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92화 (192/221)

192. 스크린 속 무대 (3)

<아더 레이블, 박경호의 차기작은 영화다!>

<박경호의 이유 있는 미국행. 차기작은 할리우드 영화?>

<박경호의 첫 영화, 감독도 첫 상업영화?>

<빌보드 정상까지 올랐던 아더레이블의 승부수일까, 무리수일까?>

<국내 영화 관계자들은 ‘회의적’, 팬들은 ‘기대’, 대중들의 반응도 반반으로 엇갈려>

<영화계 관계자, 기로 프로듀서 대단하지만, 음악과 영화는 엄연히 다른 영역>

박경호의 영화 촬영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부터, 올라오는 기사들이 서로 경쟁하듯 점점 더 자극적 여지고 있다.

나눠 가진 정보야 모두 똑같겠다, 영화 관계자니, 욕심이니 이리저리 엮고 불려서 조회수를 터트려보려는 작업이 시작된 거다.

그렇게 조회수가 터진 기사들을 보면 당연히 댓글창도 난장판이었다.

-옛날에야 할리우드 영화 찍는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박수쳤지, 요즘은 또 영화 하나 망하는구나 하지 않음?

-그래도 기사보니 기로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만들어낸 기회 같던데, 잘 됐으면 좋겠다.

-나도 기로 프로듀서 노래 좋아하고 빌보드 1위한 거에 막 뿌듯해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는 선 넘었지. 박경호 좋은 배우 같던데, 흑역사 만들고 오는 건 아닌가 몰라. 좋은 롤 엄청 들어왔을 텐데, 굳이······.

-데자뷰냐. 기로 프로듀서가 처음 빌 앨런이랑 작업하러 미국 진출했을 때도, 이런 식의 댓글 엄청 많았는데. 던컨 때도 마찬가지고. 응원은 못 할망정 매번 이러네.

-아직 어떤 영화인지도 제대로 안 밝혀졌는데 너무 왈가왈부할 필요 없는 듯. 그냥 발 닦고 굿바이 멜로디나 봅시다. 이번 화에서 박경호랑 이은주랑 이어질 것 같던데.

데자뷰라는 댓글엔 공감을 눌러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딱 그렇게 느끼고 있었거든. 여기 직원들도 마찬가지고.

“거긴 좀 어때요?”

노트북에 들어갈 것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김지희에게 물었다. 그녀가 할머니 마냥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날 본다.

“언급조차 없어요. 완벽히 무반응이에요.”

정반대의 상황이지.

이걸로 ‘미국에선 거의 독립영화급인가 보다, 검색해도 뭐 하나 나오는 게 없음’이라면서 깎아내리는 기사나 댓글도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뭐, 제작 소식만 전했지 아직 홍보나 이런 걸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홍보할 돈도 빠듯할 것 같지만.

그거야 뭐, 투자자와 배급사가 열심히 머릴 맞대고 있을 테고.

사실 홍보로 뜰 영화도 아닌지라 딱히 내가 걱정할 건 아니었다.

도저히 못 찾겠다며 노트북에서 눈을 뗀 김지희가 침침한 눈을 달랜다. 나도 핸드폰을 집어넣고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대표님, 저도 하나 주세요······.”

“뭔 줄 알고요?”

“에너지 드링크겠죠. 거기 그거뿐인데.”

그녀의 말대로 냉장고 안은 성난 황소들이 가득했다. 헛웃음을 지으며 하나를 따서 건넸다.

“감사합니다아······아 참, 어젯밤에 TBC ‘스타 리포트’에서 연락 왔었어요. 뉴욕 와서 피디님이랑 경호 씨 인터뷰 한 번 하면 안 되냐고요. TBC 소속 기자들도 같이 오겠다는데 일단 여쭤본다고는 했어요.”

“온 김에 슬쩍 어떤 영화인지 보려고 하겠네요.”

“그죠. 그냥 거절할까요? 같이 온 기자들이 혹시나 돌아가서 또 이상한 기사들 써대면······.”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릴 들으며 캔을 땄다. 기분 좋아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확한 스코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둘 ‘뉴요커스’아닌가.

박경호의 합류로 변수가 생겼으니, 국내 반응은 조금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아녜요. 오라고 하세요.”

“괜찮을까요?”

얼른 박경호의 촬영 일정을 훑어보며 끄덕였다.

“감독님껜 제가 얘기해 둘게요.”

#“무슨 여행 온 것 같네요!”

“그러게, 날씨도 한국만큼 안 춥고, 일 때문에 왔어도 보는 풍경이 달라지니 좋긴 좋네.”

“맘 같아선 한 일주일 푹 쉬다 가고 싶은데······.”

“쇼핑도 좀 하고. 그치? 뉴욕하면 또 쇼핑이지.”

스타 리포트 제작진이 렌트한 차에 짐을 실으며 은근히 들뜬 기색을 드러냈다. 그들 뒤로 같은 TBC 소속 연예부 기자들이 손을 거들었다.

“저희도 좀 도와드릴게요.”

“아이고, 고마워요. TBC는 역시 정이 있어, 정이.”

“저희도 차 얻어타는데요, 뭘. 당연한 거죠.”

“하하, 그런가? 거기, 예정 씨! 곧 출발하니까 대본 한 번 더 확인하고.”

“넵!”

셀카 삼매경에 빠져 있던 리포터도 차에 올라탔다.

“그나저나, 어떤 장면일까요?”

스태프의 물음에 피디가 코웃음을 쳤다.

“어떤 영환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장면이 뭔질 궁금해하냐?”

“아, 그건 또 그렇네요.”

“그리고 우리한테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니. 찍지도 못하는 거. 기로 프로듀서랑 박경호랑 그림 잘 뽑는 게 더 중요하지.”

“이럴 때 보면 기사가 참 유리해요? 디테일하겐 언급 못 해도 어느 정도 글로 설명할 순 있으니까.”

기자들 쪽을 힐끔거리며 말하는 스태프에게 피디가 미간을 좁혔다.

“저 양반들이 그런 거 하려고 여기까지 왔겠냐?”

“네? 그럼요?”

“넌 방송국 입사 몇 년 찬데 아직도···에효, 딱 보면 몰라? 깎아내릴 껀덕지 찾으러 온 거잖아. 어설프다 싶으면 바로 기로 프로듀서의 안목이 영화에선 안 통하네, 어쨌네 하려고.”

“아···!”

스태프가 다시 기자들이 모여있는 쪽을 훑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언뜻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보이는 듯했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뉴욕 시내.

록펠러 센터 바로 앞에 개장한 야외 스케이트 장엔 오늘도 사람이 붐볐다.

크리스마스도, 새해 카운트다운도 지났지만, 거리는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었고.

가게마다 전구들이 반짝였으며, 은은한 캐럴이 흘러나와 거리를 보듬었다.

그러나 고작 한 블록 떨어진 사거리의 상황은 전혀 반대였다.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패션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로 소리를 질러대며 거무튀튀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이들뿐이었다.

“규모가 엄청난데요?”

영화 촬영이 시작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현장에 와 본 건 처음이었다.

배경이 뉴욕이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나름대로 스케줄이 많았지.

어쨌든, 막상 와서 보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돈 없다던 제임스 감독의 말이 엄살로 여겨질 정도의 규모였다.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니까요.”

제임스 감독이 멋쩍게 웃으며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스태프는 또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고.

카메라를 실은 커다란 사다리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임스 감독이 응시하는 모니터에 사다리차 위에서 본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통제되어 텅 빈 사거리가 한눈에 들어오자 제임스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다리차를 멈춰 세웠다.

“멋지네요.”

그리고 신기하다.

스크린 속에서 봤던 그 장면이 지금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뷰에서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

배우들이 어떤 춤을 추고,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꽤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괜스레 가슴 쪽이 뻐근했다.

“완성된 장면은 더 멋질 겁니다.”

알지.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기대하고 있다. 오늘 촬영을.

그리고······.

“오늘이죠? 한국에서 방송팀이 온다고 했던 게.”

그때 옆에서 털북숭이 남자가 다가왔다. 핫팩 하나를 손에 비비면서.

“네, 맞아요.”

“그 사람들, 운이 좋네요. 딱 이런 장면에 맞춰서 오다니. 뭐, 이왕 보게 할 거면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게 좋죠. 한국이 또 요즘 인구대비 티켓 파워가 대단하기로 유명하잖습니까, 하하하!”

“그러게요.”

때마침 거리를 지나다닐 배우들과 가지각색의 차량들이 거리로 들어와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단순히 화면을 채우기 위해 섭외된 게 아닌, 한 명 한 명이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 쉴···.

배우이자, 무용수이자, 가수들.

내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 사람들 참, 운이 좋네요.”

#“저예산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스태프 중 한 명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와 비슷한 표정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 그러게. 거리를 통째로 빌린 거 같은데?”

“미국이 원래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긴 하다고 들었는데······그나저나 지금 대체 카메라가 몇 대야?”

“할리우드 입장에서나 저예산이지. 이 동넨 50억, 100억이 정말 뉘 집 개 이름인데.”

피디가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두 대가 아닌, 촬영용 사다리차들을 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뒤쪽에 붙어있던 기자들도 내심 놀란 눈치들이었다.

“무명 배우 천지인 이유가 있었구만?”

“무슨 장면을 찍으려고 이러는 걸까?”

“총격전?”

“뮤지컬 영화에?”

“총 쏘는 뮤지컬 영화, 신선한데? 흐흐, 진짜면 깔 건 많겠네. 할리우드판 섞어 찌개라는 타이틀로.”

“뭐라는······어? 저기, 장 대표다.”

기자의 시선 끝에 장기로가 걸렸다.

“장 대표님!”

먼저 움직인 건 스타 리포트 피디였다.

그가 서글서글하게 장기로와 통성명을 하는 동안, 기자들도 슬쩍 제작진 쪽에 붙어 다가섰다.

“촬영은 안 되는 거 아시죠?”

“에이, 당연하죠. 할리우드한테 고소당할 일 있나. 근데, 저희는 촬영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이게 오늘 경호 씨 마지막 씬입니다. 1시간 안쪽으로 끝날 거예요. 감독님이 원하는 시간대가 따로 있어서.”

“두 분이 같이 인터뷰해주실 거죠?”

“그럼요.”

마침 해가 서서히 넘어가며 주변 색을 바꿔가고 있었다.

피디가 분주한 촬영장 쪽을 슥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요.”

“저도 오늘 처음 와봤는데, 확실히 왜 할리우드, 할리우드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단역들도 엄청 신경 썼나 봅니다. 각자 동선이 있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예전에 영화감독이 꿈이었습니다, 하하!”

그 사이, 촬영 시작이 임박했는지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장기로를 비롯한 스타 리포트 제작진, 기자들도 모두 한참 뒤로 물러나야 했다.

“앵글에 안 나오겠구만, 유난은······.”

계속 뒤로 가라는 지시에 언짢은 표정을 지은 기자 한 명이 팔짱을 꼈다.

‘어디 어떤 영화인가 보자.’

빌보드 이후로 장기로가 뭘 해도 응원하고 믿어줄 것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그는 상관 하지 않았다.

영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서 가차 없이 깔 생각이었다.

마침 뒤로 이동하다가 바로 옆까지 밀려온 장기로에게 기자가 슬쩍 물었다.

“대표님이 시나리오 보시고 직접 박경호 씨에게 전달했다고 하셨었죠?”

“네, 맞아요.”

주억거린 기자가 다시 촬영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긴장감이 흐르는 촬영장 쪽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툭 묻는다.

“클라이맥스 장면인가 봅니다?”

“네?”

“이 장면이요. 엄청 힘을 준 것 같아서요.”

“아.”

장기로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감독님이 공들인 장면들 중 하나라곤 하시더라고요. 근데 클라이맥스는 아녜요.”

‘이게? 클라이맥스가 아니라고?’

기자의 머리가 비스듬히 기울었고.

이를 본 장기로가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이거, 오프닝이거든요.”

때마침, 제임스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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