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82화 (182/221)

182. 내다보다 (2)

“괜찮겠어요?”

미셸이 내게 묻길래 케이터링 하나를 집어 들려다 말았다.

“미아가 되면 방송으로 연락할게요.”

애도 아니고.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미셸이 피식 웃었다.

“이왕이면 또래 친구를 사귀어봐요. 그게 파티의 묘미 아니겠어요?”

넓은 소매를 펄럭이며 미셸이 쿨하게 돌아서 현란한 조명 사이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그제야 다시 케이터링을 집었다.

무화과를 얹은 카나페. 우물거리며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 중,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이가 있는지.

어둡다. 클럽처럼 상대방을 제대로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데, 조도가 꽤나 낮아 멀리 있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데는 집중이 필요했다.

‘어디 보자······.’

미래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쭉 시선을 돌리는데 마주치는 눈들이 적지 않다.

홱 돌려버리는가 하면, 빤히 보기도 하고, 내가 지나쳤어도 볼을 꿰뚫을 듯 주시하기도 한다.

내가 들어온 이후로 누군가는 신기해하며, 누군가는 흥미로워하며, 또 누군가는 탐탁지 않다는 속마음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도 이렇게 다양한 시선은 못 느껴 봤겠네.’

아무래도 미셸의 말처럼 또래 친구 사귀긴 그른 듯싶다.

그래도 방금 샴페인 한 잔을 털어 넣어서 그런가, 꽤나 뻔뻔한 낯으로 구석구석 살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곳에서 잠시 시선이 멈췄다.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모여있는 그룹.

입꼬리에 테이프라도 붙였는지 한결같은 미소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보였다. 나잇대가 젊은 그룹이었다. 면면들을 살피니 절반 정도는 아는 얼굴들이었다. 물론 뉴스나 기사, 영화 혹은 음악으로.

뮤지션, 배우, 아티스트. 다양한 직업군에서 무섭게 떠오른 신예들.

그들을 보며 은유란도 함께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중 한 명과 진하게 눈이 마주쳤다.

내가 찾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눈을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밀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월드덕 덕분에 이름만큼은 계속 들었지.'

금방이라도 주르륵 흐를 듯한 에메랄드 눈동자가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뮤지션.

세비슨 너플러였다.

#화려한 공간 안에 고급스러운 샴페인과 와인. 그리고 시상식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타 분야의 급 있는 예술인들.

파티라는 단어가 뒤에 붙었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여기가 사교의 장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은근히 그룹이 만들어질 수밖에.

나잇대도 분명 영향이 있겠지만, 그룹을 가르는 기준은 분명히 ‘급’이었다.

누군가 정해준 것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나눠 모인 사람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 내에서도 서열은 명확했다.

자신들보다 잘 나가는 스타 한 명을 구심점으로 모이게 되는 거다.

정작 본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아요?”

“······.”

“세비슨?”

“···아, 뭐라고 하셨죠?”

세비슨 너플러가 자석에라도 붙은 것 같던 시선을 떼어냈다.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질문을 던진 남자 배우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다시 얘기했다.

“저 기로라는 친구 말입니다. 다들 그저 신기해서 쳐다보는 건데, 괜히 우쭐한 것처럼 보여서요. 신선함과 마케팅 덕분에 반짝 유명해진 것뿐인데, 그게 참 웃기지 않나요?”

주변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하고.

이 연극 같은 상황에 세비슨은 처음으로 옆에 있는 남자 뮤지션에게 집중했다.

시종일관 무료해 보였던 표정을 다시 지으며.

“누가 우쭐해 있다는 건가요?”

“저 기로라는······.”

“글쎄요. 전 딱히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오히려······.”

그녀의 시선이 남자 뮤지션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훑었다.

예상하지 못 했던 반응에 남자 뮤지션은 제대로 당황했다.

‘아니꼽게 보고 있던 게 아니었나···?’

월드덕과 기로 프로듀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이용해 세비슨과 친해져 보려고 했는데, 어째 역효과가 나버린 것 같았다.

남자 뮤지션이 벌게져가는 얼굴을 진정시키는 사이, 세비슨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원래 붙어있던 곳으로.

그리고 툭 던지듯 물었다.

“저분 곡 한 번도 안 들어봤죠?”

“들어는 봤는데······.”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세비슨이 고개를 저었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황금빛 머리칼이 찰랑거린다.

“그럼 더 심각하네.”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빈 잔을 서버에게 올렸다. 그리고 새 잔을 들고서 걸음을 옮긴다. 더 이상 여기 있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갈게요.”

“네, 네? 어딜···?”

그녀의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뮤지션, 배우, 아티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지만, 이미 길쭉한 그녀의 다리는 확실한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고 있었다.

하얀 정장을 입고서 홀로 부지런히 두리번거리고 있는······.

“저 아시죠?”

“알긴······알죠?”

#뱉고 보니 너무 어리바리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누가 이렇게 말 걸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 한데다가, 그게 세비슨일 거라곤 더더욱 예상 못 해서.

“어디까지 아시는데요?”

이건 또 무슨 질문이지?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샴페인을 천천히 돌리며 그녀가 다시 물어왔다.

“제가 프로듀서님 곡을 원했다는 것도 알고 계세요?”

그 얘기였구나.

순간, 곡 안 줬다고 여기서 성질을 부리려나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솔직히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새하얀 얼굴 안에서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다행히 성난 표정은 아니었다.

“뭔가 부족했나요? 같이 작업하기에?”

진지한 얼굴로 묻는 세비슨. 따지는 느낌이라기보단 정말 궁금한 말투였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제 뮤지션들의 작업이 우선이었을 뿐이었죠.”

“근데 저희 회사가 협박을 했고요?”

“정확히는 채드 이사님이 그러셨죠.”

세비슨이 끄덕였다. 옅게 웃으며.

그러더니 불쑥 네게 사과를 해왔다.

“죄송해요.”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회사 일 때문이라면, 세비슨 씨가 사과할 건 아닌 듯한데요.”

“제 책임도 어느 정도 있을 거예요. 계속 요구했거든요. 프로듀서님 곡 받고 싶다고. 아마 그래서 채드 이사가 더 집요했을 거고요.”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계속 아니라고 하기도 뭐해서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피해 괜히 리필 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는데,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듀서님의 뮤지션들이 부럽네요. 지금 당장 계약을 깨고 프로듀서님 레이블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요.”

그러면서 씩 웃기까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녀가 풍기는 은은한 매력 때문이라기보단, 내 레이블에 오고 싶다는 말이 머릿속에 틀어박혀서.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 없는 얘기지만······듣기엔 더 없이 좋은 소리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 사이, 분위기가 제법 편해졌다.

처음과는 달리 꽤 템포가 빠른 음악들이 흘러나오니,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함이 없었다.

'대신 샴페인은 계속 홀짝였지.'

훅 올라오는 술기운에 그만 마셔야겠다 다짐할 무렵, 내 어깨에 크고 두꺼운 손이 턱 얹어졌다.

“혹시나 못 어울리고 있을까 봐 찾았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슬쩍 고갤 돌리니 주황빛 수염이 너풀거린다. 앤 더글라스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브랜도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었다.

“거짓말이야. 우리 둘이 방금 와서 뻘쭘하게 서 있다가 자넬 찾은 거거든. 이런 파티는 우리도 익숙지 않아서.”

그건 좀 의왼데?

페스티벌의 제왕과 그의 매니저이자 회사 대표가 이런 파티에 익숙지 않다니.

그런 내 표정을 읽은 브랜이 앤 더글라스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 친구가 싫어해.”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유를 맞춰봤다.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라서?”

앤의 솥뚜껑만 한 손이 짝, 하고 손뼉을 친다.

“정확해!”

참 그다운 이유네.

“근데 오늘은 왜 왔어요?”

“부른 사람이 있어.”

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카나페 두 개를 샌드위치처럼 겹쳐 입안에 넣었다.

부른 사람?

갸웃거리며 브랜을 봤는데, 그는 어느새 세비슨과 인사를 나누고 명함까지 건네고 있었다. 영업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다시 앤을 돌아보며 누가 불렀는지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앤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동시에 저마다의 영역에서 각자의 대화 주제를 가지고 떠들던 이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웅성거린다. 넓은 파티장에 파도가 밀려오듯.

‘누구지?’

사람들 사이를 5, 60대쯤 되어 보이는 두 남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주변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한 명은 이젠 너무나 익숙한 미셸이었다.

다른 한 명은 백발이 무성한 중년의 남자.

어디서 봤을까 싶어 빤히 봤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때 앤의 혼잣말이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주인공이 오셨군.”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저 중년 남자가 이 파티의 주최자라는 걸.

모두가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까 내가 들어섰을 때와는 많이 다른 시선들이었다.

존경, 동경, 존중 같은 게 느껴진달까.

세비슨이 있던 그룹에서 방금 전까지도 줄곧 날 탐탁지 않게 노려보던 남자조차도.

어느새 순한 양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세비슨이 다가와 작게 말하는데, 숨결이 바로 옆에 닿을 듯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처럼, 중년 남자가 미셸과 함께 우리 앞으로 다가섰다. 정확히는.

“반갑습니다. 기로.”

내 앞으로.

시선이 아까보다 곱절은 더 따갑게 꽂히기 시작한다.

#이 자선 파티의 주최자.

알렉산더 데이비스.

일면식도 없는 그가 내게 손을 건넸다.

‘미셸이 소개시켜 준다던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

미셸의 말투로부터 꽤 대단한 사람을 소개받겠구나, 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알렉산더라니···!’

손을 맞잡으며 복잡해진 머리를 추슬렀다. 심장은 아까 세비슨의 러브콜을 받았을 때보다 더 벌컥거렸다.

얼굴도 몰랐던 사람이지만, 이름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잖나.

이 양반은······.

“앤도 여깄었네?”

“보통은 덩치 때문에 제가 먼저 보일 텐데, 어지간히 기로와 알은 체 하고 싶었나 봅니다?”

앤의 호탕한 웃음에 알렉산더가 날 보며 클클 거렸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 너무 반가워서 말이지.”

그러면서 그가 덧붙였다.

“마침 같이 있으니 얘기하기 더 좋겠군요.”

나와 앤, 그리고 브랜을 쭉 훑은 그가 옅게 웃으며 갑자기 이름들을 읊었다.

“앤과 레드리시. 그리고, 미셸과 유란.”

마치 팀을 짜듯 네 사람을 두 팀으로 나눈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이렇게 내년 초에 무대 위로 올리고 싶네요.”

내년 초? 무대? 설마······.

내가 벌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동안, 브랜이 먼저 물었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 무대’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이에 알렉산더가 끄덕인다. 당연히 그것밖에 더 있냐는 듯이.

“맞네.”

와······.

진정하긴 글렀지.

심장이 더 요란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왜냐면, 이 양반······.

그래미 어워드 총괄 프로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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