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내다보다 (4)
-뮤튜브 오류 난 거 아니야? 이제 열 두 시간 지났는데 벌써 7천만 뷰라고?
-말도 안 돼. 뮤튜브 24시간 신기록이 로만 알레나스의 9500만 아니야?
-맞아, 몇 시간 안에 깨지겠는데?
-장담은 못 하지. 원래 이런 건 12시간 이후론 조회 수가 급격하게 꺾인다고.
-어쨌든, 기로 프로듀서는 또 한 번 대박을 터트리겠네. 후속곡까지 봐야 한다느니 이제 신선도 다 떨어졌다느니 비난하던 사람들 다 숨어버렸나 본데?
-아직 대박까진 아니지. 기껏해야 티저 조회 수라고.
-그러니까. 기껏해야 티저 조회 수인데 지금 뮤튜브 신기록을 갈아치우게 생겼잖아! 이게 어떻게 대박이 아니야?
한나절 동안 7천만 뷰.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방금 뮤튜브 관계자와 통화를 마친 김지희가 동시 접속자가 350만이 넘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또한 역대급 기록이었다.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하나의 브랜드라고 불러도 좋을 특급 팝스타들조차도 하지 못했던 걸 던컨이 해냈다.
반응들도 단연 뜨거웠다. 기록 자체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번 컨셉에 대한 극찬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티저에 잠깐 나온 인트로 사운드 만으로 기대감을 부풀리는 이들도 있었지.
‘다른 건 몰라도 사운드 쪽엔 자신 있지.’
색안경을 벗고 제대로 봐주기만 한다면, 누구든 설득시킬 자신이 있는 곡이 발표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 짧은 인트로로 이렇게까지 뜨거울 정도면, 풀버전이 공개됐을 땐 어떻게 될지 기대되네요.”
윤태영이 툭 던진 말이 스위치라도 눌렀나 보다. 월드 TKM 직원들의 눈에 불빛이 켜졌다. 이글거릴 정도다. 과 전력인데?
“풀버전은 훠얼씬 좋잖아요?”
“그치, 그건 확실하지. 내가 보안만 아니었어도 매일 차에 틀고 다녔을 정도로!”
“제가 봤을 땐, 장 대표님이 여러 장르를 하시지만 단연코 최고는 댄스 음악인 것 같아요. 제가 플로라 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니까요?”
“언제는 프로젝트 던컨이 되겠냐며 차라리 퀀텀보이즈를 해외 진출시키는 게 빠르겠고 누가 그랬더라?”
“하하하, 에이, 던컨 애들 듣겠어요.”
“다섯 블록이나 멀리 있는 애들이 이걸 어떻게 들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한쪽에서 패드를 살피던 김지희가 다른 화두를 던졌다.
“그나저나, 괜히 넘고 싶네요. 로만의 9500만······.”
“이왕 넘길 거면 깔끔하게 1억이 낫죠.”
이에 이강훈 팀장이 웃으며 말했고.
“1억 뷰······!”
그 말이 또 저쪽 스위치를 건드렸는지 다시 스파크가 튀었다.
*우리의 흥분과는 별개로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다.
누군가는 계속 확인하며, 누군가는 애써 멀리하고, 또 누군가는 중간중간 화투장 쪼듯이 확인했을 시간.
정확히 20시간을 넘겼을 때, 던컨이 로만 알레나스의 9500만 뷰 기록을 갈아치웠다.
뚝이 열린 듯, 기사들이 한 차례 더 쏟아졌다.
마치 세계신기록을 앞둔 마라톤 선수를 응원하듯, 1억 뷰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덕분에 화력은 충분했다. 시간이 모자랐을 뿐.
9870만 뷰.
아쉽게도 1억에 조금 못 미치는······.
-피디님 주무셨어요?
“아뇨, 아직······.”
김지희다. 아쉬운 목소리가 넘어올 줄 알았는데, 왜 다급하지?
-이거 뮤튜브에서 내일 아침에 발표될 내용인데, 관계자가 알아두라고 넘겨줘서요.
“뭘요?”
-프리징 때문에 조회수가 늦게 계산됐대요! 지금 조회수는 이미 아까 전에 돌파한 거구요!
“그러면······.”
-1억 돌파했어요!
#“사장님이었죠?”
전화를 끊은 말콤에게 케이트가 물었다.
말콤이 팬 대를 굴리며 끄덕였다. 그의 모니터엔 던컨 티저만으로 쏟아져나온 기사들이 겹겹이 떠올라 있었다.
“사장님 목소리가 들떠있으시네. 소니 뮤직에서도 이 상황을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나 보더라고.”
오차드의 모회사이자, 세계 4대 음반 회사인 소니 뮤직.
그들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건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이례적이고 주목할만하다는 뜻이었다.
“그럴 만도 하죠. 사실 저희 오차드가 글로벌 유통망을 위해 만들어지긴 했어도, 소니뮤직과 뭐가 다른 거냐는 얘기들이 안팍으로 많았잖아요. 어차피 검증된 음악들만 들여오는데 덩치 큰 자회사가 굳이 필요하냐는 얘기도 있었고요.”
“그거에 대한 대답을 이번에 제대로 한 셈이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복권이 터졌으니까.”
그의 말에 케이트가 갑자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은유란이란 뮤지션도 우리가 작업할 걸 그랬어요.”
“떠난 배에 아쉬워해 봐야 뭐하겠어.”
말콤이 안경알을 닦아내며 말했다.
“앞으로 나올 배에 집중해야지. 다음은 어떤 뮤지션을 장 대표가 들고나올지.”
“문제는 이제 우리만 표 뽑고 기다리는 게 아닐 거란 거죠. 이번 던컨까지 제대로 성공한다면 더더욱 그럴 거고요.”
가정을 늘어놓던 케이트가 뭔가 떠올랐는지 흥분하며 말꼬릴 올렸다.
“이러다 던컨, 정말 빌보드 정상까지 노려볼만한 거 아녜요?”
지금까지 그녀의 말에 끄덕이며 동조하던 말콤이 이번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갤 삐딱하게 기울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어렵지 않나 싶은데······. 그 미셸의 피처링을 받은 은유란도 4, 5위를 왔다 갔다 하며 정체 중이잖아. 앞으로 치고 들어올 라인업도 상당하고.”
“역시 쉽지 않네요. 빌보드 정상은.”
“비영어권 해외 뮤지션이 차지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벽이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말콤이 우선 과제를 먼저 내놓았다.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같은 메이저 사이트에서 5위 안으로 들어야 빌보드 상위권 진입도 가능성 있는 얘기가 되겠지. 최대한 많은 음원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점하는 게 먼저야."
#11월 말. 목요일.
드디어 던컨이 후속곡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김지희가 패드를 턱 올려놓았다.
옹기종기 모인 시선들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티저만으로 뮤튜브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던컨, 오늘 신곡 ‘ReMain’ 발표!>
<1억 뷰의 주인공 던컨, 한국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도전한다!>
<빌보드를 흔드는 케이팝,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
<기로 프로듀서와 던컨, 또 한 번 일내나?>
“이게, 지금 한국 반응이고요.”
톡. 톡.
<셀레나도, 케네스도 컴백한다! 팝스타들 내년 봄까지 줄줄이 컴백 예약!>
<빌보드. 매주 바뀌는 1위, 치열한 상위권 싸움>
<미셸이 피처링한 란의 ‘Dusty’ 4, 5위를 전진, 후퇴하며 굳건한 정상권>
<뮤튜브를 점령한 던컨, 과연 지난 8위의 성적도 갈아치울까?>
“요게 미국 반응.”
그녀가 손가락을 톡톡 밀어낼 때마다 반응은 온탕에서 냉탕을 오가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두 나라의 온도 차가 확실했으니까.
“확실히 국내는 활활 타오르네.”
“반면, 여긴 생각보다 미지근하고요.”
미국이 던컨에 대해 회의적인 건 아니었다. 뮤튜브 최초로 24시간 1억 뷰를 돌파했을 때도 수많은 기사들로 도배가 됐었잖나.
다만 원래 미국이란 나라가 이런 곳일 뿐이다. 금세 희석되고 새 술이 담기는.
빌보드 1위가 매주 홱홱 바뀌는 나라.
“뮤튜브가 분명히 화제성의 지표이기도 하고 차트 집계 방식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순위를 좌지우지할 정도라곤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비율이 비공개이니 알 수가 있나.”
“하긴, 24시간 9500만 뷰 나왔던 로만만 해도 그 앨범으로 빌보드 7위쯤에서 그쳤었으니까.”
머리들이 끄덕인다.
아쉬운 표졍들이 말하고 있었다.
그 정도. 7위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고.
“근데 우리가 언제부터 빌보드 상위권을 이렇게 아쉬워하며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직원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지자 나머지의 표정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허허, 그러게. 분명히 몇 달 전만 해도 싱글은커녕 장르별 차트에만 들어도 좋겠다고 노랠 불렀었는데?”
“전 폭삭 망해서 탕아처럼 돌아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었죠.”
“맞아요. 너무 큰 기대 품고서 전전긍긍하는 것보단 맘 편히 기다려보죠.”
“그래야죠. 아 근데 자꾸 기대하게 되네요. 이게 다 장 대표님 때문에 그래요.”
갑자기 나?
눈을 끔뻑이자 내 탓을 한 직원이 씩 웃는다.
“뭐만 하면 싱글차트 상위권에 턱턱 드니까,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건 맞지. 그래서 이젠 상위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게 돼버렸지. 역치값이 너무 높아져 버렸어.”
“그쵸? 기대하는 게 정상이죠?”
직원들이 하나둘 거들자 윤 이사가 책상을 톡톡 쳤다.
“왜 장 대표 부담을 주고 그래. 곡 잘 만들었으니 어련히 잘 될까. 그치?”
그게 더 부담되는데···.
날이 어둑해지고,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가 느지막하게 다시 모였다.
흑맥주가 콸콸콸 흘러 들어가고 있다. 안무가 송수연의 목구멍으로 하이패스 마냥.
“크핫!”
“너무 달리는 거 아녜요?”
“맨정신으로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후우. 몇 시간 남았어요?”
손목을 확인하고 말했다.
“세 시간이요.”
“엇? 그럴 리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요?”
“3분 전에 물어보고 또 물어봐서 그래요.”
“아······그랬나?”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퀀텀보이즈의 참패 때문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나 보다.
“솔라톤 안무가가 더 대중적이다고? 내가 기필코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겠어······.”
누가 저런 댓글을 달았었나 보네. 포부를 중얼거리는데 살인예고처럼 살기가 느껴진다.
통째로 빌린 펍 안이 살기로 가득 차기 전에 월드 TKM 직원들도 하나둘 펍으로 들어섰다.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 그리고 윤태영과 한동휘.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던컨까지도.
던컨은 앉기도 전에 가게 점장이 가져온 종이에 사인을 했다. 좀 잘 보이는 데다가 걸어줬으면 좋겠는데.
“진입이 중요하죠. 음원 사이트 몇 위로 들어가느냐!”
“상위권으로 진입한 음원 사이트냐가 몇 개인지도 중요해요. 결국, 그게 다 판매량이니까.”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서 일주일 동안 라디오까지 점령하면···!”
업무에 바짝 붙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난 벌써부터 저런 이야기에 몰입하긴 싫어서 윤태영, 한동휘와 음악 얘기를 했다. 시간이 빨리 가는 덴 음악 얘기 만한 게 없지.
그 사이, 핸드폰이 수차례 울려댔다.
“어, 학준이 형. 애들? 바꿔줄게.”
“애들아 또 응원 전화 왔어. 유란 누나야.”
“재윤 씨? 어, 다들 같이 있네요? 거기서도 맥주집에 모여있어요?”
아더 레이블의 응원까지 이어지고.
드디어 금요일 자정.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1시에, 던컨의 후속곡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풀버전의 뮤직비디오도 함께.
마지막으로 맥주잔이 부딪혔고, 단숨에 잔을 비운 우리는 직원이 가져온 패드 화면에 초점을 맞췄다.
열기가 훅 올라온다. 시선 끝에 한결같은 숫자들이 도장처럼 쾅쾅 박혔다.
스포티파이 1위
애플뮤직 1위
아마존 뮤직 1위
랩소디 1위
타이달 1위
...총 7개의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건, 미국에서만의 성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