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83화 (183/221)

183. 내다보다 (3)

그래미 어워드.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빌보드가 이름만으로 가슴을 뛰게 했다면, 그래미는 전혀 다른 울림을 주었다.

비록 수상이나 노미네이트가 아닌, 무대에 오르는 것일 뿐이더라도 말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최고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거니까.

“후우······.”

입김이 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내가 공연할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빠질 정도로 떨린다.

내 곡이 그곳에서 울려 퍼질 생각을 하니 더욱 그렇다. 술은 번쩍 깼는데, 머릿속은 만취한 것처럼 빙글빙글 도는 것 같네.

한참을 그렇게 테라스에 서 있자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얼굴까진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유명인들이었다.

“노래 아주 잘 듣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미셸과 함께한 곡은 정말······.”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듣는 건 일가견이 있다는 남배우부터.

“던컨은 같이 안 왔죠? 팬인데! 뮤튜브 브이로그도 잘 챙겨보고 있어요!”

던컨을 좋아해서 제집 강아지 이름을 던컨이라고 개명할까 고민했다는 여배우.

“알렉산더 데이비스 감독님하고도 원래부터 친분이 있으셨던 거예요?”

나를 대단한 수완가처럼 포장하며 인맥에 대해 떠보는 모 레이블 대표까지.

상대방만 흥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다, 춥다는 핑계를 대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

열기는 그새 더 뜨거워져 있었다. 여느 파티가 그렇듯 주최자 알렉산더 데이비스의 간단한 주최사 이후로 본격적인 자선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먹고 마시며 떠들되, 나름의 즐길 거리가 추가된 정도.

지금은 미술품 경매가 한창이다. 이곳에 모인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기부하고, 그걸 이 자리에서 바로 경매에 부치는 형식.

“흐음.”

봐도 잘 모르겠고.

알아도 못 사는 금액들이네.

별세상 같은 현장을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찾고 싶었던 인물들이 있을까, 시선을 계속 굴리며.

그러다 시선이 우뚝 멈췄다. 파티장 구석 쪽, 삼삼오오 모여있는 그룹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세비슨이 있었던 그룹과는 많이 다른 느낌. 그들은 얼굴과 옷에서 광이 난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몄었는데, 지금 저 그룹은 다소 밋밋했다.

나름대로 파티룩 같은 걸 차려입었지만 튀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바쁘게 눈을 움직이며 스타들을 관찰 중인 곱슬머리 남자.

이대로 아무도 못 찾고 파티가 끝나나, 했는데······.

한 명은 찾았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턱 하고 잡았다.

“프로듀서님.”

돌아보니 보이는 입체적인 얼굴. 누군가 했더니 아까 세비슨의 그룹에 있던 그 남자네. 날 굉장히 탐탁지 않게 봤었던.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 날 굉장히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심경에 변화라도 생기셨나?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 테이블에 잠깐 들러 얘기 좀 나누실 수 있을까요? 다들 프로듀서님에 대해 엄청 궁금해하더라고요.”

그가 샴페인 잔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젊은 뮤지션과 배우들이 마침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주 호의적인 얼굴들로.

“지금은 조금 그렇고. 이따가 시간 될 때 가겠습니다.”

“아? 아, 네. 그럼 이따 꼭 오세요!”

시간 되면 간다니까.

시간은 안 될 예정이고.

‘그나저나, 이렇게 태도가 변하나.’

알렉산더 데이비스와의 인사 후에 확연히 달라진 시선들에 여기라고 다를 것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덥수룩한 곱슬머리 남자에게 다가섰다.

“제임스 텔러 감독님 아니세요?”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아직 음악에 대한 꿈이 남아있을 땐 영화를 꽤나 즐겨 봤었다.

드라마처럼 매 편을 챙겨 봐야 한다는 진입장벽도 없었기에 영화는 내게 유용한 간접체험 도구였다.

음악에도 소재라는 게 필요했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봤던 영화 장르를 꼽으라면, 역시 음악 관련 영화나 뮤지컬 영화 쪽이었다.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음악을 하는 주인공에 나를 투영시키기도 하고, 대사 대신 절절한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을 보며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했었지.

지금 와서 왜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느냐.

그건 내 앞에 서 있는 곱슬머리 남자 때문이었다.

제임스 텔러.

이강훈 팀장이 파티장에서 누굴 보고 싶냐고 물었을 때, 떠올렸던 인물 중 한 명이자, 실패한 프로듀서.

그리고.

천재 영화감독.

“네, 제가 제임스 텔러가 맞긴 합니다만······.”

물론 아직은 이른 수식어지만.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임스 감독이 나를 바라봤다. 내 소개를 하려는데, 이번엔 그가 먼저 물어왔다.

“기로 프로듀서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나를 안다는 게. 그리고 얘길 하고 있다는 게.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 노랠 잘 듣고 있다네.

내가 웃으며 답했다.

“저도요. 영화 잘 봤습니다.”

“제 영활요···?”

제임스 감독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꼬릴 올렸다. 마치 자신의 영화를 봤다는 것에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네, ‘어쿠스틱 웨이’요. 아, 영화제에서 입상도 하셨죠?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빈말이 아니란 걸 알려주기 위해 슬쩍 그의 입상 소식까지 끼얹자 그는 더욱 얼떨떨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옆에서 다른 사람과 저기 저 배우 섭외하려면 얼마나 들까 같은 얘길 하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름 없는 영화제에서 상 받은 것까지 기억하시는 걸 보면, 이 친구의 영화를 엄청 감명 깊게 보셨나 봐요?”

“굳이 이름 없는 영화제라고 할 것까지야······.”

제임스 감독이 너털웃음을 짖는다.

내가 끄덕였다.

“네, 감명 깊게 봤죠. 꼭 제 이야기 같아서요.”

그러자 제임스 감독의 얼굴이 요상해졌다. 그거 농담이죠? 하는 표정이랄까.

“그럴 리가요. 제 영화의 주인공은 서른이 넘도록 앨범 하나 제대로 못 낸 녀석이었는 걸요. 그에 비해 프로듀서님은 앨범도 많이 내신 데다가 이미 엄청난 유명인이시죠.”

곧 나보다 더 유명해질 양반이 저렇게 말하니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감이 가던데요?”

“뭔가, 정말 기분 좋은 얘기네요. 성공한 프로듀서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그 영화, 제 자서전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결말만 빼고.”

어쿠스틱 웨이의 주인공은 끝까지 음악을 한다. 하지만 제임스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기타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잡았지.

자연스럽게 대화는 무르익었을 때쯤, 내가 슬쩍 물었다.

“다음 영화 계획은 있으세요?”

“아, 그게······.”

망설이는 제임스 감독 대신,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계획이야 있었죠. 나름 입봉작 평가도 상까지 받을 정도로 좋았겠다. 투자자들도 흔쾌히 미팅을 잡았었는데, 반응은 영······.”

“왜요?”

“이런 경우 대게 시나리오가 문제죠. 내용이 실망스럽거나, 주제가 별로 거나, 아니면 장르가 문제거나. 이 친구의 경우엔 장르가 문제였어요.”

시선을 돌렸다.

제임스 감독이 씁쓰름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장르가 혹시, 뮤지컬인가요?”

주변인들이 화들짝 놀랐다.

물론 제임스 감독 본인도.

#투자란 걸 해본 적은 없지만, 해야만 한다면 제임스 텔러. 그의 영화에 할 것 같다.

그는 이번에 ‘송 맨’이란 뮤지컬 영화로 초대박을 터트릴 테니까.

400만 달러가 넘지 않는 저예산 영화로 웬만한 상업영화만큼이나 벌어들인 거로 기억한다.

특히 국내에서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음악 영화는 한국에서 반드시 흥행한다는 인식을 만들어낸 영화이기도 했지.

그럼 난 그 정보를 알고도 가만히 있을 거냐. 당연히 아니지. 나도 투자를 해볼까 한다. 돈이 아닌, 사람으로.

*마음이 편했다. 그래미 무대라는 뜻밖의 큰 선물도 받았고, 미리 리스트업 해둔 영화감독 중 한 명을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으니까.

파티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뒤풀이로 넘어갔다.

미셸은 늙은이는 이만 잘 시간이라며 먼저 빠졌고,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세비슨은 오히려 끝까지 남았다.

중간에 온 론 스미스가 같은 월드덕인 그녀를 보고 꽤나 놀라 했지.

마침내 레드리시까지 합류하며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앤과 그래미 무대에 서게 될 거라는 소식까지 알리니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

파티보다 훨씬 더 파티 같은 흥겨운 분위기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늦은 새벽, 아니 이른 새벽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동이 터버릴 것 같은 어스름한 하늘에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털썩. 곧바로 의자에 앉았다. 보조 스툴에 다리까지 올리고 주머니에 불편한 것들을 꺼내 탁자에 깔았다. 핸드폰과 두툼하게 쌓인 명함들.

‘많이도 받았네.’

대부분 상대방이 먼저 건넨 명함들이었다.

모 레이블, 모 잡지사, 모 프로듀서, 모 제작자.

그 사이로 내가 유일하게 먼저 달라고 한 명함도 보였다.

슬레이트 모양으로 디자인된, 제임스 텔러 감독의 명함.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한국은 점심쯤이겠네.

바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네, 피디님.

동굴에 있는 듯한 묵직한 중저음의 보이스.

오랜만에 듣는 박경호의 목소리였다.

매니저가 받을 줄 알았는데?

“촬영 중 아녜요?”

-밥차가 와서요.

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박경호와 이전 작품도 함께 했던, 곽 감독. 그가 끼니 챙기는 걸 엄청나게 중요시한다는 얘긴 방송국에서 유명했다.

예전에 하서윤이 박경호에게 고맙다고(-여전히 뭐가 고마웠었는진 모르지만) 밥차를 보냈을 때도 밥 먹고 하자며 촬영이 중단되었었다지.

“든든하게 챙겨 먹어요.”

-다음 씬이 노래 부르는 장면이라 전 통에 담아뒀다가 다 끝나고 먹으려고요.

“아, 하필이면······.”

맡은 배역이 가수라 극 중에서 노래도 해야 했다.

도시락통에 맛있는 음식을 잔뜩 쌓아두면 그걸 위해서라도 NG 없이 한 번에 찍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릴 주고받다가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촬영은 어때요?”

-재밌어요. 연기도, 노래도.

“경호 씨한테 딱 맞는 배역이네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멋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박경호.

“시간 될 때 레이블 들려서, 노래 한 곡 녹음해서 보내줄래요?”

-녹음이요? 어떤 곡으로요?

“그건 제가 생각 좀 해보고, 메시지 넣어줄게요.”

알겠다는 박경호에게 꼭 NG 없이 한 번에 끝내란 응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명함으로 시선이 내려간다.

반면, 입꼬리는 올라갔다.

문득 언젠가 했던 생각이 떠올라서.

언젠가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는 박경호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게 너무 먼 미래일 것 같진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정말 가까워진 것 같네.’

노트북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피곤함에 찌든 머리가 맑아지고, 감기던 눈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지금 자긴 글렀지.

‘뮤지컬이라······.’

어떤 뮤지컬 노래가 제임스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방향을 바꿨다. 전제가 틀렸지. 항상 하던 대로 가자. 멜로디처럼.

‘어떤 뮤지컬 곡이 박경호와 가장 잘 어울릴까?’

#11월 20일.

최정아가 한국에 첫눈이 왔다며 동영상을 보내온 날.

강원도에선 이미 지지난달에 첫눈이 내렸다는, 기상청 직원 같은 대답을 했다가 혼난 날.

던컨의 깜짝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오차드도, 월드 TKM도, 그리고 우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저 영상의 반응이 곧, 던컨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

뮤튜브에 올라간 티저 영상을 몇 명이나 보느냐, 가 화두였다.

‘곡에 대한 자신은 있지.’

멜로디가 들린 곡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멜로디를 활용하는 쪽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나왔을 때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딸깍. 딸깍. 딸깍.

끊임없이 조회수를 새로고침하는 직원이 있었기에 따로 뮤튜브를 들어가진 않았다.

그렇게 각자의 일을 하는 듯,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티저가 올라간 지 한나절이 지났다.

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가 멎었다.

퇴근은커녕 가방조차 싸지 않은 직원들이 침을 꿀떡 삼킨다.

“사람들, 얼마나 봤어요?”

김지희의 물음에 새로고침 담당(?)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칠······.”

십만 뷰는 너무 적소. 백만 뷰 쯤 합시다.

“···천만 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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