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80화 (180/221)

180. 거장을 가르친 신예 (3)

대박이다.

그냥 흔히 조금만 놀라도 튀어나오는 그런 헤픈 감탄사 같은 거 말고.

지하 암반수처럼 아래쪽 깊숙이에서 끓어오르는 진심 어린 초대박.

야후나 MSN 등 미국 최대 포털사이트에서 기사가 끊이질 않는다. 검색 엔진 사이트들에선 원래 있었던 던컨을 포함하여 곡의 주인, 은유란, 미셸 등이 검색어 순위 최상단에 주르륵 박혔다.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내려올 기미도 안 보인다지.’

규모가 작은 더블타임은 일반 전화로 걸면 통화가 불가능한 지경이었고, 월드 TKM도 덩달아 전화벨이 서라운드로 울려댔다.

은유란은 밤새 ‘네가 우리한테 어떻게 그걸 얘기 안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백 번도 넘게 들었다고.

이 모든 게 기사가 터진 후,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다?

아니지. 이건 단추가 아니라 지퍼라 불러야 할 거다.

이제 드르륵 위로 올려 착, 하고 채우기만 하면 되는.

이제야 재즈의 본고장에서 은유란의 재즈가 제대로 인정받으리란 생각에 가만히 있어도 미소가 번지고, 기분이 좋다.

아, 여기 분위기만 빼고.

“어이구, 이거 분위기가.”

월드 TKM 윤 이사가 조짐이 보이는 얇은 머리를 긁적이며 멈칫했다.

그러나 이미 문은 활짝 열었고, 한 발은 사무실에 딛고 있으며, 직원들의 눈초리가 모두 자신을 향해있기에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느릿느릿 걸어온 그가 내 옆으로 슬쩍 붙어섰다.

“흠흠, 아주 장 대표는 기분이 좋아 보여?”

“좋은 날이잖아요. 미국 전체가 유란 씨로 떠들썩한데.”

“그니까. 근데, 우리 직원들은 왜들 그리······.”

눈치를 보며 데구르 굴러가던 윤 이사의 눈이 직원들의 힘찬 눈초리를 맞았다.

“혼자 아시니까 좋으셨어요?”

“크흠, 그게 다 보안 때문에······.”

“저희가 대박이라면서 대체 누굴 피처링 했을지 궁금해할 때, 남 일 신경 쓰지 말고 던컨 문제나 수습할 궁리 하라며 역정을 내시더니?”

음, 저건 서운 할만하지.

“장 대표, 날 왜 그렇게 봅니까? 최대한 숨겨달라고 한 건 장 대표잖아?”

“그랬죠.”

“봐봐!”

“근데 직원들한테 화를 내신 건 좀······.”

공범으로 몰릴 것 같아, 서둘러 사상검증을 했다. 부리부리한 눈들이 나를 향하다 다시 좌회전한다. 휴.

“장 대표, 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한껏 억울해하는 윤 이사를 보며 나는 한가로이 커피나 홀짝였다.

향 좋네. 평소엔 일하기 위해 먹는 카페인 즙 정도였다면 오늘은 비로소 제대로 커피를 즐기는 느낌이다.

여전히 내게 원망하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윤 이사를 착한 김지희가 도왔다.

“근데 저희도 며칠 전까진 몰랐어요. 롭 테일러인지 그 코주부 같은 놈이 연달아 똥글 싸질러댔을 때, 그때쯤 알았다니까요?”

말은 저래도 아무튼, 착하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와중에 직원 중 누군가 의아한 목소릴 냈다.

“근데, 더블타임하고 예산 때문에 계속 얘기가 오갔잖아요? 담당자도 몰랐나?”

“어, 그러네? 담당자 누구였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더블타임과 예산과 홍보 문제로 계속 얘길 해왔던 담당자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정성스레 타온 홍차를 애지중지 자신의 자리로 가져갔다. 그의 꽁무니를 직원들의 살벌한 눈빛이 따랐다.

“그러고 보니 윤 이사님이 화냈을 때, 동조하면서 일이나 하자고 사바사바하던···!”

“네? 갑자기 무슨······.”

“맞네, 그랬지!”

공범이 잡혔다.

그리고 그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미셸이었다.

*-성공적이네요.

제 일인 것처럼 흐뭇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피처링을 했으니 어느 정도 미셸 본인의 일이긴 하지.

아무튼, 좋은 말과 함께 곁들어지는 미셸의 목소리는 더욱 듣기 좋았다.

“덕분에요.”

진심을 한가득 우려낸 말이 나왔다.

은유란은 미셸에게 선택받았지.

덕분에 미셸이란 거장을 좋아하던 모든 대중들이 궁금해하고, 또 기대하고 있다. 은유란에 대해서.

-방금 유란 씨와도 통화했었는데, 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유란 누나는 본인 실력에 비해 너무 자신이 없어 걱정이죠. 무대 위에서의 반만큼만 대차도 좋을 텐데.”

그걸 깨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그게 변할지 의문이다. 그 완벽한 완성본을 듣고도 부담을 느낀다니 말 다 했지.

-성향인 거죠. 억지로 바꿔줄 필욘 없어요. 결국, 그런 성향들이 모여 지금의 그녀를 만든 거니까.

일리 있는 얘기였다. 미셸의 말에 동조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방금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복귀를 선언한 이후로 일주일에 최소 일곱 번은 인터뷰가 잡히는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좀 특별했는지 미셸이 내게 인터뷰 내용을 언급했다.

-CNN 연예부 기자와의 인터뷰였어요. 그리고 그가 피처링 곡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지 않는 첫 기자였죠.

어제, 주인이 공개되어 버렸으니까.

“그랬겠네요.”

-매번 똑같던 질문이 바뀌니 저도 신나더라고요.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말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러다 문득 이상하더군요. 내 인터뷰인데 유란 씨 칭찬만 늘어놓고 있었던 거죠! 근데 더 웃긴 건, 기자도 그쪽이 더 궁금했나 봐요. 아무 소리도 않고 열심히 듣더라고요.

“저희 홍보대사로 임명해드릴까요?”

-그래 줄래요? 당분간은 계속 유란 씨 칭찬만 하고 다닐 것 같은데.

이 상황을 즐기는 듯 기분 좋게 웃은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유란 씨의 목소리엔 그런 힘이 있어요. 오히려 내가 신나서 자랑하게 하는.

알리고 싶은 목소리라는 점에선 매우 동감하지. 나도 그랬으니까.

맞장구를 치다가 화두가 식을 때쯤, 내가 물었다.

“찾으시던 뉴 재즈는, 찾으셨나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던 미셸이 이내 나지막하게 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늘어나는 주름만큼이나 겁도 많아지고 있었는데, 이젠 좀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달까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도 안 되겠어요?

“곡 말씀하시는 거죠?”

-그거 말고 더 있겠나요? 자꾸 시치미 떼면 저도 못된 거위가 되는 수가 있어요.

월드덕을 겨냥한 농담에 내가 으쓱거렸다.

“살아있는 전설의 거위가 되셔도 지금은 어려울 것 같네요. 할 일이 산더미라.”

-어쩔 수 없죠. 얼른 지금 회사와 계약이 끝나 잘리길 바라는 수밖에.

진심이 섞인 듯한 농담에 내가 푸스스 웃었다.

“제 곡이 미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곡이 미셸에게 업혀 가는 느낌일 것 같은데요?”

-유란 씨한테 자신감 어쩌구 하시더니 대표나 소속 가수나 똑같네요. 아닌가, 대표님의 경우엔 지향하는 목표가 너무 높은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니라며 둘러댔지만, 그녀는 혀를 찰 뿐이었다.

그 뒤로도 10여 분을 더 통화했다. 앞으로 그녀의 계획을 엿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농담도 나누면서.

그러다 그녀가 내게 툭 던지듯 말했다.

-아 참, 조만간 LA로 한 번 와줘요. 소개해 줄 만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소개해 줄 만한 사람들?

내가 의아해하자 그녀가 터무니없는 설명을 했다.

-음악계의 비밀조직 같은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그렇담 아쉬운데요?”

-후후, 막상 보면 아쉽지 않을걸요?

곧 연락 주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미셸과의 통화를 마쳤다.

대체, 누굴 소개해 주겠다는 걸까?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지만, 상상력 부족으로 이내 그만뒀다. 대신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어 뒤적거렸다.

내가 찾고자 했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메인에 떡하니 걸려있는, 미셸이 오늘 했다던 인터뷰.

근데······

‘헤드라인이 왜 이래?’

<살아있는 전설 미셸, 그리고 거장을 가르친 신예>

#연일 은유란에 대한 이슈는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그럴 만도 하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 겨울만 되면 모든 캐롤 곡들이 그녀의 버전으로 흘러나오는 미셸. 그녀가 은유란이란 뮤지션에게 ‘배웠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극찬을 했으니까.

여파는 그녀의 곡이 공개되는 날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빌보드의 집계 기간을 노리고 잡은 금요일 자정.

각종 음원사이트에 그녀의 곡이 올라갔다.

-참고로 난 솔직히 미셸도 잘 몰랐음. 내가 아는 재즈는 크리스마스 캐롤 정도?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었음. 처음 들은 느낌? 뭐랄까······나, 아무래도 전생에 재즈를 사랑했나 봐!

-난 나이가 많아. 너희들이 알면 꽤나 놀라겠지. 할아버지가 인터넷을 하네! 하면서 말이야. 그럼에도 손녀에게 부탁해서 이 글을 써. 미셸, 다시 노랠 불러줘서 고마워. 그리고 란(-발음이 어려워 미국인들이 애칭처럼 부르기 시작한 이름), 이런 노랠 들려줘서 고마워.

-위의 두 리뷰가 이 노래가 가진 힘을 말해주는 듯. 듣다 보면 현대스러운 담백함과 과거의 끈적함이 동시에 들잖아. 말 그대로 더블 타임 스윙(double time swing)이야!

-더 신기한 건 후반부야. 란과 미셸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는 부분! 그때부턴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았다니까!

-나도 그 부분에서 소름 돋았어. 대체 누가 작곡했는지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던컨의 프로듀서더라고. 일렉트로닉 댄스에서 재즈? 이 사람, 대체 뭐지?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그에 대한 후기들도 폭발적이었다.

그 상태로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모두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말로만 결과는 나와봐야 안다며 애써 기대 않는 척을 하지만, 빌보드 집계가 마무리되고 그 결과가 우리 앞에 던져졌을 때.

모두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는 장르별 차트도 아닌, 무려 싱글차트에서.

그것도 최상단에서 은유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14위.

진입 순위로 따지면 한국 최초였다.

*“스타트가 이 정도면, 5위 안쪽도 노려볼 수 있겠던데요?”

오차드 레코드. 오랜만에 말콤과 함께 나타난 파트장, 케이트가 덕담을 건네왔다. 듣기만 해도 울대가 꿀렁일 정도로 벅찬 덕담이다.

던컨이 10위를 돌파했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느낌.

“축하합니다. 사실 저희도 더블타임하고 작업한단 소식을 듣고 반신반의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2연타석 홈런을 터트리셨네요.”

“감사합니다.”

말콤의 축하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대로 진하게 웃었다.

“이제 우린 던컨 얘길 좀 더 해봐야겠죠?”

“그래야죠.”

아쉽게도 던컨은 끝내 8위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10위권 밖으로 천천히 내려갔지.

이게 음원 차트의 속성이란 걸 알기에 우린 꽤나 덤덤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 보다, 아니 그걸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잘 했고, 욕심이 나는 만큼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아니, 이번인가?

“저번에 말씀드린 후속곡 말입니다. 발표일은 언제쯤이 좋겠습니까?”

신중하게 묻는 말콤을 보며 내가 되물었다.

“빠를수록 좋겠죠?”

“당연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혹시 12월 중순쯤에 가능할지······.”

“11월로 하시죠.”

“11월이요······네? 지금, 11월이라고 하신 겁니까?”

말콤의 얼굴이 벙벙해졌다. 옆에 있던 케이트도 고개를 홱 들어 올려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고.

“그럼, 이번 달인데요?”

내가 여유롭게 끄덕였다.

“널널할 겁니다.”

던컨에게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윤태영과 작업을 해왔거든.

그들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곡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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