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77화 (177/221)

177. 플래시 몹 (3)

줄곧 댄스팀에 붙어있던 관객들의 시선이 여학생에게로 몰렸다.

여학생은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지 어정쩡한 자세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저럴 거면 왜 나선 거지?’

사람들의 시선이 의문에 젖을 때쯤, 댄스팀이 가르쳐준 동작들을 여학생이 연달아 췄다. 그리고 동시에 노래가 틀어졌다.

“어? 이거 걔네 노래네. 던컨!”

“던컨이 누군데?”

“그 있잖아. 아시안 보이 그룹! 몰라?”

“몰라, 그게 뭔데.”

“그럼 헤일리 쇼에 나왔던 기로 프로듀서는?”

“헤일리 쇼도 안 보는데?”

“······그래.”

누군가는 반가워하고, 누군가는 심드렁했다. 그리고.

“이거 너드(-덕후)들이나 듣는 노래잖아?”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틈에 껴있던 제이미 킴, 김수정의 대학 친구들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라는 거야? 지가 너드처럼 생겨 가지곤.”

“저래놓곤 밤마다 포켓몬 잡겠다고 공원 돌아다니겠지.”

“얘들아, 그거 나도 해······.”

“앗.”

그 사이, 본격적인 춤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불려 나온 관객 중 한 명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자 사람들은 이 상황을 나름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 잘 추는 거 같은데?”

“그러게······이거 짠 거 아냐?”

“그거처럼? 그, 그, 뭐라고 하더라. 갑자기 한자리에 모여서 춤추고 흩어지는 거!”

“플래시 몹?”

“그래, 그거!”

손뼉 치는 관객들 옆에 서서 까딱까딱 리듬을 타던 여자가 슥 앞으로 나섰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둥그렇게 원을 그린 구경꾼들 사이에서 서너 명이 재빠르게 달려나가 여학생 양옆으로 붙어섰다. 그리고 같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건너편에서 또 한 명.

그쪽을 보며 신기해하던 구경꾼 바로 옆에서 또 한 명.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이 춤에 합류했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하며 몸을 떨었다.

“뭐야, 나 방금 소름 돋았어.”

“대박이다. 저게 대체 몇 명이야?”

“백 명은 되겠는데?”

이 순간에도, 춤추는 이들은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그들을 위해 뒷걸음질 쳤다. 원이 커지고 그 안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기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군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와···멋지다. 제이미.”

“그러게···.”

김수정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대학 친구들.

그중 한 명이 입까지 벌리고 끄덕거리다 갑자기 얼굴을 팍 찡그리며 고갤 돌렸다.

“근데, 왜 이렇게 밀치는······.”

뒤쪽에서부터 웅성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벽처럼 서 있는 거구의 남자들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길을 따라 앞으로 나서는 또래 남자들.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이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아녜요.”

짜증 섞인 말투가 휘발되어 사라졌다.

제이미가 평소 억지로 보여주던 영상 속, 그들이었기에.

#‘내 뒤에 몇 명이나 있는 거야!?’

한편, 김수정은 자신이 긴장했던 것도 잊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오히려 고양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대체 몇 명이 This is DUNCAN의 안무를 함께 추고 있는 걸까? 100명? 200명? 이걸 보는 사람들은 또 몇 명이고?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몇 명 못 모일까 걱정했는데. 또 관객들이 적을까 걱정했는데.

모든 게 기우였다는 듯, 꿈만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들뜬 기분으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췄다.

이 보다 더 완벽한 플래시 몹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랬는데.

‘뭐지?’

시선 끝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람들이 쭉 갈라지고, 그 틈으로 여럿이 일렬로 나타나 앞줄에 섰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본다.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로.

순간 김수정은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라이브 방송으로 보겠다던 던컨이,

지금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덜컥거렸다.

어찌어찌 춤을 추고는 있지만, 금방이라도 틀릴 듯 위태위태했다.

'이 다음이 뭐였지? 던컨이 지켜보고 있는데...!'

당연히 주변도 이미 난리가 났다. 누군가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몇몇은 춤을 추다가 그대로 굳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대열이 흐트러지고 춤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느껴지는 순간.

던컨이 뛰쳐나왔다.

#“어후, 소름 돋았습니다. 방금.”

이강훈 팀장이 파르르 떨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도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했으니까.

당황한 팬들 사이로 뛰어들어 2절을 이어가는 던컨. 그리고 그들을 따라 다시 춤을 맞춰가는 팬들. 한 사람이 춘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칼군무는 결코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희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만이 아닌 것 같지.

“이거 애초에 기획한 건가?”

“그런 거 치곤 춤추던 사람들 표정이 완전히 놀란 얼굴이던데?”

“그럼 깜짝 이벤트로 나타난 거야?”

“기분 째지겠다. 내가 캐치볼 하는데 갑자기 게릿 콜이 나타나서 받아준다고 생각하면···!”

“···저기, 무슨 버스킹이길래 이렇게 많이들 봐요?”

“플래시 몹 중이에요.”

“플래시 몹?”

“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처음부터 지켜보던 관객들은 흥분했고, 궁금해서 모여든 이들은 그 흥분을 나눠 가졌다.

아무리 나눠줘도 차고 넘칠 만큼 열기는 대단했다.

“팬들 얼굴이 로또라도 맞은 표정들이네요. 대표님께 엄청 고마워하겠습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던컨과 함께 플래시 몹을 이어가는 팬들을 훑었다. 곡과 함께 그들의 표정도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던컨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밝은 게 아닌, 정말 이 순간을 즐기는 애들이 눈에 찼다.

“오히려 제가 고맙네요. 팬들한테.”

이강훈 팀장이 잠시 갸웃거리더니, 애들의 표정을 봤는지 이내 주억거린다.

“확실히 아이돌에겐 팬도 또 다른 멤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요.”

내가 안도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멤버가 모두 모인 느낌이네요.”

#<한자리에 모인 뮤지션과 팬, 키보드만 두드리는 평론가들을 향해 밖으로 나와 반박하다!>

[반짝 떠오른 스타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바닥 위를 걷는다던 모 평론가의 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낮에 타임스퀘어를 뒤흔들었던 플래시 몹은 그 말을 정면으로 깨부쉈다.

사회성 결핍이라던 팬들은 서로 모여 커다란 이벤트를 계획하고, 팬들을 돈으로만 본다던 스타는 그들을 위해 몰래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벤트의 성공을 기념하며 거액의 기부까지 하면서······]

기사를 따라 내려가던 시선이 마침표까지 향했을 때쯤, 마지막 문단을 이강훈 팀장이 낭독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떠들썩한 SNS가 대변하고, 결과는 빌보드가 증명했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던컨의 순위는 13위다. 이 기세라면 다음 주쯤엔 10위 안쪽에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뮤즈하임 기자, 오브리 케인.”

다시 들어도 좋은 내용이다. 기사 참 잘 쓰는 양반이네.

“뮤즈하임쯤 되는 잡지사에서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호평을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전 알았는데요?”

“근데 그렇게 기사를 쪼듯이 보셨습니까?”

너스레를 떨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 옆에서 웃음 짓던 김지희가 마우스를 달깍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뮤즈하임에 잘못된 정보가 있다고 연락해야겠어요.”

“잘못된 정보요?”

“네. 여기 던컨이 13위라고 되어 있는데······.”

그녀가 씨익 웃었다.

“지금 8위거든요. 당연히 아직 다음 주도 안 왔고요.”

*“오차드로 가시게요?”

“네, 말콤이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해서요. 일찍 가서 애들도 좀 보려고요.”

김지희가 끄덕거렸다.

“간 김에 애들한테 빌보드 소식도 알려주세요. 아마 모르고 있을지도 몰라요. 팀장님이 핸드폰 뺏어서.”

그러자 이강훈 팀장이 서랍을 열어 지퍼백에 담긴 핸드폰 꾸러미를 가져왔다.

“플래시 몹 이후로 반응이 어떨지 모르니까, 혹시 몰라 뺏었었죠.”

멋쩍게 웃는 그에게 핸드폰까지 받아 들고 월드 TKM 건물을 나섰다.

오차드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라서 걸어가도 충분했다.

여름일 때 한국을 떠났는데, 벌써 가을의 끝자락이다. 풀 냄새들은 진작에 사라지고, 고급 와인에서나 날 법한 낙엽 냄새가 바스락거렸다. 날씨도 한국만큼 극적이게 변하진 않지만, 꽤 쌀쌀하고.

겉옷을 움츠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진동이 느껴졌던 게 착각은 아니었는지,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던컨의 찐팬을 자처했던 정보통, 김수정이었다.

[그날 찍은 영상 전부 보내드려요! 친구들이랑 같이 정리하다가 한 바탕 펑펑 울었네요. 잊지 못할 최고의 날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꼬릴 올리며 우리가 더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여담이지만 본인을 정보통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알고 엄청 자랑스러워 하더라. 그래서 계속 정보통이라 불러주기로 했다. 원한다니까, 뭐...

답장을 보내는 사이, 오차드 근처에 도착했다.

푸드 트럭에서 타코를 포장해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오셨어요!?”

역시나. 어김없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던컨.

“간식 가져왔어.”

내가 타코 박스를 흔들자 애들이 우르르 다가와 붙었다.

“역시, 피디님!”

“잘 먹겠습니다! 나 매운 거. 매운 거 땡겨.”

“매운 거 잘 먹지도 못하면서.”

“혼혈이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혼혈 얘긴 안 했거든?”

둥글게 모여 앉은 애들이 순식간에 하나씩 뱃속에 채우는 동안, 나는 어미새 마냥 흐뭇하게 애들을 지켜봤다.

“피디님도 드세요!”

“밥 먹고 왔어. 너네 많이 먹어라.”

플래시 몹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날, 던컨과 팬이 함께 여론과 차트를 변화시킨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할 순 없지.

던컨도 많은 게 변했으니까.

한층 더 밝아진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멜로디까지.’

귓가를 꽉 채우는 멜로디에 후속곡 걱정 따위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들리기 시작한지는 이미 며칠이 지났지만, 들을 때마다 아이디어가 넘쳐 난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어떤 식으로 멜로디를 채워볼까.

편곡은 어떻게 진행할까.

즐거운 고민을 떠안고 멜로디를 음미하다가, 가방에서 핸드폰들이 담긴 지퍼백을 꺼냈다.

“이것도 가져왔어.”

“······.”

입에 한가득 머금은 애들이 덜컥 긴장한 표정으로 나와 지퍼백을 번갈아 본다. 씹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들에게 내가 웃었다.

“안 궁금해?”

그러면서 덧붙였다.

“반응 좋던데. 차트 순위는 몇 계단이 올랐더라?”

“...!”

그제야 용기를 얻은 애들이 타코를 내려놓고 달려든다.

잠시 후, 각자의 핸드폰을 붙잡고 행복에 겨워하는 던컨의 모습이 시선에 가득 찼다.

#오차드 글로벌 뮤직 본부장, 말콤이 오늘은 케이트 없이 앉아 있다.

방금 던컨의 반응을 지켜보고 온 터라 흐뭇함에 범벅이 된 채로 앉아 있는데, 말콤은 시종일관 진중한 표정으로 얘길 꺼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플래시 몹 덕분에 팬도 많이 늘었고, 여론도 꽤 괜찮아졌으니 한숨 돌릴 수 있겠네요. 거기에 차트 성적도 계속 오르니 더할 나위 없군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죠.”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그것 때문에 만나자고 했어요.”

그 말에 내가 물었다.

“후속곡에 관한 얘긴가요?”

말콤이 정확하다며 끄덕였고.

“후속곡 일정을 조금 앞당길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서요.”

“저희 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 타오를 연료를 더 넣어야겠죠.”

이에 말콤이 만족스러운 듯 끄덕거렸다.

이게 끝인가?

갑자기 만나자고 한 것치곤 간단히 끝나버린 대화에 찻잔을 휘적거리며 기다리는데,

그가 내게 불쑥 물어왔다.

“아 참. 혹시 말입니다.”

“네.”

“LA에서 월드덕 레코드사와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건 왜요?”

내 반응에 이미 대답을 들었다는 듯 주억거리는 말콤.

그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던컨을 건든 평론가 중 일부가, 월드덕 레코드사의 입김에 따라 움직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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