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94화 (194/221)

194. 그래미 어워드에서 (1)

“수고들 했어요.”

아직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 준비 중인 쇼핑센터.

한바탕 뜀박질을 하던 무리가 한자리에 모여 촬영을 마쳤다.

담당 피디가 껄껄 웃으며 출연진들을 다독이는 동안, 스태프들은 서둘러 장비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다들 회식 갈 거지?”

“물론이죠, 피디님.”

“하루 온종일 뛰었더니 너무 배고프네요.”

“시원한 맥주도 땡기고요!”

출연진들이 살랑대며 자리를 옮겼다.

연예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 고깃집은 추가 손님을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셔터를 내려버렸다.

“어후, 지선주 씨. 어째 볼 때마다 더 잘생겨지는 것 같아? 아까 모니터로 보면서 다들 엄청 감탄했어.”

끝쪽 테이블에 앉은 담당 피디가 소주병을 기울이며 말했다. 지선주가 얼른 잔을 들어 받는다.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담당 피디는 목소리가 참 좋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이번 노래도 좋더라고. 발매하자마자 차트 TOP10에 들었다며?”

“운이 좋았습니다.”

“낼 때마다 상위권이면서 운은 무슨. 자넨 겸손이 너무 과해. 이번엔 1위 해야지?”

떠들썩하게 웃으며 잔을 꺾는 담당 피디. 오만상을 쓰며 인생의 쓴맛을 즐긴 그가 덩달아 잔을 꺾는 지선주를 보며 덧붙였다.

“근데 자네도 참 난감하겠어.”

“네?”

“대중들 관심이 죄다 바다 건너에 쏠려있잖아. 지금 국내 음원차트 1위는 기로 프로듀서 없다고 빈집털이라는 말까지 돈다며. 대중들 말 참 쉽게 얘기한다니까.”

“아, 그런 얘기가 조금 돌긴 하죠. 하하···.”

옅어지는 웃음소릴 개의치 않고 담당 피디가 떠들었다.

“조금이 아니더만 뭘. 하긴, 던컨이 엄청나긴 했어? 지금은 내려왔지만, 빌보드 1위에다가 이번에 그래미 어워드 초청까지 받고. 그지?”

그러자 옆에 있던 조연출이 쌈을 우물거리며 거들었다.

“그거 기로 프로듀서도 초청받았다면서요.”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그쪽으로 빠졌다.

“그래? 그건 몰랐네.”

“촬영 중에 기사 떴더라고요. 거기에 레드리시랑 은유란은 무대까지 선다던데요?”

“허 참. 진짜 대단한데?”

“그러니까요. 그래미 어워드 솔직히 별세상 이야기라 관심도 없었는데, 이번엔 꼭 봐야겠어요. 참석한 한국인이 대체 몇 명이야.”

주변에 있던 제작진들이 거들수록 지선주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연달아 소주잔을 들이부어 애꿎은 간만 혹사시킨다.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여자 아이돌들과 시시덕거리던 배우, 이우성이 소수 병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어, 오늘 우승자!”

담당 피디의 외침에 이우성이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술을 따랐다.

“자네도 한 잔 받아.”

“넵!”

그가 누가 먹다가 남겼는지 모를 술을 꿀떡 넘겨 빈 잔으로 만들었다. 성격 참 시원시원하다며 담당 피디가 칭찬하자 더욱 신이 나서는 잔을 받으며 싹싹하게 물었다.

“근데, 어떤 얘기 중이셨습니까? 너무 재밌어 보여 왔습니다!”

“응? 아, 장 대표 얘기. 기로 프로듀서 말이야, 아더 레이블. 아 참, 그러고 보니, 자네 박경호랑 같이 드라마 찍었잖아?”

“네···?”

호기롭던 목소리가 팍 숨이 죽었다.

“네, 넵······.”

“혹시 자네 박경호 씨랑 친하나?”

은근한 물음에 이우성이 뻐끔거리는데, 옆에 있던 시누이···아니, 조연출이 아는 체를 했다.

“에이, 피디님은 뭘 그런 걸 물어보세요. 둘이 붙어있는 씬 엄청 많았어요. 아주 절친 다 됐을걸요?”

“그래?”

원하는 바가 뻔한 따가운 눈빛에 이우성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 그렇죠. 네, 뭐. 친하죠. 경호랑.”

“그 친구가 찍는 할리우드 영화 대박이라던데? 스타 리포트 황 피디가 촬영 현장 보고 오더니 난리더라고. 기자들도 그렇게 까대더니 갑자기 기대되는 영화라고 그러고.”

“그렇다더라고요···.”

“언제 중간에 한국 들어올 일 없나 한 번 물어 봐줘. 아더 레이블에 전화해선 답이 없겠더라고.”

이우성이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한 번···연락해보겠습니다.”

“좋네, 좋아. 내가 자네한테 따로 연락 한 번 할게. 자, 둘 다 한 잔씩 더 받지!”

담당 피디의 말에 지선주와 이우성이 잔을 들었다.

이미 소주를 짝으로 마신 얼굴들이었다.

#갈아입으라는 옷을 입고 어색한 몸짓으로 방에서 나왔다.

밖은 난리도 아니다.

던컨 멤버들은 마네킹처럼 굳어서 서 있고, 담당 코디의 진두지휘 아래 직원들이 행거를 끌어와 이 옷, 저 옷을 대보고 있다.

다들 휴가를 잘 다녀왔나 보네. 기운들이 넘친다.

이미 컷 당한 옷들이 걸린 행거를 헷갈리지 않게 치우던 김지희가 날 발견하곤 반색했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그런가요?”

“무지요! 역대급이에요!”

그 정도인가? 한쪽에 세워진 전신 거울을 보았다. 지난번 허연 물개보단 나은 것 같긴 한데······.

“근데, 화장은 너무 과한 거 아녜요?”

“에, 전혀요? 완전 연예인 같으신데요?”

그러니까. 그게 문젠 거 같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김지희가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았다.

“어딨더라, 아 여기. 이거 차세요. 피디님 앞으로 온 거니까.”

김지희가 테이블에서 가죽 재질의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뚜껑을 여니 시계가 하나 들어 있었다.

별생각 없이 찼는데, 묵직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반짝이는 유리 속에 보이는 브랜드가 눈에 걸렸다.

까르띠에?

“이게 제 앞으로 협찬이 왔다고요?”

“네! 정확히, 피디님 앞으로요.”

갑자기 손이 묵직해진다. 가격을 들으면 어깨가 빠질 것 같아 물어보진 않았다.

대체 이게 왜 나한테······.

내 표정을 본 김지희가 쿡쿡대고 웃는다.

“셀럽이시잖아요.”

“셀······끙.”

듣기만 해도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것 같네. 차라리 유명인이라는 말이 낫겠는걸.

어쨌든, 착장을 마쳤으니 나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소파 옆에선 던컨 옷 입히기 게임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저런 게 셀럽이지.’

언뜻 보면 무난하지만, 하나씩 포인트를 가진 수트들.

쫙 빼입은 던컨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물론 각자의 면면들은 가관이다.

불판 위에 구운 바싹 불고기 같달까.

얼굴에 긴장했다, 미치겠다, 숨이 안 쉬어진다, 라고 쓰여있는 느낌이다.

그때 이강훈 팀장이 호텔 방으로 뛰어 올라왔다.

“준비 다 됐어요? 얼른 출발해야 합니다!”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연말마다 시상식을 꽤 많이 돌아다녔고, 할리우드에서 열린 자선 파티까지 가봤지만 여긴 뭔가 색다른 느낌이다.

어떤 시상식보다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는데, 분위기 자체는 꼭 파티 같다.

레드카펫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 뮤지션들이 도착하는 대로 자유롭게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그래미의 마스코트. 커다란 축음기 앞에서 뮤지션들은 혼자, 혹은 함께 포스를 취한다.

살짝 입술을 적시며 레드카펫을 따라 걸었다.

던컨과 함께.

“와아아아아! 던컨!”

어느 때 보다 커다란 외침이 스테이플센터를 뒤흔들었다.

앞선 뮤지션을 촬영하던 렌즈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향했다.

“와···와···.”

입을 벌린 채로 연신 감탄하며 걷는 던컨.

팬들에게 인사하랴, 앞쪽에 지나가는 유명 뮤지션들 구경하랴. 혼이 쏙 나가 있었다.

그래도 여러 포토존을 거치다 보니 적응이 좀 됐는지 표정들이 풀어진다. 근데 어쩌나, 난 영 적응이 안 되는데.

이런 쪽엔 던컨이 내 선배다. 그것도 한참. 어떻게 눈치껏 서서 함께 사진을 찍다 보니 마침내 축음기 포토존까지 무사히 마쳤다.

“후아, 너무 힘들었어요.”

옆에서 오승준이 헥헥대며 말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정현우가 손등으로 닦아주었다.

“난 아직도 안 믿겨. 앞엔 루비드, 뒤엔 샤렐이 걷고 있고 펜스 뒤론 카메라가 진짜 몇 천 대는 되는 것 같았고······그리고 그런 거 다 떠나서 그냥 그래미잖아, 그래미! 아까 그 축음기 봤어?”

임현택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똑똑히 봤다며 파닥거린다.

그렇게 던컨의 그래미 레드카펫 후기(?)를 들으며 우리는 시상식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내부엔 자리에 앉아 있거나, 아는 이들과 인사 중인 스타 뮤지션들이 바글바글했다. 하나같이 슈퍼스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놀라운 얼굴들이다.

이에 던컨이 또다시 최대한 티 안 나게 놀라는 사이, 나는 보다 먼 곳을 보았다.

기하학적인 무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에 수많은 조명들이 스탠바이 중이다. 무대 위의 누구든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순간, 레드리시와 은유란이 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겹쳐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모습으로 이 내로라하는 뮤지션들 앞에 서게 될까?

“후우······.”

웃음 섞인 한숨이 길게 빠져나오고.

가뜩이나 들떴던 마음이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던컨이다.”

익숙한 얼굴들과 근황을 전하던 여자의 시선이 누군갈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얘길 듣던 이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던컨이 중앙에 통로로 내려오고 있었다.

“자리가 꽤 머네. 가까웠으면 사진 한 장 찍는 건데.”

이게 그녀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이미 근처에 있던 뮤지션들이 던컨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왜들 저렇게 같이 못 찍어서 안달인 거야?”

함께 있던 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웃었다.

“던컨이잖아? 뮤지션들 중에서도 던컨 팬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유행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유행?”

“던컨 챌린지, 몰라? SNS 좀 해라.”

“안 해, 귀찮아. 그래서 그 던컨 챌린지란 게 뭔데?”

“던컨이랑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태그엔 ‘던컨 챌린지’라고 적는 거야. 일반적인 팬들은 그냥 브로마이드 앞에서 찍고, 열성적인 팬들은 진짜 던컨 앞에서 찍고.”

“유명 뮤지션인 팬들은 얼굴 맞대고 찍고?”

“그렇지!”

손가락을 튕긴 여자가 자신은 애프터 파티 대를 노려보겠다며 아쉬움을 걷어냈다.

반면, 남자는 요상한 표정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스타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던컨을 보며 중얼거렸다.

“별 게 다 유행이네······.”

#던컨이 유명인 팬들과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나도 한쪽에서 정신없이 바빴다.

대체로 프로듀서와 싱어송라이터들이 나를 알아보곤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나도 그들을 알았다. 덕분에 대화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물론 자신들을 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표정들은 영 적응이 안 된다만······.

새삼 내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다시 한번 실감이 간다.

뻐근한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프로듀서님의 다음 작업이 정말 기대되네요!”

칭찬과 덕담을 하도 들었더니 ‘감사합니다’가 입에 밸 것 같다.

다행히 조도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착석하기 시작했다. 나도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무대를 응시했다.

일정 조도 이하로 떨어진 조명이 변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오, 뭐야?”

“이렇게 바로 시작하는 건가?”

“와아아아!”

웅성거림이 커지고, 곧 소란으로 번진다.

그 순간에도 조명들은 점점 더 노랗게 물들었다. 조명 속에서 커다란 실루엣 하나가 생겨난다. 마치 곰과 같은.

“앤······.”

낮게 중얼거리는데, 노랗게 빛나던 조명들이 또다시 변한다.

서서히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결국 붉은색을 띠기 시작했다.

“피디님, 이거···!”

옆에서 정현우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날 부른다.

던컨만 눈치챈 게 아닌 듯, 주변은 이미 환호성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조명이 더 붉어진다.

금방이라도 불꽃이 튈 것처럼.

아니,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붉게. 더 붉게.

새빨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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