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내다보다 (8)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묘한 기대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빌보드에서 이번 주 상위권의 순위를 미리 귀띔해주는 날이기도 했지만, 이번 주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던컨이 한국 최초로 빌보드 1위의 영예를 안을 수 있을까?
언더독의 반란이 이루어질까?
기사 쓰기 딱 좋은 이슈 아닌가.
그리고 그걸 차치하고도 분명 흥미로운 주제였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그럴 리 없다던 기자들이 한 트럭이었는데.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음원 차트 순위와 뜨거운 반응들을 보며 조금씩 입장을 바꾸는 기자들이 늘어났다.
불가능해. 불가능할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가능할 것 같은데?
“정말 가능할 것 같다니까?”
“그럼 아예 기사를 써놔. 결과 나오자마자 띄우면 되게.”
“진짜 그럴까?”
“이왕 쓰는 거 아예 다음 주거까지 써놓고 휴가를 가는 건 어때?”
사무실에 둘러앉아 우스갯소리를 해대는 미국 언론사 기자들에게 부장이 다가섰다.
“너희도 그 얘기냐. 옆에 스포츠 부서랑 정치 부서도 그 얘기로 시끌시끌 하더만.”
기자들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스포츠부와 정치부에서 언제부터 빌보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거긴 왜요?”
“심심풀이지. 허구한 날 잘하는 놈만 잘하는 스포츠랑, 못하는 놈들밖에 없는 정치판이잖냐. 언더독의 등장이 오죽 흥미롭겠냐. 거긴 던컨이 몇 위일까로 내기까지 하더라. 부서 대 부서로.”
그러자 한 기자가 재밌겠다는 듯 슬쩍 운을 띄웠다.
“저희도 해볼까요?”
“에이, 됐어. 뭐 그런 걸 하냐.”
부장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다른 기자도 얼른 거들었다.
“그래도 저희가 명색이 연예부 부선데. 이런 건 참전해줘야죠. 거기 부서들보단 우리가 맞출 확률이 높지 않겠어요?”
“딴 돈으로 비싼 레스토랑 한번 가죠!”
의욕적인 기자들을 보며 부장이 은근히 물었다.
“만약에 하면? 던컨이 몇 위할 것 같은데?”
“다른 부서들은 어디에 걸었는데요?”
“스포츠는 3위, 정치부는 6위.”
“에이, 6위는 너무 짜다. 누가 정치부 아니랄까 봐.”
“그래서 몇 위?”
각자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기자들.
그 사이에서 미리 기사를 쓰네 마네 하던 기자가 부장에게 말했다.
“1위 진짜 가능할 것 같다니까요?”
#-지금껏 이렇게까지 한류가 강하게 불어온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 세계에 K-POP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던컨에 이어 세계적인 재즈 거장과 함께 작업한 은유란, 그리고 다시 던컨까지. 연달아 이어진 열풍을 뒤따라 다른 문화 산업들까지도 함께 커나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기대도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던컨의 싱글 곡 ReMain이 전 세계 37개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함에 따라 빌보드 1위라는 고지가 손끝에 닿았다는 의견이 해외에서도 지배적이며 이에 따른 경제효과는 1조를 훌쩍 넘을 것으로······.
항상 절제된 진행을 하던 연예뉴스 아나운서가 오늘은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빌보드 순위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할 땐 단단히 고정한 앞머리가 몇 가닥 앞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뜨끈한 장판 위에 앉아 귤을 까다가 내가 슬쩍 손을 뻗었다.
“다른 거 보자.”
탁. 리모컨을 엄마에게 뺏겼다. 아버지의 발이 내 손을 막았고.
“저런 거 재미없어.”
“재미없긴. 민망해서 그러는 거면서.”
엄마가 콧방귀를 뀌며 아예 리모컨을 본인 왼편에 멀찍이 내려놓는다.
“네 엄마가 매일 뉴스 보면서 네 얘기 몇 번이나 나오나. 그거 세고 있다. 왜 엄마 낙을 방해하려고 해. 연예인 누구는 자기 기사가 몇 갠지 그거까지 센다는데 넌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그러니까 말이야. 뭐 죄지었어? 지금 분위기만 보면 나라에서 훈장을 받아도 되겠구만.”
타박을 듣는 사이, 뉴스에선 내 이름이 들려왔다.
흐뭇해하는 엄마와 그 모습을 보며 ‘거봐라’라는 표정으로 으쓱거리는 아버지.
멋쩍게 머리만 긁적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캐리어 정리나 해야지.
식탁으로 다가가자 항상 꽂혀있던 봉지 커피는 없고, 웬 허브차들이 종류별로 수두룩하다.
“그거 정아가 줬어. 우리 커피 많이 마신다니까 커피 대신 그거 먹으라고. 향이 참 좋더라.”
고갤 돌리니 묻지도 않았는데 자랑을 늘어놓는다. 피식 웃으며 허브차 하나를 골랐다.
만나면 이것도 고맙다고 다시 한번 말해야겠네.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가지고 내려온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했다. 그렇게 텅 빈 캐리어는 한쪽에 밀어두고 책상에 앉았다.
“······.”
어느새 방안 전체로 퍼진 허브향을 맡으며 의자를 돌려본다.
몇 살 때까지 이 방을 썼더라. 대학교 입학 직전이니까, 오래되긴 했지.
그럼에도 깔끔하다. 아버지 말론 어머니가 틈틈이 쓸고 닦고 하신다고.
빙그르 돌다가 책장이 눈에 툭 걸렸다. 의자를 끌어 앞으로 갔다.
책을 꽂은 지도, 뽑은 지도 오래된 작은 책장. 3할이 음악과 관련된 책이고, 나머지 7할이 음악 노트인.
‘유물이나 마찬가지네.’
끄트머리에 있는 가장 낡은 스프링 노트 한 권을 뽑아 펼쳤다.
첫 장엔 곡의 키(-Key)를 나타내는 5도권이 그려져 있었다. 바로 옆엔 3화음과 4화음들이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고.
다음 장엔 각 코드마다 넣을 수 있는 텐션음들까지 일목요연하게 적어놨다.
‘글씨는 이때부터 요지경이었구나.’
푸스스 웃으며 한 장을 또 넘겼다.
10년은 더 된 노트.
과거로 돌아온 내 눈엔 20년을 훌쩍 넘긴 기억.
그 기억들을 넘긴다.
기억이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로, 꿈이라 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뿌옇게 지나가는 장면들이었다.
‘열심히 했었네······.’
한 장 한 장.
한 권 한 권.
앉은 자리에서 모두 빼내어 훑었다.
신기한 게, 기억은 흐릿해도 내용만큼은 모두 머리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 언제든 내 음악에 꺼내어 쓸 수 있게.
‘음악을 포기했을 땐, 참 부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
#다음날.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붙었다.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빌보드 쪽에서 언론사를 통해 상위권을 발표할 예정이잖나.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지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좋은 결과 있을 거란 응원부터, 1위 하면 한턱내라는 얘기까지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인터넷상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니, 더 하지. 불붙은 정도가 아니라 타오르고 있다.
기사가 올라오는 족족 댓글이 넘쳐났고, 팬들은 SNS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집계는 이미 끝났을 텐데요.”
-관계자들이 보고 있을 테니 압박이라도 주겠다는 의도래요.
주재윤의 말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팬들이 더 전투적이네요.”
-정확한 집계 방법을 안 알려주니 그게 불안한가 봐요. 뭐, 빌보드 측에서 눈치를 보긴 하겠죠. 자칫 잘못하다간 인종차별 같은 오명을 쓸지도 모르니까요.
설명을 이어가던 주재윤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왜인지 알 것 같다. 밖이 시끌시끌하거든.
-가족들 많이 기대하고 계시는가 봐요.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코, 부모님 두 사람만으로 낼 수 없는 사운드가 거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려요?”
-네. 완전 명절 분위기네요.
“하하······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색하게 웃자 주재윤이 덩달아 목소릴 높였다.
-그럴 만도 하죠! 대학만 잘 가도 파티를 하는데, 전 세계 1등 곡을 만들어 내냐 마냐의 기로잖아요, 지금!
“문제는 이미 만들어 낸 것 같은 분위기란 거죠.”
내 말에 주재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자기들도 지금 사무실에 모여서 엄청 기대하고 있다고. 이미 결과가 나온 것처럼 신나 있단다.
‘이러다 결과가 별로면······.’
아니다. 재수 없는 생각 말자.
전화를 마무리 짓고 거실로 나왔다.
칼국수를 옮겨 닮던 엄마가 날 보자마자 물어왔다.
“이번엔 어디서 연락 온 건데?”
“회사. 보도자료 내는 것 때문에 몇 가지 물어본다고 해서.”
“아들이 없으니 회사가 안 돌아가나 보네.”
“전화로 다 되는데 뭘. 아주 잘 돌아가.”
흐뭇함 반, 걱정 반인 얼굴에 내가 멋쩍게 고갤 저었다.
거실에 앉아 회사에 입사해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앨범 재킷이라며 자랑을 하던 친척 동생, 장은혜가 호다닥 다가와 묻는다.
“그래서 빌보드 결과는 대체 언제 나와?”
“확실히는 몰라. 한국 시간으로 점심쯤이라는 것 정도. 매번 달라서.”
내 대답에 작은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걔네는 일을 왜 그런 식으로 한다냐. 딱 정해서 그 시간에만 발표를 해야지.”
“정식 발표가 아니라 미리 보도자료를 뿌리는 거라 그래요. 그래도 이제 슬슬 나올 때 되긴 했을 거예요. 엄마, 그거 나 줘.”
요리를 옮기는 엄마 손을 거들었다. 그동안, 은혜가 인터넷 기사를 보며 라디오 마냥 낭독을 이어갔다. 열렬한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대부분의 시민들이 인터뷰에서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현재 SNS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던컨과 기로 프로듀서의 성공을 기원하는 글들이 쉴새 없이 작성되고 있다. 만약 던컨이 한국 최초로 빌보드 1위를 하게 된다면······.”
“크흐! 기로 이 자식!”
작은아버지가 멋들어진 시구라도 들은 듯, 기사에 심취했다.
아버진 묵묵히 내가 가져다준 요리를 받아 먹기 좋은 위치에 내려놓는다.
그 와중에 언뜻언뜻 비치는 옅은 미소.
민망한 건 둘째치고 그게 꽤나 보기 좋았다.
“형, 아들 하난 기가 막히게 키웠어? 세계 1등이면 올림픽으로는 금메달인 거 아냐, 금메달.”
“거기다 한국 최초잖아!”
“그럼 금메달에, 신기록이네!”
“맞지, 맞지!”
맞긴 뭐가 맞아. 아직 발표도 안 나왔다니까······.
어째 우리 가족보다 저 가족이 더 들떠 있는 것 같다. 같은 게 아니라 기다. 작은어머니까지 합세하더니 이 자리에서 내 응원단 발촉식이라도 할 기세다.
그 모습을 보며 해사한 미소를 짓던 엄마가 김치가 담긴 마지막 접시를 들고 오다가 멈춰섰다.
“자, 밥 먹······.”
목소리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시선은 테이블 위에 박힌 채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은혜만 천천히 고갤 돌려날 보았다.
“오빠, 전화.”
아까, 접시 옮기다가 내려놨었나 보네.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시선들이 딸려 올라온다.
“어···미국이에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먼저 드시고 계세요.”
빠르게 끄덕이는 머리들이 시선에 가득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아까완 달리 숨죽인 듯 조용하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 하나 없이.
결과를 말해주는 전화라고 생각들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다. 이강훈 팀장 이름이 화면에 떠올라 반짝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이강훈 팀장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바쁘세요?
“이 전화를 못 받을 정도로 바쁠 일은 없죠.”
이강훈 팀장이 푸흐흐 웃는다.
김지희와는 달리 톤만으론 결과를 짐작하기 어려운 목소리.
너머에서 얼핏 윤 이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존댓말로 통화 중이다.
아마, 유재완 대표겠지.
후우.
침착했는데. 덤덤했는데.
갑자기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터질 것 같아.
-대표님, 결과요.
“네.”
누가 슬로우 모션이라도 걸었나.
이강훈 팀장은 분명 평소보다 빠르게 말하는데, 나에겐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들린다.
그렇게 늘어지고 늘어지던 엿가락이.
-던컨이 1위랍니다!
어느 순간 뚝 끊겼다.
입이 벌어졌다.
바싹 마른 숨결이 뱉어졌다.
귓가엔 방금 들려온 말이 빙빙 맴돌았다.
모르겠다.
내일도 최고일지. 모레도 최고일지. 다음 주에도 최고일지.
사실 아무도 모르겠지. 예언가가 아니고서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안다.
내 곡이.
던컨이.
전 세계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