잖아. 오히려 팬들은 우리 오빠 지키자면서 더 뭉치고. 일 빠그러지면 본부장님한테도 좀 혼나고 말지. 내가 중국 공장 건도 그렇고 그동안 해온 게 있는데, 어차피 그 양반도 나한테 함부로는 못 해.”
이치구가 깊게 담배를 들이마시며 웃었다.
아직 화가 남아있는지 미묘하게 일그러진 웃음이었지만, 자신만만한 목소리만큼은 진짜였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그 진짜였던 웃음기도 싹 말라버렸다.
인터넷에 한 가지 주제로 기사들이 도배 되어 있었다.
아니, 여전히 기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게 도배가 되다 못해 덧칠까지 할 모양새였다.
기자들이 끓이고 우리고 조리고 되새김질까지 하게 만드는 주제는 다름 아닌 기로 프로듀서였다.
“후우······.”
담배를 세 모금은 연속으로 들이마신 것 같은 숨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치구가 내쉰, 안도의 한숨이었다.
<기로 프로듀서의 새로운 레이블의 이름은 원 튠 레코즈(One Tune Records)!>
<첫 뮤지션, 첫 곡에 대한 관심 폭발!>
<이례적인 투자 계획 공개, 앨범마다 대중의 투자를 받는다? 네티즌들 벌써부터 지갑을 열 준비 중>
인터넷을 뒤덮은 건 기로 프로듀서의 새로운 레이블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다행히도.
‘젠장. 다행? 내가 지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거야!?’
자존심이 상한다. 놈이 기지개를 켰을 뿐인데, 혼자 쫄아버린 것 같아서.
그럼에도 간담이 서늘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고작 저런 기삿거리로 포털 사이트를 뒤덮을 줄이야.
상황파악도 못 하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서 어떤 기록을 세웠든, 지금은 그저 독립 준비 중인 프로듀서 나부랭이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씨발!”
기어코 올라온 욕설이 사무실 안을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전화도 울렸다.
본부장이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군.”
까끌거리는 수염을 역방향으로 매만지던 JME 본부장이 등을 의자에 묻었다.
그리고 머리를 젖혀 이치구를 내려다보듯 응시했다.
기로 프로듀서가 보도자료를 냈는데, 왜 트릴로지의 이름이 없냐고 묻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이치구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깔았다.
“이 팀장, 일 잘하다가 삐끗했네?”
“죄송합니다.”
“죄송해야지. 상대가 뭐 같아도 필요한 걸 따오는 거, 그게 진짜 능력이거든. 난 이 팀장한테 그런 걸 기대했는데 실망했고. 밖에서 성질머리 못 죽이던 버릇이 여기서도 나오나?”
“······.”
“변명은 안 해서 좋네.”
JME 본부장의 시선이 이치구에게서 떨어졌다.
“그나저나 기로 프로듀서 그놈. 외국물 먹고 오더니 여기도 거기서 한 대로 하면 다 되는 줄 아나 보는군. 건방진 새끼.”
빌보드가 아니라 빌보드 할아버지 머리 위에서 놀다 온다고 해도 지금은 한국이다.
게다가 여긴 JME고.
감히, 라는 두 글자가 JME 본부장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그에게도 없었다.
“그 작곡가 새끼한테 연락해서 돈 준다고 해. 적당히 쥐여줘서 더는 말 안 나오게 끝내버려. 그리고 기로 프로듀서는···.”
“제가 다시 한번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됐어. 그렇게 받아낸 곡이 퍽이나 좋겠다. 그냥 손 떼. 트릴로지 후속 앨범 타이틀은 대표님이 받아오셨으니까.”
이치구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대표님 지금 미국 가 계시잖아요?”
“그치. 그래서 미국 프로듀서 곡이야.”
JME 본부장이 끄덕거리며 웃었다.
“그것도 월드덕 레코드 쪽.”
“월드덕이면, 론 스미스요?”
“걘 월드덕 나간 지가 언젠데. 세비슨 너플러랑 턴투더 레이블로 갔잖아. 자네 이제 해외 쪽 기사도 좀 보고 그래야 돼.”
“······?”
“대표님 지금 TKM 때문에 자극받아서 동분서주하고 계시잖냐. 곧 해외 전담팀도 만들어질 거고. 거기엔 트릴로지가 제일 유력할 텐데, 자네도 같이 가야 하지 않겠어?”
느릿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치구가 욕심에 젖은 눈을 빛냈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열심히 하겠다고.
JME 본부장은 그런 이치구의 코앞에서 당근을 줄 듯 말 듯 흔들어댔다.
“그러니까 일 잘한다, 잘한다 할 때, 진짜 잘하라고. 어중간하면 내가 고민이 많아지니까.”
#“돈을 주겠다고 했다고요?”
-네, 조만간 JME로 오라더라고요···.
이거, 협박이 먹히다 말았네.
곡을 돌려달라니까, 돈을 준다니.
황당했지만 그래도 김준호의 의사부터 물었다.
어쨌든 그의 곡이니까. 그의 뜻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요? 알겠다고 했어요?”
-아뇨. 싫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뭐래요?”
-다 돈 벌려고 하는 짓인데, 왜 돈으로 안 되냐고. 지금 해보자는 거냐고······그래서 돈 벌려고 하는 것도 맞는데, 적어도 내 노랠 내 이름 걸고 제대로 벌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모르게 욱해서 그런 건데······잘못한 걸까요?
내가 웃었다.
헛웃음처럼 속 빈 소린 아니었고, 단단히 꽉 찬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기어들어 가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거네.
나보다 낫다.
“본인 선택에 잘못이 어딨어요.”
잦아드는 건너편 숨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쉬고 있으란 얘길 남겼다. 내가 다시 연락하겠다고.
감사해요.
선명한 목소릴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러니 이제······.
이쪽 얘길 마무리 지어야겠지.
탁자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얘기해줄래? 중국에 뭐가 있다고?”
축 늘어진 채로 잘게 흔들리던 노란 머리가 들어 올려졌다.
최정아가 일하는 카페에서 난동을 부렸던, 김종운이 나를 본다. 자신감과 독기가 모두 빠진 얼굴로.
내 기억대로 여전히 녀석은 연습생이었고, 데뷔조 근처도 가지 못한 3군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딱히 안타깝진 않지만.
“중국에 JME가 의뢰하는 공장이 있어요.”
“앨범 패키지 공장?”
당연하게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녀석이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내 앞에 펼쳐놨다.
“얼마 전에 데뷔조에서 또 떨어져서, 제가 왜 또 안 된 건지, 채점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려고 사무실을 갔었는데 이상한 얘길 엿듣게 돼서요.”
파형 모양의 앱이 열렸다.
이윽고, 녀석이 말한 그 ‘이상한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는 TOP100 안짝으로만 넣을 생각이었는데, 사람 욕심이란 게 또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치구의 목소리였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목소린 들려오지 않았다.
-어차피 공장 안 돌려도 쭉쭉 올라가고 있다면서요? 거기에 살짝 추진력만 넣는다는 느낌으로 할게요. 1위 찍으면 바로 그만둘 테니까 걱정 마세요. 어차피 다른 음원사이트들도 눈감아주기로 한 문제니까, 김 부장님 선에서 잘 정리 해주시면 됩니다.
껄껄대며 한참을 웃던 그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는지 신이나 말한다.
-그렇죠. 그겁니다. 게임도 작업장이 있는데, 음악이라고 안 되겠어요? 다 똑같은 거지.
그리고 통화 상대를 향해 도장을 찍듯 되물었다.
-솔직히 돈을 안 내는 것도 아니고, 사재기가 나쁜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