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10화 (210/221)

210. 투자판을 뒤집는 건 (2)

“좀 작긴 작네.”

홀은 작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민머리 남자가 주변을 훑으며 평가했다.

“그래도 기로 프로듀서가 대표로 있으면 앞으로 스타 연얘인들이 엄청 몰려들 거란 말이지. 몸집 커지는 거 순식간이야. 어쩌면 상장까지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민머리 남자가 작게 속삭였다. 그의 설레발에 남자는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깔끔하다. 스타트업 사무실. 딱 그 정도.

남자가 콧등을 매만지며 말했다.

“상장은 아무나 하나. 설령 된다 해도 상장되겠다 싶을 때쯤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로 가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연예 기획사는 또 안 그래. 이렇게 초창기부터 잡아놔야 우리 말이 잘 먹힌다니까? 그때 가선 투자자도 많아지고 머리가 커서 컨트롤이 힘들어요. 콧대만 높아서 연예인들 케어한답시고 우리 말 다 무시하고.”

민머리 남자가 혀를 차며 설득했고, 남자는 별말 없이 시선을 떼어내 주변을 마저 훑었다.

아까 한 말은 진심이었다.

정말 딱히 관심 없다.

던컨이고 빌보드고 뉴스에서 언뜻 본 것 왜엔 그다지 알지도 못하고, 차트는 주식 볼 때만 본다.

잘 모르는 종목엔 뛰어들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그였기에 이 자리는 민머리 남자가 억지로 끌고 온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잠자코 있을 생각이었다.

민머리 남자가 지지고 볶는 동안 지켜보다가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그때 안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아무리 이 업계에 큰 흥미가 없던 그라도 저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뉴스건 기사건 꾸준히 내보냈던 얼굴이니까.

“아하하, 장 대표님. 지난번에 통화하셨죠? 한성 캐피탈의 박남기라고 합니다.”

민머리 남자, 박남기가 껄껄 웃으며 일어나 장 대표를 알은체했다.

박남기와 손을 맞잡은 장기로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이어 천천히 일어난 남자에게로 향했다.

박남기가 이에 맞춰 소개했다.

“이쪽은 내가 데려온다고 했던 FE 인베스트먼트 대표님.”

박남기의 소개에 장기로가 그러시냐며 한걸음 다가왔다.

남자는 그런 장기로에게 손을 건넸다.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성이경입니다.”

#투자 미팅을 위해서 온 사람들 앞에 앉았다.

여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홀짝이며 두 사람을 보았다.

둘의 온도 차는 명확했다.

TKM 기획팀장의 소개로 알게 된 투자자 중 한 명인 한성 캐피탈 박 이사는 껄껄거리며 웃는 얼굴로 날 반겼다.

FE 인베스트먼트의 성 대표는 어쩌다 보니 왔다, 라는 느낌을 풀풀 풍기며 대충 장단에만 맞춰주고 있는 느낌이었고.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이미 여러 명의 투자 희망자들을 만나면서 첫인사의 느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였기에.

훈훈한 분위기가 드라이아이스를 끼얹은 것처럼 냉각되고,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던 얘기가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탈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유명 뮤지션과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앨범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데다가, 회사를 크게 키울 생각도 없는 작은 레이블.

그러니 투자자들 입장에선 간판 보고 돈을 굴리러 왔다가 실망만 하게 되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투자 미팅이 이어질수록 박 이사의 웃음이 급격하게 줄었다.

대신 실망감이 묻어났다. 이게 아닌데? 하는 눈빛이랄까.

한참을 얘기하다가 박 이사가 칙칙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름 있는 가수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네요? 앞으로도 당분간은 없을 거고요?”

“그때 대략적으로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그랬죠. 근데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이신 줄은 몰랐네요.”

번들거리는 머릴 긁으며 박 이사가 난색을 표했다. 거칠게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처음과는 딴판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이거, 참 곤란하네요.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대표님 이름만 믿고 가기엔 좀 어렵겠는데요.”

“그런가요?”

덤덤하게 묻자 박 이사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이래선 저희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투자받기가 어려우실 텐데요?”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유명한 가수들 러브콜 쏟아지실 텐데 뭐하러 그렇게 어려운 길 가십니까? 요새 대표님 덕에 해외 진출 노리는 가수들 많다는데 거기서 몇 명 추려서 시작하시죠. 그러다 포트폴리오 좀 쌓이면 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천천히 하시던, 빠르게 하시든 마음대로 하시고.”

그래서야 나와도 똑같잖나.

아니, 오히려 더 제한적이지.

적어도 아더 레이블에선 내가 원하는 뮤지션과 작업을 했었으니까.

그때 잠자코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성 대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이게 하실 얘기의 전부는 아니겠죠?”

내가 그를 보았다. 박 이사도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원하는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으시고. 그걸 묵묵히 지원해줄 사람을 찾으시는 것 같은데. 이 정도 가지곤 저희 같은 사람들 설득하기 힘드실 겁니다.”

옆에서 ‘내 말이!’ 하는 표정으로 답답해하는 박 이사.

나도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어차피 이 정도만 얘기해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는 없더라.

그건 내 욕심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투자자님들이 마음에 드실만한 얘길 해보죠.”

*TKM 기획팀장이 내게 말했었다.

기획팀 회의실 책상을 탁탁 두들기며.

“투자를 복합적으로 받는 건 투자자들이 많아질수록 투자금이 줄어들 테고, 입김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겠죠.”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그가 다시 나를 보았다. 살짝 입꼬릴 올린 채로, 작게 끄덕이며.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다행이네요.”

“뮤튜브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한다는 걸 예측하고 연말 콘서트에 접목하실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장 대표님, 사업에도 재능이 있으세요.”

진심인가 하고 기획팀장을 보았다. 그는 한없이 진심인 표정이었다.

저 표정엔 미안하지만 뮤튜브 스트리밍은 예측이 아니라 그냥 미래에서 보고 안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획팀장이 의자를 한층 더 끌어당기며 화두를 바꿨다.

“어떤 물고기를 잡을지 정했으니, 이제 미끼에 대해 얘기해 보죠.”

“미끼요?”

“네, 투자자들을 잡을 수 있는 미끼요.”

그가 책상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볼펜을 잡고서 이면지 위에 끄적이며 설명했다.

“당장은 대표님 이름값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는 투자자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대표님 계획을 들어보면 솔직히 저라도 망설여질 것 같아요. 투자란 게 결국엔,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냐. 번다면 얼마를 벌 수 있냐로 귀결되는 거잖습니까. 근데 대표님은 유명한 뮤지션을 영입할 생각도 없으시고, 노래도 천천히, 원할 때 만들고 싶으시고······.”

그러려고 나가는 거니까.

근데, 내가 들어도 참 맛없어 보이는 미끼네.

“투자자들 입장에선 당장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겠죠. 이럴 땐 미래를 보여줘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혹할만한 미래요.”

미래를 보여줘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적성일지도.

실제로 난 미래를 보고 온 사람이니까.

전망이나 뻥카가 아니라 진짜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신사업 같은 거 말이죠?”

“뭐, 그렇게 거창할······아뇨, 좋네요. 거창해야죠. 그래야 미끼를 물겠죠.”

기획팀장이 주억거렸다.

미래의 엔터 업계에서 떠오를 신사업이라.

동시에 나와 뮤지션은 하고픈 음악에 전념할 수 있고, 사업은 사업대로 굴러갈 수 있는······.

내가 고민하는 걸 지켜보던 기획팀장이 물었다.

“혹시, 생각해두신 게 있으세요?”

*내가 준비한 얘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을 때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박 이사는 이제 완전히 심드렁해진 얼굴이었다.

결국, 내 미끼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네.

“IP(지적재산권) 사업······?”

낮게 중얼거린 그가 별 소득 없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것도 유명 연예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먼저 스타들을 영입해서······.”

모든 게 저걸로 통하는 사람이네.

“그건 저와 앞으로 오게 될 뮤지션이 해결해나갈 문제겠죠.”

“흐음······.”

이쯤 되니 박 이사도 언짢은 표정을 숨기기 어려워 보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닦아내며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장 대표님 안목 뛰어나고 곡 잘 만드시는 거 알겠고, 그래서 지금까지 실패가 없으셨던 것도 알겠는데 솔직히······그것도 TKM이란 그늘 아래에서의 얘기죠. 노래 잘 부르는 사람, 곡 잘 만드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서포트가 중요하다는 거, 대표님도 아시죠? 계속 이런 식으로 고집부리시면 투자 힘듭니다?”

“생각이 맞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이래도 내 말 안 들을래? 같은 얘기에 내가 답했다.

투자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박 이사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표정에 짜증이 번졌다.

“괜히 시간 낭비했네.”

그렇게 말한 그가 옆에 앉은 성 대표를 보며 말했다.

“자네도 괜히 데려왔고. 미안해. 나도 이런 영양가 없는 자린 줄 몰랐어. 내가 점심 살 테니 얼른 가자.”

“잠깐만.”

몸을 반쯤 일으킨 박 이사에게 성 대표가 말했다.

“난 좀 더 얘길 해보고 싶어졌는데?”

“뭐?”

“연예인 IP 얘기가 꽤 흥미로웠어.”

“그거 그냥 그럴듯해 보이는 말장난이야. 연예인들은 편하게 하고픈 것만 하고, 대신 캐릭터와 이야기를 판다? 말이 쉽지. 그 유치한 장단에 맞춰줄 사람들이 어딨다고. 막말로 국민 MC 예성재가 사실 트로트 가수였습니다, 하면 대중들이 퍽이나 호응해주겠다?”

박 이사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해도 성 대표는 콧등을 만지작거리며 한결같은 톤을 유지했다.

“글쎄.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두 번째 캐릭터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활동을 한다는 게, 난 꽤 재밌게 들리던데?”

역시, 낚시도 투자도 한 치 앞을 모르겠다. 박 이사한테 던진 미끼를 성 대표가 물어 버릴 줄이야.

벙찐 박 이사가 자존심이 상한 듯 나와 성 대표를 번갈아 보더니 마저 일어서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 참. 그럼 난 차에 가 있는다? 의미 없는 대화에 끼느니 잠이라도 자둬야겠어.”

박 이사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가 문고릴 잡기도 전에 먼저 문이 열렸다.

“에이씨, 뭐야 깜짝이······.”

화들짝 놀란 박 이사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자연스레 나와 성 대표도 그쪽으로 시선이 이끌렸다.

“······어, 어?”

벌어진 문 너머를 보며 당황한 듯 뒷걸음 치는 박 이사.

나도 의아했다. 오늘은 이 이후로 잡힌 미팅이 없을 텐데, 누가 온 거지?

박 이사가 홱 날 본다. 표정이 묘하다. 사기꾼을 보듯이. 크게 속은 사람처럼.

대체, 왜?

또각.

경쾌한 구두소리가 안에서 울렸다.

또각. 또각.

그 소리의 주인을 보는 순간 나도 너무 의외라 말문이 막혔다.

“······뭐예요?”

내 멍청한 목소리에 머리를 똑 단발로 자른 하서윤이 고양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오디션 보러 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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