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부르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4)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제 무리해서 마시진 않았지만, 아침에 고생 좀 하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말짱하다. 몸도 생각보다 가볍고.
곧바로 일어나 샤워 부스 안에 한참을 틀어박혀 있었다.
이전에 그득했던 고민들은 어제부로 모두 끝났다. 유재완 대표에게도 완벽하게 내 뜻을 전달했고.
이젠 앞으로의 일들에 집중하면 됐다.
문제는 이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 이러나저러나 머리가 쪼개질 운명이었나 보지.
“어, 일찍 왔네요?”
내가 가장 먼저 사무실 문을 열게 될 줄 알았는데, 홍보 담당 주재윤이 먼저 와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앨범 패키지 샘플이었다.
“이거 받아 오느라요.”
“어디 한 번 보죠.”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테이블 위로 크기도 재질도 제각각인 각종 샘플들이 깔린다.
큰 건 LP일 거고, 작은 건 CD겠지.
안에 담긴 이미지는 모두 동일했지만 중앙에 먹박으로 박힌 글자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글과 영문. 패키지뿐만이 아니다. 안에 담길 가사도, 노래도 마찬가지로 모두 두 가지 버전이 제작될 예정이었다.
“이 샘플들, 디자이너들과 꼼꼼히 체크해서 실물로 미국 공장에도 보내는 게 양산했을 때 더 좋을 것 같네요. 한국에서 판매되는 것과 퀄리티 차이가 생기는 건 무조건 피해야 하니까요.”
“그럼 디자이너들 검수 마치고 최종 컨펌까지 나면 바로 소니 뮤직으로 붙일게요.”
부탁한다며 커피 머신 앞으로 향했다. 마침 전화가 울렸다. 추출 버튼을 눌러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네, 윤 이사님.”
-장 대표, 잘 지내?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앨범 준비도 잘 되어가고? CC 걸린 파일들 훑어보긴 했는데 꽤 순조로운 것 같더만.
“아직까진 큰 문젠 없었네요.”
다행히도 말이지.
낮게 웃던 윤 이사가 내게 소식을 전했다.
-방금 소니 뮤직에서 보도 자료를 냈어.
최정아에 대한 내용일 거다.
이제 정말 시작이네.
“본격적으로 홍보가 시작되겠네요.”
-그렇겠지. 링크 보낼 테니 자네도 한 번 봐봐.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흐흐, 뭘 감사씩이나.
다 내려진 커피를 들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그밖에도 던컨이 바쁘니 전담 팀장인 이강훈 팀장이 초주검이 되어 간다. 매니저를 한 명 더 뽑아야겠다, 같은 이야길 이어가다가 윤 이사가 통화를 정리했다.
-최정아 앨범 나오고, 한국 활동 끝나면 같이 올 거라 했으니······우린 초여름에 보겠구만?
“네, 그때 뵐게요.”
-좋아. 우리도 그때까지 불 안 꺼지게 계속 장작 쏟아붓고 넣고 있겠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 이사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통화에서 말했던 소니 뮤직의 공식 보도 자료였다.
<기로 프로듀서가 준비 중인 새 앨범의 주인공!>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윤 이사가 소니 뮤직을 도와 여러 보도 자료를 제공해 장작을 공급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장작이 되어 하얗게 불태웠다.
주재윤을 비롯한 아더 레이블의 직원들은 홍보와 앨범 패키지로 수차례 도돌이표를 찍었고, 나 또한 음원이 유통사에 넘겨지기 직전까지 물고 늘어져 체크를 했다.
특히 타이틀 곡은 원체 수많은 악기들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작업이 더욱 오래 걸리고 난이도 있을 수밖에 없었지.
결국, 우리는 앨범 발매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국내 음원차트 1위! 미국은······.”
호기롭게 말하던 직원의 입에서 한숨이 섞여 나왔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다.
‘차트인 만이라도······.’
저게 현실적인 바램이긴 하다.
소니 뮤직이라는 거대 음반 기업이 뒤를 봐주고 있긴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던컨처럼 뮤튜브를 통해 인기를 쌓아온 것도 아니고, 은유란처럼 미셸이란 화제성 극강인 인물이 옆에 붙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최정아는 한국에 있지.
그렇기에 소니 뮤직도 할 수 있는 홍보 수단이 그리 많진 않았다.
앨범 발매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직원들이 모니터 앞에 코를 박고 앉아 반응 훑기에 나섰다.
각양각색의 반응에 직원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반응이 극과 극이네요.”
“우리나라요? 그래도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나요?”
“아뇨, 미국 댓글이요.”
“아······.”
“피디님이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장르를 보곤 시큰둥한 사람들도 많아요. 던컨 정규 앨범이나 준비하라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직원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뭐, 사실 저 정도는 던컨 팬이라 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댓글들이다.
‘여기에 비하면 말이지.’
지난번 던컨과 은유란 그리고 날 돌려가며 까댔던 평론가 롭 테일러.
월드덕에게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찌그러졌던 그가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은근슬쩍 다시 활동 시작했다.
일관성을 유지하고픈 건지 여전히 날 까내리는 주제를 가지고.
<기로 프로듀서, 운 좋게 이어진 성공으로 이제는 뭐든 해도 될 거라는 자만을 하고 있는 걸까?>
이쯤 되면 참 열심이라는 건 인정을 해줘야겠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읽어내려가다가 이내 껐다. 헛소리를 정성스럽게도 써놨길래.
여전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직원들을 보며 기운을 북돋을 말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여직원이 시계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아 촬영 들어갔겠네요.”
“그러게요. 우리도 이렇게 떨리는데 정아는 촬영에 집중이 될까요?”
“게다가 끝나고 팬 행사까지 있잖아요. 혹시라도 결과가 안 좋으면······.”
걱정스러워하던 직원이 괜히 부정적인 말을 했다며 스스로 입을 닫았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1시. 미국 시장 때문에 정해진 발매 시간이 다가올수록 표정들에 긴장감이 서린다.
이들도, 나도 차트 뚜껑 열어보는 건 베테랑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숱하게 해봤는데 말이지.
매번 상황도 다르고 사람도 달라서 그런지 적응, 익숙, 초연이란 단어가 적용이 안 되네.
이윽고, 누군가의 외침에 직원들이 바빠졌다.
각자의 맡은 바가 있었기에.
차트가 재정렬 되기 직전까지 가라앉던 그들의 목소리가 바닥을 딛고 치솟았다.
“튜너 1위, 1위입니다!”
“벅 뮤직···도 1위예요!”
“포탈 뮤직 1위고요!”
“M 뮤직도 1위입니다!
사무실을 울리는 외침들 뒤로 마지막 국내 음원 사이트를 맡았던 직원이 점호 마냥 상황을 정리했다.
“됐어요! 국내 음원 사이트 7개 전부 1위에요!”
그러면······.
고개가 돌아갔다. 직원들의 시선도 재빠르게 주재윤에게로 향했다.
“미국은?”
#“수고하셨습니다.”
최정아가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시청자들이 보내온 사연지들을 정리해 스태프에게 건네주고 자신의 매니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누군가 시야를 가리며 다가섰다.
한때 꽤나 큰 인기를 끓었던 여자 아이돌 출신 뮤지션, 한지영이었다.
“정아야, 오늘 앨범 나온다며.”
께름칙하지만 외면할 방법이 없었다.
최정아가 살포시 웃으며 끄덕였다.
“네. 아마 한 시간 전쯤에 나왔을 거예요.”
“그니까. 국내 음원 차트는 전부 1위던데? 정말 냈다 하면 1위다?”
“앗, 감사합니다.”
“반응이 영 시큰둥하네? 역시 이젠 그런 거론 성에 안 찬다 이건가?”
대화의 온도가 묘하게 차가워지고 있는 걸 깨달은 최정아가 멈칫했다.
“그런 건 아니고······.”
“아니긴. 근데 어째. 미국 차트들은 네 성에 안 찰 것 같던데. 스포티파이 86위면 솔직히 턱걸이인 거잖아? 그마저도 미국에서 장 대표님 인지도가 있으니 겨우-.”
“아하하, 안녕하세요.”
타이밍 좋게 김 실장이 끼어들었다.
이건 또 뭐야,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한지영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김 실장이 핸드폰을 흔들었다.
“정아야, 피디님 전화 왔어.”
“네. 선배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정아가 머릴 꾸벅 숙이곤 김 실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 축하?”
쑥 꺼지는 중얼거림과 함께 표독스러운 한지영의 눈초리가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자 김 실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정아야, 사실······”
“전화 온 거 아니라고요?”
“알았어?”
“한두 번 사용한 방법이 아니잖아요. 오빠 이제 양치기 소년 됐어요.”
김 실장으로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스케줄이 바쁘단 핑계는 오히려 선배 앞에서 바쁜 척한다, 싹수없다는 소릴 듣기 딱 좋아서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최정아도 그걸 모르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래서 저, 스포티파이 86위예요?”
“어? 어, 어······그렇더라고. 뭐, 아직 네가 여기 있으니까 그렇지. 미국 가서 소니 뮤직이 준비한 홍보들 돌면 많이 오를 것 같다고 하던데.”
“그렇구나.”
최정아가 애써 괜찮은 척하며 걸었다. 바닥이 시선에 끌린다.
“그리고 사실 차트인 만으로 대단한 거잖아!”
김 실장이 덧붙인 말에 최정아도 끄덕였다.
안다. 아는데.
실망하셨을까 두려웠다.
“어, 피디님?”
우뚝. 최정아가 굳었다. 속마음을 들킨 듯 들려온 이름에.
“지영 선배 계속 쫓아와요?”
“아니, 진짜 피디님이신데?”
슬쩍 뒤를 돌아봤던 최정아가 다시 앞을 봤다.
“진짜네······.”
주차장으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김 실장은 따로 출발하고, 조수석에 최정아를 태웠다.
팬 행사 현장까진 내가 그녀를 데려가기로 했다.
자리에 앉은 최정아가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헤벌쭉하고 있었을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눅눅해진다.
그럴수록 표정관리에 더욱 힘썼다. 내가 인상이라도 한 번 찌푸렸다간, 저대로 자책에 젖을 게 뻔해서.
“죄송해요.”
저렇게.
‘실패네······.’
나름 입꼬리까지 올렸는데, 말이지.
내가 핸들을 돌리며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죄송해? 네가 죄송할 일 없는데?”
“그냥요. 제가 더 잘 불렀으면 피디님이 기대하셨을 순위에 좀 더······.”
“멍청한 소리야. 네가 더 잘 알잖아.”
목소리가 커졌다. 단순히 볼륨만 커진 게 아니라 약간의 화도 얹어졌다.
그녀가 슬럼프에 빠져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을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내가, 최정아에게 화를 냈다.
처음이었다.
‘그녀도 자책할 수 있지.’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던컨과 은유란 그리고 다시 던컨.
모두 빌보드 차트 상위권까지 올라 연이은 성공을 했는데, 자신은 음원 사이트 안에서도 끝자락이니 속상할 수 있지. 그래서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온 거고.
근데, 그게 자신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건 좀 화가 났다.
빠싹 쪼그라들어 굳어버린 최정아가 시야 끄트머리에 걸린다.
“내가 너한테 미국 진출을 제안한 건, 네 무대를 넓히자는 의미이지 그 무대에 가서 성공해야만 한다, 뭐 이런 게 아냐. 더 많은 사람들이 네 노랠 들었으면 좋겠다며. 나도 딱 그런 마음이었어.”
오늘은 좀 잔소리 많은 대표여도 어쩔 수가 없겠네.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아. 내가 지금껏 들었던 어떤 노래보다도.”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최정아가 작게 말한다.
“저도요.”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저 사람들도 그럴 걸?"
차량이 팬 행사가 예정된 코스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쇼 케이스 대신 마련된 팬들을 위한 자리.
수많은 팬들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