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97화 (197/221)

197. 부르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2)

아더 레이블 연습실.

여러 시선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굴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인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여기가 거기죠? 던컨이 한국에서 춤 연습했던 곳.”

“그런 것 같네. 진짜 멋지다.”

“방송국 연습실하곤 때깔부터가 달라요.”

쪼그려 앉아 바닥을 만져보는 사람부터 ‘아’ 소릴 내며 울림을 확인하는 사람까지. 저마다 구경하는 방법도 달랐다.

가장 앳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한참을 감탄하다가 새삼스러운 말투로 모두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정아 멘토님 정말 짱이지 않아요? 촬영도 아닌데 이렇게 따로 불러주시고.”

“나도 감동했다. 매번 끝까지 남아서 노래 봐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이런 것까지 준비해주실 줄이야.”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멘토라면서 스케줄 핑계로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진짜 그녀는 천사인 건가······.”

“오시면 제대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요, 우리.”

“당연히 그래야지.”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끄덕이는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 불쑥 말꼬릴 올렸다.

“근데 오늘 뭘 봐주려고 부르신 걸까?”

“그러게요. 저도 그게 무지 궁금하긴 한데······.”

모두가 마찬가지리라.

그때 늘어지는 말꼬리 뒤로 문이 열렸다.

시선들이 집중되고, 머리를 올려 묶은 최정아가 웃으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반가운 인사들이 쏟아져나왔다. 거기에 감사하단 인사까지 얹어지자 최정아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열띤 환호가 잦아들고, 뭐든 가르침을 받겠다는 표정들로 변한 참가자들을 보며 최정아가 입을 뗐다.

“일단 우리 목 좀 풀어요. 오늘은 저도 참가자분들이랑 같은 입장이라.”

“네······?”

벙찐 참가자들에게 최정아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문 쪽을 힐끔거린다.

“오늘 특별 심사위원님을 모셨거든요. 저도 막 떨리는데요, 지금.”

누가 오길래 최고의 여성 뮤지션 중 한 명이라 손꼽히는 그녀를 노래로 평가한단 걸까.

게다가 떨려 하기까지.

그게 대체 누구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질문을 머금은 어리둥절한 시선들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어?!”

설마 하는 표정들 뒤에서 최정아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쐐기를 박았다.

“피디님!”

장기로가 손을 휘적거리며 연습실로 들어왔다. 쏘아지는 눈빛들이 부담스러운지 괜스레 최정아만 보면서.

입을 쩍 벌린 참가자들 앞으로 다가선 장기로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장기로라고 합니다.”

꿈인지 생신지 헷갈리는 사람은 있어도.

여기에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내 대답에 참가자들이 발까지 동동 구르며 연습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늘 짚어주신 거 다음 경연까지 꼭 고치겠습니다!”

“저희 진짜 진짜 열심히 할게요!”

“오늘 일을 평생 못 잊을 거예요!”

평생까지야······.

나와 최정아에게 번갈아 가며 감사하단 얘길 퍼붓던 참가자들이 모두 떠난 후.

바닥에 철퍼덕 앉은 최정아가 헤실거렸다.

“오랜만에 오디션 보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이제 네 노랠 평가할 능력이 되나. 작정하고 들어도 흠잡을 데가 없더만.”

“에이, 참가자들 있다고 일부러 칭찬만 해주신 거 아녜요?”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나? 근데, 나 그런 센스 없어.”

그건 그거대로 좋은지 배실배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덩달아 웃다가 넌지시 물었다.

“너 나한테 보여줄 거 있지 않아?”

최정아가 고갤 들며 놀라 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기영이가 작업하는 곡 가사 때문에 홍 작가님한테 연락드렸는데, 아주 혀를 내두르시던데? 요즘 다시 소설 쓰실까 고민 중이시라더라. 너 때문에.”

“아하하, 그 정돈 아니고요.”

아니긴.

가사에 있어서만큼은 칼 같은 홍 작간데.

“보여줄래? 궁금하다.”

*호다닥 달려나간 최정아가 스프링 노트 하날 들고 온다.

어떤 가사려나.

기대하지 말라는 최정아의 말에 고갤 끄덕였지만. 이미 받은 여섯 개의 가사가 너무나도 괜찮았고, 홍 작가가 하도 칭찬을 해서 이젠 기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직접 보라며 어떤 주제인지도 말 않던데.’

내심 기대를 부풀리며 다가오는 최정아를 보는데, 그녀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엇······!”

평소 최정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복식으로 터져 나온 기합 같은 소리.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그런 소릴 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헤실거리던 미소도 날아가 버렸다.

뭔가 잘못된 것처럼,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더니 날 빤히 본다.

안 그래도 큰 눈동자가 더 크게 떨린다.

“갑자기 왜 그러······.”

“자, 잠시만요!”

황급히 유턴하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지?

그녀가 다시 나타난 건 몇 분이 지나서였다. 손엔 아까 그 스프링 노트는 없었다. 대신 웬 용지 한 장이 달랑 들려있었다.

“프린트해온 거야?”

삐뚤게 스캔이 떠진 용지를 받아들며 물었다.

작은 머리통이 끄덕인다. 큰 눈은 나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오다가 갑자기?”

“네.”

버튼을 누른 듯 재빠르게 튀어나오는 대답.

장난기가 돋아 눈을 가늘게 떠봤다.

내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가는지 최정아가 움찔움찔거린다. 그녀의 눈이 이미 바닥을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

스프링 노트에 보여주기 싫은 거라도 적어 놨나 보다. 뭘까 그게. 설마 내 욕은 아니겠······.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었다. 마지막 건 좀 추했지.

“난 연예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대표라.”

장난스레 씩 웃어주고, 시선을 종이로 내렸다. 앞에서 아주 미세한 안도의 한숨이 들린 것도 같은걸.

종이엔 콩알만 한 글씨들 위엔 나름 코드까지 적혀 있었다. 거기다 자신이 어떤 주법으로 기타를 치면 좋을지 나름대로 연구한 흔적까지 보였다.

Eb key

Fm7

전주의 코드를 보며 기타 반주를 상상해봤다. 최정아가 연구한 그대로. 기타 실력이 프로 연주자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도 꽤 오랜 시간 기타를 쳤다 보니 확실히 괜찮았다.

‘다음은······.’

Bb7

멜로디가 들어갈 차례다.

내가 만든 멜로디라 음정은 정확하게 머릿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거기에 최정아의 가사를 씌우고.

EbM7

그녀의 목소릴 입혔다.

기타 소리를 배경으로, 최정아의 목소리가 그녀의 가사를 멜로디에 따라 움직였다.

내가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안진 얼만 안 됐지만, 틈틈이 연습한 효과가 있었다.

마치 바로 앞에서 최정아가 기타를 치며 노랠 부르듯, 머릿속에서 모든 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눈이 가사를 미끄러지듯 내려가 마침표를 찍고 올라왔다. 바싹바싹 말라가는 최정아가 보인다. 아깐 잠시 일기장을 들킨 사춘기 여고생 같은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한없이 진지하다.

‘이래서야 장난을 치고 싶어도 못 치겠네.’

웃음기를 빼고 입을 열었다.

“가사 정말 멋지다. 왜 홍 작가님이 그렇게 극찬을 했는지 알 것 같아.”

번지는 미소를 보며 덧붙였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이거, 네가 너한테 보내는 가사처럼 보이는데, 맞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최정아의 그 모호한 대답에서 나는 답을 찾았다.

“너만이 아니구나?”

내 말을 긍정하듯, 최정아의 웃음이 더욱 화사해진다.

그녀가 쓴 가사는, 그녀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 모두를 위한 이야기였다.

#은빛 지휘봉이 현란하게 반짝였다.

지휘자의 손짓 하나에 수십 개의 악기가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다.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수많은 선율들이 양쪽 귀로 흘러들어 머릿속에 들어차고, 넘쳐 흐른다.

사운드에 압도되어 무장해제가 되어버리는 과정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 가졌던 생각, 고민, 스트레스, 그 밖의 잡생각들까지 모두 별거 아닌 일처럼 되어버린다.

그제야 비로소 노래를 온전히 들을 준비가 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넋을 놓고 공연을 관람했다.

공짜 티켓으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동안 박수에 동참하다가, 슬그머니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옆길을 통해서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마침 백스테이지 문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그들 중 몇몇은 날 보곤 눈이 커졌다.

“엄청 오랜만이에요! 진짜! 피디님···대표님···뭐라고 불렀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

“난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지? 그래미에서 보던 얼굴이 갑자기 앞에 있으니까 인지 부조화 걸린 거 같은데?”

쾌활한 웃음소리로 대기실 앞 복도가 떠들썩해진다.

수석 단장이 빛바랜 바이올린을 늘어트리며 말했다.

“감독님 내려오시네요.”

활짝 열린 철문 안쪽에서 오늘의 지휘자였던 최연석 예술감독이 천천히 내려왔다.

“공연은 어땠나.”

날 본 그가 부드러운 미소로 다가와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물어왔다.

내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오케스트레이션 편곡 공부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말투 보니 하나도 도움이 안 됐나본데.”

“사실 너무 넋을 놓고 봐버려서요. 그래도 다른 쪽으론 도움이 됐습니다.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무슨 확신?”

“역시 현중필과 작업하는 게 맞았구나.”

오차드가 카운터리 오케스트라와 다리를 놔주려 했다던 내용을 대강 알고 있는 최연석 감독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미국 가더니 처세술만 늘었군.”

그리곤 내 손에 들린 가방을 보며 말했다.

“일단 내 방으로 가지. 가방을 보니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탁.

영롱하게 빛나던 은빛 지휘봉이 네모난 케이스 안에 덥혔다.

케이스를 서랍에 넣은 최연석 감독이 눈썹을 젊잖게 긁어댔다.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뭉치를 보며.

“이번 앨범 일곱 곡 중에 우리가 할 건 한 곡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가져온 양은 어째 일곱 곡 전부인 것 같은데?”

도톰한 종이 뭉치들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였다. 대강 여긴 이런 느낌 저긴 저런 느낌. 이런 겉핥기식이 아니라, 모든 악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주 사시 공부를 해놨어.”

“오차드와 줄다리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시간이 많았습니다.”

“더 많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피식 웃은 최연석 감독이 종이 뭉치 하나를 끌어다가 몇 장을 넘겨보더니 장기로에게 말했다.

“이거 한두 시간 붙잡고 있겠다고 검토될 게 아닌 것 같네. 차 한잔 마시면서 미국 얘기나 좀 해보게. 이건 내가 따로 확인하고 다시 연락할 테니.”

장기로가 연락 기다리겠다며 떠난 후.

빈 찻잔 두 개를 앞에 두고 최연석 감독이 첫 장을 넘겼다.

신중한 표정으로 읽어내려가던 그의 시선이 점차 빨라졌다.

사락. 사락.

종이 넘기는 것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하나의 종이 뭉치가, 악기가 끝났다.

‘좀 더 봐야겠는데?’

그가 다른 종이 뭉치를 끌어왔다. 또 다른 악기에 대한 내용들. 두툼하다. 이건 보다 디테일했다. 곡 구성의 중요도 면에서 이전 악기보다 더 무게를 둔 것이겠지.

그렇게 한 권씩 읽어나가던 최연석 감독이 중간에 안경을 벗었다. 눈을 꾹꾹 누르며 속 빈 웃음을 흘렸다.

“이게 이렇게 흥미진진할 일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악기를 읽고, 다음 악기를 읽으며 둘의 그림을 맞추고. 그다음 악기를 보며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다.

아직 반쪽짜리 퍼즐이었지만, 이게 어떤 그림인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맞추고 나니 명화랄까.

살갗이 찌릿했다. 머리가 쭈뼜선다.

완성된 그림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헛웃음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름답다 불리는, 하지만 어려운 난이도 때문에 오케스트라에겐 곤욕스러운 곡들.

그걸 만든 위대하고 고약한 작곡가들이 떠올라서.

비교될 수밖에 없잖나.

최연석 감독이 투덜댔다.

“악보를 이렇게 정리해서 후세에 물려줬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지휘하기 한결 편했겠구만.”

낮은 웃음소리가 그의 방안에 잔잔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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