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맞불
평론가들이 던컨을 콕 집어 지목한 건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수준의 독해력이 있고, 연예계에 쥐똥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던컨이 떠오르도록.
그렇게 써재껴 놓았다.
<우상에 빠진 10대들, 숭배받는 이들은 철저한 장사꾼들?>
<미국에 불어오는 유행, 극심한 팬덤의 원인은 사회성 결핍>
<빌보드 싱글 차트의 벽을 허문 해외 뮤지션들. 실력인가, 운인가>
평론가들이 짚고 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굿즈를 문제 삼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덕질 자체를 결핍에 의한 정신병 정도로 거칠게 진단하기도 했다.
아예 해외 뮤지션들을 싸잡아 생소함의 덕을 봤다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실력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비평이라기엔 목적이 날 서 있고, 우려 섞인 목소리라기엔 근거가 어지럽다.
문제는 지금도 이런 글들이 끊임없이 매거진, 개인 블로그, 기사 등에 올라오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한다는 것.
특히나 학교 선생, 교수,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이 움직임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가장 악질은 따로 있었다.
차별주의자들.
그들은 어떻게 ‘저런’ 애들을 좋다고 응원을 할 수 있냐며 비웃어 댔다.
우리 애들이 어때서?
모성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욱이 치밀어 올랐지만, 별수 없었다.
우리 쪽에서 악플러들에 대한 고소 얘길 꺼내자 오차드 쪽에서 고개를 내저었다지.
아직 던컨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래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단순히 콧대 높은 평론가들의 투기심 정도로 여겼던 비난이 비탈길을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갈 때쯤.
나는 LA를 떠나 뉴욕에 도착했다.
-피디님, 도착하셨어요?
“네, 방금요.”
-아하, 저흰 지금 월드 TKM 사무실에 있거든요. 바로 오실 거예요?
“아뇨, 오차드 먼저 들리려고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애들 아마 한창 연습 중일 거예요! 피디님 보면 좋아라 하겠네요.
김지희와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아탔다. 오차드에 알렸다면 차가 한 대 나와 있었겠지만, 뭔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이시죠?”
“네?”
택시 운전사가 백미러로 날 보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그, 어디였더라······아! 영화, 죽여주는 19일의 금요일에 나오시지 않았어요?”
“아뇨.”
언제보다 빠르게 대답했다. 갑자기 영화라니. 그것도 제목이 좀 이상하잖아? 대체 뭘 본 거야?
“이상하다, 다른 거에서 봤나? 나의 첫 번째 섹시······.”
“아뇨, 저 아마 토크 쇼들에서 보셨을 겁니다. 헤일리 쇼라든가.”
결국, 내가 밝혔다. 이러다간 나도 모르는 내 필모가 넘쳐날 것 같아서.
“그럼 연예인인 건 맞네요?”
“프로듀섭니다.”
프로듀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다 보니 무슨 곡을 작곡했는지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어지간한 인터뷰어보다 택시 운전사가 더 낫지 싶다.
이러다 신상정보를 다 읊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택시가 오차드 앞에 멈춰섰다.
“좋은 곡 많이 만드시고요. 제가 이걸로 손님들께 홍보도 많이 하겠습니다!”
내가 준 던컨의 사인 CD를 흔들며 택시 운전사가 경쾌하게 엑셀을 밟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던컨 자랑을 열심히 했는데, 먹혔을지 모르겠네.
푸스스 웃으며 오차드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중앙, 나름 식물도 심고 벤치도 깔아둔 공터에서 반 층쯤 내려가자 헬스장과 연습실들이 보였다.
불이 들어와 있는 연습실 몇 개를 훑자, 금세 던컨을 찾을 수 있었다.
안의 열기가 대단한, 후끈후끈 끓어오르고 있는 연습실.
문에 달린 작은 창이 오븐에 달린 그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열정적인 춤사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동작, 한 동작마다 땀을 비 오듯 흩뿌린다. 잘은 안 들려도 입 모양과 목에 선 핏대를 보니 노래도 함께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 던컨의 주위를 돌며 한동휘는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었고.
녹음실과는 또 다른 전쟁터를 지켜보다 멤버들이 하얗게 불태우고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을 때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피디님!”
애들이 바닥에 튀어 오르려 길래 얼른 앉아있으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 사이, 한동휘가 노래를 끄고 아이스박스 하나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오셨어요?”
“네, 이제 춤도 봐주시는 거예요?”
“전문 안무가님들보단 부족하겠지만, 동시에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전 아이돌이시니 믿을만하죠.”
그가 멋쩍게 웃으며 반쯤 얼은 생수병들을 배급한다. 나도 한 병 받아 꿀떡꿀떡 삼켰다. 정작 난 움직인 것도 없는데, 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이 바싹 말라 있었다. 그만큼 대단했지.
“실력들이 더 는 것 같아요.”
“데뷔 직후보다 정말 많이 늘었어요.”
흐뭇하게 애들을 바라보는 한동휘.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던컨을 보았다. 우리의 칭찬에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다행히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휴식 시간을 주고, 한동휘와 잠시 복도로 나왔다. 현재 오차드에서 붙여준 한국계 매니저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던컨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밀도 있게 지켜본 것은 트레이너인 그였다.
덜컹. 투박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복도 끝 벤치로 향했다.
“LA에서의 일은 모두 잘 마치신 거예요?”
“네, 이제 결과만 남겨두고 있네요.”
“은유란 씨의 재즈곡이죠?”
끄덕이자 그가 웃는다.
“기대되네요. 재즈는 잘 모르지만, 이전 곡 들어보니 그분이 노랠 정말 잘하신다는 건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이번엔 더 대단했죠. 실력이 엄청 늘어서.”
그러냐며 들썩이는 한동휘.
내가 옅게 웃으며 슬쩍 물었다.
“애들은 좀 어때요?”
“네? 아······시끌시끌한 거요?”
“네. 유튜브나 SNS에서도 계속 설전 중이니 애들도 알고는 있을 거 같은데, 어떤가 해서요.”
“말씀하신 대로 애들도 다 알고 있어요. 최근에 강훈 팀장님이 애들한테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그 뒤로 어쩌는진 모르겠네요.”
“그래도 밝아 보여서 다행이긴 한데······.”
내가 음료수를 휘휘 돌리며 말하자, 한동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또 그런 것만은 아닌 게, 애들이 은근히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요?”
“원래 대한이나, 현택이는 칭얼대는 게 기본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전혀 힘든 티를 안 내요. 원래 열심이던 현우나 나머지 막내 라인 애들은 제가 말릴 정도로 열심히 고요. 간간이 후속곡에 대한 걱정도 토로하더라고요.”
내가 천천히 고갤 주억거렸다.
“후속곡······부담되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나지막하게 내뱉은 말에 한동휘의 얼굴에 불안한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에게도 트라우마 같은 단어였기에.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던컨과.
과거 후속곡에서 삐끗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초조해하는 한동휘.
사실, 나에게도 후속곡은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데뷔곡보다 훨씬 더.
던컨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중요한 분기점이 될 테니까.
여기서 더 치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날 선 평론들과 함께 기사 더미 아래로 깔려 사라지느냐가 결정될 기로였다.
“어, 장 대표 왔구만!”
유리에 비친 내 얼굴만큼이나 심각한 표정들이 회의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길래 조심스레 들어갔다.
가장 심각한 얼굴이던 윤 이사가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손짓했다.
“피디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연달아 인사를 건네는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을 보며 내가 으쓱거렸다.
“일찍 오길 잘 한 것 같네요. 심각한 표정들을 보니.”
그러면서 자리를 바꾸려는 이강훈 팀장을 도로 앉히고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았다.
껄껄 웃던 윤 이사가 다시 표정을 굳히며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 설명해주었다. 평론가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여론에 대해 대처 방법을 논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내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회의가 이어졌다.
은유란과의 작업 때문에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들으며 나도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최근 던컨에게 씌워진 장사꾼이란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게 뭐예요?”
“인천공항에서 던컨 팬한테 받은 건데, 저희 쪽에서 만든 게 아니더라고요.”
이강훈 팀장이 노트를 받아들며 말했다.
“불법 굿즈군요.”
“네.”
“이것도 참 문제죠. 우리가 판 것도 아닌데, 언론은 장사 한다고 난리니······.”
텁텁한 표정의 이강훈 팀장.
스프링 노트를 테이블 한가운데에 툭 올려놓고 다시 회의를 이어갔다.
“지속적으로 던컨에 대해 올리는 평론가가 누구죠?”
“많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던컨에 대해 신랄하게 평가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에요. 롭 테일러.”
김지희가 노트북으로 한 사람을 찾았다.
딱 봐도 깐깐해 보일 것 같은 얼굴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옆집에 살면 참 피곤할 것 같은.
“아이돌 문화 자체를 깎아내리면서 동시에 던컨의 실력 자체를 폄하하고 있어요. 이번엔 질 낮은 문화라는 말까지 했더라고요.”
“사회성 결핍 운운하면서 말이죠?”
“네. 그것도 롭 테일러였어요.”
이마를 긁적이며 헛웃음 지었다.
“다방면으로 괴롭히네요.”
“그쵸. 이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현지 레이블들의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고요?”
윤 이사를 돌아보며 묻자, 그가 끄덕였다.
“오차드 쪽에선 은근히 그럴 가능성도 염두 하는 것 같더라고. 심증일 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오차드 쪽은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라던가요?”
“예정대로 계속 언론이나 방송에 던컨을 노출 시키겠다더군.”
“정면 돌파네요.”
내 말에 주억거리던 이강훈 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후속곡 일정을 좀 앞당기는 게 좋겠습니다. 실력행사를 제대로 해서 뜰만 하다, 잘 될 만하다는 여론을 만드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네요.”
“그치만, 좀 어수선한 상황이지 않나요?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은데,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김지희가 우려 섞인 말에 윤 이사가 끼어들었다.
“후속곡 일정을 당기는 건 나도 찬성이야. 일단 완성 시켜놓고 발매 시기를 조율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지금의 어수선한 상황을 좀 잠재울 필요는 있을 거 같은데······장 대표 생각은 어때?”
어떠냐고?
어떤 대응이 가장 베스트일지 시뮬레이션 돌리는 걸 멈추고, 솔직하게 답했다.
“상황을 잠재우는 게 사실상 어려울 겁니다. 아예 던컨이 잊혀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모를까요.”
“그러면 그냥 어수선한 채로 후속곡을 내놓자?”
윤 이사의 반문에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뗐다.
“어차피 안 되는 거라면, 차라리 활활 태우죠.”
“오차드가 말한 대로 정면돌파. 즉, 맞불을 놓자? 근데 그게 방송만으로 될까? 이미 유명 토크쇼들은 전부 돌았는데 말이지. 더 이슈될 만한 것도 없어.”
“제 정보통이 그러는데, 조만간 던컨의 미국 팬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꽤 큰 이벤트를 하나 한다더라고요.”
끔뻑이는 세 쌍의 눈.
김지희가 머릴 기울이며 물어왔다.
“피디님한테 정보통 같은 게 있었어요? 아니, 그보다 무슨 이벤트요?”
“플래시몹이라던데요?”
“네?”
내가 테이블 중앙에 놓인 스프링 노트를 보며 입꼬릴 올렸다.
“그날 던컨 스케줄을 비워두죠.”