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멜로디와 멜로디 (2)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졌다.
김 실장은 아침부터 소화가 잘 안 된다며 화장실로 직행했고, 옆에 앉은 최정아가 벨트를 풀며 잔잔하게 웃었다. 왜 그러나 싶어 쳐다봤더니 그녀가 설명했다.
“어제 부모님이 미국 가면 이런 거 못 먹는다고 온갖 한식을 다 차려주셨대요.”
“그래서 과식하셨나 보네.”
“그런 것 같아요. 차려주셨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살살 웃던 최정아가 이내 몸을 완전히 내 쪽으로 돌리며 물어왔다.
“촬영은 잘 하고 오셨어요?”
“똑같지, 뭐. 재미없는 날 대체 왜 부르는지 모르겠고.”
고개를 저었더니 최정아도 덩달아 절레절레 흔든다.
“피디님 나오는 거 생각보다 재밌어요. 은근 방송 체질인 거 직원분들도 다 아시는데.”
“아는 사람이니까 그냥 신기하고 웃긴 거겠지.”
“아닌데. 진짜 재밌는데.”
진심이라는 듯, 웃음기도 없이 말하는 최정아를 보며 내가 헛헛한 웃음을 뱉어냈다.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난 내가 나오는 방송 따위 절대 안 볼 예정이라.
“라운지에선 기자들이 뭘 가장 궁금해했어?”
라운지 앞에 바글바글하던 기자들이 떠올라 물었다.
최정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 미국 진출의 목표요.”
나도 채연주에게 들었던 질문.
기자들 질문이 다 거기서 거기라기보단, 그만큼 대중들이 저 얘길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으니까. 한류라던가, 빌보드라던가······.
“그래서 뭐라고 했어?”
“많다고 했어요.”
“목표가 많아?”
끄덕거리는 최정아.
이건 나도 좀 궁금해서 한 번 더 들어갔다.
“어떤 건데?”
“일단······더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랠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무명의 뮤지션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티는구나···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의 주제다.
국적과 관계없이 수많은 뮤지션들이 SNS에 그녀를 리트윗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어요.”
이건 좀 의외네.
최정아는 지금까지 유명세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다는 것에 행복해했지.
갸웃거리는데, 최정아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팬들이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이 풀렸다. 팬들이 스타에게 인기를 줬으니, 스타는 그들에게 자부심을 주라는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멋진 목표네. 또?”
덜컥. 최정아의 표정이 방지턱을 넘었다. 비행기라 그런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또······요?”
“그것만으론 많다고 한 거였어?”
“아뇨. 그게 더 있긴 한데, 음악하고 관련된 건 아니라······.”
“음악 말고? 그럼?”
“그냥, 여러 가지······.”
내가 너무 집요했나?
지난, 가사 노트 사건도 그렇고 요새 나한테 숨기는 것들이 툭툭 보이니 나도 어쩐지 더 궁금해진다.
예전엔 속이 투명하다 못해 훤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보였었는데, 요즘은 군데군데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안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최정아를 보며 눈을 좁히는데, 그때 김 실장이 자신의 배를 슥슥 문지르며 돌아왔다.
“쇼핑. 맞지?”
“에? 아, 네, 네!”
그거 아닌 거 같은데.
허겁지겁 대답한 최정아가 김 실장이 지나가기 좋도록 다릴 당긴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해 봤지만, 최정아는 이미 면세점 잡지를 들고서 딴청을 피우는 중이었다.
김 실장도 내 시선을 피하며 안쪽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속을 비운 자의 평온한 얼굴로 능청스레.
“여기 기내식은 언제 주나?”
#설렘 가득한 표정들로 잠들었다가 긴장 가득한 얼굴로 깨어났다.
최정아와 김 실장 말이다.
다년간 수많은 화보를 찍어본 최정아로서도 뉴욕은 처음인 데다가, 본업인 ‘음악’을 이유로 온 건 더더욱 최초였다.
그러니 긴장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김 실장에게도 이번 미국행은 퍽 남다른가 보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며 립밤으로 떡칠을 한 후, 연신 스케줄을 훑는다.
만에 하나 생길 돌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는데 그 가정들이 가관이다.
최정아도 그건 좀 아니라는 듯 되물었다.
“총기 사고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요?”
내가 거들어 더는 쓸데없는 생각이 깊어지는 걸 막고서 비행기가 내려앉길 기다렸다.
이윽고 기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덜덜덜.
탈탈탈.
떨리는 창문 너머로 존 에프 케네디 국제 공항의 모습이 들어왔다.
VIP는 귀빈 통로로 나가고, VVIP는 계류장에서 바로 차량 탑승이 가능하다지.
언감생심 꿈 같은 얘기다.
공항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야 가능한 일이잖나.
애초에 국가적인 대 스타가 아니고서야 미국이란 땅에서 그런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입국장을 빠져나가자 인파 대신 기자들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십여 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옹기종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이 우릴 보더니 다가왔다.
“기로 프로듀서님. 뮤즈 하임 연예부에서 나왔습니다.”
“사운드 위클리에서 나왔습니다.”
“원데이 송캠프, 기자입니다. 인터뷰 좀 가능하실까요?”
정확히는 내 앞으로.
대부분의 기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대열에서 밀려난 몇몇이 최정아에게로 다가갔다.
저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최정아가 파릇한 웃음으로 기자들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앞에 있는 기자들에게 집중했다.
솔직히···절반 정도만.
나머지 절반의 뇌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다시 이 공항을 밟을 땐,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보자, 먼저 인터뷰를 끝낸 최정아와 김 실장이 공항 벤치에 나란히 앉아 날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하단 표정으로.
특히나 최정아는 속도 없이 배실배실 웃으며 날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내가 푸스스 웃으며 다가갔다.
“그때 말한 그 각도로 찍었어?”
“네, 당연하죠.”
“무슨 각도?”
최정아가 설명했다.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면서 얘기했던 유려한 선, 동양의 미, 뭐 그런 것들.
김 실장의 표정이 점점 황당함으로 물 들어가는 동안, 나는 월드 TKM 직원에게 전화해 차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 매니저가 하고 싶다던 홍보 담당자가 타기 좋은 곳에 차를 대고 수줍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젠 최정아 매니저가 하고 싶어진 듯하다.
어쨌든, 우리는 공항을 벗어나 호텔에 짐을 풀고 시간 맞춰 내려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KVN이라는 방송국 스튜디오를 찾았다. 미국 동부 전역에 라디오를 송출하고 있는 한인 방송국이었다.
“지금 제 옆에 여신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죠. 최정아 씨, 모셨습니다!”
녹음 부스 안, 오바스러운 진행이 이어진다.
사실 홍보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스케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넣은 건 이 방송국이 던컨과 은유란 그리고 최정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응원해 줬었기 때문이고.
일종의 의리 출연이지. 한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다시 한번 다질 수도 있는.
오늘은 이게 스케줄의 전부다.
여유롭다.
‘폭풍전야답게.’
내일부턴 엄청나게 바빠질 테니 말이다.
소니 뮤직이 준비한 스케줄들이 빼곡이 기다리고 있다.
오차드가 던컨에게 제안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엔 시작부터 굵직한 방송들이 껴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렇게 인지도를 쌓아 도달할 목적지가 예정되어 있었다.
폴 인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골든보이스에서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며, 코첼라 보다도 규모가 클 거라 예상되는 세계 최대의 페스티벌.
올가을, 그 무대에 최정아가 서게 될 거다.
하하 호호 떠드는 부스 안을 보며 나도 입꼬릴 올렸다.
마음이 편하다.
확실히 소니 뮤직이 대단하긴 하지.
그쪽에서 준비한 길이 속도 제한 없는 직선 고속도로처럼 보인다. 우리는 풀악셀을 밟고 내달리기만 하면 될 것처럼.
그때였다. 핸드폰이 짧게 끊어지듯 울린 건.
메시지가 연달아 오고 있었다.
엔지니어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고서 스튜디오를 나왔다. 그리고 소리 하나 없이도 충분히 다급한 김지희의 메시지들을 읽어내려갔다.
[피디님!]
[피디님, 이것 좀 보세요!]
[정아랑 매칭될 뻔했던 카운터리 오케스트라가, 산드라 블란쳇이랑 앨범을 낸대요!]
그 밑으론 보도자료를 캡쳐한 사진들이 줄줄이 있었다.
팝스타 산드라 블란쳇이 카운터리 오케스트라와?
놀랐다. 그 사실만으론 너무나 흥미로웠다. 최정상 뮤지션과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만남이었으니까.
예전의 나였다면, 이 만남을 적극 찬성하고 앨범 구매로 축의금을 낼 용의가 있을 정도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뭐가 문제냐고? 단순했다. 산드라 블란쳇의 소속사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속사가, 다른 곳도 아닌.
“월드덕 레코드······.”
-였으니까.
불길한 예감이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그건 곧, 현실이 되었다.
#<산드라 블란쳇과 카운터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폴 인 뮤직 페스티벌 메인 무대에 선다!>
<역대급 팝과 오케스트라의 조합을 예고!>
<월드덕 레코드,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최고의 노래와 연주를 보게 될 것’>
속 불편한 헤드라인을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레드리시의 코첼라 공연 때, 천막을 걷어냈던 골든보이스의 대표, 폴 토레트의 얘길 들으며.
“유사한 장르끼린 비슷한 시간대에 타임테이블을 잡기로 가이드라인을 잡아 놨었어요. 관객들이 연달아 같은 장르를 접하는 걸 피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죠.”
그 말이 즉 슨, 최정아의 무대가 산드라 블란쳇의 무대와 시간이 겹친다는 얘기다.
우리는 서브 스테이지 중 한 곳에서. 그쪽은 메인 스테이지에서.
난감하게 됐지.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 폴 인 뮤직이라는 역대급 페스티벌에서 방점을 찍을 계획이었는데, 자칫하면 역대급 망신을 당하게 생겼으니.
‘그렇다고 주최측인 골든보이스를 탓할 것도 아니긴 해.’
페스티벌도 결국 사업이다.
코첼라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페스티벌을 개최하려 하는데,
산다라 블란쳇이나 카운터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세계적인 이름들이 들어가는 걸 마다할 수 있을 리 없잖나.
그럼에도 기분이 착 가라앉는 건, 이 모든 게 우연일 것 같진 않아서겠지.
‘채드 이사······.’
전화를 끊고 호텔 방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중충한 뉴욕 풍경을 보며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최정아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계획대로 스케줄을 소화해나가야 하니까.
나는 이 계획에 없던 일을 논의하기 위해 셔츠 단추를 채웠다.
#소니 뮤직.
최고 창작 책임자,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월드덕은 우리에게도 항상 그렇게 시비를 걸어왔었지. 돈 만지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이득을 위해선 더티해도 개의치 않아.”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클라이브에겐 대안이 있는 걸까.
폴 인 뮤직 페스티벌이 아닌, 다른 무대를 찾아야 할까.
그러지 않고 채드 이사에게 한 방 먹여줄 방법은 없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일련의 생각들이 스타워즈 엔딩 크레딧 마냥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클라이브가 그런 날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물어왔다.
“자넨 자네가 만든 곡과 뮤지션을 얼마나 믿나?”
주체못하고 올라가던 엔딩 크레딧이 뚝 멈췄다.
이 상황을 어떻게 뒤집을까, 하는 고민들이 사라지자, 조급함이 옅어진다.
조급함이 옅어지자 월드덕과 채드 이사에게만 꽂혀있던 시선이 비로소 스스로에게 향했다.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언제부터 상대의 인기나 인지도 같은 거에 기죽었었다고.’
산다라면 어때.
카운터리면 또 어떻고.
저쪽에서 뭔 짓을 하든, 우린 우리 대로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준비.
작곡가는 곡으로.
뮤지션은 노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