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00화 (200/221)

200. 부르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5)

환호성이 대기실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진행을 맡은 MC가 노련하게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지 밖은 벌써부터 축제였다.

옷을 갈아입은 최정아가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차에서 내리기 전, 피디님이 했던 말을.

‘저 사람들도 그럴 거야.’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는 환호성.

저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데도 자책만 하고 있었다.

그것도 피디님이 실망했으면 어쩌나, 걱정이나 하면서.

최정아는 생각했다.

피디님이 왜 화를 냈는지.

자신이 얼마나 못났었는지.

‘내가 의지하는 것만큼, 피디님도 나를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어느새 강박처럼 되어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프레임에 자신을 가뒀었다.

‘바보같이.’

메이크업 정리가 끝나고, 옷매무새까지 모두 점검을 마쳤다.

현장 스태프가 준비해달라며 왔을 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복도로 나선 최정아에게 장기로와 김 실장이 다가왔다.

“정아야.”

장기로가 나지막하게 그녀를 불렀다.

곧바로 대답이 들려온다.

“죄송해요.”

“너 또 그 소리···.”

“팬분들한테.”

장기로가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작은 숨을 털어낸다.

“가서 말하자.”

그가 옅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노래로.”

최정아가 입술을 꾹 다물며 끄덕였다.

그녀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그 뒤를 장기로와 김 실장이 따라붙었다.

백 스테이지에 도착하자 MC가 마지막 기름통을 관객들에게 부어놓고 퇴장했다. 무대를 내려온 그가 최정아를 보며 꾸벅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와, 진짜 실제로 뵈니 더 아름다우시네요.”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그녀 뒤, 양쪽에서 쏘아지는 레이저를 맞고 정신을 차렸다.

“분위기 띄워주셔서 감사해요.”

“아녜요. 저도 엄청 재밌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무슨 팬들이 단합력이 이렇게 좋아요? 이런 건 군부대 MC 볼 때 이후론 또 처음이었다니까요?”

최정아가 웃었다. 그 모습에 MC가 다시 한번 넋을 놓는 동안, 그녀는 거치대에 올려져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고갤 돌려 장기로를 바라본다.

장기로가 끄덕이자, 웃으며 무대 위로 올라선다.

그 순간, 용광로처럼 달궈졌던 관객석이 팔팔 끓는 함성을 분출해냈다.

#“그랬단 말이죠?”

백 스테이지. 자신의 첫 싱글, 봄이 올까요를 열창하는 최정아를 보며 내가 팔짱을 낀 채로 턱을 받혔다.

김 실장이 끄덕거린다.

“노골적이었습니다. 그 성적마저도 피디님 인지도 때문 아니냐면서.”

턱을 긁적였다. 아프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나 본데.

“얘기해줘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일러바친 것뿐인데요, 뭘.”

“보고쯤으로 하죠.”

푸스스 웃은 김 실장이 최정아를 보며 말했다.

“노래 집중해서 잘 부르는 것 같네요. 표정도 이제 괜찮아 보이고, 피디님이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가 고갤 내저었다.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걱정돼서 달려왔고 결국 한마디 하긴 했지만, 나 아니었어도 최정아는 괜찮아졌을 거다. 자신의 노랠 그만큼 애정하는 애니까.

덩달아 괜찮아진 표정의 김 실장을 보며 웃는데, 핸드폰이 품 안을 간질였다. 주재윤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백 스테이지에서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언제부턴 진 모르겠지만, 일과 관련된 전화를 받을 때면 건너편의 호흡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에 따라 다음 순간 내가 듣게 될 이야기가 어떤 종류인지 조금은 일찍 대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번엔······.

“정아 노래를 리트윗했다고요? 누가요?”

#팬들에겐 꿈같았을 시간이 지나가고.

그 꿈속을 화려하게 장식한 최정아도 무대를 내려왔다. 수분을 한가득 머금은 파릇한 표정으로.

‘뮤지션은 노래를 해야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더니.’

그게 증명되고 있다. 논문으로 써도 되겠어. 지금 모습을 아까 그 MC가 봤다면 넋이 아니라 혼이 나갔을지도.

김 실장이 공연 담당자와 얘기를 마무리 짓는 동안, 최정아를 데리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한결 나아진 표정과는 달리 최정아의 두 눈은 여전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분위기도 풀 겸 입은 열었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질 않는다.

“수고했어.”

고작 한다는 말이······.

“헤헤, 네.”

고작 그거에 또 평소처럼 헤벌쭉 웃는 최정아.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참, 그리고.”

둘이 바보처럼 실실 웃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주재윤과의 메시지로 들어가 그가 보내온 사진들을 화면에 띄웠다.

머리를 갸웃거리던 최정아가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로 눈을 껌뻑인다.

이게 뭐지?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지. 평소에 자신이 즐겨 들었던 노래의 뮤지션이 자신에 대해 언급했으니까.

“매커니가······제 노랠 리트윗 한 거예요?”

“보다시피. 네가 좋아했던 가수지?”

“네, 엄청요. 노래 진짜 좋아했었는데.”

신기하다는 듯,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화면에서 눈을 못 떼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근데, 그녀뿐만이 아냐.”

엄지를 움직여 화면을 넘겼다.

또 다른 유명 뮤지션의 SNS가 튀어나왔다.

“솔튼 레이턴···.”

다음 장.

또 다음 장으로.

캡쳐해둔 화면이 넘어갈수록 최정아의 눈은 점점 더 커졌다.

“매튜, 세라, 데보라······피디님, 이게 대체 다 뭐예요?”

“네 곡을 리트윗한 사람들.”

“그건 알겠는데···이 유명한 사람들이 갑자기 절 왜요?”

왜냐고? 그 답은 그들이 리트윗한 글 안에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입을 모아 덧붙였지.

이 노래가 과거의 자신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무명 시절의 자신들을 말이다.

최정아의 가사가 그들을 움직인 거다.

내가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네가 그들의 얘길 해줬잖아.”

#<최정아 정규 2집 앨범 ‘알아줘요’, 미국 최대 음원 사이트 스포티파이에서 차근차근 정주행 중!>

<최정아 3주 만에 스포티파이 차트 86위 -> 45위!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최정아 2집 국내에선 활동 종료! 기로 프로듀서는 미국 진출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오늘 출국하는 최정아와 기로 프로듀서, 이른 아침부터 모여 기다리는 팬들···>

“······.”

하얀 조명이 열일하는 거울을 보며 여자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이라이너를 든 채로 안절부절못했다. 이대로는 화장을 할 수가 없는데, 저런 표정을 짓는 한지영에게 말을 거는 건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찰나, 매니저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 캐리어를 들고서.

“아직도 그거 보고 있었어?”

“계속 올라오잖아, 계속. 이거 봐. 새로고침 할 때마다 이년 기사 한두 개씩은 꼭 올라온다고.”

최정아와 함께 방송을 하면서 그녀에게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가 지독히도 싫었던 그녀에겐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때 차트 밖까지 떨어지고, 미국행도 무산될 줄 알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매니저가 캐리어에서 아메리카노 하나를 꺼내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한지영도 입안에 차오른 쓴맛을 없애기 위해 마끼야또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 옆 대기실에 장 대표 있던데.”

매니저가 툭 던진 말에 한지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마취 안 한 환자를 수술하는 집도의 마냥 또 헛손질을 했고.

“기로 프로듀서?”

“엉. 뭐 하나 찍었나 봐. 촬영 끝나고 기자랑 인터뷰 중인 것 같더라고.”

한지영이 잠잠해졌다. 한동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가보자.”

아메리카노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키던 매니저가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벌게진 얼굴로 매니저가 물었다.

“갑자기?!”

반면 한지영의 표정은 평온했다. 뭐가 문제 되냐는 얼굴이었다.

“유명 프로듀서님이 옆에 계셔서 인사하러 가는 게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닌데······뭔 꿍꿍이야?”

매니저의 눈이 가늘어진다.

덩달아 한지영의 눈매도 얇게 휘었다.

“기로 프로듀서 곧 독립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잖아.”

“근데.”

“최정아나 이런 애들은 다 계약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을 텐데, 함께 할 연예인이 필요하지 않겠어? 마침 나도 계약 끝나가고.”

“그래서, 환승을 해보겠다?”

“안돼? 오빠도 비전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야 나중에 회사를 차리더라도 빼 올 연예인이 있을 거 아냐.”

“그거야 그런데······쉽지 않을 텐데? 예전에 지선주도 같이 작업하자고 들이밀었다가 단칼에 까였다잖아. 하물며 네 말대로 계약까지 노리려면······.”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살라고? 프로듀서도 A급으로 못 구해줘, 홍보를 빵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스폰이나 잡아 달랬더니 그것도 못 구해!”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한지영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이 거지 같은 소속사 바꾸려 했는데, 옆 방에 기회 있다잖아. 어떻게든 잡아야지 않겠어? 스폰을 삼아서라도.”

한지영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거울을 보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자신을 훑어보다가 오프숄더를 더 과감하게 내렸다. 툭 치면 흘러내릴 정도로.

그제야 그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아 촬영 한 시간 내로 끝날 것 같네요. 인천 공항엔 1시쯤 도착 예정입니다. 피디님은 언제쯤 출발하시나요?]

김 실장의 메시지를 보고 다시 고갤 들었다.

사운드 베리, 채연주 기자가 날 보며 입을 삐죽였다.

“슬슬 마무리해야겠죠?”

내가 끄덕이자 그녀도 피식 웃으며 주억거렸다.

“알겠어요. 나 때문에 비행기 놓치실라.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끝낼게요······이번 미국행의 목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목표요?”

“네, 예를 들면 빌보드라던가.”

채연주의 설명에 나는 딱히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했다.

“아직 거기까진 시기상조인 것 같고요. 정아가 가진 재능을 미국에서도 펼치며 그녀의 무대를 넓히는데 집중할 생각이에요.”

“개인적으로 팬이라 그런지, 엄청 기대되네요. 정아 씨 특유의 한국적인 감성이 미국에서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저도 그렇네요.”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다.

질문지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채연주가 사무적인 톤을 벗어 던지고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왔다. 나도 친구를 대하듯 편하게 답했고.

잠시 후,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일어나 문을 열었더니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와 화려하게 꾸민 여자.

“안녕하세요, 대표님. 한지영이라고 합···.”

“알아요. 한지영 씨.”

내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자 한지영은 물론이고 옆에 매니저로 추정되는 남자까지 덩달아 얼굴이 밝아진다.

“옆 방에 계시다길래 인사도 드릴 겸···그리고, 상담도 좀 할 수 있을까 해서···.”

수줍게 말을 잇는 그녀를 보며 내가 문을 좀 더 열어젖혔다.

그리고 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아주 살살 녹아내리게.

“그래요? 일단, 들어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