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03화 (203/221)

203. 멜로디와 멜로디 (3)

“괜찮을까요?”

장기로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떠나고, 소니 뮤직 홍보 담당자가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던진 질문이었다.

담당자를 부른 클라이브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괜찮게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아시다시피 산다라와 최정아의 체급 차이가 너무 큽니다. 방송 활동으로 인지도까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더라도, 똑같이 유명해지는 것과 급이 같은 건 엄연히 다른 문제잖습니까. 아직 사람들은 잘 모를 때, 페스티벌만이라도 피하는 게······.”

기획사 간의 자존심 대결에 최정아란 카드는 무리라고 판단한 담당자였다.

“그게 월드덕이 원하는 거잖나.”

클라이브는 고갤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 통한다는 걸 아는 순간, 앞으로 우리가 어떤 신인을 데뷔시킬 때마다 그런 수작을 부려오겠지. 업계 1위가 될 때까지.”

그 말도 일리가 있는지라 담당자는 입을 닫고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라이브가 말했다.

“자네와 자네 팀은 최정아의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 데 집중해. 최대한 서포트 해주고. 그다음은 그녀가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보고 얘기하도록 하지.”

직원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린 그가 다음 순간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우리가 사람은 끌어들일 수 있어도 그걸 사로잡는 건 결국, 그녀의 몫이니까.”

#시원한 음료를 시켜놓고 핸드폰을 훑었다.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이 오늘 생방송 된 토크 쇼 얘기로 뜨겁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방영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이 여전히 그 이야기로 뜨거웠다.

덕분에 원하는 내용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게스트가 듣보길래 그냥 게임 했는데. 여긴 난리네. 그래서, 오늘 데이먼 토크 쇼가 재밌었다는 거야, 재미없었다는 거야?

-난 봤음. 생각 없이 틀었다가 끝까지 봐버렸지.

-기로 프로듀서가 한국에서 데려온 뮤지션 나왔다며. 생각보다 재밌었나 보네?

-재미? 글쎄······. 아, 확실히 보는 재미랑 듣는 재미는 있더라.

-????

-미모랑 음색이 미쳤음.

-진짜 예쁘더라.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삘.

-외모도 외몬데, 목소리도 정말 최고였어. 노래할 때 부엌에 계시던 부모님까지 소파 앞으로 오셔서 시청. 덕분에 요리는 새까맣게 타버렸지.

-그 정도였다고? 그냥 조명 빨, 음향 빨 아니고?

-그런 거 절대 아님. 나 영국 여행 갔을 때, 저 뮤지션 실제로 본 적 있었어. 런던에서 버스킹을 했었는데, 너무 예쁘고, 노래도 소름 돋게 잘 불러서 바로 기억나더라. 조명 빨, 음향 빨은 확실히 아님.

-찾아보니 스포티파이에 노래 다 있네! 신곡 타이틀은 심지어 차트에 들어와 있었는데? 몰랐네.

-지금 들어봤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반복 재생 중!

‘확실히 방송이 좋긴 좋지.’

구글 검색량이 몇 배가 뛰었다는 김지희의 메시지가 와있다.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고, 찾아보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거다.

사실, 최정아가 인터넷상에서 많은 유명 뮤지션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 덕에 스포티파이 중위권까지 차지하긴 했지만.

‘그게 일반인들에게까지 넓게 퍼지진 않았었지.’

일부 음악에 관심이 많은 이들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인지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데려온 뮤지션 정도로는 꽤 알려졌긴 한 것 같다만······.

어쨌든, 상황이 조금씩 그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굵직한 티비 쇼에 출연하면서 최정아의 인지도도 꿈틀거리기 시작한 거다.

출연 소식엔 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안 좋게 보던 시청자들도 막상 보고 난 후엔 전혀 다른 반응을 쏟아내는 중이다.

이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자석처럼 화제에 이끌리는 중이고.

점원이 건넨 음료는 아직 입에 가져간 적도 없는데 속이 시원하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산다라고 카운터리고 나발이고.

걸음을 옮겨 월드 TKM 내부에 작게 마련된 연습실로 향했다. 마침 연습이 막바지였는지 몇 분 기다리지 않아 최정아가 MR을 껐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음료를 들어 올렸다. 방긋 웃는 최정아에게 한 잔 건네고서, 옆에 앉아 슬쩍 물었다.

“힘들지 않아?”

답은 퀭한 눈으로 대신 들었다.

하긴, 꼭두새벽부터 강행군이었지.

촬영에 인터뷰, 인터뷰, 인터뷰, 촬영. 그리고 연습까지.

잠시 입술이 갈 길을 잃었던 그녀가 애써 밝게 웃었다.

“괜찮아요.”

“거짓말 말고.”

음료를 건네며 또 묻자 최정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그래? 많이 힘들었으면 그만 연습하고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려 했는데.”

왈칵 대답이 정정되어 들려왔다.

“저 힘들었어요. 너무요.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요.”

“죽을 정도면 쉬어야겠는데?”

“······아?”

황망한 눈동자를 보며 웃었다.

거, 힘들다는 얘기 듣기 한 번 힘드네.

굳이 듣고 싶었다.

앞으로 더욱더 강행군이 될 텐데.

힘들어도 입을 꾹 닫고 괜찮은 척만 하면 나로서도 케어가 불가능하니까.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가자, 밥 먹으러.”

#주황빛으로 물든 건물들을 보며 음식을 기다렸다.

마스크를 벗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미국이란 나라가 이런 점은 좋았다.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을지언정 다가와 말을 거는 이들은 소수였다.

그마저도 대부분 음악에 꿈이 있는 이들이거나 던컨의 팬인 경우가 많았고.

최정아는 말할 것도 없다. 방송 출연으로 인터넷상에서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

‘물론 유명세와는 상관없는 시선들이 느껴지긴 하지만.’

길거리를 다니는 동안에도, 그리고 여기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쪽에서 그녀를 힐끔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처음엔 날 보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언뜻 언뜻 들려오는 얘기들을 보니 전부 미모 칭찬이더라. 나일 리 없지.

그 시선들이 따갑진 않을까, 최정아를 보았다.

그녀는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도시락?”

“네.”

끄덕이며 락앤락 뚜껑을 여는 최정아.

메뉴를 선택할 때 곧 죽어도 나보고 고르라더니 저래서였구나.

“너 원래 식단 조절 안 하지 않았었어?”

최정아는 평소 운동량이 많아 식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최정아가 끄덕거렸다.

“원래는 그랬죠. 근데 미국 오고, 스케줄이 많아지니 운동을 많이 못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내용물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거 먹어서 배가 차긴 할까?’

닭가슴살 한 덩이와 양배추, 토마토가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뒤적거린다고 안에서 뭐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실에서 먹을 걸 그랬네. 나도 토스트 하나 사서.”

“그럴까 봐 아무 말도 안 한 건데요?”

결사반대 푯말이라도 들 것 같은 눈빛으로 날 쳐다보길래 내가 포크를 들었다.

“그럼, 그거 나도 좀 먹어보자.”

얼른 닭가슴살 한 덩이를 푹 찍어 내 접시로 옮겼다. 대신 치킨 윙을 재빠르게 락앤락 안으로 던졌고.

“···?”

“물물교환. 기브 앤 테이크. 싫어?”

최정아의 눈이 풀떼기들 위에 올려진 치킨 윙으로 향했다. 무수한 고민이 그녀의 콧잔등에 보인다. 어느새 코까지 벌름거리고 있다. 냄새를 맡는 순간 내 승리를 직감했다.

“···오히려 양은 줄었어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예요.”

“맞아, 그렇겠네.”

내 동조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정아가 헤죽 웃으며 포크를 들었다.

나도 최정아에게서 뺏은(?) 닭가슴살을 한 입 먹었다.

먹자마자 입안이 텁텁해지는 게 왜 살이 빠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육즙···이 아닌 비린내를 고무 씹는 표정으로 음미하자 최정아가 숨넘어가도록 웃었다.

그걸 보니 닭가슴살이 좀 맛있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날 때쯤.

“피디님, 이번 타이틀 곡이요.”

“응?”

입술에 기름기를 잔뜩 묻힌 최정아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뭔가 더 잘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미 충분히 잘 부르던데?”

으레 하는 소리가 아닌 진심이었다.

멜로디가 들려서 만든 것도 아닌데,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을 부를 때마다 그녀의 실력이 늘고 있었다.

그러나 최정아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더요. 더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순간, 가시감이 머리 위를 덮었다.

또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 거에 스스로를 묶고 있나?

그런 걱정을 담아 최정아를 봤는데, 이내 걱정들이 흩어져버린다.

그녀의 눈빛에 흐르는 건, 부담감, 강박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확신···.

스멀스멀 덮쳐오던 걱정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인진 모르겠어요. 뭔가 잡힐 듯 말 듯······그게 어렵긴 하지만, 분명히 더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이따가 다시 봐줄까?”

최정아가 날 빤히 본다.

유혹적인 케이크를 보는 눈빛이랄까.

하지만.

“괜찮아요. 이번엔······.”

촛불처럼 흔들리던 눈빛이.

확신 없이 늘어지던 말끝이,

다시 진해졌다.

“이번엔, 제가 한번 해볼게요.”

#하루하루, 많은 것들이 달라져 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건 최정아라는 뮤지션에 대한 관심.

굵직한 매체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고, 궁금해하는 이들은 더 많았다.

그렇게 대중들의 관심이 몸집을 부풀리는 와중에도 최정아는 자신이 말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연습을 이어갔다. 뭘 해보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한 가진 확실했다.

이 순간에도 그녀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

“저기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멈춰섰다.

저 멀리 거대한 철골들이 저들끼리 엮이고 있었다. 페스티벌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네, 저기가 메인 스테이지입니다.”

안내하던 골든보이스 직원이 얼른 답했고, 나는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크긴 크네.’

10만 명이 한 번에 관람이 가능하다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코첼라의 메인 스테이지와 비교했을 때, 이쪽이 더 큰 건 확실해 보인다.

특히 무대의 규모가 압도적이네.

충분히 둘러보고 다시 움직였다. 이곳에 온 목적은 따로 있었기에.

“여깁니다. 서브 스테이지 중 하나인, 윈드 스테이지.”

최정아가 공연할 무대.

아직 메인 스테이지조차 철골을 세우는 중이라 여긴 베이스만 설치되어있는 게 전부였다.

옆에 철골들이 잔뜩 깔려있고. 그럼에도 메인 스테이지와의 차이는 확실했다.

‘무대가 반 토막이네.’

바닥 베이스의 크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밴드면 모를까.

수십 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기엔 조금 비좁아 보일지도 모르겠는걸.

그나마 다행인 건.

“공간 자체는 꽤 넓네요.”

“맞습니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메인 스테이지와 큰 차이가 안 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사실 그래서 초반에 저희끼리도 얘기가 많았죠.”

“왜요?”

“서브 스테이지잖아요. 이렇게 넓어봤자 다 채우지도 못할 게 뻔한데, 괜히 휑해 보이는 거 아닌가 걱정한 거죠. 게다가 '메인 스테이지'가 바로 옆이잖아요.”

직원이 당연하다는 듯 어깰 으쓱이며 말했다.

“누굴 볼지 정해지지 않은 대다수의 라이트한 관객들은 전부 그리로 몰려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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