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앞지르다
“원하는 건 얻었나?”
무대에 오르기 전, 최연석 감독이 단원들과 마지막 체크를 마친 후 물어왔다.
최정아는 그때 고개를 저었고, 최연석 감독은 의외라는 듯 놀란 눈빛을 보내왔다.
“눈에 띄게 늘었는데,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
이에 작게 끄덕이는 최정아.
그녀는 생각했다.
첫 싱글, 기억애 만큼 늘지는 못했다고.
그땐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성장하는 게 느껴졌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지.
두 번째 싱글은 어땠더라.
현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촘촘한 그물처럼 받쳐주었다.
그때 편하게 노래 부른다는 느낌을 깨달았다.
그리고 첫 앨범.
그땐 스스로의 강점을 깨닫고, 거기에 집중했다. 그걸 통해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이번엔······.
최정아가 선홍빛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얇은 막.’
언제라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두터운 벽보다 질기게 느껴지는 한계.
숱하게 연습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결국 그 한계를 뚫지 못했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목 관리를 위해 연습량을 조절하고 더욱 조심했기에 더 어려워졌지.
그렇게, 더 잘할 수 있다던 다짐은 미완성인 채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후우······.’
최정아가 작은 숨을 내뱉었다.
단 한 번의 멘트도 없이 기억애, 선율, 빗소리, 새여름 등을 연달아 이어 불렀다.
어찌나 몰입해서 불렀는지 마지막 곡에 이르러서야 앞에 선 관객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무대가 워낙 크고, 거리가 멀다 보니 아주 작게 보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이 보였다.
아니, 느껴진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최정아가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타인의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꺼내 들었다.
‘왜 안 될까······?’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데.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얇게만 느껴지는데.
답답한 마음과는 달리 어느새 무대는 마지막 차례였다.
문제의 곡이지.
그동안 들어왔던 어떤 곡보다 좋은 곡.
그녀를 집어삼킬 듯 유혹적인 곡이기에 어느 때보다도 더 잘 부르고 싶지만, 어느 때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곡.
부르는 건 어렵지 않다.
원하는 대로 부르는 게 어려울 뿐이었다.
마침내 최정아가 입술을 뗐다.
“I need you to know···.”
갑갑한 지금의 감정이 가사를 타고 흘러 들어갔고.
그대로 내뱉었다.
알아달라고.
자신이 과거, 사람들에게 말했듯이.
오디셔닝 참가자들이 자신에게 말했듯이.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말하고 있듯이.
“I want you to listen···.”
노래이기 전에 이야기였다.
들어 줬으면 하는 하소연이자, 하고픈 말이었다.
“You can hear it there.”
그저 그곳에서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뮤지션 (Musician)들의 이야기였다.
“······.”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나서야, 최정아는 깨달았다.
좀처럼 찢어지지 않을 것 같던 얇은 막은 찢어졌고.
그토록 원하던 노래를 방금 불러냈다는 걸.
#장내가 술렁인다.
누군가는 경악 어린 표정으로.
누군가는 몽롱한 낯으로.
마지막 무대가 만든 파도에 감탄이 출렁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거였나?’
이런 노랠 부르고 싶어서.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던 건가?
“감사합니다.”
최정아 처음으로 멘트를 했다.
가사의 한 줄처럼, 그건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좀처럼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와 몸을 돌렸다.
백 스테이지로 향하는 길.
유난히도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백 스테이지엔 최연석 감독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조금 놀란 표정이었고, 많이 감격한 얼굴이었다.
그가 내 쪽을 보더니 대뜸 말했다.
“봤나? 대단하더군.”
“정아요?”
최연석 감독이 끄덕인다.
“이미 놀라울 정도로 잘 부르는데도 부족하다길래 대체 뭘까 싶었는데. 무대 위에서 기어코 보여주더군. 이거, 소름이 가라앉질 않네.”
그러게.
그녀가 해냈다.
‘멜로디 없이도.’
미소를 머금고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계단 쪽으로 다가섰다. 거기서 최정아를 기다렸다.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는 박수갈채를 들으면서.
이윽고, 그녀가 내려왔다.
어딘가 날 서 있는 것 같았던 표정은 완전히 집어치운 채로, 헤실거리는 미소가 다가온다.
“피디님!”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변한다.’
변하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최정아의 목소리와 함께 항상 들려왔던 4마디 정도 되는 멜로디가.
이곳으로 오는 내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지.
멜로디의 변화는 항상 최정아가 크게 성장했을 때 나타났으니까.
그렇다면, 분명 지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왜······.
‘이게 들리는 거지?’
*지금까지 멜로디가 변하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피치 휠을 조작하듯 음들이 오르내리며 자리를 잡고, 전혀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것.
이 경우엔 가창자가 성장을 통해 다음 단계를 넘어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레벨 업을 했으니 새로운 퀘스트를 받는 느낌이랄까. 뭐, 나 혼자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지.
그리고 두 번째는, 듬성듬성 비어있던 멜로디가 채워져 들리는 경우다. 내가 작업을 통해 채운 그대로 말이지.
마치 빈칸 채우기를 채점하듯, 네 선택이 맞았다는 듯. 한 번 정도 짧게 들려오고 만다. 이후엔 원래의 멜로디로 돌아가고.
그런데.
‘이번엔 어느 쪽도 아니었지.’
분명 멜로디는 변했다. 하지만 새로운 멜로디는 아니었다.
짧게 반복되지도 않았고. 음이 듬성듬성 빠져 불완전하지도 않았다.
완성된 멜로디를 온전히 들려주었다.
갑자기 멜로디가 친절해지기라도 한 걸까?
그건 아닐 거다. 그랬다면 새로운 멜로디를 들려줬겠지.
지금처럼······.
‘이미 내가 만든 멜로디가 아니라.’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든 멜로디가 최정아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다.
뭘까. 왜 갑자기 저걸 들려주는 걸까?
머리는 복잡해졌고.
기분은 묘해졌다.
최정아의 성장이 멜로디가 들려오는 방식을 바꾼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뭔가 모르는 조건이 또 있는 걸까?
아니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생각해보자.
이 능력은 가창자에게 가장 잘 맞는 멜로디를 단편적으로 들려준다는 것.
이게 변하지 않는 전제였지. 근데 왜 이제야 저 멜로디를······.
혹시. 설마.
이번엔······.
‘내가 멜로디보다 빨랐나?'
#<메인 스테이지 비고, 서브 스테이지 꽉 찼다. 폴 인 뮤직 페스티벌의 대이변···!>
<한국에서 온 최정아, 스타들의 스타였나?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이 그녀의 공연을 직관했다!>
<‘부모, 동료, 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얘기했다’ 쏟아지는 극찬!>
하루 사이에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타임 스퀘어에 잡힌 최정아의 사진이 인터넷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기도 하고, 현장 사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제의 생생했던 순간을 그대로 담은 기자들도 있었고, 스타들 SNS만 긁어다가 붙여넣기 한 기자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여기저기서 최정아 얘기뿐이었다.
“정아 씨 얘기가 엄청 많아요.”
김지희가 다가오며 웃었다.
난 이미 아까부터 웃고 있었고.
“피디님 얘기도 많고요.”
“저요?”
“네. 어제 공연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좀 더 찾아본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신기해하던데요. 대부분 피디님이 만드신 노래였다면서. 오죽하면 기사 중에 이런 제목도 있었어요. ‘차트, 빌보드, 그래미, 페스티벌을 모두 장악한 기로 프로듀서!’”
작명 센스하고는.
“한국은 좀 어때요?”
“거긴 난리 났죠. 좋은 기삿거리잖아요. 악조건 속에서 한국을 빛낸 뮤지션, 국위선양, 국뽕···.”
아예 제대로 판이 깔렸겠구나.
게다가 최정아의 무대를 보며 반응하는 ‘리액션’ 영상들까지 뮤튜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뮤튜브에 올라오는 리액션 영상들 중에 아직 한글 번역 안 된 것들 있잖아요.”
“네, 많죠?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거 우리가 달죠.”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김지희가 동그란 눈을 빛냈다.
“요즘 같아선 홍보 효과로 기사 몇 페이지보다 그게 더 나을 거예요. 요즘은 기사도 뮤튜브로 보는 추세니까.”
손뼉을 친 김지희가 월드 TKM 직원들과 얘기해보겠다며 쏜살같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복도에 기댔다.
‘팬들이 절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쯤 스튜디오에서 어제 무대에 대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받고 있을 최정아.
그녀의 축축했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됐네.”
입꼬리를 천천히 올려 웃었다.
그리고 확신에 가득 찬 채로 짐작했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리라고.
5개월로 예정되어 있던 미국 활동.
그 마지막 한 달.
최정아야 똑같았다.
소니 뮤직이 연결해준 방송과 무대를 오가고, 인터뷰에 팬 행사에······.
예정대로였다.
오히려 변한 건 그녀의 주변 상황이었다.
<국내 음원 차트 역주행, 일곱 개 음원 사이트 차트 1위 재탈환!>
<최정아, 장장 9개월 만에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 1위!>
<최정아, 빌보드 싱글 차트 4위!>
<빌보드 1위급 파급력, 방송국, 공연 기획사, 명품 브랜드들의 최정아 잡기>
그것도 아주 많이 변했다.
방송, 인터뷰, 무대 할 것 없이 수많은 요청이 들어왔다.
그 소니 뮤직이 당황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결국, 예정에 없던 활동을 두 달여간 더 진행해야 했고,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완벽한 금의환향이었다.
#“이야, 사람 많다.”
출근하자마자 믹스 커피 한잔 빼 들고 어슬렁어슬렁 농땡이를 피우던 기자가 후배 기자의 화면을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최정아 기다리는 사람들이지?”
“네.”
후배 기자의 대답에 선배 기자가 한잔 쭉 들이킨 추임새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거, 금의환향인 척 엄청 하네.”
“맞지 않아요? 금의환향?”
“야, 야. 넌 기자 생활 몇 년 찬데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 하냐.”
괜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거드름을 피우는 기자. 그가 뭘 모른다면서 가르치듯 말을 이어갔다.
“뭐, 나름대로 페스티벌이건 방송이건 반응은 좋았던 것 같다만 국내 매체에서 떠드는 정돈 아닐 거란 거지. 그냥 국뽕 마케팅의 일부다 이거야. 예전에도 팬타믹이라는 보이그룹이 미국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도 자료 부풀리다가 알고 보니 앨범 공짜로 뿌리고 그랬던 거여서 웃음 거리 된 적도 있잖아.”
“그건 SNS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을 때잖아요.”
“지금은 SNS가 활발하니 더 구라치는 거지. 선동 몰라? 선동?”
후배 기자는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원래 저렇게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양반이니, 저러다 말겠지 싶어서.
물론, 뭔가를 배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가만······근데 뭐 벌써부터 저렇게 와 있냐? 아직 도착하려면 2, 3시간 남지 않았어?”
그가 손목 시계를 확인하며 갸웃거리자 후배 기자가 진심이냐는 얼굴로 고갤 돌렸다.
“이거, 인천공항 아녜요.”
“뭐? 그럼?”
“어제자 존 에프 케네디 공항 사진인데요? 최정아 출발할 때.”
선배 기자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그, 그러냐? 대충 봐서······근데 거기에 이렇게나 많이 모였었다고······?”
그 무안한 표정을 보며 후배 기자가 끄덕였다.
너는 기자 생활 몇 년 찬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냐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