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75화 (175/221)

175. 플래시 몹 (1)

평론가이자, 비평가, 그리고 독설가로도 통하는 롭 테일러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뮤즈하임이란 대형 잡지사에서 일하는 기자였다.

기자도 마주 웃으며 다가오더니 테이블 위를 훑으며 갸웃거렸다.

“뭐야, 와인? 자네 와인 안 좋아하지 않았냐?”

“그랬는데, 요즘 마시다 보니 또 맛있더라고.”

잔을 휘휘 돌리더니 도드라진 매부리코를 가져가 향을 맡는다.

기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즘 주머니 사정이 괜찮나 보네?”

“뭔 소리야. 늘 똑같지.”

롭이 덤덤하게 말했지만, 기자의 눈빛은 더욱 요상해졌다.

“누가 의뢰했나?”

“뭐?”

“요새 평론가들이 아주 못 잡아먹어 난리가 난 뮤지션이 한 명, 아니지. 그룹이 하나 있던데 말이야.”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내 앞에 앉아 계신 독설가님이시더라고.”

롭이 혀를 차며 돌리던 와인 잔을 내려놨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더니 이제 소설가라도 되기로 한 거야?”

“내가 소설 쓰면 욕만 먹을걸? 허무맹랑하다고. 현실이 더 소설 같을 때가 많은데 말이야.”

“뭐라는 건지···아무튼, 잘못 짚었어.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난 아냐.”

“정말?”

“아 거, 술맛 떨어지게. 헛소리 그만 늘어놔. 와인으로 세수하고 싶지 않으면.”

“알겠어, 알겠어. 자네가 이렇게까지 아니라는데 뭐, 그런 거겠지. 콧대 높은 평론가신데. 그래도 자네가 불렀으니까 와인 한 잔 사주겠지?”

“주문해.”

“흐, 다녀오지.”

기자가 가게로 들어가자 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능구렁이 같은 놈.”

자신의 비평을 기사로 내보내 달란 부탁을 하려고 불러냈는데, 저런 식으로 떠보니 얘길 꺼내는 것 자체가 애매해졌다.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아요.

“잠깐.”

그때, 벌컥 문을 열고 나오는 기자.

놀란 롭이 서둘러 표정관리를 했지만 이미 일그러트린 얼굴을 보인 뒤였다.

기자가 음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샤또 무똥 로칠드도 괜찮나?”

“······그러시던지.”

“고마워!”

히죽 웃으며 다시 들어가 버린다.

“후우.”

와인 한 잔에 꽤 큰돈이 나가게 생겼지만, 롭은 안도하며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가게 안쪽을 힐끔거리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뮤즈하임 매거진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네요. 포스턴뮤직 쪽으로 넘기죠.]

탁.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와인잔을 굴리며 롭은 생각했다.

설령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마찬가지로 그렇게 혹평했을 거라고.

아이돌 문화는 유해하다.

던컨은 오차드의 장사수단일 뿐이며, 현혹되어선 안 된다.

실력이 아닌, 마케팅의 승리였을 뿐이다.

-라고.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어차피 오래 못갈 녀석들이었잖아?’

#“이사님, 세비슨이 왜 연락이 안 되냐며······.”

“바쁘다고 둘러대세요.”

“그게,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는 월드덕이랑 음악 못 하겠다고······.”

“이봐요, 매니저님.”

“네, 넵.”

“세비슨이 저렇게 난리를 쳐대니까, 매니저님도 제가 우스워 보이세요?”

우뚝 굳은 매니저가 입을 벌린 채로 벙긋거렸다.

“아, 아닙니다!”

“세비슨 그년, 어차피 돈 따라 우리 레이블 왔습니다. 아무리 난리 쳐도 어차피 재계약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말고 가서 그년 마음에 들 다른 프로듀서나 찾아오세요. 아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퍼블리싱 팀 매니저가 나가고, 다음은 그의 비서였다.

네모난 안경을 추켜 올리며 들어온 비서에게 채드 이사가 시선도 주지 않고 물었다.

“평론가들은 문제없겠죠?”

“네. 저희가 요청하지 않은 평론가들도 비평을 해줘서 오히려 잘 됐습니다.”

“롭, 그 양반은 뭐래요?”

“뮤즈하임 매거진은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 왔습니다. 대신 포스트 매거진 쪽과 얘기해보겠다고 합니다.”

“뮤즈하임 쪽에 아는 기자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하여간 혀로 먹고사는 놈들은······.”

투덜거리는 채드 이사를 보며 비서가 슬쩍 의문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사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뭘요?”

“기로 프로듀서가 건방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평론가들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마른침을 삼키는 자신의 비서를 보며 채드 이사가 피식 웃었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네?”

“한 번 더 기회를 줬는데도 차버린 프로듀서 놈의 앞길은 물론이고, 머지않아 우리가 넘어야 할 오차드. 그 둘에게 한 번에 엿을 먹일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아···! 그다음 세비슨 너플러까지 제대로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비서의 가정에 채드 이사가 이미 벌어진 일인 양 흐뭇하게 끄덕였다.

“좀 귀찮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죠.”

#“아이돌은 결국 상품이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그들의 굿즈처럼. 그런 상품을 부르짖으며 따라 하고, 목을 매는 건 매우 어리석다.

그들은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우리 앞에서 춤을 출 것이고, 인어공주가 마녀에게 목소리를 얻었듯, 오토튠이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잘 부르는 것처럼 현혹할 것이다.

그리고 후에 팬심에 겨워 울부짖는 너희를 보며 비웃겠지. 애초에 그들은 팬들과 함께할 생각 따윈 없었을 테니······.”

김지희가 말꼬릴 삼키며 눈치를 보았다.

이강훈 팀장의 땅이 꺼질듯한 한숨 소리.

윤 이사의 볼펜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

속에서 이는 천 불을 끄려는 듯 아이스 커피를 홀짝거리는 장기로까지.

이 모든 소리 중 자신의 소리가 가장 불편한 소리였다.

“계속 읽어줘요.”

빠득. 이강훈 팀장이 내일 당장 치과에 가봐야 할 것 같은 소릴 내며 재촉했다.

김지희는 윤 이사와 장기로를 보았다. 끄덕거리는 둘.

하는 수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덕질을 하거나, 토크쇼에서 너스레나 떨며 유명해진 프로듀서의 노래를 찾아 듣는 대신, 의미 있는 걸 해라.

훌륭한 음악을 찾아 듣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필자는 요즘 미셸의 행보를 보며 기대하고 있다.

전설이 돌아와서 한다는 게 고작 피처링이라니. 대단하지 않나? 과연 어떤 뮤지션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을지 궁금해하며 그녀의 예전 앨범을 듣는 게 훨씬 의미 있을 것이다.”

“끝입니까?”

“네.”

“젠장.”

이강훈 팀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낭독을 마친 김지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더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며 생수로 입을 헹궈댔다.

“아니, 이게 대체 몇 번째예요? 이 정도면 우리한테 스트레스 푸는 거 아녜요? 무슨 층간소음에라도 시달리나.”

“그래놓고 뭐 음악계를 바른길로 선도하는 것 마냥, 은근슬쩍 요즘 떠들썩한 미셸 루바니 얘기 끼워 넣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인지 댓글에 맞는 말이라면서 미셸 루바니가 돌아왔는데, 외노자 따위가 끼어들······.”

김지희가 다시 입을 헹군다.

스팀이 팍팍 뿜어져 나오는 둘 사이에서 장기로와 윤 이사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건 나중에 좀 창피해하겠는걸?”

윤 이사가 슬쩍 장기로를 보며 중얼거렸다.

장기로는 피식 웃으며 사이다 캔을 땄고.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누가 창피해해요? 롭 테일러?”

의문 섞인 질문에 윤 이사가 장기로에게 말했다.

“이젠 이 둘한테는 얘기해도 되지 않겠나?”

“그렇죠.”

끄덕이던 장기로가 아리송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미셸 루바니 피처링 말입니다······.”

#“봤지?”

“에헤이, 안 봤다니까.”

“봤네.”

“아니라니까?”

“봤잖아.”

“끙······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임현택이 실토하자 정현우가 추궁하는 듯한 표정을 지우고 입맛을 다셨다.

“똥 싸다 만 표정으로 온종일 돌아다니는데, 그거밖에 더 있냐. 인터넷 기사.”

“좀 좋은 글은 없나 해서 봤지.”

“······그랬는데?”

내심 궁금한 듯 정현우가 슬쩍 물었다. 옆에 쪼르륵 앉아 있던 나머지 멤버들도 눈을 빛냈다.

“그게···.”

“아니다, 안 좋은 얘기잖아. 안 들을래.”

“그래, 그럼.”

“······안 좋은 얘기 맞아?”

“어떻게, 말을 해요? 말아요? 리더님.”

“으으, 해. 들어보자 어디.”

그렇게 임현택의 입을 통해 롭 테일러의 새로운 글을 전해 들은 던컨 멤버들의 표정이 흡사 병원 진료실 앞의 환자들처럼 변해갔다.

“왜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아니, 호불호란 게 있으니까 비평은 할 수 있다 쳐. 근데 왜 팬들을 들먹이냐고. 우리가 팬들과 함께할 생각이 없어? 돈벌이 수단이야? 어처구니없네.”

오승준의 축축한 목소리에 신예석이 디스 랩을 하듯, 다다다 내뱉었다.

자기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엄대한이 벌떡 일어난다.

“그니까! 넘하네! 혼혈이 어때서!”

“혼혈 얘기 없었어.”

“오우, 그래?”

노란 머리칼을 긁적이며 다시 앉았다.

임현택이 눈이 데구르르 굴러 정현우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만 놓고 보자면 저쪽이 가장 심각한 환자였다.

“피디님까지 덩달아 언급되셨네. 실력 없고 방송만 하는 프로듀서인 것처럼.”

정현우의 힘 없이 떨어지는 말에 멤버들이 끄덕거렸다.

곡을 만드는 건 피디님이다.

하지만 그걸 부르고 보이는 건 자신들이었다.

“우리가 못하면 우리 욕먹는 거로만 끝나는 게 아닌 거지.”

이어지는 침묵.

하지만 이내 자기 때문에 처진 분위기를 읽은 정현우가 얼른 수습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하자. 다른 분들 욕 안 먹게!”

다행히 멤버들도 그의 마음을 알고 잘 따라주었다.

“우리도 안 먹으면 안 되나?”

“그래, 그래. 우리도 먹지 말자.”

“아, 형은 좀 먹어도 돼요.”

“뭐 임마?”

어김없이 티격태격하는 임현택, 엄대한 콤비를 보며 멤버들이 다시 웃음을 찾았을 때.

문이 열렸다. 당연히 한동휘일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고.

“피디님?”

*“오늘은 쉬어도 되는 날 아니었어?”

애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린다. 여전히 밝게.

“매일 하던 연습을 안 하니 몸이 근질거려서요.”

“아침에 눈이 딱 떠지더라고요.”

“그래서 트레이너님께 전화했죠. 연습해도 되냐고. 와 우리 너무 모범생 같다.”

내가 푸스스 웃었다.

그리고 시시덕거리는 던컨의 면면을 살피며 말했다.

“요즘 인터넷에 이런저런 말이 많더라고.”

순간, 애들의 표정이 팔팔 끓는 물에 담근 것처럼 숨이 죽었다. 그 변화가 너무 뚜렷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숙연하다.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들 마냥 혼나길 기다리는 것 같다.

뭘 잘못해서?

정현우가 대표로 내게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인터넷 기사, 계속 보고 있지?”

“······네.”

정현우의 솔직한 대답에 애들이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이해해, 궁금할 거야. 그걸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

시선이 아래로 기울어가는 콧등들을 바라보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당부했다.

“너희 잘못 없다고. 전혀.”

#2주 동안, 나와 던컨은 오차드가 엄선한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엄선했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평론가들에 대해 언급하는 MC도 있었다.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으려 얼마나 표정관리를 했던지.

그래도 다행히 던컨은 여전히 밝았다.

오히려 나보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화두를 돌리는데 도가 텄다.

뮤튜브 영상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업데이트되었고,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도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주말을 두 번이나 흘려보내고, 스케줄이 빈 날이 돌아왔다.

‘아니, 비운 날이라고 해야 하나.’

던컨 애들이 밴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정보통이 보내온 메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불법 굿즈를 넘겨주고 한정판 굿즈를 받아간 유학생.

그녀가 보내온 메일엔 플래시몹 계획서(?)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참여하겠다고 약속된 인원이 100명 가까이 된다고.

SNS로 라이브 방송을 킬 테니 혹시! 만약에! 운 좋게! 던컨이 바쁘지 않다면 자신들의 영상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글로 메일을 맺었다.

내 정보통(-본인은 모르지만)인 그녀조차도 던컨이 그쪽으로 갈 준비 중인 건 전혀 모르는 상황.

‘이런 이벤트는 원래 그런 묘미로 하는 거지.’

동시에 뒤숭숭한 분위기에 혼란스러울 팬들을 결집하고, 던컨이 팬들을 신경도 안 쓸 거라던 롭 테일러의 말에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 되겠지.

‘운이 좋다면,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조수석에 앉아 뒤를 돌아봤다.

“뭔가 우리가 역 이벤트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설레는걸?”

“그러니까. 기분 너무 좋은데?”

“많이 놀라고 기뻐해 줬으면 좋겠어요.”

“승준이 애교 보여주면 되겠네.”

“위아 히어. 렛츠 댄스 투게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에 차오른 던컨이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옆에 앉은 한국계 던컨 매니저가 헛웃음을 지었다.

“요새 휴가 시즌이라 타임스퀘어 사람 엄청 많을 텐데요?”

그러게.

“완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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