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부르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3)
TKM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직원들이 라운지에 한데 모여 수다가 한창이었다. 각자 자판기 커피 하나씩 쥐어 들고서.
주제랄 건 딱히 없었다. 정확히는 이 주제, 저 주제를 말꼬리 물고 늘어지듯 넘나들었다.
“그러고 보니 박경호 영화는 다시 잠잠해졌네?”
“장 대표님 그래미 어워드 가시면서 곧바로 잠잠해졌죠. 내년 상반기 개봉이면 아직 한참 남기도 했고요. 그때 되면 또 떡밥 돌겠죠.”
“그거 현장 보고 온 기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던데, 궁금하긴 하더라고. 미심쩍기도 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가 성공한 게 있어야지, 원.”
“그래도 트집만 잡으려던 기레기들이 말 바뀐 거 보면 아예 흑역사가 되진 않을 것 같던데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자판기가 이번엔 캔 음료들을 쏟아냈다.
커피를 마시며 한껏 텁텁해진 입을 헹구며 다른 주제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최정아도 해외 진출 확정된 거죠?”
“돌아가는 상황 보니 그런 거 같던데, 왜?”
“아니, 요새 기자들이 그렇게 물어보더라고요. 뭐, 이번에도 오차드랑 함께 하는 거냐는 둥, 국내 활동은 멈추는 거냐는 둥, 근데 제가 뭘 아는 게 있어야죠.”
직원은 자기가 홍보팀인지 전화 상담원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이들이 끄덕인다.
그때 이들 중에서 가장 연차가 쌓인 대리가 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눈짓을 보냈다.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
“네?”
최정아에 관해 물어봤던 직원이 고갤 돌리자마자 헙, 하는 얼굴로 제자리에 돌아온다.
라운지로 다가오는 A&R 정 팀장과 이민주 대리. 그 뒤로 장기로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담소 좀 나누려는데 라운지에 뭔 사람이 그렇게 많나. 다들 한가한가 보네.”
정 팀장이 투덜대며 음료가 담긴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그도 그럴 게, 대표실과 본부장실이 있는 두 층을 제외하곤 전부 돌아다녔다. 커피 유목민이 된 기분이었달까.
이민주가 카페모카를 가져가며 웃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저도요.”
나도 아메리카노를 들며 한마디 거들었다.
라운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게 될 줄 알고 쏘겠다고 했던 정 팀장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그러다 아, 하는 표정으로 다시 고갤 들어 올린다.
“아까 홍보팀 직원들이 하던 얘기나 좀 해봐. 최정아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해외 진출할 거라는 떡밥은 많은데, 정작 아더 레이블에선 보도자료 하나 안 나오고 있잖아.”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앨범 준비 중이죠. 해외 진출을 목표로요.”
“역시나네. 그나저나, 해외진출이 언제부터 이렇게 쉬운 이름이 된 거람?”
“장 대표님은 쉽게 부를 만하죠. 국내건 해외건 본인 앞에선 평등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는데.”
이민주가 어디 인터넷 댓글에 달렸을 법한 멘트를 날리자, 정 팀장이 킬킬거렸다.
그러다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근데, 리스크는 괜찮겠어?”
리스크······.
항상 달고 살았지.
저런 걱정 어린 물음도 달고 살았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던컨은 애초에 해외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이었지.
은유란은 첫 싱글의 성공으로 국내에 매니아 팬들이 많았지만, 재즈라는 한계를 깨기 위해 해외 진출을 시도했고.
하지만 최정아는 경우가 다르잖나.
이미 여성 뮤지션들 중에선 손에 꼽히던 제인, 하서윤과 더불어 트로이카라고까지 불리고.
단독 콘서트까지 정기적으로 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중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잃을 게 많다는 말이지.’
해외 진출은 더 큰 무대가 될 수도 있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
마치 미래가 바뀌기 이전의 하서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가능성을 믿었고, 그녀 또한 자신의 무대를 넓히는 것에 동의하며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내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
때문에 프로젝트 던컨을 완벽하게 성공시켜 유재완 대표의 허락을 얻었다. 유재완 대표는 주주들을 설득해야 했고.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 만큼은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만큼.
“확실히, 리스크가 크겠죠.”
“그러니까.”
“그래서 국내 활동을 먼저 하기로 했어요. 그게 끝나면 해외로 넘어가는 쪽으로. 물론 발매와 홍보는 양쪽에서 동시에 할 거고요.”
“그걸 유통사에서 동의했다고? 뮤지션이 미국에 있지도 않은데, 홍보하는걸? 유통사가 오차드일 거 아냐?”
궁금증투성이인 말투에 내가 고갤 저었다.
“이번에 정아는 오차드와 계약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두 얼굴이 날 향했다.
내가 오차드와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는 말들이 회사 내에서도 사실처럼 퍼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그럴 줄 알았지. 줄곧 오차드와 최정아에 대해 이야기해온 게 사실이고.
그래미 어워드 자선 파티에서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소니 뮤직과 유통 계약을 하게 될 것 같거든요.”
“대박. 소니 뮤직이요? 어떻게······아니, 그보다 그게 더 이상한데요? 오차드여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모회사인 소니 뮤직이 정아를 배려해서 그런 계약을 체결해준다고요?”
“이번에 운 좋게 클라이브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때 그가 제안해왔고요.”
이민주의 눈이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커졌다. 놀랄만한 이름이긴 하지. 나였어도 저런 표정이었을 거다.
마찬가지로 크게 놀란 눈치던 정 팀장이 이내 의뭉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가 아무리 장 대표를 좋게 봤어도, 리스크를 다 떠안는 그런 계약을 해줄 리가 없을 텐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꼬릴 늘어트리던 그가 불쑥 내게 물어왔다.
“혹시 다른 조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애프터 파티에 참석했던 그 날.
소니 뮤직의 최고 창작 책임자,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오차드와 최정아에 대해 진행했던 내용, 그대로 우리가 이어받겠네. 곧 담당자한테서 연락이 갈 거야.”
이번 최정아 앨범이 갖고 있던 마케팅의 규모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당혹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흘러나왔나 보다.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추가 조건은 없어. 이렇게 해줬으니 스카웃에 응하라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가 잔을 들었다. 나도 잔을 들어 그에게 맞췄고, 황금빛 코냑이 춤을 췄다.
술기운이 올라 내 시선이 흔들리는 건지, 뜻밖의 성과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뮤지션이야. 전 세계인들에게도 알 기회를 줘야지.”
낮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
나는 그게 그가 발굴해낸 최고의 뮤지션, 휘트니 휴스턴일 거라고 거의 확신했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자넬 꼬셔오라던 더그에겐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이 얘긴 해야겠군.”
이번엔 그의 두 눈이 코냑처럼 빛나고 있었다.
“더 성장하게. 더 많은 뮤지션들을 발굴해내고, 더 많은 노래를 만들고, 더 다양한 시도를 해. 그러려면 단순히 어떤 회사의 마케터로 머물어선 안 돼.”
그의 마지막 말이 오크향에 찌든 내 머릴 뒤흔들었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야 하네”
*머리를 헤드레스트에서 떼고, 감았던 눈을 떴다.
TKM 엔터테인먼트 지하 주차장.
시동을 켜놨더니 차 안의 냉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곧장 차를 몰아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그리고 차에서 내려 어두운 복도를 걷는 내내 하나의 생각이 머릴 두드린다.
독립.
‘해야 할까?’
지금껏 TKM이란 울타리가 있기에 많은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뮤지션, 기회, 방법, 그리고 내 유명세까지도.
계속 남아있는 다면, TKM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내 뮤지션들과 승승장구 할 수 있겠지.
어쩌면 또다시 빌보드 정상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던컨이나 은유란의 후속곡을 맡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어쩌면, 그래미 어워드에서 트로피를 거머쥘 날이 올지도 모르지. 던컨이 조금만 더 분발하면 이듬해엔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될 거란 분석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만약, 소니 뮤직으로 간다면?
그 모든 게 더 쉬워질 것이다.
TKM이란 울타리보다 더욱 견고하고, 거대한 곳이니까.
근데, 그게 맞는 걸까?
안전한 길로 가는 게?
아직 매듭짓지 못한 선택이 똬리를 틀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발걸음이 연습실과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서 수많은 선율과 하나의 멜로디가 빛처럼 흘러나올수록 머릿속이 걷혀간다.
문 앞에 다가서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그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최정아의 목소리가 커다란 등대처럼 주변을 밝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슬그머니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어찌나 집중했는지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슴 속이 뜨거워진다.
귓바퀴를 타고 들어오는 최정아의 가사에. 담담한 듯, 애절한 그녀의 목소리에.
‘꼭 보이는 것 같네.’
홀로 부르고 있는 그녀 뒤로, 수많은 이들이 그려진다.
노랠 부르는 게 좋지만, 부르면 안 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 사람들.
끝끝내 업으로 삼고, 이제 마음껏 부르리라 행복해했지만, 현실의 벽에 짓눌려 결국 달라질 건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
그럼에도 그 돈키호테처럼, 또 달려나가는 사람들.
왜일까.
문득, 지금껏 함께한 뮤지션들이 했었던, 감사하단 목소리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귓등을 처마처럼 내리친다.
그 사이, 노래는 끝났고 여운을 흩트린 최정아가 내려와 곧장 나에게로 달려온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피디님! 저번에 얘기하신 대로 불러 봤는데···!”
그녀가 밝힌 길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벌컥 말했다.
“고맙다.”
“네?”
잠시 어리둥절하던 최정아가 뭐가 고마운지도 모르고 헤실거렸다.
딱히 설명하지 않고, 나도 그냥 웃었다.
화려한 빌보드도,
영광스러운 그래미도 좋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멜로디를 부르는 뮤지션의 노래보다 더 내 마음을 뛰게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난 아닐 것 같았다.
#유재완 대표가 전화기 다이얼을 눌렀다.
바로 문 앞에 있을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표님.
“어, 난 좀 더 있을 것 같으니까 자네 먼저 얼른 퇴근하라고.”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세요?
“걱정 마. 할 만하니까 하는 거야. 요즘처럼 일이 즐거운 것도 오랜만이거든.”
-그래도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과한 걱정에 유재완 대표의 심사가 괜스레 뒤틀렸다.
그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내가 나이 들었다 이거지?”
-예? 아. 아뇨.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
갑자기 뚝 끊긴 목소리. 이윽고 비서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 아더 레이블 장 대표님 오셨습니다.
비서를 좀 더 골려주려던 유재완 대표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건가?’
이렇게 급작스레 찾아올 이유가 그것밖에 없으리라 짐작한 유재완 대표가 들여보내란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결정을 들고 왔든 설득해야 했다.
TKM의 미래를 위해, 이 자리까지 내놓을 결심까지 마쳤으니까.
곧 문이 열렸다. 그리고 유재완 대표는 속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직감한 거다. 어떤 대답을 들고 왔는지. 그리고 그 결정을 바꾸기 얼마나 어려울지.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기로가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 때보다 선명한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