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78화 (178/221)

178. 거장을 가르친 신예 (1)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네.”

출장에서 막 도착한 윤 이사가 두툼한 턱을 긁적이며 혀를 찼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자나 깨나 던컨 걱정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던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이 가장 분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채드 이사라는 사람도 참 할 짓 없네요. 제안 좀 거절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지금 던컨의 위치가 딱 때리기 좋아 보였을 겁니다. 던컨만 건들면 장 대표님은 물론 이고, 유통과 홍보를 돕는 오차드까지 줄줄이 타격을 받으니까요. 도미노처럼요.”

이강훈 팀장의 말에 김지희가 무섭다며 혀를 내두르는 동안, 윤 이사가 냉수를 들이켜고 내게 물어왔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 오차드는 어떻게 할 거라던가?”

“뮤즈하이 쪽에서 곧 의혹 기사가 나갈 거라고 합니다. 그때 맞춰서 오차드에서도 언론 플레이를 시작할 것 같고요.”

그러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넓은 오차드와 가장 돈이 많은 월드덕 레코드의 팽팽한 싸움이 시작되겠지.

“그럼 저흰 이제 뭘 해야 하죠?”

김지희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싸움은 덩치 큰 분들끼리 하게 하고, 우린 원래의 계획대로 가야죠.”

의혹이 터지면 가장 큰 수혜자는 던컨이 될 테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계획대로라면, 던컨 후속곡 말이죠?”

“시끌시끌하긴 하겠지만, 오히려 던컨에겐 기회네요.”

“굳히기 들어가는 거군.”

한마디씩 하는 세 사람을 보며 내가 끄덕였다.

평론가들이 분탕치던 여론도 괜찮아졌겠다, 후속곡을 든든히 지원해줄 멜로디까지 들렸겠다.

프로젝트 던컨의 완벽한 성공이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져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스터링까지 끝난 완성본 들어봤어요. 너무 잘 뽑혔던데요? 목소리 질감까지 살아있어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감탄을 연발했다.

귓가가 지금도 촉촉하다. 노래는 이미 끝났는데, 은유란과 미셸의 목소리가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달팽이 관이 비옥한 호사를 누리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미셸 선배님이야 원래 넘사벽이지만, 내가 이렇게 잘 불렀었나 싶을 정도로 믹싱을 잘 해줘서······.

“그건 아니죠. 애초에 누나가 그렇게 잘 불렀던 거예요. 오히려 그때랑 똑같이 현장감 있게 믹싱이 되어서 좋은걸요.”

-흐, 그런가요?

“그러니까 자신감 챙기시라고요. 옆에 지은 씨 보고 좀 배워요. 아니다, 또 다른 것까지 배울라.”

은유란이 한참을 끅끅대며 웃다가 말했다.

-저 다시 뮤비 촬영 들어가야 해서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아, 네. 뮤비 촬영 잘 해요.”

그러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다른 목소리가 넘겨받았다.

-와.

딱딱한 목소리가 전혀 감탄스럽지 않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

한 번 더.

“왜요.”

내가 푸스스 웃으며 묻자, 유지은이 여전히 국어책 읽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응원받고 싶다.

“항상 응원하잖아요.”

-나도 칭찬받고 싶다.

“그것도 하잖아요.”

-나도 사랑받고 싶다.

“······.”

-칫, 안 넘어오네.

아쉬운 말투가 넘어오길래 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여전하네.’

빌보드 앨범차트에 20주째 들어가 있고, 페스티벌에서도 헤드라이너 바로 아래까지 치고 올라왔을 정도로 대단해진 그녀지만 한결같다. 한결같이 정상이 아냐.

-아 참, 태영 오빠 부르셨다면서요?

유지은의 말에 내 시선이 복도 끝, 문 쪽으로 향했다.

“네, 형 방금 도착했어요.”

-벌써요?

“바로 비행기 표 끊고 왔더라고요.”

-하긴, 곡 작업만 있으면 어디든 바로 갈 사람이니까. 특히 피디님 곡이면 더더욱.

“푸흐, 지금 녹음실에 있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 오빠가 오늘 도착했다고 호텔 방에 쉬고 있을 리가 없죠. 피디님도 음악 짝궁이 왔으니 얼른 들어가서 작업 하시고 싶으실 거고요?

음악 짝궁은 또 뭐람.

낮게 웃자 유지은이 삐죽거렸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아주.

뾰로통한 목소리로 투덜대는 유지은과 전화를 마치고, 녹음실로 들어섰다.

문고릴 열자마자 내가 며칠 동안 씨름했던 결과물이 들려온다.

플래시 몹 이후로 던컨에게서 들리기 시작한 멜로디.

그걸 토대로 발전시킨 간단한 스케치가 녹음실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동안 멜로디 없이 백지를 채워넣는 작업들을 해와서 그런지, 확실히 빈칸을 채우는 게 수월했었지.

입구엔 캐리어가 보였다. 바로 옆에 반쯤 입을 열고 널브러진 베이스 케이스도.

안쪽에선 윤태영이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베이스를 튕기고 있었다.

앰프에 연결하고 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가 뭘 시도하는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피크 피킹이네요?”

현을 탁탁 긁어 내려가는, 기타의 그것보단 조금 두툼한 피크.

흔한 광경은 아니다. 대부분의 베이시스트가 손가락만으로 연주하는 핑거 피킹 주법을 사용하니까.

집중하고 있던 윤태영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 곡엔 뭔가 단단한 느낌이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손가락보단 피크가 좀 더 그런 느낌이 나긴 하죠.”

그래서 하드락 같은 쎈 음악에 많이 쓰이고.

바퀴 달린 의자를 끌어다 옆에 앉자 윤태영이 모니터를 보며 감상을 이어간다.

“피디님 곡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의도가 뚜렷했는데, 이번 건 유난히 더 그래요. 리드나 트럼펫 같은 소리들이 굉장히 섬세한 반면에 드럼은 빈티지 스네어로 거친 느낌이 물씬 나네요. 딱 듣자마자 피디님이 그리는 던컨의 방향성이 보이더라고요.”

분석에 가까운 감상을 듣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자칭 평론가인 롭 뭐시기 보다 훨씬 나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평론가 해볼 생각 없어요?”

“하겠다고 하면, 허락해주실 겁니까?”

“아니죠. 그냥 해본 소리예요. 베이스 실력이 아까워서 죽어도 못 보냅니다.”

고갤 내저으며 단호하게 말하자 윤태영이 피식 웃는다.

“저도 그냥 물어본 거예요.”

여전히 모니터를 욕심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올 피디님의 곡들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못 하죠, 다른 건.”

#나와 윤태영이 던컨의 멜로디를 발전시키고 곡을 다듬는 동안, 상황은 끊임없이 변했다.

먼저 뮤즈하임이 롭 테일러를 비롯한 평론가 일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오차드도 이에 유감을 표하며 몇 가지 보도자료를 늘어놨다. 가벼운 잽처럼.

그 후 뮤즈하임이 평론가들의 후원자로 월드덕 레코드사를 조심스레 추측하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번엔 오차드에서 제대로 묵직한 스트레이트를 한 방 날렸다. 월드덕에게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하며 그들을 코너로 몬 거다.

<월드덕 레코드, 기로 프로듀서의 거절이 불편했나?>

물론 거기엔 나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고.

이런 와중에도 던컨은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고요하게. 마치 태풍의 눈처럼.

밝은 모습에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하며 응원을 건넸고, 덩달아 여론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롭 테일러를 비롯한 몇몇 평론가들은 SNS 계정을 닫고, 잠적했다. 말 없는 그들의 대처가 여론을 완전히 던컨 쪽으로 기울게 했지.

그리고 또다시 며칠이 흘러서.

논란과 질타 속에서도 조용하던 월드덕 레코드사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참 난감합니다.

미안합니다, 가 아니라?

하다못해 유감이라고 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 네모난 안경을 쓴 남자였다.

채드 이사의 비서라던.

-저희가 꼭 거절당하고 복수하는 것처럼 기사가 났더라고요. 저흰 예전에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 그들을 지원했던 것뿐인데, 대표님이 그런 얘길 하셨으니······.

신나게 뒷말을 하다가 들켜버리니 대뜸 전화해서 내 탓을 하는 꼴이라니.

이제 다음은 협박이라도 할 기세네.

-이러면 저희 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하네, 협박.

나도 듣고만 있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저도 참 난감하네요. 있던 사실만 얘기했는데, 이런 전화를 받게 돼서요.”

내 말에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협박을 이어간다.

-대표님, 은유란 씨 앨범도 준비 중이시지 않습니까? 곧, 나올 때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요?”

물어보나 마나, 무슨 말 할지가 충분히 예상되지만.

-오차드가 언제까지 바람막이가 되어줄 순 없단 얘깁니다. 오차드는 은유란 씨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더블타임 같은 작은 레이블이 뭘 할만한 힘이 있을 리도 없고요.

역시나.

-그러니까······.

“혹시, 이사님도 같이 계십니까?”

내 물음에 순간, 건너편이 조용해졌다.

-예? 아뇨. 안 계십니다.

있나 보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반응을 보니 확실한 것 같다. 잘 됐지.

“뭐, 상관없습니다. 비서님이 전해주시면 되니까요.”

-무슨···?

“세비슨 너플러의 앨범 말입니다. 기사마다 이번 앨범에 대한 말이 계속 달라지더군요. 10월에 나온댔다 가, 11월에 나온댔다 가. 딱 봐도 문제가 있다는 게 보일 정도로요.”

전해 달라고 말은 했지만, 어투는 완벽히 건너편에 있을 채드 이사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 듣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남의 뮤지션 신경 쓰실 시간에 본인 뮤지션이나 신경 쓰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라고 전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

“아, 그리고 혹시 세비슨 너플러가 아직도 제 곡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비서가 당황하며 서둘러 내 말을 끊었다.

하지만 성난 상관의 목소리까지 끊을 순 없었나 보다.

-이런, 건방진······!

안 봐도 얼굴이 벌게져 있을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길래 끄덕였다.

“옆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딱히 더 할 말은 없어서 이만 끊겠습니다.”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뭐라고 더 하는 것 같았는데, 잘 안 들리더라고.

후련한 숨을 내뱉으며 고갤 들자, 황당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오차드의 본부장, 말콤이었다.

‘이래서 나가서 받으려고 했는데.’

멋쩍게 웃는데, 말콤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에 대한 첫인상이 점점 멀어지는군요.”

······칭찬이겠지?

*채드 이사와의 간접 통화(?) 후, 말콤은 약간의 걱정을 내비쳤다.

그 비서가 말했던 대로 자신들이 은유란을 도울 방법은 없다는 것.

던컨의 일로 월드덕 레코드도 조심이야 하겠지만. 이번엔 평론가 대신 기자를 매수할지, 아니면 평점 사이트를 조작할지 모를 일이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 나도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분명히 알고 있었지.

하지만 채드 이사도, 말콤도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유란 씨 앨범이 곧 나오겠지만, 채드 이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말콤에게 곧 알게 될 거라며 빙그레 웃어주고 미팅룸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곧장 밥에게로 전활 걸었다.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 중으로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앨범 준비가 다 끝났군요?”

-네, 완벽히요.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덩달아 나도 목소리가 반음쯤 올라갈 것 같다.

“고생하셨어요.”

-하핫, 제가 뭘요.

너털웃음을 흘리던 밥이 은근히 물어왔다.

-그래서 말인데요, 슬슬 미셸에 대해 알려도 되지 않을까요? 기대감도 이만하면 최고치를 찍은 것 같고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때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내가 말했다.

“이제 밝히죠. 곡의 주인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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